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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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소신과 철학이 없으면 公僕(공복)역할 힘들다”신호중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정보화담당관

▲ 신호중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정보화담당관



신호중(53세)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정보화담당관. 그는 정부 정보화의 숨은 일꾼으로 평가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정부 각 기관의 정보화 사업 추진을 위한 정보화예산편성과정에서 예산 반영여부를 결정하는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결정권자는 아니었다. 예산편성이라고 하면 단순히 돈을 얼마나 잘 적합하게 배정하느냐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정보화 정책을 얼마나 잘 세워 거기에 적합한 HW나 SW를 도입해 제대로 활용할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기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다시 말해 국민의 혈세를 제대로 잘 활용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IT 전문 지식은 물론 각 기관의 업무 프로세스 등 전반적인 사안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한다. 특히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복으로서의 뚜렷한 소신과 철학, 그리고 명쾌한 판단력을 갖추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게 대다수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20여년 이상 이런 업무를 수행해 왔다. 그가 최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임에 분명하다. 더 나아가 그는 각 기관 정보화담당들이 단순히 업무의 전산화만을 추구하기보다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정보화, 즉 대국민 서비스를 통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IT 거버넌스를 추구하는 데도 남모르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또 정보화를 위한 예산요구, 심의, 편성, 집행에 이르는 전 과정을 정보시스템화, 즉 예산정보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정부예산업무에 일대 혁신을 가져와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실'정보화 예산'이라든가'정보화 사업'이라는 용어나 개념도 그가 만들어 냈다. 국가 발전과 국민 서비스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정보화'라는 분명한 소신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하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해 평소 강연이나 연설을 하고, 정부정보화협의회 회장까지 역임한 그를 두고 조용한 개혁가로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공직 27년 9개월

신호중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정보화담당관은 지난 1983년 2월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자료관리과 근무를 시작으로 공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달로 공직 27년 9개월째이다. 공무원으로서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할만큼 본인의 업무에 충실한 인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 정보화담당관이 통계국에 근무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통계 업무 전산화 수준은 아주 초기 단계였고, 전두환 대통령이 물가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썼던 시기였다. 때문에 그는 입사하면서 얼마 안 돼 바로 현업에 투입됐다. 특히 당시 통계국에는 통계학 전공자가 거의 없어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에게 주어진 업무는 하루가 다르게 쌓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주어진 산더미 같은 업무를 마다하지 않고 밤낮 없이 일할만큼 열정적으로 소화해 냈다고 한다. 주간 및 월간 물가동향, 그리고 수시로 요구하는 불규칙적인 통계보고서에 이르기까지 각종 통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밤샘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그는 각종 통계자료를 그래프(증감률 등)로 이해하기 쉽게 분석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강남 지역 아파트 투기현황을 한 눈으로 살펴 볼 수 있는 GIS(지리정보시스템)를 개발, 투기단속의 근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과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3년여 만에 사무관으로 승진했고, 장관표창(1985년)과 기관장 표창(1989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승진은 입사 동기들 가운데 가장 빨랐다고 한다. 승진 후 그는 본청인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로 발령받아 대외경제통계업무를 맡았다. 즉, 국가 예산 편성 및 운영에 대한 각종 통계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행정전산망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한국전산원을 별도 설립(1987년)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행정망사업을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했고, 이에 대한 심의 및 예산 배정과 관련 업무는 자연스럽게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됐던 것이다.

정부 정보화의 숨은 일꾼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이 우리나라의 전산화에 깊이 관여했고, 전산화 1세대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전자정부 발전과정을 보면 대략 5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즉, 행전 전산화계획을 최초로 수립해 추진한 초기도입기(70~80년대), 행정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한 기반조성기
(80~90년대), 전자정부사업을 본격 추진한 본격추진기(90년대 후반), 전자정부 사업의 체계적 추진 및 활성화 시킨 활성화기(2000년대 이후) 등이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우리나라의 이러한 전자정부 발전과정과 맥락을 거의 같이해 온 것이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정부 각 기관의 정보화 사업추진을 위한 정보화예산편성과정에서 예산 반영여부를 결정하는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를 두고 '정부 정보화의 숨은 일꾼' 또는 '보이지 않는 핵심 주역'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특히 그는 정부 각 부처 및 기관들의 정보화 추진과 관련 국민의 혈세를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쓰여질 수 있을지에 대해 남다른 고민과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정확하고, 합리적인 예산편성을 위해서는 각 기관들의 업무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기관들과의 상호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신호중 정보화담당관 주변에는 그를 찾는 선후배들이 많다. 단순히 예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꼼꼼하면서도 자상하고, 그리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의 성격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논리적인 설득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는 힘은 더욱 주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고 한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공무원이 아니었으면 대학교 교수나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됐을 것이다"고 스스로 밝히듯 후배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주려는 성향이 짙다고 한다.

'정보화'라는 용어 첫 도입

아무튼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1994년 재정경제원 예산실로 옮겼을 당시 우리나라는 1.2차 행정전산망 사업(1987~1996), 즉 전국 단위의 대국민 서비스 업무를 개발하고, 기관 내 전산망 확대 및 기관 간 정보공동활용을 유도해 행정종합정보시스템을 본격 구축하던 시기였다.

또한 당시 예산에 대한 수치가 정치적 이슈, 즉 대통령 지시나 국회의 요구, 그리고 여론 등에 의해 조정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산 책정이나 파악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각 기관들은 전산화 예산을'업무'가 중심이 아닌 H/W위주, 다시 말해 컴퓨터만 구입할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를 업무 중심으로 전면 바꾸도록 유도했다.

즉, '정보화'라는 용어와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 '정보화 사업'을위한'정보화 예산'으로 그 개념을 바꾸었던 것이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이 같은 여러 가지 불편을 없애기 위해 '예산정보시스템(1998년)'을 개발했고, 이어 2000년에는 이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예산정보관리시스템'까지 개발해 구축했다. 이 같은 시스템은 각 기관에서 요청하는 각종 예산을 심의하고 편성해 집행하는 모든 과정을 한 눈으로 살펴보고 관리할 수 있어 예산절감은 물론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켜 정부예산업무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고 한다. 예산정보시스템이나 예산정보관리시스템은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의 역작이라고 평가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산정보관리시스템'은 그의 역작

신호중 과장은 또 정부의 정보화는 건설 사업과 같다고 인식, 감리제도를 도입해야만 한다고 역설해 관철시켰는가 하면 부처 간의 중복 사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 마련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예를 들어 A라는 기관과 B기관이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예산집행을 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방식으로 상호 공유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각 부처 및 기관들의 정보화 담당들이 독자적으로 정보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IT 거버넌스 체제 구축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육정보화 사업이나 등기업무 전산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위한 정보화 사업을 각 기관들이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던 것이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지난 2007년에 정부 각 부처 정보화 관계자들로 구성된 '정부정보화협의회'회장을 만장일치로 뽑혔다. 그는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각종 세미나 등을 개최, 정부 각 부처의 전산직 공무원들의 역량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다양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 같은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변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공복으로서의 소신과 철학, 그리고 창조적이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호중 정보화담당관 같은 인물만이 가능했고, 그랬기 때문에 정보화 예산 편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책을 맡겼을 것이라고 주변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정보화는 돈 먹는 하마"라고 지적받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고 한다. 특히 인력과 조직을 축소하겠다는 조건으로 예산을 배정하겠다는, 그야말로 전산화 및 정보화 시스템의 중요성과 가치는 간과해 버리는 잘못된 인식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한다. 지금도 정보화 인력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며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한다.

IT의 중요성 아직도 잘 몰라

사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사무관으로 승진한 지 15년여만인 지난 2001년 서기관으로 다소 늦게 승진했다. 정보화담당관으로서의 직책도 2005년에서야 맡았다. 자리가 없었기도 했지만 공무원 조직 및 인사체계가 대부분 일반직 공무원 입장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짙어 전산직이라는 특수 업무 공무원들은 다소 형평에 어긋난 대우를 받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다.

정보화담당관을 맡은 것도 편안하지가 못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정보화담당관 직책을 개방시켜 외부인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기존 인력은 시험도 못 보게 했다. 당시 주변 분위기는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이 정보화담당관으로의 승진을 당연시 여겼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소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는 공직자로서의 어떤 길을 가는 게 좋은지 초심으로 돌아가 업무에 충실했다고 한다.

결국 외부에서 영입된 정보화담당관은 업무를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어 2년 6개월여 만에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이론과 의지만으로는 냉정한 현실을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무릇 기획재정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개방직 공무원은 거의 없다는 현실이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사람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며, "팀 리더는 그 조직문화를 잘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서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외부 인사 영입은 당초 취지보다 성과가 기대만큼 좋지 않았던 것 같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렇다. 사람만 바꾼다고 모든게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기획조정실의 예산업무는 더욱 그렇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2005년에 당당히 시험을 본 후 합격해 정보화담당관으로서의 직책을 맡았다. 당시 주변 많은 사람들이 박수로 승진을 축하해 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는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정보화담당관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충실히 소화해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자리매김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정보화담당관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위한 정보화를 추구해 나갈 것인지 직접 들어본다.

관리체계 고도화에 초점

기획재정부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 정보화를 추진하고 있는지요.

▶ 기본적으로 기회재정정보시스템 관리체계 고도화 및 유지보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추진배경은 업무환경과 정보화 환경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업무환경은 실용적이고, 현장 중심의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사용자 친화적 지식행정체계를 구축하며, 효율적인 수입인지 관리방안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보화 환경은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정보화를 요구하고 있고, 사용자 중심의 정보화 성숙도를 제고하며, 인터넷 활성화에 따른 보안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예산정보관리시스템'은 기획부의 자랑

기획재정부만이 내 세울 수 있는 장점과 특징이라면.

▶ 국민의 혈세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 어느 부처보다 정확하고, 안전한, 그리고 앞서가는 정보시스템을 갖췄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예산 요구를 심의하고, 편성해 집행하는 전 과정을 한 눈으로 파악해 볼 수 있는 예산정보관리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07년에는 행정자치부가 주관한"2007년도 행정기관 웹사이트 담당자 연찬회"에서 우수 웹사이트로 선정된 전국 12개 행정기관 우수사례 발표 가운데 기획예산처가 2006년도 행정기관 웹사이트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당시 기획예산처는 현안별, 섹션별 메뉴 등을 간결한 구성을 통해 사용자의 이용편의성을 제고했다는 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각종 정보와 보안에 아주 민감합니다. 해서 지난 8월 25일에는 '재정경제사이버 안전센터'를 구축, 정식 문을 열었습니다.

그 동안 정보화를 추진해 오면서 가장 어려웠고, 보람 있었던 일이라면.

▶ 정보화시스템 구축을"돈 먹는 하마"라며, 인력과 조직을 축소하는 조건으로 예산을 주겠다고 할 때가 가장 괴로웠습니다. 사실 국민의 혈세를 어떻게 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의 여부를 잘 파악하고,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위해서는 정보화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이 답답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정보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효율성과 생산성을 계량화하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근거를 갖고 관계자들을 설득한 것입니다.
예산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소신과 철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위한 사업인지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꼼꼼하고, 철저하게 분석해야만 합니다.
보람이라면 경제 일선에서 방향타를 잡고 있어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업무를 한다는 것입니다.

"정보화가'돈 먹는 하마'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他정보화지원실에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면.

▶ 정보화담당들이 IT 거버넌스 체계를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보화지원실이 전산화 요구에 의해 지원해 주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타 부처 직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교류는 물론 친목까지도 도모한다면 보다 더 나은 정보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그야말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핵심적인 두뇌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정부기관이다. 기획조정실 정보화담당관은 기획재정부의 이런 역할과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한 핵심 부서라고 할 수 있다. 기획조정실 정보화담당관은 누구나 맡을 수 있지만 충실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복으로서의 소신과 철학, 그리고 명쾌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신호중 정보화담당관은 우리나라의 정보화가 세계 1위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각오라고 한다. 그가 있는 한 우리나라는 반드시 세계1위가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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