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에 설립된 코오롱정보통신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오는 2005년 국내 IT 업계 빅 5 진입이라는 비전 2005를 마련하고 대수술 작업을 하고 있다. 비핵심 사업부문은 분사시키고 경쟁력있는 시스템 사업을 강화하는 내용의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한데 이어 조직, 기업문화, 인사제도, 임금체계 등 모든 것을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2003년 1월 1일은 코오롱정보통신의 새로운 창업일"이라는 변보경 사장의 말은 그 변화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변보경 사장을 만나 코오롱정보통신이 변신에 나선 배경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들어봤다.박시현 기자 pcsw@infotech.co.kr

코오롱정보통신이 변하고 있다. 느슨한 기업문화를 싹 뜯어고치고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하는가 하면 조직을 재정비하고 비즈니스 모델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진원지는 바로 변보경 사장이다. 지난해 3월 신임 대표이사로 취임한 변보경 사장은 오는 2005년 국내 5대 IT 업체로 부상한다는 내용의 '비전 2005'를 발표하고 대대적인 수술 작업을 벌이고 있다.

모든 시스템 바꾼다
"국내 회사 가운데 관리시스템, 인사시스템, 경영시스템 등이 제대로 된 일류 IT 회사를 만들고 싶다."
변보경 사장이 말하는 비전 2005의 뼈대이다. 단지 매출액을 늘려 회사의 덩치만을 키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영업, 인사, 경영, 조직 등 모든 시스템을 바꾸어 일류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히 배어있다. "인력의 효율적인 재배치로 우리의 강점인 유통 분야를 더욱 강화하면서 솔루션과 소프트웨어로 사업 영역을 넓혀 종합 IT 솔루션과 서비스 업체로 도약할 계획이다. 또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해 구성원 모두 현안을 공유하고 충분한 이해 과정을 거쳐 해결책을 모색하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창출하겠다"는 변 사장의 말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변보경 사장은 "오랫동안 외국인 회사에서만 일했다. 그동안 배우고 축적한 모든 역량을 국내 일류의 IT 회사를 만드는데 쏟아 붓겠다"며 의욕을 붙태운다. 평소 마지막 직장 생활은 국내 회사에서 마감하고 싶었다는 변 사장은 남은 기간동안 후회없는 도전을 한번 해보겠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50년만에 외부 CEO 영입
코오롱정보시스템이 이같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배경이 궁금하다.
"코오롱 그룹은 기업의 리엔지니어링, 리스트럭처링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한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코오롱정보통신이다. 코오롱정보통신은 파일럿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경영혁신 프로젝트의 성과 모델은 코오롱 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확산될 것이다"
변보경 사장은 "코오롱은 50년만에 처음으로 외부에서 CEO를 영입했을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의 전권을 나에게 부여했다"며 이번에 추진하는 경영혁신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많다는 게 변 사장의 말이다.
코오롱 그룹이 많은 CEO 가운데 굳이 외국인 회사의 근무 경력이 전부인 변보경 사장을 영입한 이유도 뭔가 있을 것 같다.
"외국계 기업은 일단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앞서있다. 인재 육성을 위해 끊임없는 투자를 한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재를 육성하고 경쟁력을 키운다. 하지만 개인 존중이라는 이념이 개인주의로 퇴색되기 쉬우며, 인간미가 부족하다.
결국 외국 기업의 매니지먼트는 효율성은 있으나 국내 기업에는 맞지 않다. 반면 국내 기업은 우리 상사, 우리 회사라는 충성심과 애사심이 투철하다. 아쉬운 것은 인사 고가에서 업무 성과 외에 상하간의 인간 관계가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장점을 두로 도입해 효율적인 경영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코오롱 그룹은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잘돼 있는 외국인 회사의 장점을 도입 적용하는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인정과 의리'에서 '실력과 의리'로
코오롱 그룹의 이같은 기대는 현실로 나타났다. 변보경 사장은 지난 3월 취임 이후 줄곧 기존 시스템에 칼을 댔다. 그동안 사원, 주임, 대리, 과장, 부장 등 10개로 되어있는 직급 체제를 4개로 과감히 줄였으며, 연공서열식 인사 제도를 폐지해 능력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했다.
또 개인연봉제를 실시해 능력있는 인재 육성에 힘쓰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또 올해부터는 ERP를 도입해 영업 관리, 인사관리, 경영관리, 조직관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한다는 방침도 공표하기도 했다. 팀장에게 권한을 주는 책임경영체제로 조직도 개편했다.
그렇다고 변보경 사장이 코오롱의 모든 기업 문화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변 사장은 "코오롱에도 좋은 기업문화가 있다. 인정과 의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실력과 의리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변보경 사장의 생각대로 일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외국인 회사와는 달리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지시한 사항이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드백도 없었다. 또 잘할 수 있다는 직원들의 마인드도 부족했다. 비전을 소개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과연 잘 될까요"라는 반문뿐이었다. 심지어 임원들 조차 "저러다 말겠지"라며 저항과 반발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변보경 사장은 "새로운 각도에서 보지 않으면 기존의 틀을 깰 수 없다. 벽을 부수고 관통해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다"며 생각의 변화를 재촉했다.
"적당히 하려면 그만두라고 얘기했다. 개인적으로 적합하지 않는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이 개인의 진로를 생각할 때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변보경 사장은 임원진의 물갈이도 시사했다.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임원이 있어야 경영혁신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2003년은 재창업의 해
변 사장은 "2002년은 땅을 파는데 주력했다면 2003년은 길을 닦는데 힘쓸 것"이라며 앞으로 가야할 여정을 흔들림없이 추진할 뜻을 분명히 했다. "2003년은 코오롱정보통신의 재창업의 해"라는 변 사장의 말은 그 의지를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코오롱정보통신이 올해 1월 24일 삼성동 한전 근처의 빌딩으로 사옥을 이전하는 것도 이러한 재창업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변 사장은 "사옥 이전은 과거의 매너리즘을 버리고 팀웍을 갖추고 새로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코오롱정보통신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과거 백화점식 SI 사업을 해오다가 하드웨어 유통으로 특화한 코오롱정보통신이 앞으로는 어디에 주력할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잘해온 사업을 강화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드웨어 유통은 코오롱정보통신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IT 유통 사업에 관한한 코오롱정보통신을 쫓아올 업체는 아무도 없다. 앞으로 IT 유통 사업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유통 사업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면서 변보경 사장은 "IT 유통만이 전부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토탈 서비스 업체로 나갈 것"이라면서 솔루션 사업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국내 SI 업체들은 그룹 계열사에 기대어 지탱하고 있다"면서 코오롱정보통신은 이러한 성격의 SI 업체로 갈 의사는 전혀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현재 국내의 SI 업체는 말만 SI사업을 한다고 할 뿐 속을 들여다 보면 IT 유통 부문이 적지 않다는 게 변 사장의 분석이다.

IT 유통 더욱 강화
그는 "코오롱정보통신은 그룹 의존도가 불과 13%대로 매우 낮다. 이는 모기업에 의존해 성장해온 다른 SI 기업과 차별화되는 부문이다. 앞으로 솔루션 기반의 IT 서비스 업체로 금융, 유통, 건설, 물류 등 특화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변 사장은 "오는 2005년 빅5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수합병이 불가피하다"면서 앞으로 이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내비쳤다.
"코오롱정보통신은 지난해에 최상의 IT 서비스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고수익 성장 사업에 주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추진한 작업이 바로 쌍용정보통신에 대한 인수 검토였다. 현재 이 작업은 인수 조건 등이 맞지 않아 보류된 상태이다. 하지만 올해 다시 추진하되 특정 업체에 국한되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시도할 것이다."
이와 맞물려 좋은 인재를 외부에서 적극 영입하는 것도 변 사장이 품고 있는 생각이다. 회사가 긍정적으로 바뀌려면 스킬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면서도 변 사장은 "내부 인력의 활용이 첫 번째이며, 외부 인력의 도입은 두 번째"라며 내부 인력의 혁신을 위해 계속 악역을 맡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능력은 두 번째이다. 중요한 것은 일에 대한 열정이다. 일은 게을리 하면서 말이 많은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덧붙인다.

비수익 사업부 없앨 것
한편 변보경 사장은 회사의 이러한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임원의 솔선수범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장도 여기에서 예외일수는 없다.
평소 주식을 하지 않는 변 사장이 개인자금을 들어 주당 1만400원에 4,800주의 당사 주식을 매입한 사실은 코오롱정보통신을 가치있는 기업으로 키우는데 솔선수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혀진다.
변보경 사장은 "2003년에는 수익 모델을 제대로 만들어낼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업부문은 과감히 없앨 것"이라며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데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윤 창출이 기본인 기업 경영에서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3년은 코오롱정보통신에게 매우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다. 변 사장은 "연말에 300억원의 캐시 플로우를 확보할 예정이며, 인수 합병과 내부 구조조정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올해 계획을 간략히 밝혔다.
변보경 사장은 최근 30년 지기인 조정태 사장을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의미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좋은 회사를 만들고 인간적인 삶을 사는데 남은 인생을 걸었다"며 모든 일을 제쳐두고 코오롱정보통신을 일류회사로 키우는데 이바지 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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