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개발‧고도화 유리한 국내 시장…의료수가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

[컴퓨터월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의료진들과 인프라, EMR을 위시한 선제적 디지털 기술 활용, 국민건강보험에 기반한 높은 의료 접근성 등은 독보적인 수준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의료산업계 위에서 국내 의료 인공지능(AI) 서비스 기업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잘 갖춰진 의료 데이터들과 AI 역량을 결합해 의사들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돕고 진료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빠르게 성장하는 의료 AI 기술력에 비해 정부와 시장의 반응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빠르게 성장한 의료 AI 서비스

의료 산업은 가장 혁신적인 IT 기술이 다수 적용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환자의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올바른 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에 다양한 IT 기술들이 활용되고 있다. X선(X-ray), CT(Computed Tomography),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내시경, 초음파 등으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인체 내부를 촬영하는 기술들이 있으며, 조직 검사나 유전체 분석 등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정밀한 검사들을 통해 환자의 데이터를 보다 다양하게 수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환자에 대한 데이터의 양이 늘어나고 복잡도가 증가하면서 이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데에 소요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이터는 쌓이고 있지만 의료진의 수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X선, CT, MRI를 진단에 사용하는 경우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분석하고 질환을 판독해줄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태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의료진들이 환자 데이터를 보다 손쉽게 분석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AI 기반 제품들의 수요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전 세계 최초로 ‘빅데이터 및 AI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또한 2018년 11월 국회를 통과한 의료기기법 개정안에서는 SW를 의료기기의 정의에 포함시킴으로써, AI를 활용한 의료 SW 제품들이 의료기기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뷰노의 ‘뷰노메드 본에이지’를 활용해 골연령 판독의 정확도(왼쪽)를 높이면서도 판독시간(오른쪽)을 줄일 수 있다. (출처: 뷰노)

식약처 허가‧인증을 획득한 국내 1호 AI 기반 의료기기는 뷰노의 ‘뷰노메드 본에이지(VUNO Med-BoneAge)’였다. 2018년 5월 인증을 획득한 ‘뷰노메드 본에이지’는 환자의 왼손 X-레이 촬영 영상을 AI로 분석해 골연령 판독을 도와주는 제품이다. 기존에는 의료진들이 직접 왼손 참조표준영상(GP, Greulich-Pyle)과 비교해 유사한 사례를 찾아야 했지만, 해당 제품을 활용하면 수초 내에 AI가 가장 유사한 골연령을 최대 3순위까지 찾아서 제안해준다. 이를 통해 골연령 판독에 소요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확도 또한 향상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식약처가 공개한 ‘2021년 의료기기 허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AI 기반 의료기기 인허가를 획득한 제품은 총 101건이었다. 2018년부터 매년 30건 이상의 AI 기반 의료기기들이 승인을 받고 있다. 특히 인허가를 받은 제품 중 국산 비율이 90% 이상에 달해, 국내 AI 산업계가 의료 분야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료 AI 개발 가속화를 위해 기업과 의료진 각각의 노력이 필수”
딥노이드 김태규 전무
 

딥노이드 김태규 전무

의료 AI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서는 식약처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최근 국내 의료 AI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대개 매년 2~3개, 많아도 5개 이하의 인허가를 획득한다. 의료 AI 서비스가 인허가를 받으려면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하는데, 당연히 진단 가능한 질환마다 따로 임상시험을 하고 인허가를 획득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딥노이드는 보다 많은 질환을 진단하고 지원하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 기존의 방식, 즉 딥노이드가 주도해 특정 질환에 대한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파이프라인 방식이다. 발생 빈도가 높고 범용적인 질환들을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자사의 대표적인 의료 AI 제품인 딥체스트(DEEP:CHEST, 흉부 X선 분석), 딥스파인(DEEP:SPNE, 척추 X선 및 MRI 분석), 딥렁(DEEP:LUNG, 저선량 CT 및 흉부 CT 분석)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한 가지 방식은 의료인들이 직접 AI를 개발하는 플랫폼 방식이다. 이들은 의료현장에 대한 전문성과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 외부 반출의 위험성을 줄이면서도 보다 효율적으로 AI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대신 딥노이드는 의료진들이 필요한 솔루션을 빠르고 손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AI 개발을 위한 노코딩 플랫폼 딥파이(DEEP:PHI)를 제공한다. 간단한 모듈 조립과 데이터 입력만으로 원하는 AI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인간을 위협하는 질환은 수천 가지에 달한다. 보다 빠르게 더 많은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AI 서비스 라인업을 갖추기 위해서는 파이프라인 방식과 플랫폼 방식을 병행해 기업과 의료진들이 협력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디지털화 완료된 의료업계, AI 개발에 용이

국내 의료 산업계는 AI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분야 중에서도 특히 데이터의 양과 수준이 높은 편에 속한다. AI를 활용한 폐 질환 CT 영상 판독기술을 보유한 코어라인소프트의 강상우 CSO는 “우리나라는 의료 체계가 탑다운(Top down)으로 잘 만들어져있어서 데이터도 잘 모이고, 국가 주도의 데이터 라벨링 사업도 다수 진행돼 학습용 데이터의 품질도 높다. 활용도에 대한 이슈는 있을지언정 데이터의 품질은 전 세계적으로도 비교해봐도 매우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는 전자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시스템 도입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이 발표한 ‘보건의료정보화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의료기관의 약 65%는 모든 의무기록을 EMR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은 71.8%, 상급종합병원은 85.7%가 EMR을 전용하고 있다. 여기에 EMR과 수기기록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국내 병원들의 EMR 도입률은 96%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의료정보시스템의 도입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출처: 한국보건의료정보원)

일각에서는 병원마다 서로 다른 EMR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들 사이에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결합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EMR 시스템은 정해진 국내 표준 규격이 없을뿐더러 글로벌 표준을 도입해 사용하려는 시도도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무기록의 96% 이상이 전산화된 데이터로 저장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이에 더해 서울대학교 홍석철 건강금융연구센터장은 “EMR은 환자의 의무기록을 저장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록을 토대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의료수가를 청구하는 데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심평원에 청구하는 수준의 기본적인 정보는 EMR 레벨에서 표준화가 돼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MR 공급사 별로 세부적인 명칭이나 수치들이 달라 데이터 결합에 번거로움은 있겠지만, 대부분의 의무기록을 전산화해 보관하고 있다는 장점을 퇴색시킬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전산화된 데이터는 기업이나 대학에서 AI 개발 및 연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미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국립암센터 등지에서는 다양한 의료 데이터들을 공공데이터 개방에 맞추어 공개하고 있다. 심평원의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해당 시스템에서는 질병이나 의약품, 의료기관 등에 대한 통계정보나 가명화된 의무기록을 포함한 데이터셋, 그 외에도 다양한 보건의료 분야의 데이터들을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들은 영리 목적을 포함해 다양한 AI 개발 및 연구에 자유롭게 활용 가능하다.


민감한 진료기록 활용은 여전히 어려워

다만 의료 분야의 데이터 확보가 모든 점에서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환자의 진료기록을 포함한 개인의료정보(PHR, Personal Health Record)는 매우 민감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공개와 활용에 분명한 제한이 따른다. 이에 따라 의료 분야의 데이터들은 공공데이터 개방을 통해 공개된 것 이외에는 확보가 어렵다.

국내에서 마이데이터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의료 AI를 개발하는 기업들은 PHR을 포함한 의료 데이터들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의료 마이데이터 시스템 ‘마이헬스웨이’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이같은 기대를 북돋았다. 마이헬스웨이는 올해 하반기에 시범 공개(CBT)를 실시하고, 내년 중순까지 플랫폼 구축과 실증을 추진한다. 하지만 지난 5월, 보건복지부는 마이헬스웨이 시범 공개 및 플랫폼 구축‧실증 단계에서 민간기업의 참여를 제한했다. 이는 의료법 21조 2항에 따라 환자 개인의 진료정보를 민간기업에게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통과 목표는 2024년이다. 민간기업들이 마이헬스웨이 플랫폼이 담고 있는 다양한 데이터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내후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가 구축하는 ‘마이헬스웨이’ 구성도

병원들이 정보 공개에 소극적인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지난 2020년 1월에 데이터 산업계의 숙원이었던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같은 해 8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를 통해 개인정보보호법에 ‘가명정보’ 개념이 신설됐고, 민감한 개인정보도 비식별화를 통해 데이터 주체를 특정할 수 있는 이름·주민번호와 같은 식별자(Identifiers)를 제거하면 가명정보로써 연구나 통계작성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병원들은 내부에 보관하고 있는 환자 진료기록 등을 외부로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들은 병원이 데이터 공개를 꺼리는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했다. 먼저 진료기록의 비식별화가 어렵다는 점이다. 민감정보의 비식별화는 서로 다른 데이터들을 결합하더라도 재식별화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진료기록은 정밀한 의료기구로 측정한 환자의 민감정보들을 가득 담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식별자를 제거하더라도 완전한 비식별화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폐를 촬영한 CT 영상 데이터는 폐의 형태와 표면만 봐도 환자 특정이 가능하다. 환자의 이름이나 환자번호와 같은 식별자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X선, CT 영상 등의 의료 데이터는 비식별화가 까다롭다. (출처: 딥노이드)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과거 진료기록 중 오진이 발견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진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최선의 절차에 따라 진단과 치료를 진행했더라도 오진의 가능성을 없앨 수는 없다. 외부 기관이 과거의 진료기록을 공개하고 살펴보는 과정에서 오진이 발견된다면 병원의 이미지 추락과 법적인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비록 정당한 이유는 아니겠으나, 이는 병원 입장에서 과거 진료기록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뛰어난 의료환경이 AI 시장 성장 저해

한편 국내 기업들은 우리나라의 뛰어난 의료환경이 오히려 의료 AI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의료인력과 의료 인프라,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 방대한 의료 데이터, 국민건강보험을 통한 낮은 의료비 부담 등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것이 의료 AI 산업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의료인력과 인프라의 수준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의료체계 안에서도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AI를 활용해 95% 확률로 특정 질환을 찾아낼 수 있는 제품이 개발됐다고 하자. 이런 제품은 의료 수준이 낮고 인프라가 부족한 최빈국이나 개발도상국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AI의 도움 없이도 해당 질환을 95% 이상의 확률로 찾아낼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간 의사와 차별화되는 독보적인 장점을 갖추지 않는 이상 굳이 AI 제품을 도입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도입 비용이나 AI의 책임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부정적인 결과만을 남길 수도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갖춘 국내 시장에서는 의료 AI가 갖춰야 할 성능에 대한 기대치가 무척 높고, 이는 의료 AI를 개발하는 기업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두 번째 문제는 국민건강보험의 존재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낮춰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뛰어난 AI 기술을 활용해 의료 서비스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인다고 한들 환자 개개인이 체감하는 의료비 부담에는 큰 변화가 없다. 병원 입장에서는 굳이 큰 비용을 들여 환자의 만족도에 공헌하지 못하는 제품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

OECD가 공개한 국가별 의료수가 비교 (출처: OECD)

국민건강보험이 야기하는 또 한 가지 문제는 AI 기반의 의료 서비스에 맞지 않는 의료수가 체계다. 국민건강보험은 개인에게 의료비 부담을 지우지 않는 대신 공단이 의료수가의 많은 비중을 부담한다. 건강보험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급할 수 있는 의료수가에 한계가 있고, 새로운 의료 AI 서비스에 의료수가를 나눠주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지급되고 있는 의료수가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이미 상당히 낮은 편이다. OECD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의료수가를 100점으로 놓았을 때 우리나라는 48점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은 72점, 정부에 의한 완전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은 83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섣불리 건강보험료를 인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AI 기반 의료 데이터 라벨링 솔루션 ‘메디라벨(MediLabel)’을 개발한 인그래디언트의 김주성 부대표는 “보건복지부가 작년에 공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의료 AI 산업 생태계가 겪고 있는 문제와 그에 대한 대응책, 향후 개선해나갈 방향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공에서도 의료수가의 현실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글로벌 제품들과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는 의료 AI 기업 입장에서는 국내 비즈니스 환경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의 명확한 메시지가 의료 AI 시장을 움직인다”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겸 건강금융연구센터장, 웰시콘 대표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우리나라는 혁신적인 의료 AI 서비스를 만들기에 좋은 조건들을 다수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그에 반해 국내 의료 AI 시장의 변화는 더디다. 금융업계가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금융은 산업적인 가치가 크고 정부의 방향성 제시와 민간의 호응이 맞아들어가서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행됐다. 반면 의료업계는 혁신적인 AI 서비스 개발이나 데이터 개방과 공유 등에 대해서 얘기하면 업계 자체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민감한 개인정보, 생명을 다루는 기술의 안전성 등이 주요 이슈다.

하지만 개인정보나 안전성에 대한 문제는 디지털 시대가 오기 전에도 있었던 문제다. 창고에 쌓아둔 진료기록에서도 정보가 유출될 수 있고, 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오진을 범할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그런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혹여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큰 문제로 번지지 않도록 새로운 법을 만들고 피해를 구제해왔다. 자동차로 인해 매년 사람이 다치고 죽어나가는데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보상해줄 수 있는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최근 심평원에서 새로운 의료수가를 도입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첫 걸음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의료 시장에 대해 잘 만든 의료 AI 서비스를 인정하고 적합한 보상을 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첫 걸음이 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시장은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의료 AI 시장을 넓히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공공의 메시지가 명확해져야 한다. 새로운 기술들을 제도 안으로 받아들일 의지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단호히 대처해나가겠다는 메시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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