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SDS의 멋진 CEO한번 해보고 싶다"

최근 '봉제공장시다, 삼성 입성기'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 한권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정식 학력의 전부인 한 청년이 우리나라 최대 기업 삼성에 입사하기까지 겪은 수많은 역경과 극복의 드라마 그리고 아직도 멈출 줄 모르는 도전을 담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은 권세종.

'봉제공장시다, 삼성 입성기' 펴내
현재 삼성SDS 웹마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권세종 씨는 1976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세 돌이 되기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누나와 함께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새벽부터 신문을 돌리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운동특기생이 되기도 했지만 늘 배가 고팠던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무작정 상경, 봉제공장 시다 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 '미치도록' 공부가 하고 싶어 '상록야학'에 들어갔고 새벽에는 신문배달부로, 낮에는 봉제공장 시다로, 밤에는 야학 학생으로 철인 3종 경기를 방불케 하는 1인 3역의 고달픈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번 돈으로 할머니와 누나를 부양했고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결과, 중ㆍ고등학교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하고 경희대학교 지리학과에 입학했다.
1995년 '삼정데이타시스템'에 사환으로 입사한 권세종 씨는 5여 년 동안 컴퓨터 공부에 매진한 끝에 2000년 한국경제TV를 거쳐 삼성SDS에 입사함으로써 초등학교 졸업장으로 삼성에 입사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처음 삼성SDS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때 그는 IT 이력과 무관한 봉제공장 이력을 자세히 기술했고, 삼성SDS에 입사한 후 유학파와 석ㆍ박사 출신이 즐비한 속에서도 공장 시다 출신이라는 자신의 이력을 숨기지 않았다.
삼성 입사 후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권세종 씨는 특유의 끈기와 노력으로 학벌의 한계를 딛고 9개가 넘는 국제공인자격증을 취득해 현재 자격증 수로는 삼성SDS 톱 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장으로 삼성에 입사
현재 그는 삼성SDS 웹마스터라는 공식 직함 외에 삼성멀티캠퍼스(E-CAMPUS) IT 강사로 활동 중이며, 소년원과 공무원교육원을 비롯한 기타 국내외 여러 학교 및 기업에서 동기부여와 의식개혁, 자기개발 등을 주제로 하는 특강 강사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엮은 책의 인세 일부를 '삼성사회봉사단'에 기부해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도 한 권세종 씨는 그동안 야학에서 받은 많은 것들을 야학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기도 위해 야학 컴퓨터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삼정데이타시스템에 사환으로 입사한 뒤 컴퓨터를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봉재공장을 거쳐, 대학입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우유사업을 하던 중 고름우유 파동으로 사업에 실패해 좌절하고 있을 때 한 야학 선생님의 도움으로 삼정데이타시스템에 입사했다. 앞으로는 컴퓨터의 시대가 올 거라는 막연한 말에 입사한 뒤 키보드만 잘 치면 컴퓨터를 잘 하는 것인 줄 알고, 한 3개월 동안 고장난 키보드만 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장님께서 일을 좀 배우라고 하셔서 한 직원에게 컴퓨터를 배우는데, 그 직원이 말하는대로 '윈도95에서 1.시작 2.프로그램 3.보조프로그램' 순으로 적어나갔다. 그러자 그 직원이 마우스를 집어던지면서 사장님께 'OS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얼 가르칩니까?'하며 화를 낸 일이 있었다. 그 때 오기가 생겨 죽기살기로 컴퓨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월급 70만원 중 40만원을 학원비로 투자했다는데,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름대로 기준이 있다면?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해서 '컴퓨터를 죽기 살기로 해보자'는 결심으로 일단 컴퓨터학원에 등록할 생각을 했다. 강남에 있는 한 학원에 등록했는데, 한달씩은 안 되고 몇 달치를 한꺼번에 등록해야 한다고 해서 거금 40만원을 투자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별다른 기준이 있다기 보다는,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두드려보자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일단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앞뒤 안 가리고 부닥쳐보곤 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경험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혼자서 컴퓨터와의 싸움을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공부든 일이든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인데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어떤 부분을 먼저하면 다음 단계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겠다 하는 점들을 몰랐기 때문에 닥치는대로 공부를 했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 1년 정도 미친듯이 파고드니까 어느 정도 공부하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컴퓨터는 환경에 따른 변수가 많아 책을 보고 따라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경우는 열번, 스무번 반복하면서 나름대로 원리를 깨우치곤 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극복하는 방법은 '될 때까지 계속 하는 것'이었다."

삼성SDS 입사 후에도 국제공인자격증을 여러 개 땄다고 들었다. 그러한 도전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나?
"현재 9개의 국제공인자격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격증이 많다고 곧 일을 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격증은 도전의 성과를 가장 잘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래서 1년 목표를 세울 때 '1개 또는 2개 이상의 자격증을 따자'고 다짐하곤 한다. 처음부터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는 없어도 꾸준히 도전하고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하나씩 터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8월부터 모 방송의 라디오공익광고에 출연한다고 들었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
"특별한 것은 없고, 단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최선을 다하고 나서 다시 세 번만 더해 보라. 그러면 분명히 원하는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나서 다시 삼세번만 더해보자'는 좌우명을 가진 권세종 씨는 4년 안에 정보처리기술사가 되겠다는 단기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올해만 해도 ITIL, PMP, CISA, CISSP 자격증을 취득한다는 계획을 세웠을 정도로 그의 단기 목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10년의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있다는 권세종 씨의 장기 목표는 "삼성SDS의 멋진 CEO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이유지 기자 yjlee@infotech.co.kr

권세종은...
정식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한 청년이 삼성에 입사하기까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그의 도전을 담은 책이 열림원의 자회사 행복한책가게에서 출간되었다.
세 돌이 되기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말 그대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의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새벽부터 신문을 돌리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운동특기생이 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이르자 혈혈단신 상경한다. 그때 그의 나이 열네 살. 한참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그는 홀로 세상으로 나가야 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시작한 일은 봉제공장 시다였다. 무릎을 꺾이게 하는 원단의 무게를 눈물을 삼키며 견뎠다. 봉제공장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신문배달을 다시 시작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운명 같은 전단지 하나를 발견한다. "배움의 고통은 잠시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영원하다." "수업료 전액 면제", 배우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던 그에게 환한 빛 한 줄기가 자신을 비추는 것 같았다. 그날로 그는 '상록야학' 학생이 되었다.
새벽에는 신문배달부로 낮에는 봉제공장 시다로 밤에는 야학 학생으로 하루 서너 시간을 자면서 철인 3종 경기를 방불케 하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날들을 보냈다.
봉제공장에서 인생을 마감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학 입시를 준비하여 경희대학교 지리학과에 합격했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컴맹이었지만 '삼정데이터시스템'이라는 IT 회사에 사환으로 입사하여 컴퓨터에 미쳐 5년여를 보내자 달랑 초등학교 졸업장이 정식 학력의 전부인 그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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