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은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증기시스템 전문 업체이자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한국스파이렉스사코(주)의 CIO인 정신호(41세) 이사. 그는 CIO 업계의 여걸(女傑)로 통한다. 성격이 활달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동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정을 등한시하지도 않는다. 엄마와 아내로서, 또한 직장의 한 임원으로서 그녀는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이사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할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아무나 소화해 낼 수도 없다.
정 이사는 지난 88년 한국스파이렉스에 프로그램 개발자로 입사해 9년여 만인 97년에 CIO로 승진했고, 8년째 이 회사의 전산 업무 총괄책임자를 역임하고 있다. 한국스파이렉스의 전산시스템은 시스템 가용성이 목표치인 99.5%보다 더 높은 99.75%를 기록할 만큼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협력업체로부터 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과 가정은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강조하는 정신호 이사를 만나 여성 CIO로서 전산실을 어떻게 이끌고 있고, 문제점 및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정과 직장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직접 들어 본다.

'대화'로 어려움 극복
가정을 갖고 있는 여성 CIO로서 가정과 직장, 모두를 만족시키기에는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요.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특히 서로를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있느냐라는 문제는 더욱더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저는 아이들과 남편과의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노력합니다. 즉 엄마의 역할과 아내의 역할에 대해 주말 시간을 통해 같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전달하는데 노력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가정의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 소중한 엄마의 역할과 가정 외의 일과 목표, 그리고 가치 있는 일이 있다고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 자신이 일과 가정은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한 자연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한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무슨 고민이 있는지 등등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때문인지 저는 아이들에 대해 아이들 자신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한국스파이렉스에서는 첫 여성 임원이자 CIO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내에서의 위상은 어떠신지요.
▶한국스파이렉스는 전산업무를 맡고 있는 부서를 IS(Information System)라고 합니다. IS부서는 기업전략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임원들은 그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IS 부서에 대한 임원 및 직원들의 지원 및 인식은 아주 잘 되어있어 업무 추진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협조가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는 임원이 되기 전부터 임원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임원수업을 일찍부터 수련해 온 셈입니다. 대우도 임원과 같이 받았습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IS부서의 위상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올해부터는 중요한 프로젝트, 예를 들어 ERP, CRM 등과 같은 솔루션 구축을 위해서는 IS부서가 그만큼 위상이 높아져야만 한다는 게 영국 본사의 입장입니다. IS 부서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회사의 핵심부서는 'IS'
직원들의 전산교육은 어떤 방법으로 실시하고 있는지요.
▶한국스파이렉스는 장기근속자가 많기 때문에 전산 매뉴얼이 잘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전산교육은 주로 각 부서에서 자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새로운 솔루션 및 혁신을 위한 교육은 프로젝트 수행 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IS부서가 직접 실시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교육은 사용자의 수준에 맞는 외부교육센터를 통해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전산화는 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춰 추진해 왔는지 초창기 시절과 최근 몇 년 동안을 비교해 주십시오.
▶1999년 이전에는 IT 부서로서 주로 관리 정보(Management Information) 제공과 하부구조(Infrastructure)를 관리하는 비용절감(Cost saving purpose)을 위한 기능 등에 초점을 맞춰 추진해 왔습니다. 사용자들에 대한 서비스 중심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99년 이후부터는 IS 부서로서 기존 IT 역할에 조직화(Organization), 프로세스(Process), 관리(Management) 등의 업무까지도 함께 관리하는, 다시 말해 수익과 가치를 극대화 시키는 수익 센터(Profit center, Profit or Value center to maximize Profit or Value)로 확대되었습니다. 주로 고객만족을 위한 내부 프로세스 혁신과 이에 따른 조직변경 및 전략지원을 위한 작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부서로 바꾸었습니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 지난 99년 고객서비스 중심의 프로세스를 구현하기 위한 사내 핵심 프로세스의 책임자들로 구성된 경영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아울러 경영혁신위원에게는 의사결정권한을 최대한 위임하고 여기서 결정된 안건들은 최고경영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성과로는 2004년에 '오더 프로세스 혁신' 및 '출고 프로세스 혁신'과 같은 고객서비스 중심의 프로세스 구현을 통해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5년부터는 '고객관리 프로세스 혁신'을 도입, 고객가치 극대화를 구현했습니다. 이러한 내부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고객가치 극대화를 지속적으로 실현하고 있습니다.

전산업무는 여성에 가장 적합
전산 시스템은 회사 비즈니스에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는지, 이를 어떻게 분석 평가하는지요.
▶전산 시스템은 모두 KPI (Key performance Index) 또는 목표비율(Target ratio)을 결정해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관리 및 평가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KPI와 목표비율은 모든 정보시스템에 연결되어 목표대비 실적이 자동으로 업데이트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프로젝트 수행완료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작업과정이 바로 완료시 향후 목표 및 기대 설정입니다. 이러한 수치를 전략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매월 관리하여 유지 및 더욱 개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여성 CIO로서 전산실을 운영 관리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지요.
▶저한테는 전산업무가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전산업무를 맡아오면서 그렇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어떤 조건을 주었을 때 그 요구한 조건대로 결과물이 산출되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즉 어떤 시스템을 설계 및 디자인을 했을 때 당초 원하던 결과물이 산출된다는 것입니다.
전산업무를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상대방(최종사용자, 전략기획팀, 최고경영자 등)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그 요구사항을 시스템으로 구현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성과이고 평가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약한 여성이기 때문에 단점도 있지만 오히려 더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객들이 남자일 경우 여성 CIO라면 상당히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남성 고객들이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자리가 부담 없도록 함께 어울리고, 노래방도 가고, 운동도 같이 합니다.
특히 고객이 원하는 것보다 고객들이 더 필요로 할 수 있는 것까지도 생각해 한 가지 이상의 업무를 개발해 주면 고객만족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가 쉽습니다. 특히 남자들은 여자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원하는 룰(Rule)을 만들어 그 원칙대로만 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어려운 점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형상시키기 위해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가면서 기업에 이익이 되고 있는 것을 수치화시켜 보여주면 사용자들은 수긍을 하게 되고, 결국 잘 따라 줄 것으로 판단됩니다.

IS는 회사의 전략 실현 부서
국내 기업에는 여성 CIO가 상당히 적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내 기업 CEO들은 안타깝게도 IT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말입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서로를 못 믿는 경향이 짙습니다. 특히 여성 CIO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여성 CIO들이 인정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되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 전산실이나 여성 전산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IS 부서의 역할은 사용자 또는 CEO의 기대에 부응하는 조직이 아니라 회사의 전략이 실현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IS 솔루션은 사용자도 CEO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항상 솔루션을 만들고, 그것의 성과를 팔고, 그 성과가 전략의 가능성을 얼마나 지원하게 되는지를 수치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습니다. 성공적인 수치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확실한 효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확실한 수치를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전산 업무는 여성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적극 권장하고 싶은 싶습니다. 다만 대다수의 여성들은 일과 직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이라고 판단됩니다. 물론 저도 직장으로 인해 가정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직장을 포기해야만 하겠지만 가능하다면 여건이 된다면 일을 하는 게 좋다고 판단됩니다.

정신호 이사는 30대까지는 CIO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40대에 접어들면서 목표를 정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한다. 특히 개인의 위상이나 입지를 높이는 일보다 순수한 목적으로 참여하고 일하는데 적극 나서고 싶다고 강조한다. 정 이사가 CIO 업계의 여걸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스파이렉스사코사는 영국 첼튼 햄에 본사를 두고 있고, 90여 년 간 증기 및 일반유체의 효율적인 이용 및 제어분야에서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다. 한국스파이렉스사코㈜는 지난 78년 한영합자회사로 설립됐고, 서울 본사를 비롯해 인천공장/영업소, 대구영업소, 전주영업소, 울산영업소, 경남영업소 등의 10개 지방영업소와 10개의 지역 대리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약 500억 원이었고, 직원은 약 16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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