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요금 원가공개, 소비자 실질 혜택 돌아가는 공정한 정책 시급

[컴퓨터월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람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휴대전화는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업무를 비롯해 일상에서도 이동통신이 없으면 여러모로 불편과 불리를 감수해야할 수준까지 이르렀다.

한편, 휴대전화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듯, 우리가 내는 요금도 어느새 그 반작용처럼 해를 거듭하면서 계속 뛰어오르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의 신규 서비스와 최신 단말기는 우리에게 여러 즐거움을 주지만, 우리의 통장도 그만큼 더 비어가고 있는 셈이다. 과연 현기증 날만큼 높이 뛰어 오른 가계통신비가 공정하게 책정되어 있는 것인지, 실질적인 해결책은 무엇이 될지 짚어본다.

 

늘어나는 휴대폰 요금

▲ 통계청 ‘201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연간 가계 소비지출 비중

통신요금이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우리나라의 평균 가구지출은 3,137만 원, 세금·사회보험료 등을 제외한 소비지출은 2,307만 원을 기록했다. 통신비는 평균 174만 원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7.6% 증가, 가계 소비지출 중 7.5%의 비중을 차지하며 식료품비, 교육비, 주거비의 뒤를 이었다.
 

▲ OECD ‘커뮤니케이션즈 아웃룩 2013’의 국가별 월평균 이동통신요금 (USD PPP)

현재 우리나라의 이동통신요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격년으로 세계 통신서비스를 비교하는 ‘커뮤니케이션즈 아웃룩(Communications Outlook) 2013’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별 월평균 이동통신요금 지출액은 2011년 기준으로 OECD에서 비교한 19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국가 간 비교를 위해 달러 가치로 환산한 구매력 평가지수(PPP)가 적용됐는데, 우리나라에 이어 높은 순위를 기록한 일본 및 멕시코와의 격차마저 큰 편으로 조사됐다. 멕시코의 경우 통신사 하나가 80% 수준의 점유율을 가진 독점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이동통신요금 지출액은 우리나라보다 30% 이상 적다.
 

▲ KISDI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의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추이

가계통신비가 타국에 비해 높은 데에는 스마트폰의 높은 보급률도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의 분석에서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으로 스마트폰 보급률 67.6%를 기록, 2위인 노르웨이의 55%와 큰 차이를 보이며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보급은 통신서비스 사용의 활성화를 불러왔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과 2012년 가계통신비를 명목금액과 실질금액, 소비자물가지수 변동을 함께 고려해 비교 시 통신 요금은 5.2% 하락했지만, 통신서비스 사용량이 19.9%나 늘어나며 가계통신비도 13.7% 증가했다.
 

▲ 연도별 가계 소비지출 중 통신비 비중 변화

통신서비스 사용량의 증가는 요금 지출의 증가로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우리나라의 이동통신요금 지출이 늘어나는 이유를 전부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통신서비스가 활성화된 다른 나라들과 비교 시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매출과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액) 자체가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이동통신사 3분기 실적 벤치마킹’ 보고서에서 국내 이통사들의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4%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미국과 일본의 이통사들은 각각 3%와 1%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고, 서유럽 이통사들의 매출은 오히려 전년동기 대비 9% 줄어들었다. 상대적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지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통3사, 그들만의 리그

▲ KISDI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의 이통사 마케팅비 집행 현황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2013년도)’에 따르면, 지난 2012년에 이통3사가 마케팅비로 지출한 금액의 합계는 7조 8천억 원이 넘는다. 올해 초 연이어 일어나며 이통3사의 순환 영업정지까지 초래했던 ‘보조금 대란’을 돌이켜보면 이러한 마케팅비 지출은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동통신 3사는 지난 1분기 실적 부진의 사유 중 하나로 과도한 마케팅비 지출을 각각 꼽기도 했다.
 

▲ KISDI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의 이동전화 HHI지수 추이(MVNO 포함)

그러나 시장 집중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 중 하나인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를 살펴보면, 국내 이통시장은 소폭 개선됐으나 여전히 3,800선을 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HHI가 3,300을 넘는 곳은 비경쟁시장으로 분류된다. 즉, 경쟁이 비활성화돼 독과점이 의심되는 시장 상태다.

정부는 HHI 개선을 위해 시장 경쟁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알뜰폰(MVNO) 정책을 내놓았으나,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지난 2010년 9월 총 가입자 5천만 명을 돌파해 보급률 102.4%를 기록하며 이미 포화됐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알뜰폰 업체가 가입자 유치 경쟁을 벌이기에는 기존의 이통3사처럼 마케팅비 출혈을 감수하기 버겁고, 기존 이통3사의 통신망을 임대해 사용하기 때문에 사업상 제약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장 경쟁을 촉진시키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이통3사는 LTE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설비 투자 경쟁으로 인해 영업이익율의 단기적 하락을 겪기도 했다. 허나 단위당 망 원가라고 볼 수 있는 이동통신망 착신접속료가 가입자 수와 통화량이 일정 규모까지 증가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감소했음은 KISDI의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에도 명시된 바 있다. 시민사회단체 등에 의해 단위 데이터양에 대한 투자비용이 3세대(3G)보다 4세대(LTE)가 낮은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동통신요금 원가 공개 소송

참여연대는 지난 2011년 5월 방송통신위원회에게 통신서비스 요금수준 평가자료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동통신사업은 대규모 장치사업으로서 초기투자비용은 많이 들지만 그 이후로는 추가비용이 들지 않는 특성을 갖는데,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이후로 이동통신비 지출이 오히려 2~3배 늘어나 많은 국민들이 고충을 토로한다는 점이 참여연대 측의 청구 이유였다.

방통위는 정보공개법상 의무가 있음에도 정보공개를 거부했고, 이에 따라 참여연대는 지난 2011년 7월 방통위를 상대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참여연대는 ▲이동통신요금 원가 및 이동통신사 약관의 신고·인가신청에 대한 심의평가 자료 및 요금산정 근거자료 ▲요금인하 관련 방통위의 전체회의에 보고된 자료 등의 공개를 요구했다.

방통위는 통신요금 원가 관련 자료의 존재를 부인하다가 재판이 시작되자 사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를 들었고, 1심 법원에서는 “이동통신요금 원가 및 요금인하 논의와 관련한 대부분의 정보에 대해 방통위의 비공개 처분은 위법하다”며 일부를 제외한 공개청구를 받아들여 참여연대의 부분 승소로 판결이 났다.

이에 피고 방통위가 보조참가인 SK텔레콤과 함께 항소 의사를 피력했고, 관련 업무를 이관 받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더불어 항소심 진행 중에 KT와 LG유플러스에게도 보조참가인 참여를 요청했다. 결국 이통3사 모두 대형로펌을 끼고 2심에 참가한 것이다.

그러나 통신서비스의 공공성 및 생활필수재로서 성격을 감안, 공익을 위한 필요 범위 내 영업내용 공개의 당위성을 인정받아 2심에서도 참여연대의 승소가 이어졌다. 이 다윗 대 골리앗의 싸움은 현재 대법원까지 올라가 3심이 진행 중이다.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논란

▲ 마케팅인사이트의 2012년 4월 조사결과 약정요금제별 기본제공량 사용률

미래부는 지난 2월 통신요금제도 개선 로드맵을 6월까지 공개한다고 발표하며 ‘통신요금 인가제’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통신요금 인가제’는 통신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횡포를 막고자 지난 1991년부터 도입된 제도로, 이통업계에서는 50%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SKT가 적용 대상이다. SKT는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을 시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다른 사업자들은 신고로 가능하다.

이동통신요금 원가공개 소송에서 증인으로서 전문지식을 동원해 참여연대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준 바 있는 오픈넷 전응휘 이사장은 ‘통신요금 인가제’의 폐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를 겸하고 있는 전응휘 이사장은 “이동통신시장에서 ‘통신요금 인가제’가 지금껏 제 역할을 했는지부터 의문스럽다”고 운을 떼며, “현재 주를 이루는 패키지 요금 상품은 끼워팔기 식이라 소비자들에게 불필요한 지출을 초래하며, 이통사에게는 부당한 초과이득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금제 구간 설계도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가계통신비를 절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확인할 수 없던 점도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동통신요금 원가 공개를 요구했던 이유 중 하나다”고 밝히며, “국가자원인 주파수를 사용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이통사들이 취하고 있는 폭리를 바로잡기 위해 ‘통신요금 인가제’를 투명하게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전 이사장은 “현재 ‘통신요금 인가제’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도 요금 인하는 인가 없이 신고만으로 가능하다”며, “이통사들이 새로운 서비스 출시를 빌미삼아 지속적으로 요금을 올려만 왔지, 본격적으로 요금 인하 경쟁을 벌였던 적이 있었는가”라고 꼬집었다.

 

단통법, 최선인가

▲ 가트너가 2012년 발표한 ‘세계 휴대전화 전망’의 출고가 비교(OECD국가 대상)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지난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단말기 보조금 지급 시 가입유형, 요금제, 거주지역 등에 따른 이용자 차별 금지 및 요금할인 선택제, 보조금 공시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오는 10월에 시행될 계획이다.

가트너의 지난 2012 ‘세계 휴대전화 전망(Forecast: Mobile Phones, Worldwide)’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출고가는 세계에서도 가장 비싼 수준으로, 이동전화요금의 상승에는 단말기 출고가도 한몫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통계청의 ‘2014년도 1분기 가계동향 조사결과’에서는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 비판받은 후 변경된 조사방식을 처음 적용했는데, 월평균 가계통신비 중 통신장비의 실질적인 비중이 전년동기 대비 3배가량 오른 결과를 보였다.

오픈넷 전응휘 이사장은 “보조금은 일종의 영업촉진비”라며, “돈 많이 버는 기업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알아서 돈 쓰며 경쟁하는 건데,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해 이를 막는 게 소비자들에게 이득으로 돌아갈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절대적인 평등을 적용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단통법’이 실시되면 장기가입, 서비스사 변경 등에도 동일한 혜택이 적용되며, 공시된 보조금의 15% 이내에서만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다.

물론 그간 국내 기형적인 이통시장의 음성적인 보조금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마케팅 출혈 경쟁으로 단말기 비용부담이 줄기도 했으나, 그 혜택이 일부 고ARPU 가입자에게 집중되며 이용자 차별 및 시장 불신을 가중시키는 점이 주로 지적돼왔다. 특히, 이동통신 보조금 시장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알지 못해 ‘호갱’이라 불리며 손해를 봤던 노약자나 및 정보취약계층에게 이통시장은 또 하나의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의 장이었다.

그렇지만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자칫 시장의 경쟁둔화 및 역차별을 일으켜 소비자들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 과열경쟁으로 흘러도 지금보다 더욱 음성적인 리베이트 형식의 페이백을 유발, 과거 적지 않은 이들이 소위 ‘먹튀’로 피해 입었던 ‘거성 모바일’ 사건의 재발 위험 또한 잠재돼있는 것이다.

 

공정한 정책과 실질적인 혜택

이동통신 서비스와 이동전화 단말기는 전형적인 보완재 관계로, 한 쪽의 소비가 증가하면 다른 쪽의 소비도 증가하게 된다. 이동통신 가입자가 늘어나면 단말기 판매가 증가하고, 단말기의 성능이 좋을수록 다양한 서비스 제공으로 가입자를 유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통신사들은 마케팅비 출혈 경쟁을 감수하면서도 패키지 요금 상품을 묶어 다양한 방법으로 단말기 보조금을 제공해왔던 것이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시장 환경이 마련된다면 불법적인 방법 외에도 이동통신사와 제조사간 충분한 협의를 통해 소비자와 윈-윈을 거둘 수 있는 길은 열려있는 셈이다.

국가기간망으로 생활필수재를 다루는 공공서비스로서의 이동통신서비스라는 점을 규제당국에서 우선 명확히 인식하고, 이제는 공명정대한 정책을 통해 이통시장을 활성화시켜 소비자와 업체의 상생구도를 조성해야할 시점이다. 이동통신요금 원가 공개를 통해 시장에 만연한 불신을 잠식시키는 한편, ‘단통법’의 고시 제정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함으로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장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 규제당국의 이동통신시장 개선을 위한 의지와 수행능력에 따라 향후 우리나라 국민들의 어깨에 실린 가계통신비 부담의 무게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통신업계의 경쟁을 양지로 끌어올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소비자들에게 널리 혜택을 제공하게끔 이끄는 것이야말로 정부에서 지향해야할 방향이 아닐까.

속이고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정한 경쟁과 실질적인 혜택이 함께하는 새로운 이동통신시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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