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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와이드 웹 탄생 15주년





1991년에 웹은 단지 몇몇의 주목만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웹은 통신과 연구 개발, 비즈니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있으며 앞으로는 어디로 향해 갈까? 월드 와이드 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아본다.

단 15년 만에, 월드 와이드 웹(WWW)은 연구원들을 위한 문서 공유 툴을 비롯해 뉴스와 정보의 주요 소스, 쇼핑의 메카, 멀티미디어 구현의 장이 되었으며 사회화와 자기 표현을 위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인기있는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이처럼 빠른 시간에 이만큼이나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결코 빠른 시간이 아니다. 많은 발명품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웹 개발과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보다 더 오래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웹의 뿌리가 내린 것은 1991년보다 훨씬 전의 일이다.

넬슨과 잉글바트의 아이디어가 웹에 영향
놀랍게도, 웹의 초기 버전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적어도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맴돌던 것이었다. 미국의 엔지니어이자 과학자였던 반네바 부시는 1945년 The Atlantic Monthly에 게재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As We May Think)'라는 논문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등장하게 되는 사회에서는 과학적인 시도들이 선인들의 지식을 모두 보전하고 수집하는 데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그는 메멕스(Memex)라 불리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방송 텔레비전과 마이크로필름을 결합시킨 이 시스템은 이론적으로, 원격지에서 마이크로필름에 신속히 액세스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관련 주제에 대해 도서의 한 마이크로필름 버전에서 다른 버전으로 전자기적인 방법을 통해 신속하게 연결시켜줄 수 있다.
메멕스는 하이퍼텍스트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1940년대 당시의 컴퓨터는 천공카드(punch card) 형태로, 시각적인 요인이 전혀 구현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신속한 레퍼런스를 위해 인간의 지식을 축적해야 한다는 부시의 이론은 대단히 정확한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부시는 시대를 앞선 인물이었다. 메멕스는 너무나 복잡하고 야심찬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당시 높은 관심을 불러 일으켜 사회학자이자 IT 개척자인 테드 넬슨과 컴퓨터 마우스를 개발한 더글라스 잉글바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960년, 넬슨은 간단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문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내놓게 된다. 이 이론은 프로젝트 재나두(Xanadu)가 되었으며 최초로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넬슨의 개념을 사용한 시스템을 프로젝트 재나두에 구현하는 것이 너무나 복잡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부시처럼 넬슨의 아이디어 역시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었다.
넬슨이 자신의 이론을 개발하고 있을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의 발명가인 잉글바트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립해놓고 있었다. 그는 기술과 정보가 서로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는 부시와 넬슨의 신념을 따랐다. 그가 1962년에 발표한 '인간 지능 확장: 개념적인 프레임워크(Augmenting Human Intellect: A Conceptual Fram-ework)'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정보의 컴퓨터화된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1963년, 잉글바트는 자신의 이론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초현대식의 확장 리서치 센터(Augmentation Research Center)를 설립한 다음 하이퍼텍스트를 최초로 성공적으로 구현했으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초기 버전도 개발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인터페이스와 정보를 클릭해서 검색하도록 한 기기인 마우스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1968년 가을합동컴퓨터컨퍼런스(Fall Joint Computer Conference)의 기술 시연에서(당시 연구소에서 30마일 떨어진 곳에서 실황으로 비디오컨퍼런스를 제공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음), 잉글바트는 '모든 시연의 어머니'로 불리는 데모를 하게 되었다.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하이퍼텍스트, 마우스를 통한 인터페이스 등은 시대를 앞선 것이어서 참석자들은 잉글바트가 정교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이러한 개념의 영향은 혁신적이었기 때문에 수년동안이나 이에 상응하는 기술이 등장하지 못했다. 넬슨과 잉글바트의 아이디어는 결국 월드 와이드 웹을 창조한 팀 버너스리의 이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 정보 교환 수단
부시와 넬슨, 잉겔바트와 마찬가지로, 버너스리 역시 과학자들과 학계가 정보를 공유하고 액세스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데 헌신했다. 1980년에 세계 최대의 물리학연구소인 CERN에 몸담고 있을 당시 버너스리는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교차 연결 데이터베이스이자 양방향의 하이퍼링크를 통해 네트워크의 여러 곳에 위치한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해주는 엔콰이어(Enquire)를 개발했다. 엔콰이어는 그의 월드 와이드 웹 개발을 위한 토대이자 지식 기반이 되었다.
1989년에 이르자 버너스리는 보다 형식화된 야심찬 제안을 내놓았다. 그의 목표는 공개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학계와 연구 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자기 표현이나 엔터테인먼트 등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강력한 NeXT 워크스테이션을 통해 행동에 옮겼으며 웹 탄생의 토대가 되었다.
1991년 8월, 버너스리는 최초의 웹 브라우저이자 에디터인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하기에 이르렀으며 세계 최초의 서버인 nxoc01.cern.ch(나중에 info.cern.ch으로 개정됨)도 개발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매체의 완벽한 실용화의 시초는 CERN 전화 번호부를 서버에 올려놓고 쉽게 액세스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모자이크, "웹의 시대를 열다"
버너스리와 그의 동료들은 WWW을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뉴스그룹인 alt.hypertext에서 "WWW 프로젝트는 에너지 물리학자들이 데이터와 뉴스, 문서를 공유하도록 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면서, "웹을 다른 분야로 확대하는 것과 다른 데이터를 위한 게이트웨이 서버를 보유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높았다. 협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검색 엔진의 개척자이자 현재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웹 기술을 총괄하고 있는 팀 브레이에 따르면, 월드 와이드 웹의 성공의 주요 원인은 디자인이 매우 단순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웹은 80/20 최적타격지점을 사용한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라면서, "하이퍼텍스트 링크와 정보 액세스에 대한 아이디어는 테드 넬슨 이후부터 존재하던 개념이었다. 우리는 이를 단순화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즉, 하나의 문서를 가진 기본적인 URL로 이어지는 단순함이 성공의 열쇠였으며 당시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익숙했던 복잡한 프로그래밍 언어 대신에 매우 간단하고 접근이 용이한 언어인 HTML로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웹의 성공은 브라우저 자체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이퍼텍스트 연결과 웹 페이지를 통해 앞뒤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한 개념은 쉽게 표준화되어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인터페이스로 자리를 잡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버너스리가 NeXT 플랫폼을 위한 월드와이드웹 브라우저의 개발을 완료한 즉시, 그의 WWW 프로젝트 동료인 니콜라 펠로우는 非NeXT 시스템에서도 구동할 수 있는 텍스트 버전을 작성했다.
얼마 뒤,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 몇몇 다른 브라우저들이 개발되었고 배포되었다.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것은 X 윈도우 플랫폼을 위한 페이-유안 웨이의 ViolaWWW였다. 맥(Mac)의 하이퍼카드(HyperCard) 애플리케이션과 유사한 이 브라우저는 스타일 시트와 테이블 등 현대적인 브라우저가 지원하는 기능이 처음으로 구현되었다. 여기에는 북마크와 검색 기록을 비롯해 앞 뒤 전환 버튼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1993년에 마크 안데르센과 에릭 비나가 유닉스용으로 개발했지만 발표 직후 애플과 윈도우 플랫폼으로도 전환된 NCSA 모자이크는 ViolaWWW를 대신한 웹 브라우저로 인기가 높았다. 모자이크는 텍스트와 그래픽을 같은 창에서 성공적으로 통합한 최초의 웹 브라우저였다. 모자이크는 또한 윈도우와 맥 모두에 포팅된 최초의 브라우저였으며 거의 모든 컴퓨터 사용자들이 월드 와이드 웹을 검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웹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상업적인 도구로 발전
웹 고유의 단순함 및 점유력과 더불어 윈도우와 맥 기반의 브라우저의 보급이 확산됨에 따라 웹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토대가 마련되었다. 등장한지 5~6년 만에 수백만 개에 이르는 단체와 조직, 기업의 웹 사이트가 출범했다.
순수한 검색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웹의 가장 매력적인 측면은 전세계의 신문과 잡지 기사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형태의 대형 및 소형 미디어들이 오프라인을 비롯해 웹으로도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웹에서만 컨텐츠를 제공하는 사이트도 잇달아 개설되고 있으며 다루는 주제도 매우 다양하다.
즉각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뉴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전통적인 미디어와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ESPN.com과 CNN.com 등 온라인 사이트에 대한 접속이 크게 늘어나면서 저녁 뉴스나 신문, 잡지 등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 업계는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만 했다.
역설적이게도, 인쇄물과 온라인 모두에서 전통적인 기자 집단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엘리트를 상징했으며 특권 계층이었고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전통적인 기자들의 입지가 크게 약화되었으며 일반인들의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에 압도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모든 새로운 벤처들의 등장과 함께 수익 달성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웹 사이트를 통해 매출을 거둘 수 있는 방안 모색이 당면 과제인 것이다. 미디어 지향적인 기업이라면 해답은 바로 전통적인 '광고' 수익이다. 글로벌 넷 네비게이터(Global Net Navigator)는 1993년에 최초로 클릭이 가능한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1년 뒤, Hotwired.com은 배너 광고를 판매한 최초의 사이트가 되었으며, AT&T는 이러한 배너를 처음으로 구매했다.
하지만 다른 업종의 경우 온라인으로 전환함으로써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은 미디어 업체처럼 광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전통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는 재화와 상품, 서비스를 직접 판매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선풍적인 인기와 성장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려는 인간의 잠재적인 욕망에 기인한다. 하지만 정보 공유는 1990년대 웹의 폭발적인 성장의 한 단면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썬의 팀 브레이는 "웹의 전환점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면서, "또한 페덱스가 월드와이드웹에 배송 추적 기능을 도입한 때가 1994년이며 세계의 모든 비즈니스맨들이 웹을 기업용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매체의 유용성을 인식한 시기를 바로 그 즈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마존닷텀과 이베이, 익스피디아(Ex-pedia)는 1995년에 기업 사이트를 개설하고 곧이어 e-커머스 포털을 구축했다. 경기 활황에 힘입어 소비가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앞다퉈 웹사이트를 구축했으며 수많은 온라인숍이 등장해 전자 거래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이러한 웹의 확장 시기에 수많은 사이트들이 마케팅이나 상거래보다는 서비스에 주력하기에 이른다. 핫메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개발자인 사비어 바티아와 잭 스미스는 웹 기반의 이메일 시스템을 개발해 이메일 주소나 액세스를 위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 의존하고 있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검색 엔진의 등장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을 통해 웹에서 정보를 찾는 것은 현재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컨텐츠가 올라있는 웹에서 검색 엔진 없이 어떻게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웹의 초창기 시절에는 웹 사이트 수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검색할 필요성이 많지 않았다. 정보를 찾고자 할 경우 소스에 직접 찾아 들어가면 되었다. 또한 단순히 웹을 브라우징할 경우에는 미 국립슈퍼컴퓨팅애플리케이션센터(NCSA)의 'What's New' 페이지로 들어가거나 혹은 매일매일 뜨는 새로운 웹 페이지 목록을 보거나, 또는 나중에 야후가 된 '월드 와이드 웹으로 가는 제리의 가이드(Jerry's Guide to the World Wide We)'를 보면 되었다.
사이트의 수와 대중의 관심 수준 모두에서 웹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한 가지가 확실해졌다. 급증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용자가 신속히 검색하고 범주를 나누며 소스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툴의 등장이다.
1994년부터, 알타비스타와 익사이트(Excite), 인포시크(Infoseek), 잉크토미, 라이코스, 웹크롤러(WebCrawler), 야후, 구글 등 수많은 검색 엔진이 등장했다. 하지만 야후와 구글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웹의 성장과 더불어 웹 브라우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검색 엔진이 되었다.

향후의 모습, 인공지능이 실현될 것
블로그나 사진 공유, 비디오 및 기타 콘텐츠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사용이 손쉬운 툴이 일반화되면서 차세대 온라인 성장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소비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고를 하는 역할도 담당해 차세대 웹인 웹 2.0의 중심에 서 있게 되었다.
웹 2.0으로의 전환을 이끄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기술이다. 웹 개발자들이 에이잭스(Ajax)와 같은 신흥 기술을 마스터함에 따라, 웹 사이트는 사용자의 액세스와 성능을 증가시켜주는 새로운 일련의 기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떻게 변화할까? 물론 웹 3.0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구성될까? 아직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사용자들의 참여가 활발해짐에 따라 우리의 디지털 삶의 여러 측면들을 관리하는 인공 지능이 실현될 것으로 점쳐진다. 자신이 입력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의 입력을 토대로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웹 기반의 캘린더 애플리케이션도 가능성이 있는 얘기이다. 컴퓨터나 네트워크가 데이터에 대한 단순한 액세스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론적인 웹(Semantic Web)으로 알려진 방법을 제공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웹 3.0이 어떤 형태이건 간에, 지난 15년 동안 웹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발전을 감안해본다면 현재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앞으로 15년 동안 그 어떤 발전이 이루어질지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George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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