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업계 “최저가 입찰 가속화 할 뿐”이라며 반발

 

[컴퓨터월드] 조달청이 최근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록된 일부 소프트웨어(SW) 제품에 다수공급자(Multiple Award Schedule, MAS) 계약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SW기업들은 다수공급자 계약 방식이 공공사업의 최저가 입찰을 가속화할 뿐이라면서, SW업계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특히 최저가 입찰을 방지해 국내 SW역량을 강화하고자 지난 2012년 마련한 SW산업진흥법 개정안과도 전면 배치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기존에 나라장터에서 SW 구매는 제3자 단가 계약 방식으로 진행됐다. 제3자 단가 계약은 SW기업이 나라장터 쇼핑몰에 자사 제품을 등록하면 수요기관이 가장 적합한 제품을 직접 골라 구매하는 방식이다. 수요기관은 기업이 나라장터에 등록한 제품 성능이나 기능 등을 확인하고, 민간시장에서의 구축비용 등에 기반한 가격을 검토해 최적의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 조달청은 나라장터에서 SW를 구매할 경우 다수공급자 계약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다수공급자 계약은 수요기관이 특정 제품을 도입하고자 하면, 일정 이상의 품질을 갖춘 제품 공급자를 다수 선정하고 별도의 기준에 따라 해당 제품들에 대한 경쟁을 재차 실시하는 방식이다. 현재 나라장터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대다수는 다수공급자 계약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SW업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SW는 그 특수성을 고려해 제3자 단가 계약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나라장터를 통한 SW 제품 구매에 다수공급자 계약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SW 업계와 제품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무리한 경쟁으로 인해 SW의 품질과 기능을 무시한 최저가 경쟁을 야기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제품 성능이 부족한 업체가 공공 레퍼런스(구축사례) 확보 및 사업 수주를 위해 무리하게 낮은 금액으로 입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형의 자산인 SW는 다른 제품들과 달리 정확한 원가를 계산하기 어렵기에 무리한 덤핑입찰로 사업 수주를 노리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 제3자 단가 계약과 다수공급자 계약의 차이 (출처: 조달청)

이미 나라장터 이외의 공공 SW 시장에서도 덤핑입찰을 통한 최저가 경쟁은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현재 공공 SI 사업에서는 경쟁 입찰을 통해 수행기업을 선정할 때 기술점수와 가격점수를 따로 매겨 합산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으며, 전체 점수에서 최소 80% 이상을 기술점수에 할당해야 한다. 기술점수의 배점을 높인 것은 그만큼 제품의 성능과 기술력을 중요하게 보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가 무색하게도 공공 SI 사업에서 입찰 가격에 의해 수행기업이 결정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기술평가가 제품들 간의 순위메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성능과 기능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술점수는 비슷한 수준으로 메겨지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기술평가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은 기업도 경쟁사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가는 사업 기회를 뺏기는 일이 빈번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IT 서비스 산업계에서는 기술점수의 최소 비중을 95% 이상으로 높여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술점수의 비중이 훨씬 높은 경쟁 입찰 방식에서도 SW의 성능보다는 가격으로 제품이 선정되는 일이 빈번하다. 심지어 다수공급자 계약 방식에서는 기술 수준보다는 가격이 더 중요한 평가요소이므로 최저가 입찰이 가속화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SW의 품질과 성능을 향상시키기보다, 나라장터에 등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채 가장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수공급자 계약 방식은 국내 SW경쟁력을 키우고자하는 정부의 방침과 그동안 SW업계가 수행해온 자정노력들을 허사로 만드는 일”이라며, “조달청의 예산 절감을 이유로 가장 싼 제품만을 구입하겠다는 불합리한 처사이며, 협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조달청 측은 이번 나라장터 SW 구매방식 변경이 일부 제품에만 적용되는 것이며, SW산업계가 걱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보완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존의 제3자 단가를 적용한 수의계약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의계약 자체가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하는 예외적인 제도이므로 상호 경쟁이 가능한 제품이라면 경쟁 절차를 거치겠다는 설명이다. 현재 조달청은 SW 중에서도 개인별 PC에 적용되는 백신은 제품 간 경쟁이 가능하다며, 백신 제품에 대한 다수공급자 제도 적용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SW업계에서 우려하고 있는 바에 대해서는 “다수공급자 계약을 적용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확보한 제품을 대상으로 구매하게 되므로, SW 품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품 간 차별성이 매우 큰 제품은 기존 방식을 유지할 계획이며, 5천만 원 미만의 SW 역시 기존처럼 수의계약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다수공급자 계약은 제품들 간의 품질·성능·효율 등이 비슷한 경우 적용할 수 있다. (출처: 조달청)

이에 대해 SW 업계는 “조달청 측은 나라장터 등록 기준을 충족했다면 모두 같은 수준의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SW는 각 제품마다 특화된 기능이나 성능이 천차만별로 다르다. 다수공급자 계약 방식은 품질이나 성능, 효율 등이 유사한 제품들 간에 경쟁을 유도하고 변별력을 두기 위한 제도로, SW와는 애초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조달청은 나라장터에 등록된 SW 간에 최저가 입찰이 횡행할 것이라는 SW업계의 지적과 관련,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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