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 내용 모르고 수출했다간 낭패

▲ 9.11 테러 발생 이후 국제사회는 우려국가 또는 테러단체에 대량살상무기가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비확산체제를 강화했다

[컴퓨터월드] ‘007’ 시리즈와 같은 첩보 영화를 보면 생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적대국이나 분쟁을 겪고 있는 국가들로 넘어가지 못하게끔 하는 내용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 국가들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 전쟁을 일으키거나 다른 국가들을 위협하면서 이권을 차지하려하기 때문에, 인류 평화를 위한 측면에서도 대량살상무기가 개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영화에서만 등장하는 내용이 아니다.

지난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이후 국제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이에 인류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와 전쟁을 막고자 대량살상무기를 개발 및 제조 하는데 사용되는 각종 물품과 기술, 소프트웨어(SW)를 전쟁우려국가 또는 테러단체에 유입되지 못하도록 비확산체제를 확대시켰다.

이 중 SW는 물품이나 기술과 달리 복제 및 유포가 쉽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강력하게 통제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도 해당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를 잘 모르는 곳들이 많아 제품 수출 시 어려움을 겪고 있어 홍보가 더욱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당 내용은 무엇이며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할지 살펴본다.

전략물자란?

정부가 자국의 국가안보, 외교정책, 국내 수급관리를 목적으로 수출입과 공급, 소비 등을 통제하기 위하여 특별히 정한 품목 및 기술을 말한다. 우리나라 ‘대외무역법’에는 국제평화 및 안전의 유지, 국가안보, 기타 국가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때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별도로 정하고 공고하는 물품으로 규정된다.

산업부문의 경우는 방산 물자 외에 모든 업종의 첨단물자를 전략물자로 정하여 수출통제를 하고 있는데, 첨단부품 및 기술일수록 민간산업과 군사용으로 활용 가능한 2중 용도품목이라는 산업기술의 특성 때문에 선진국들은 다자간 전략물자 수출통제제도를 활용하여 공산권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군수 및 일반 산업의 첨단화 개발을 통제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 및 재래식 무기, 그리고 이들의 제조·개발에 이용되는 물품, 기술, 소프트웨어(SW)가 전략물자에 해당하며, 주요 항목으로는 특별소재 및 관련장비, 소재가공, 전자, 컴퓨터, 정보통신 및 정보보안, 센서 및 레이저, 항법 및 항공전자, 항공우주, 원자력 전용품목 등이 있다.

2004년,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회원국들의 전략물자 수출관리 등을 의무화하는 결의안 1540호를 발표했다. 유엔은 회원국들에게 전략물자 수출통제 이행 및 중개 통제에 대해 법규를 완비할 것을 주문했으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전략물자관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략물자관리제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목적을 위해 시행된다.

첫째, 전략물자관리제도는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적인 규범이다. 전략물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대량살상무기가 우려국가나 테러조직에 유입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둘째, 기업의 무역 안전을 보장한다. 만약 수출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적으로 수출한 전략물자가 테러조직이나 우려국가로 유입되어 대량파괴무기 제조에 사용될 경우 위반 기업은 처벌은 물론 향후 무역 제제를 받게 된다.

셋째, 전략물자를 준수함으로써 국가 신뢰도를 향상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외국의 첨단 제품을 수입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용이해짐으로써 국가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SW 중소기업들, 수출 시 관련 규정 몰라

정부가 국내 SW 산업을 육성하고, 국내 SW 기업들을 세계로 진출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국내 중소 SW 기업들은 시장 확대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사 제품과 기술력을 해외로 수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SW도 전략물자 분류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략물자관리체제를 따라야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모르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중국에 SW를 수출한 A업체는 올해 베트남에 솔루션을 수출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전략물자관리제도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A업체는 과거 솔루션을 수출하면서 해당 제도에 따라 수출을 진행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해당 사실을 모른 채로 수출을 진행할 뻔 했다. 그러나 한국SW산업협회를 통한 알림이 있었고, 전략물자 규정을 따르기 위해 판정 준비를 하고 있다.

A업체는 전략물자 규정을 알게 된 이후, 과거 수출 전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전략물자 규정을 따르지 않고 수출이 진행된 자사 제품이 행여 우려국가나 테러단체로 들어가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나 제조에 활용될 경우 처벌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략물자관리시스템에서는 전략물자 판정 규정을 따르지 않고 제품을 수출했을 경우 대외무역법에 따라 엄격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대외무역법 7장(벌칙)

- 국제적 확산 목적으로 허가 없이 수출/수출하려 한 자: 징역7년, 5배 벌금
- 허가 없이 수출/수출하려 한 자: 징역5년, 3배 벌금
- 허가 없이 수출, 질서위반자: 3년 이내의 무역제한

손쉬운 프로세스 및 중소기업 지원제도 필요

중소기업들이 ‘전략물자관리제도’에 대해 지적하는 점은 또 있다. 좀 더 손쉬운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출 과정에서 전략물자 판정을 받을 경우, 판정을 받지 않을 때보다 추가적인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영세한 규모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적은 인원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며, 한 두 명의 담당자가 수출 전부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추가적인 절차를 밟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전략물자 판정을 받는 과정은 수출을 희망하는 업체가 직접 진단을 하는 자가판정과 전략물자관리원에 판정을 신청하는 사전판정으로 나뉜다. 두 가지 판정 모두 동일한 법적 효력을 지니지만, 자가판정은 유효기간이 없고 사전판정은 2년간 판정이 유효하다.

자가판정을 통해 전략물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수출을 진행했어도 그것이 잘못된 판정이었고, 문제에 휘말렸을 경우 판정 업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때문에 자가판정을 거쳤더라도 추가적으로 사전판정을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전략기술의 경우 자가판정은 법적 효력이 없어 반드시 사전판정을 이용해야 한다.

현재 전략물자시스템에 대한 관리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략물자관리원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사전판정이 몰리거나 촉박한 시일 내에 판정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어,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수출 중소기업들을 지원할 추가적인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SW 판정 의무 없어…게임, 워드프로세서 등 제외

SW가 전략물자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맞지만, 모든 SW가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략물자관리제도를 주관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모든 SW가 전략물자 판정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나 워드프로세서, 그리고 프로세스 관련 SW 등은 제외되며, 보안에 관련된 것들이 주로 해당되는 등 범위가 어느 정도 한정된다.

▲ 전략물자관리시스템 홈페이지

전략물자를 판정하는 기준은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정한 것이 아닌 국제수출통제체제 기구 전문가들이 정한 규정을 따른다. 그 내용도 요구사항에 따라 상세하게 나눠져 있다. 가령 보안에 관련된 기술이라면 어떤 암호화 기술을 사용했으며, 또 어느 정도의 암호화 수준으로 이뤄졌는지 등 실질적으로 기술자가 아닌 이상은 판정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중소기업 지원 체계 갖춰

전략물자 판정이 까다로운 점 등 수출 중소기업들이 전략물자관리제도를 이해하고 이용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한 많은 시스템들이 도입되고 있다.

‘전략물자관리시스템(www.yestrade.go.kr)’은 전략물자 및 기술의 수출관리를 위해 방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국내 기업들에게 제공하고, 전략물자 및 기술 해당여부에 대한 판단을 지원하며, 수출허가 및 수입증명 등 관련 민원을 인터넷상에서 처리하여 기업의 이행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축된 사이트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이 전략물자 관리를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국제통제대상 전략물자의 해당여부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이러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민원을 처리하여 기업의 서류작성, 통신, 교통, 인력 및 시간 부담을 최소화하는 민원 업무시스템과 전략물자 판정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전략물자 홈닥터 홈페이지 화면

또 다른 하나는 ‘전략물자 홈닥터(www.homedoctor.kosti.or.kr)’ 사업이다. 전략물자 이행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홈닥터를 신청하면 전략물자관리원 내‧외부 전문가가 직접 방문하여 기업의 현황에 맞는 전략물자 관리방법을 자세히 안내하고 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홈닥터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중소기업은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한층 손쉬운 신청이 가능하며, 신청 후 처리 현황까지 확인가능하다. 또한, 온라인 Q&A, 컨설팅 만족도 조사 등의 기능이 추가로 제공되어 사업 참여에서 완료까지 필요한 모든 절차를 포탈 시스템에서 원스톱으로 처리된다.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 진행

전략물자제도가 국내 들어온 것은 1989년으로, 2004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1540호가 채택된 이후 본격적으로 제도화됐다. 이후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홍보와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SW 관련 협회 등을 통해 설명회도 진행하며, 상세한 설명을 요청하는 기업이 있으면 찾아가서 컨설팅까지 진행한다. 지난해에도 컨퍼런스와 세미나를 통해 전략물자관리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알렸으며, 무역안보의 날을 지정해 행사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전략물자관리원에서 사전판정을 신청하는 기업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사전판정 신청 건수는 1만 5천여 건으로, 2012년 7,700건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것만 봐도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산업부는 그 동안 홍보를 진행하는데 있어 부족한 점들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업들이 조금 더 해당 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식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제도 설명회 등이 진행되지만, 정작 기업 경영진들이 제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아 기업 내부적으로도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것.

산업부 관계자는 “홍보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업계가 조금만 더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실제로 제도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서 확인해보면 한 번이라도 관련 교육을 받았던 기업들이 많다”라며, “향후에는 좀 더 기업별로 타깃팅을 하여 제도에 대해 알리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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