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저술 10년, 외롭지만 즐거운 길"

이인식(57) 과학문화연구소장. 이 소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기인이라 부른다. 스스로를 돈키호테에 비유했듯이 그는 확실히 일반인과는 달랐다.
30대 후반에 대기업 이사에 오를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그가 과학저술가가 되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도 그렇고, 수년동안 정보통신 업계에 몸담았으면서도 글을 쓸 때 컴퓨터가 아닌 원고지를 고집하는 것도 그렇다.
이인식 소장은 1년에 한권도 내기 힘든 책을 지난해에만 6권을 출간했다. 그것도 과학 기술서적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없다는 출판계의 통념을 깨뜨리면서... 그가 내놓은 책들은 이제 저자가 이인식이라는 것만으로도 언론과 일반인의 관심을 받을만큼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어린이를 위한 과학기술 책을 준비 중이라는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을 만나봤다.<김선오 기자>

이인식 소장 약력
1945년 광주출생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1년부터 정보통신업계 종사
1992년 월간 정보기술 발행인
1995년부터 과학문화연구소장
동아일보, 한겨례, 주간동아, 월간조선, 과학동아 등에 고정 칼럼 연재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은 자신을 과학기술계의 재야인사라고 말한다. 제도권 밖에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인식 소장의 글을 보면 그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과학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며, 특히 과학기술서적은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게 사실이기도 하다. 기술적인 개념이 어려운데다 용어도 영어투성이라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책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완벽한 한글문장

그러나 이인식 소장이 내놓은 책들은 쉽고 재미있다. 첨단 과학 기술을 시원스런 필치로 매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완벽한 한글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기존 과학기술서적과 다른 점이다.
사람과컴퓨터(1992년), 21세기를 지배하는 키워드(2000년), 나노기술이 미래를 바꾼다(2002년) 등 아무리 어려운 주제의 글이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매우 쉽고 재미있게 변한다.
과학을 모르는 일반인도 그의 글은 소설처럼 쉽게 읽을 수 있다. 과학기술 서적도 이렇게 쉽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데 놀랄 수밖에 없다.
이인식 소장이 쓴 책이 과학기술 서적은 팔리기 어렵다는 서점가의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리고 인기리에 팔려나가고 있는 것도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인식 소장이 어려운 주제의 글을 쉽고 재미있게 쓰는 것에 대해 글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그의 글솜씨는 매우 뛰어나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시절 이미 '환상귀향'이라는 단편집을 냈을 정도로 그의 글솜씨는 인정받고 있었다. 그가 '나의 마지막 직업'이라는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많은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학 저술가의 길을 택한 것도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외에 글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책을 대한 사람은 '글솜씨만으로는 지금과 같은 이인식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한다. 글에 대한 경외감이 과학저술가로서 지금의 이인식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인식 소장의 글쓰기 작업은 옆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철저한 사전준비와 공정을 거친다. 자료를 수집하고 검증하는데 어떠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가끔 원고청탁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도 따지고 보면 글에 대한 경외감때문이다. 잔재주를 부려 어줍잖은 감동을 주는 글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1992년에 나온 이인식씨의 사람과 컴퓨터는 토씨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인쇄한 보기드문 과학서적이었다"는 까치출판사의 박종만 사장의 말은 이인식 소장의 글에 대한 준열한 정신이 어떠하냐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인식 소장은 80년대 후반 본지에도 많은 글을 기고했다. 당시 이인식 소장의 글은 토씨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인쇄하는 게 불문률일만큼 그는 글에 관한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이인식 소장의 글은 오자도 그대로 인쇄해야 된다는 말이 떠돌았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이인식 소장의 이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무엇 때문에 출세가 보장된 대기업의 상무자리를 박차고 나와 힘들고 어려운 과학저술가의 길을 택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이인식 소장이 과학저술가가 되겠다고 회사를 떠났던 91년이면 정보통신 업종에 종사하는 것만으로도 남들의 부러움을 샀던 시절이었으며, 이인식 소장의 실력과 경험이면 당시에는 부와 출세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점에서 그런 의문을 가질만하다.
회사생활 이력만을 놓고 보면 그는 누구보다 화려하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80년과 81년에 금성반도체 기획부장과 개발부장을 거쳐, 82년 (주)일진 이사, 85년 대성산업 이사, 87년 대성산업 상무를 역임했다.
이인식 소장은 직책이상으로 회사 내에서 업무처리 능력에 관한한 그 명성이 자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80년 금성반도체 기획부장 시절 웨스턴 일렉트로닉사의 No.1A.ESS기술 도입 업무를 총괄했으며, 개발부장을 맡았던 81년에는 국내 최초로 미니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병원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82년 (주)일진에서 이사로 일할 때는 Corvus사의 LAN을 국내 시장에 공급, 국내 최초로 LAN을 소개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85년 대성산업 특수사업부 이사시절에는 미수교국이었던 중국에 전자제품을 수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회사에서 인정받고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가 과학저술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나는 돈벌이가 좋지 않은 과학저술가이지만 원고를 쓰는 일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즐거울 따름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처럼 행복한 삶이 또 어디 있으랴.'
이인식 소장이 쓴 '나의 마지막 직업'이란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보물1호는 30권의 자료파일

이인식 소장은 자연과학자는 물론 사회과학자와 일반 독자까지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고 말한다. 이인식 소장이 과학면보다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한 칼럼면이나 교육면을 고집하는 것도 이 소장의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글에 대한 주제 역시 컴퓨터는 물론 성과학, 상상의 동물, 엽기신드롬, 포경수술, 나노기술 등 매우 다양하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이 소장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부를 하다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컴퓨터에 대해 공부하다보면 인공지능을 알아야 되는데 인지과학, 심리학, 철학, 언어, 신경과학 특히 눈과 귀를 모르고서는 인공지능에 대해 한걸음도 나갈 수없다는 것이다.
또 인공생명과 로봇까지 확대되고 있는 컴퓨터를 공부하다보면 생물학과 성, SF 소설, 신화, 상상동물 등을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인식 소장은 주변학문에 대한 이해없이 글을 쓰는 것은 독자를 속이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92년 IT업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사람과 컴퓨터' 3부에 수록되었던 '눈과 컴퓨터'를 본지에 실었던 것 역시 컴퓨터잡지에 웬 눈에 대한 글이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87년에 발간된 하이테크혁명 이후 사람과 컴퓨터, 제 2의 창세기, 신화와 상상동물, 성과학 탐사 등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주제의 책들이 실상 모두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 이인식 소장의 설명이다.
이인식 소장은 자신이 만든 30여권의 자료파일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정보기술, 생물학, 물리학, 인공지능 등 공부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주제별로 분류해 놓은 것이다. 회사생활을 할 때부터 수집한 것으로 제목을 대부분 외우고 있는 데다 관계형데이터베이스 개념을 적용해 분류를 해놓아 필요할 때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인식 소장은 과학저술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 회사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또 현재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상당부분 자료수집과 분류에 대한 습관과 노하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인식 소장은 '같은 자료도 보기나름이다'는 말로 자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600만원의 사나이

과학저술가의 길을 걷는 동안 이인식 소장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1992년 '정보기술'이라는 컴퓨터잡지를 창간했다가 주변 친지에게 경제적 피해만 안겨준 채 문을 닫았던 때나 IMF이후 원고청탁이 줄어 1년 총수입이 600만원으로 줄어들었을 때는 잠시이지만 과학저술가의 길로 들어선 게 후회도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 때마다 사명감으로 버텼다. 우리나라 과학의 대중화를 생각했다. 아내의 격려 또한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이인식 소장은 '나의 마지막 직업'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내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끝없이 신뢰하고 격려해준 아내의 이해와 사랑이 없었다면 결코 오늘의 과학저술가로 자리를 잡지못했을 것이다.'
이인식 소장은 원칙과 예의를 매우 중시한다. 원칙에서 벗어나거나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용납하지도 않는다. 원칙을 중시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이런 그의 행동 때문에 가끔 '까다롭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원고청탁을 받을 때 이인식 소장의 행동을 보면 그가 얼마나 원칙과 예의를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영향력 있는 언론사라 할지라도, 아무리 많은 원고료를 제시한다하더라도 지면할애에 원칙이 없거나 원고청탁과정에서 예의가 없을 경우 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반대로 아무런 조건없이 원고청탁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지난 1985년 아폴로 지사장직을 거절한 사건에서 이인식 소장이 얼마만큼 원칙을 중요시하느냐를 알 수 있다. 이인식 소장은 지난 1985년 지금은 HP에 합병됐지만 당시 유명 컴퓨터업체인 아폴로의 국내 현지법인 사장을 하기로 하고 아폴로 해외본부가 있던 스위스로 초청받아갔다.
그러나 아폴로측은 외환관리법 때문에 국내 현지법인 설립이 어렵다며 지사장직을 제의했다.
당시 지사장직을 수락했으면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당초 약속과는 다르다는 점을 들어 이 소장은 이를 거절했다. 현지법인 사장이나 자사장이 별반 차이는 없지만 지사장은 본사의 완전한 영향력하에 있는 외국사 직원이라는 점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당시 이인식 소장은 아폴로로부터 많은 자료를 가져와 테크니컬웍스테이션에 대한 글을 게재, 큰 호응을 얻었다. 글에 대한 욕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던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책 준비

이인식 소장은 원칙을 중시하면서 남에 대한 배려,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남을 배려하는 그의 행동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이인식 소장이 주최하는 행사에 가본 사람이라면 좌석배치 하나에서만도 그가 얼마만큼 남을 배려하는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이, 직업, 취미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손님이 가장 편안한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좌석을 배치한다. 이인식 소장은 모든 일에 이처럼 빈틈이 없다.
이인식 소장은 올해 어린이를 위한 책을 내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빈틈없이 일을 추진하는 이인식 소장답게 이미 7월까지 출판 계획이 잡혀져 있다.
1월(1권)과 5월(2권), 7월(3권)에 <21세기 키워드>(애니북스)를, 5월에 <큰나무가 작은나무>에게(파랑새 어린이)와 <상상동물과 놀자>(2권)(문학동네 어린이), 7월에 <이인식의 과학나라>(생각의 나무)를 출간할 계획이다. 이외에 <이인식의 성과학 탐사>를 만화로 만들어낼 계획도 갖고 있다.
원고를 쓰는 일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이인식 소장. 그의 말대로 박사학위도 없고 교수도 아닌 이인식 소장이 어떤 책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날지 궁금하다.

이인식의 과학생각
언론 평론가로부터 호평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이 최근(2002년 12월) 발간한 [이인식의 과학생각](생각의 나무)이 언론과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동아일보(유윤종 기자)는 '과학계 최신의 쟁점에서 성(性) 과학까지, 지금껏 저자가 다뤄온 과학 세상의 지평은 사뭇 넓다. 이번 책에서 그는 과학 전문저널과 논문집 속의 세상을 벗어나 사회 속으로 들어간다' 라고 적고 있다.
한국경제<공병호의 책이 있는 풍경>는 '이인식의 과학생각은 과학과 시사를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다소 어색한 부분도 보이긴 하지만 이런 결점들을 충분히 덮을 만큼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는 과학 시사 칼럼집이다. 책 속의 여러 주제를 읽어갈 때마다 재미와 흥미를 듬뿍 느낄 수 있다'라는 말로 이 책을 설명하고 있다.
공병호씨는 또 '과학의 대중화를 생각할 때면 이제는 고인이 된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저술을 통해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들고 그곳에서 유익함과 즐거움을 함께 했는가. 국내에서는 이인식씨가 그동안 꾸준히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왔다'라는 말로 이인식 소장을 칼 세이건에 비유하기도 했다.

<최영락 원장이 보는 이인식 소장>

"과학 기술계의 선구자"
최영락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지난해 4월 이인식 소장이 단장으로 있던 과학기술 중기비전 기획단에서 '과학기술 중기비전 수립을 위한 사전연구'라는 책자가 나왔다. 이인식 소장이 처음으로 제도권 안에서 한 일이었다. 당시 기획단에서 간사를 맡았던 최영락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을 만나 그가 이야기 하는 이인식 소장에 대해 들어봤다.
최영락 원장은 이인식 소장을 이 시대에는 보기드문 개척자, 과학 기술계의 최고 지성이라고 평한다. 통찰력이 있고 판단의 기준이 정확하다는 것이 이인식 소장에 대한 최 원장의 평가이다.
과거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전문위원으로 만나 이 소장과 처음 일하게 되었다는 최영락 원장은 함께 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이 소장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최 원장에 따르면 이 소장은 끊임없는 비평의식과 문제제기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적 수준이 높은 전문가 그룹에서 특히 이 소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한 최원장은 다른 사람들은 은퇴를 준비하는 환갑을 눈앞에 둔 나이에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이 소장의 열정을 특히 높게 평가했다.
최 원장에 따르면 과학기술 중기비전 기획단 멤버 한사람 한사람 모두 국내에서는 내로라하는 전문가인데도 불구하고 이소장의 높은 안목과 시각에 감탄했으며 이 소장의 얘기를 대부분 받아들였을 정도로 그를 인정했다고 한다.
최영락 원장은 이 소장은 어떤 일을 하는 데 기준이 높아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사람들로부터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장은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사람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못견뎌 하며 상대방에 대한 예의범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이인식 소장은 과학기술의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지만 본인은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최영락 원장의 주장이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쳐 주체하지 못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것.
최원장은 이 소장은 과학저술가라는 독보적인 길을 걸어온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는 경건하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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