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 국산 미니 슈퍼컴퓨터, 공공시장서 매출 올려



 

[컴퓨터월드] 1990년대 초반 국내 중대형컴퓨터 시장에서 ‘타이컴’은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국산 주전산기 타이컴은 1993년 한해 243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국내 유닉스 시장 매출의 17.0%를 차지했다. 이에 힘입어 당시 타이컴을 공급하던 금성사, 대우통신,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의 성장세도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국산 서버가 막강한 기술력을 갖춘 외산 서버들의 틈바구니에서 매출 성장세를 올렸다는 점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요즘, 대중들은 타이컴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부 주도로 개발되던 국산 서버 타이컴은 ‘2탄’을 마지막으로 추가 개발이 중단됐다. 국산 서버를 독자 개발하기에는 투입되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개발 당시에도 외산 서버보다 ‘허술한’성능을 보이던 타이컴이었기에 추가 투자가 없어지자마자 금세 시장에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타이컴을 기억하는 이들은 ‘무모한 국산화 요구가 낳은 실패작’이라 말한다. 과연 타이컴은 국내 IT 산업 역사의 아쉬운 단면일 뿐인가. 2014년 1월, 타이컴을 추억해 본다.

 

 

1994년, 국산 주전산기 타이컴 매출 ‘주목’

20년 전 전체 중대형컴퓨터 시장에서 가장 성장세를 보인 것은 주전산기, 유닉스 컴퓨터였다. 1994년 1월 본지는 1993년 국내 공급된 유닉스 컴퓨터가 총 1,433대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는 1992년 전체 공급량인 738대에 비해 106%나 증가한 수치다. 당시 기업 컴퓨팅 분야에서는 대형컴퓨터에 유닉스 컴퓨터를 연결, 클라이언트 서버 환경으로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새로운‘트렌드’였다. 이에 따라 정부·공공기관, 금융기관, 일반기업, 교육·연구, 유통·서비스 등 분야에 상관없이 유닉스 컴퓨터에 대한 수요가 발생했다.

당시 국내 유닉스 시장의 최강 벤더는 글로벌 기업인 HP, 유니시스로 각각 411대, 224대의 주전산기를 공급했다. 이처럼 글로벌 벤더가 주도하는 국내 유닉스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은 최초의 국산 주전산기 타이컴이었다.

타이컴은 1993년 한해 243대가 팔렸다. 이는 당시 국내 유닉스 시장 매출의 17.0%에 달한다.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국산 주전산기가 막강한 기술력을 갖춘 외산 주전산기 사이에서 매출 성장세를 이룬 것. 타이컴은 글로벌 벤더 중심으로 움직이는 주전산기 시장에 순수 국산 제품을 내놓겠다는 정부의 의지 하에 탄생했다. 금성사(현 LG전자), 대우통신, 삼성전자,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 등 국내 손꼽히는 전자 분야 제조업체들이 타이컴의 개발에 참여했다. 당시 타이컴은 상용화가 완료돼 개발에 참여했던 기업을 축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그 중 특히 삼성전자, 금성사가 각각 130대, 80대의 타이컴을 공급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2014년, 저…혹시 타이컴을 아시나요?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타이컴은 대중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에 ‘타이컴’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검색창에 오탈자를 입력했을 때 떠오르는 ‘검색어 제안’안내 문구와 오래된 기사의 흔적들만 떠오를 뿐이다. 비교적 최근 기사, 문건에 등장하는 ‘타이컴’이라는 단어에는 으레 ‘몰락’, ‘침몰’, ‘실패’라는 단어가 뒤따른다. 이것이 20년 전 매출 상승세를 보이며 샛별처럼 떠올랐던 타이컴의 현재다.

20년 간 국내 IT 산업에서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1990년대 초반 이후 정부는 타이컴 ‘2탄’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국산 주전산기 개발 기술에 대한 투자를 접었다. 주전산기 자체 개발 기술 역량을 계속 이어가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

급변하는 IT 기술 발전 흐름에 발맞춰 주전산기 개발 기술을 계속 확보해 나가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투자 대비 이익이 떨어진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타이컴은 이미 국내 기술 수준을 훌쩍 앞서고 있는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 흑자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내수 시장이 큰 것도 아니다. 거기다 국내 기업들마저 타이컴보다 안정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외산 주전산기를 선호했다.

 


‘애국심’때문에 업어 키웠지만…결국 ‘천덕꾸러기’

1994년 본지에 따르면 타이컴의 주 고객층은 공공기관이었다. 당시 타이컴 개발에 참여한 삼성전자 ‘SSM6000 /7000’모델의 1993년 전체 판매량 130대 중 57대, 금성사 ‘미라클 20000’의 80대 중 52대, 대우통신 ‘DTC7000/9000’의 36대 중 25대가 공공기관에 팔렸다.

반면 금융기관, 일반기업체 등 수요처에서는 글로벌 기업 제품으로 매출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1993년 금융기간에 팔린 서버 컴퓨터 총 387대 중 135대, 일반기업체에 팔린 총 376대 중 126대가 HP의 ‘HP9000’모델이었다.

이 대목에서, 타이컴 매출 성장세의 배경이 국산 주전산기 개발에 공을 들였던 정부 정부의 적극적인 마케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타이컴을 써야 정부로부터 IT 예산을 따내기 쉬워진다는 점 때문에 타이컴을 서버 시스템의 일부로 들였다고 말한다.

그렇게 타이컴은 정부의 비호 아래 공공기관에 어렵사리 터전을 잡게 됐지만, 최초의 국산 주전산기가 그간 가열하게 개발돼 왔던 선진국 제품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값비싼 외산 제품이 가장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타이컴은 가장 위험도가 낮은 일을 수행하면서 천덕꾸러기가 돼 갔다.

타이컴 개발에 참여했던 기업들은 좁디좁은 국내 시장에서조차 상품성이 떨어지는 타이컴 사업에서 하나둘씩 발을 뺐다. 곧 정부까지도 국내 주전산기 개발 기술에 대한 투자를 중단했다. 결국 현재, 타이컴의 명맥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고성능 HW 개발 기술 확보’, 명분도 실리도 ‘탄탄’그러나…

주전산기는 지금 표현으로 말하면 서버다. 서버는 일반적인 PC보다 고성능의 연산을 수행하는 하드웨어다.

정부·공공기관, 기업은 일반 PC보다 더 중대한 업무를 맡길 고성능 컴퓨터를 필요로 한다. 타이컴 프로젝트는 고성능 컴퓨터를 국산 기술로 자체 개발하겠다는 정부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정부는 왜 국산 기술로 만들어진 고성능 컴퓨터를 개발하려고 했을까? 간단하다. IT 기술의 글로벌 의존성을 탈피하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단순히 ROI(투자자본수익률)만 놓고 본다면 굳이 최신 기술의 집약체인 고성능 컴퓨터를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외국에서 한 대 사오는 것이 비용 대비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자체 개발 역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계속 외산 제품만 사용한다면 이는 국가 경쟁력 악화로 이어진다.

고성능 컴퓨터의 경우 일반 대중이 사용하는 IT 기기와 달리 국가 기간산업을 이끄는 핵심 자원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외산 고성능 컴퓨터 도입에 국가 간 이해관계와 연관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체하거나 추격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이 보장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는 같은 제품을 구매하게 되더라도 교섭력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타이컴 개발은 외산 서버의 가격이 안정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대안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그 입지가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고성능 컴퓨터 자체 개발 기술력이 IT 산업 전반의 원천 기술로 작용하게 된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학계에 따르면 고성능 하드웨어 개발 기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범용 하드웨어 개발 기술로 이전된다. 서버 개발 기술이 PC 개발 기술로, PC 개발 기술은 모바일 개발 기술로 승계된다. 20년 전 타이컴 개발에 참여했던 삼성전자, LG전자가 현대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로 활약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당시 익힌 IT 기술을 통해 글로벌 IT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타이컴 프로젝트가 ‘실패’라는 수식어를 떼 내지 못하는 것은, 많은 예산을 들여 어렵게 확보한 자체 개발 기술이 일회성에 그쳤을 뿐 지속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이컴 프로젝트는 관련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당시 정부가 타이컴 프로젝트에 투입한 예산은 투자가 아닌 소모가 됐다.

 


▲ 서버 컴퓨터가 모인 데이터센터 출처: 한국호스트웨이

 


슈퍼컴, 서버보다 더 강력한 고성능 HW

그렇게 타이컴은 대중들에게 잊혀졌지만, IT 기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타이컴은 종종 거론되고 있다. 이 때 타이컴은‘미니 슈퍼컴퓨터’라고 불린다.

슈퍼컴퓨터는 서버보다 한 차원 높은 고성능 하드웨어다. 현재 세계 1위 슈퍼컴퓨터인 중국 ‘텐허2’는 1조의 1000조 번 연산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로 ‘슈퍼’한 연산을 수행하는 ‘초고성능 컴퓨터’다.

최근 슈퍼컴퓨터는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슈퍼컴퓨터는 기초과학의 발전을 도모하거나, 국가적·범국가적인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 자원으로 활용된다.

정부는 2011년 ‘국가 초고성능 컴퓨팅 활용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하 ‘슈퍼컴 육성법’)’을 제정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따르면‘초고성능 컴퓨터’, 슈퍼컴이라는 단어를 이름에 명시한 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 외 우리나라밖에 없다. 슈퍼컴 산업을 국가 경쟁력 제고의 핵심 축으로써 성장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듬해 말 정부는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육성 기본계획(2013~2017, 이하‘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바탕으로 5년 간 본격적으로 슈퍼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 5개년 계획의 10대 핵심 과제에는‘초고성능컴퓨팅 시스템 자체 개발 역량 확보’가 여덟 번째 항목으로 포함됐다. 이는 최첨단 IT 기술의 집약체인 슈퍼컴 자원을 국내에서 직접 개발할 기술력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이다.

 


‘돈 먹는 하마’슈퍼컴…자칫하면 “타이컴 꼴”

‘슈퍼컴 자원 자체 개발.’어쩐지 친숙한 느낌이다. 그렇다. 타이컴, ‘국산 주전산기 자체 개발’과 같다. 국내기술로 국산 고성능 컴퓨터를 만들어 보자는 것. 맥락은 같다.

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외려 한 수 위다. 슈퍼컴퓨터는 서버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초고성능 하드웨어다. 슈퍼컴 자체 개발이 가능해진다면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국가적 이익은 타이컴의 경우보다 크다. 슈퍼컴 개발 기술은 서버로, PC로, 스마트폰으로 이어진다. 현재 세계적 수준의 슈퍼컴 자체 개발 기술 역량을 갖춘 나라가 있다면, 그 국가는 슈퍼컴 개발 역량을 갖추지 못한 다른 나라에 비해 20년은 앞선 스마트폰 제조 기술을 확보한 셈이 된다, 다시 말해, 슈퍼컴 자체 개발 기술이란 미래 IT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핵심역량이다.

그렇게 중요하다면 바로 투자해서 육성하면 되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비용이 문제다. 슈퍼컴 자체 개발 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타이컴에 투자된 것보다 훨씬 막대한 비용이 투자돼야 한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현지 기술로 자체 개발한 슈퍼컴 ‘케이’를 선보이기 위해 1.5조원에 달하는 국가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예산을 무작정 쏟아붓는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의 얼 조셉 부사장은 “일본의 경우 슈퍼컴 산업에 대해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펴고 있어, 자체 슈퍼컴 자원만으로 기초과학 연구 발전을 직접 견인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평한 바 있다.

이는 자체 개발한 슈퍼컴 자원 하나가 생긴 것만으로 성과를 이루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자체 자원을 개발하며 어렵사리 끌어올려 놓은 기술이 지속해서 성장 가능한 생태계의 구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단발적인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꼭 타이컴의 사례처럼 말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이후, 제한된 국가 예산을 전략적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선택과 집중’의 논리 하에 고성능 컴퓨터 자체 개발에 대한 투자가 중단됐다. 그렇게 ‘실패한 타이컴’의 기억은 소위 ‘돈 먹는 하마’인 슈퍼컴 자체 개발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 KISTI가 보유한 슈퍼컴퓨터‘타키온2 출처: KISTI

 


자체 개발, “해야만 한다면 신중하게”

슈퍼컴 5개년 계획은 2014년 보다 본격적인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5개년 계획의 일부인 ‘자체 개발’과제를 수행할 예산 확보를 위한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이를 두고 어떤 측에서는 회의적인, 또 다른 측에서는 의욕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체 개발 기술 확보를 위한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측 역시도 “언젠가는 슈퍼컴 자체 개발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고성능 컴퓨터 개발 기술 확보의 필요성과 의미는 모두에게 당연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너무도 명백한’명제이기에더욱 신중해져야 한다. 만약 슈퍼컴 자체 개발 과제가 이번 5개년 계획 하에 추진된다면, 여기에는 1990년대 초반 타이컴에 투자됐던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막대한 예산과 노력이 투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슈퍼컴을 제작하는 데 요구되는 대부분의 기술, 특히 핵심기술들을 국내 기술로 대응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세계 순위에 등재될 만한 국산 슈퍼컴을 제작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박수 치고 끝낼 수도 없다. 슈퍼컴 개발 기술은 슈퍼컴 개발 산업 생태계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다. 정부의 젖을 먹여 키웠으면, 향후 어엿한 성인으로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슈퍼컴 개발에 지속해서 참여할 수 있는 산업 환경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슈퍼컴 개발 관련 생태계 조성,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외산 슈퍼컴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슈퍼컴은 국방, 기후 등 국가 기반을 좌우하는 분야에서 활용되는 핵심 인프라다. 또한 서버, PC, 모바일 등 ICT 산업 전체의 원천기술인 슈퍼컴 개발 기술이 부재된 상태로 ICT 산업 밑단에서만 움직인다면 언제까지고 ‘팔로워’에 머물 수밖에 없다.

슈퍼컴 육성법에 대한 정부의 본격 행보가 진행될 2014년. 타이컴의 등장과 몰락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또 무엇을 시사하는지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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