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종합유통업체, 유통망ㆍ판매전략 다각화

■ PC종합유통업체들 '성업(盛業)'
■IBM의 소프트전략을 해부한다
■삼성과 금성의 정보통신 산업
■일본 업체들 대미 자본투자 활발



■ PC종합유통업체들 '성업(盛業)'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가 가속되고 있는 가운데 PC메이커들의 제품을 진열하고 파는 PC 종합유통업체들이 활황세를 맞이하고 있었다.
종합유통점은 특정 PC메이커에 딸린 대리점이나 전문판매점에 비해 고객의 제품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다는 잇점과 교육 및 유지보수가 신속ㆍ정확한 편이었다. 이로 인해 PC종합유통업에 진출하려는 업체들의 움직임도 늘고 있었다. 선경이 PC유통업체 설립을 구체화하고 있었으며 신도리코도 한국IBM과 PC판매를 담당할 합작사 설립을 추진했다.

대만제 끊고 대형 유통사로
당시 지방 매장까지 확보해 교육 및 유지보수체제를 갖추고 있던 대형 PC종합유통업체는 토피아, 라이카, 한국퍼스컴, 한국오피스컴퓨터 등 5개사다. 이들 업체는 삼성전자, 대우전자. 대우통신, 금성사. 현대전자. 삼보컴퓨터, 효성컴퓨터, 텔레비디오 등의 16비트 PC를 판매했다. 또 아프로만, 토피아 등은 자사 제품도 판매했다.
이들 업체는 1988년까지만해도 대만산PC 판매에 주력했지만 국내산 PC의 가격이 하락하고 국내PC 생산업체들의 전문점이 일반용보다 업무용 판매에 치중하고 있으며 이들 전문점들의 수가 PC수요 증가에 따르지 못해 종합유통업체들이 시장 전면에 나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국 유통망 구축
이들 5개사의 한달 총 판매물량은 보통 2600대 정도로 아프로만과 토피아가 각각 월 평균 700대씩의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또 한국퍼스컴은 월 400대, 라이카는 200대, 한국오피스컴퓨터가 60대씩 판매하고 있었다.
이들 업체의 매장수는 아프로만이 서울 19개소, 지방4개소의 직영매장을 운영했고 토피아가 서울 20개ㆍ지방 12개, 라이카는 서울가 지방에 각 20개소, 한국퍼스컴이 서울 9개ㆍ지방 2개소의 매장을 갖고 있었다.
이들 업체의 서울 매장은 세운상가나 용산전자상가가 대부분이었지만 아프로만과 토피아 등은 백화점 매장도 확보했다. 종합유통업체들은 직영 매장 외에도 하위 대리점을 확보해 유통 채널을 더욱 확장시켰다.

판매전략 다양화
PC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생산업체 전문점뿐만 아니라 종합유통점의 마진율도 큰폭으로 줄어들게 했다. 그래서 아프로만, 토피아 등은 마진율이 높은 자사제품 판매에 열을 올렸고 한국오피스컴퓨터는 매장을 개설, 영업사원에 의한 판매방식에서 매장을 통한 대량 판매방식으로 전략을 바꿔나갔다.
이 당시 토피아와 한국오피스컴퓨터는 신한은행에서 실시하던 '영재 퍼스컴 적금'의 제휴회사로 선정됐다. 영재 퍼스컴 적금은 신한은행에 1년 이상 3년 이내의 정기적금에 가입해 3개월을 불입하면 은행에서 PC구입 자금을 대출받아 금성사ㆍ대우전자ㆍ대우통신ㆍ삼보컴퓨터ㆍ삼성전자ㆍ큐닉스ㆍ현대전자ㆍ토피아 등의 제품을 구입하는 제도다. 최고 200만원까지 대출 받을 수 있는 이 제도는 대출기간을 1~3년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이율은 연 11.5%였다.

교육ㆍ유지보수 체제 구비
PC종합유통업체들은 고객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정 사설학원에 위탁하거나 자체 인력을 통해 실시했다.
아프로만은 지정학원을 선정,1개월간 무료교육을 실시했고 토피아의 경우 서울은 본사 교육센터, 지방은 지정학원애서 1일 100분씩 5일간 무료교육을 지원했다. 한국퍼스컴은 하루 2시간 출장교육을, 한국오피스컴퓨터는 1일 1시간씩 3일간 무료 출장교육을 실시했다. 라이카는 기간제한 없이 토ㆍ일 양일간 매장에 설치된 교육장에서 실시했다.
유지보수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6개월에서 1년간 무료 서비스를 시행했다. 서비스 기간에 제품고장이 발생하며 대개 새제품으로 교환해줬다.

■IBM의 소프트전략을 해부한다
당시 경쟁업체의 거센 도전을 받았던 IBM은 소프트웨어의 비중을 중시해 자사 시스템 간의 호환성을 높여주는 이키텍처 개발과 함께 관련 소프트웨어 확장에 주력했다. 당시 IBM은 이례적으로 SAA(Systems Application Architecture)를 소프트업체에 사전에 공개, 관심을 유도했지만 기술상의 한계를 고집해 시장성이 반감됐다.

소프트웨어 확장 추진
소프트업체들의 1988년 매출은 어소시에이츠인터내셔널이 약 10억달러, 컬러넷소프트웨어와 오라클이 약 5억달러였다. 그러나 IBM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부문에서 약 20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IBM은 소프트웨어 전략으로 SAA를 채택해 공동유저 인터페이스. 언어 및 통신 등의 기능을 지원하며 당시 IBM의 3대 하드웨어 플랫폼인 PS/2, AS/400 및 370에 일관성, 간편성, 연결성 등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객들은 하드웨어 선택기준으로 가격대비 성능비보다 소프트웨어의 지원상황을 더 중요시했다. SAA를 채택한 컴퓨터들이 다양해지면 응용 소프트웨어가 그만큼 확대됐다. 이에 따라 IBM의 하드웨어 판매도 늘어났다.

소프트업계 재편 노려
IBM은 SAA로 소프트업계의 재편을 노렸다. 당시 SW업체는 마이크로소프트ㆍ로터스 등의 PC소프트웨어, 릴레이셔널테크놀로지ㆍ오라클ㆍ코그노스 등은 미니컴퓨터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AGㆍ컬러넷ㆍCAI 등은 메인프레임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주력 제품으로 판매했다.
그러나 SAA는 간편성을 무기로 이런 구분을 무너뜨렸다. 로터스가 컬러넷과 경쟁하는 등 IBM의 SAA계열과 보완관계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경쟁관계를 유지했다. SAA는 완성된 아키텍쳐가 아니라 새로운 응용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전략으로 관련 프로트콜과 표준의 세트다. 아키텍쳐의 여러 가지 기능들과 그 기능들을 적합하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규정한 컴퓨팅을 위한 총체적 설계를 말한다.

소프트웨어 의존도 높아져
당시 IBM은 소프트웨어 제품의 의존도가 계속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메인프레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IBM의 성공여부는 SAA의 ADE(Application Development Environment)에 달려 있었다. ADE는 IBM 산타테레사 연구소의 DSA(Data Systems Architecture)에서 개발 중이었다.
당시 SAA는 성공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90년대 중반에는 IBM유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마케팅에 있어서도 주요 결정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삼성과 금성의 정보통신 산업
전자업계에서 오랫동안 쌍벽을 이뤄온 삼성과 럭키금성은 세계적인 정보통신산업을 구상하며 가전사업에 이어 제2라운드의 맞수 경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삼성과 금성은 비슷한시기인 1970년대에 컴퓨터사업에 발을 내디뎠고 80년대를 지나며 사업확대, 조직정비 과정을 거쳐 중장기 정보통신사업계획을 세우는 등 비슷한 일들을 경쟁적으로 추진했다.

삼성ㆍ금성의 사업현황
컴퓨터ㆍ통신ㆍ반도체ㆍFA 등 정보산업 부문 사업에서 1989년 상반기에 삼성그룹과 금성그룹이 올린 매출액은 각각 8824억원과 7301억이었다.
삼성은 컴퓨터사업 2462억원ㆍ통신 1962억원ㆍ반도체 4063억원ㆍFA 61억원이었다. 금성은 컴퓨터 2108억원ㆍ통신 1884억원ㆍFA 2684억원ㆍ반도체 357억원이었다. 반도체와 FA는 다른 부문과는 달리 양사의 치열한 경쟁양상에서 벗어나 각자의 특성사업으로 비중을 두고 있었다. 반도체와 FA를 뺀 컴퓨터와 통신매출액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1989년 상반기의 정보통신사업 매출액은 삼성그룹이 4700억원, 금성그룹이 4260억원이었다. 금성은 정보통신 부문을, 삼성은 정보통신ㆍ컴퓨터 부문을 주축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삼성ㆍ금성의 컴퓨터사업
삼성과 럭키금성의 컴퓨터 사업은 70년대 말 외국산 컴퓨터를 수입판매하면서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1976년부터 HP의 중대형컴퓨터를, 금성은 1978년부터 하니웰의 미니컴퓨터를 국내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양사가 컴퓨터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은 80년대 초반 8비트 PC를 비롯한 마이크로컴퓨터ㆍIBM PC XT 호환기종을 생산하면서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슈퍼마이크로컴퓨터ㆍIBM PC AT호환기종ㆍ386PCㆍ랩톱PC가 주축이었다.
그러나 양사는 10여년 넘게 컴퓨터사업을 벌여온 것에 비해 기술은 빈약한 편이었다. 당시 비교적 부가가치가 높았던 프린터나 HDD사업은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컴퓨터 핵심부품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삼성ㆍ금성의 통신사업
삼성과 럭키금성의 통신사업은 삼성전자와 금성반도체에서 담당했다. 양사는 나란히 국내 국설교환기 시장을 장악했으며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 개발에도 참여했다. 이들은 교환기 사업을 비롯, 광전송장치ㆍ광화상회의 시스템 광통신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럭키금성의 통신사업은 국ㆍ사설 교환기 사업, 전송사업, 네트워크 사업 등이며 단말기사업 부문에서 전화기ㆍ키폰 사업을 했다. 금성은 1989년 상반기 통신사업에서 1879억원의 매출실적을 올렸다.
삼성은 전자교환기, 디지털교환기, 전전자교환기, 사설교환기 등의 교환기 사업으로 1989년 상반기 1131억원을 벌어들였다. 광통신사업에는 광케이블, 광화상회의 전송장치, PCM 전송장치 등이 10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83년부터 삼성반도체통신에서 공급한 팩스사업이 총 195억원의 매출을 기록, 연 70만대의 제품을 생산했다.

■일본 업체들 대미 자본투자 활발
일본의 컴퓨터 관련업체들은 대미 직접투자를 통해 미국 컴퓨터산업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켜 나갔다. 미국 업계의 경계에도 불구, 미국내 자본가들이 위험부담이 큰 하이테크산업에 대한 투자를 회피함으로써 일본자본의 대미진출은 가속화됐다.

중소업체에도 침투
미국업체에 대한 일본의 투자는 암달과 같은 대기업부터 밉스(MIPS) 등의 소규모 업체까지 대부분의 컴퓨터업체에서 이뤄졌다.
캐논은 넥스트의 주식의 6분의 1을 1억달러에 인수했다. 일본의 중공업업체인 구보다는 밉스의 주식 20%를 소유했다. 당시 구보다는 중공업 분야의 전반적인 침체로 지속 성장이 가능한 하이테크산업과 컴퓨터산업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비판적 시각 많아
일본업체의 미국 투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대두됐다. 일본 자본이 미국시장에 침투함으로써 미국의 컴퓨터 산업이 자동차 산업과 같은 하향세를 격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었다. 또 일본 회사들이 미국 컴퓨터 산업의 연구ㆍ개발과 생산기술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가져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타났다. 이 밖에도 미시건 대학 동아시아 사업 프로그램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일본회사들은 미성년자와 여자들의 고용을 기피하고 주로 시골 출신의 성인 백인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자본가들 투자 꺼려
일본회사들의 투자와는 달리 미국의 모험자본가들은 하이테크 산업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모험자본가들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위험부담이 따르는 하이테크 산업에 뛰어드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미국내 대기업들도 하이테크 산업에 대한 투자는 인색했다. 자기회사 주식의 재매입에 대비해 여유 자본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내 하이테크 산업 투자에 대한 회피로 일본 자본의 잠식은 상당한 속도로 전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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