"지적재산권으로 보상 마땅, 제작비용도 막대" 주장, 해결과제는 '산넘어 산'
관련 법 제도, 보상 대상ㆍ범위ㆍ액수 등 세부 기준 마련해야

제안서의 작성 비용을 보상해줘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계측은 제안서에는 지적재산권이 담겨있으며, 또 제작비용이 막대하다는 점 등을 들어 마땅히 제안서의 작성 비용을 보상해줘야 한다는 문제를 강도 높게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공공 기관 등 발주처에서는 예산 확보 등의 문제를 들어 애써 외면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안서 보상, 과연 당위성은 있는지를 따져보고,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살펴봤다.

"소프트웨어 사업의 제안서는 다양한 첨단 기술, 정보, 노하우 등이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많은 우수 인력이 수개월씩 동원되어 작성되고 있다. 하지만 제안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과다한 경영비용 부담, 우수한 제안서에 대한 저작권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제안서 작성비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이다.
업계에 따르면 제안서 작성비는 프로젝트의 규모에 따라 다른데 정부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1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의 경우, 적게는 2~3억원에서 많으면 3~4억원에 이른다. 전체 프로젝트 액수의 2~4%를 차지하는 셈이다. 일부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제안서 제작비가 전체 프로젝트 액수의 5% 정도를 차지하는 사례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400억원 규모의 모 공공 프로젝트에서 제안서 작성에만 20억원이 들어갔다. 8개월동안 60~70여명의 인력이 투입됐다"고 말했다. 제안서의 분량은 보통 1천 페이지가 넘는다.
제안서 제작비는 종이값, 인쇄값, 인건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역시 대부분은 인건비가 차지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고급의 인력들이 무슨 개발도 하지 않으면서 몇 개월동안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려 있다. 이는 국가적인 낭비이다"라고 평한다. 여기에는 프로젝트의 탈락 업체는 물론 수주 업체 역시 제안서 작성비를 따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담겨있는 셈이다.

업계 "제안서는 지적재산권, 보상은 당연"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예를 들어 4개의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순전히 제안서 작성에만 1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수주라도 하면 그래도 괜찮지만 만일 탈락하면 고스란히 손실로 처리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잘 알다시피 공공 프로젝트는 순익이 박하다. 제안서 작성 비용도 건지지 못할 경우도 종종 있다"며 공공 프로젝트의 낮은 수익 문제를 지적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수주에 실패할 경우 적자를 모면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공공 프로젝트에서 이익을 내려면 사업 제안 건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매출을 올려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공공 프로젝트라고 해서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뜨면 대체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공공 프로젝트의 참여 여부를 놓고 종종 딜레마에 빠진다는 게 관련 업계의 주장이다.
업계에서 제안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이 뿐만이 아니다. 발주처가 돈 한푼 내지 않고 업체의 지적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프로젝트에 A, B, C, D 등 4개사가 참여했다고 하자. 4개사가 각각 내놓은 제안서의 내용이 똑같을 리는 없다. A사에는 없는 내용이 B사에는 있을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발주처에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 4개사 중 1개사와 최종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발주처에서는 최종 계약을 맺은 업체에게 4개사가 내놓은 제안서 중 좋은 것만을 모두 취합해 다시 제안서를 제출해줄 것을 요구한다. 수주 업체가 발주처의 이러한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되면 구축비용이 원래 보다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업체들은 이러한 추가 내용을 공짜로 해준다.
업계에서는 "제안서에는 기술과 지식이 총 망라돼 있다. 발주처에서는 이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엄연한 지적재산권 침해이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보상 기준 및 절차 마련해 고시해야
업체들이 제안서 작성비를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현재 없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제 21조에 제안서 보상에 관한 사항이 있다. 그 내용은 "①국가기관 등의 장은 제20조의 규정에 의하여 소프트웨어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낙찰자로 결정되지 아니한 자 중 제안서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자에 대하여는 예산의 범위 안에서 제안서 작성비의 일부를 보상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제안서 보상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정보통신부장관이 정하여 이를 고시한다."로 되어 있다.
하지만 "~보상할 수 있다"는 표현처럼 발주처가 반드시 보상해야할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어서 보상을 한 사례는 극히 일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제안서 보상이 근본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제안서 작성비를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고도 누구에게, 얼마를 보상해야 한다는 등의 세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발주처에서도 제안서 작성 비용을 보상하지 않는 이유로 관련법제도의 근거가 없으며, 보상 기준의 부재, 예산 문제 등을 꼽고 있다.
정부는 왜 근거를 만들어 놓고 세부 기준을 마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통부에 추진의사를 묻자 "검토중이다. 지금 말할만한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예산 확보와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고려 등을 꼽고 있다. 또 제안서 작성 비용을 보상해주고 있는 건설업의 경우는 땅을 파고 건물을 쌓아 올리는 등 눈에 보이지만 IT 산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산업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도 보상 기준을 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재 건설업의 제안서 작성 보상 내용은 △총 공사비 100억원 이상의 대형 공사의 설계비 보상 △설계 점수가 높은 순으로 4개의 입찰자를 선정하고 낙찰자로 선정되지 않은 곳에 설계비 일부 보상 △설계보상비로 책정된 금액의 1/3을 낙찰 탈락자에게 지급 △설계비 보상 예산은 해당 공사 예산의 1% 수준 △설계비 보상시 설계도에 대한 권리를 발주처에 양도 등으로 되어 있다.
또 화장품 업계 등에서 광고 아이디어 및 광고 제작 입찰을 할 때 탈락한 입찰자에게 아이디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제안 비용을 보상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기관에서 SI 프로젝트를 발주할 때 제안서 작성에 드는 인건비를 포함한 직접 경비의 일부를 보상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기관 예산 편성 등 해결과제 산적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제안서 보상 문제를 풀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얼마를 누구에게 어떻게 보상해줘야 하는지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공공기관의 경우, 제안서를 보상하려면 별도 항목의 예산을 편성해야 할 텐데 이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정부의 1년 정보화 프로젝트 규모가 1조라고 가정하자. 만일 제안서 작성 비용으로 프로젝트 금액의 1.5%를 예산으로 잡으면 150억원에 이른다. 이는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이하 한소협)는 최근 설문조사를 통해 보상 금액, 보상을 해줘야 하는 프로젝트 규모, 보상 대상 업체 범위 등 세부적인 기준을 내놓았다.
한소협의 이 조사에 따르면 제안서 보상 금액에 대해 대기업은 46%, 중소기업은 63%가 총 사업비의 1%~5%가 적당하다고 답변했으며, 대기업 25%, 중소기업 31%는 0.5%~1%가 적당하다는 응답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수주처 대상 조사 결과>
또한 행정기관의 29%, 기타 기관의 54%는 0.5%~1%가 적당하다고 응답했으며, 1%~1.5%가 적당하다는 의견은 행정기관 16%, 기타기관 19%로 나타났다.(발주처 대상 조사 결과, 행정기관은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기타 기관은 교육청, 대학교, 정부출연기관 등)
제안서 보상이 적용되는 사업 규모에 대해서는 수주처의 경우 55.5%가 전 사업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1억~5억원이 적합하다는 의견은 25%로 나타났다. 특히 중소기업의 79%는 사업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제안서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이렇게 되면 부작용이 우려된다면서 보상 기준을 일정 규모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업체들이 제안서 비용이라도 따내려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무조건 프로젝트에 참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발주처의 경우, 제안서 보상이 적용되는 사업 규모에 대해 행정기관 29%, 기타 기관 39%가 1억~5억이 적당하다는 응답을 보였다.
제안서 보상 대상 업체에 대해서는 대기업 46%, 중소기업 61%가 기술성 평가(제안서 평가)를 거쳐 적격업체(협상 대상자)로 선정되고, 탈락한 업체가 적당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제안서 평가나 적격 심사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주 능력이 검증된 업체에 대해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제안서 보상 지급 방식에 대해서는 대기업 68%, 중소기업 70%가 제안서의 우수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소협은 이러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최근 정부에 제안서 보상 제도를 건의했다. 그 내용은 △낙찰자는 제외하고 탈락업체 중에서 보상 대상업체 선정 △제안서 보상 대상 업체 : 2단계 경쟁 입찰 등의 경우에 기술성 평가를 거쳐 적격 업체로 선정된 업체, 협상에 의한 계약 체결시 발주처의 제안서 평가를 거쳐 협상대사장로 선정된 업체, 적격 심사 낙찰제의 경우 발주처가 제안서 내용 일부를 동 사업 목적에 활용하고자 하는 경우 해당 제안업체, 기타 관계 법령에 의해 낙찰자를 결정하는 경우 발주처에서 미리 정한 기준 이상의 우수한 내용을 제안한 탈락업체로 되어 있다.
여기에다 한소협이 건의한 보상금액 수준과 절차는 △발주처 보상금액 책정 규모 : 해당 SI 프로젝트 소요 예산의 2%~3%의 금액 △보상금 지급 방법 : 책정된 보상금액을 보상 대상 업체에게 균등 또는 제안서 우수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 △보상금 지급 시기 : 낙찰자 결정일로부터 30일 이내 △제안내용 사용 동의 : 제안서 보상비를 받을 경우 제안 내용을 발주처가 동 사업 수행 목적 범위안에서 사용하는 것에 동의 △제안서 보상내용 공지: 입찰 공고시 제안서 보상여부를 포함하고 구체적인 보상기준, 보상수준, 제안 내용에 대한 사용 동의 등은 재안 요청에 명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제안서 분량 줄이자
한편 업계의 일각에서는 제안서 보상 문제에 앞서 업체들부터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제안서의 분량의 제한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100억원 이상의 공공 프로젝트의 경우, 자그만치 250페이지 분량의 파일이 10개나 된다는 것. 일반적으로 제안서는 회사 개요, 사업 개요, 시스템 현황, 구축 방안, 사업 관리 방안(인력, 품질 등), 일정표 등으로 이뤄져 있다.
IT 프로젝트의 경우 제안서의 분량이 이처럼 엄청난 것은 실물을 볼 수 없는 특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발주처의 입장에서 볼 때 눈으로 뭔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제안서라는 얘기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안서 분량이 많다고 해서 변별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특히 평가위원회에서 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면 업체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발주처 측은 평가도 수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업체의 수도 일차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또 "굳이 컬러로 할 필요가 있느냐. 더 잘 보이려고 하는 노력인데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로젝트 50억 규모 미만은 150페이지 이하로, 300억까지는 300페이지 분량으로 제한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한다.
업계에서는 제안서 작성비 보상 관련 법을 비롯해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주처에서 이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발주처의 인식 전환에 이어 합리적인 보상 기준의 마련, 앞으로 업계와 사용자가 함께 헤쳐 나가야할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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