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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교육의 현실과 대안
정보통신 강국과 컴퓨터 교육, 그 간극을 말한다
90년대 후반 유명 여자 연예인의 사생활을 담은 비디오가 인터넷에 유포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방송이나 신문, 심지어는 몇몇 연구기관들에서 까지 "결과적으로 ***의 사생활 비디오가 컴퓨터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발표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또, 그런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 말에 별다른 거부감이나 반박을 하지 않은 채 받아들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컴퓨터의 대중화,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말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과연 이런 것일까?
최근 일각에서 현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실시되고 있는 컴퓨터 교육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의 컴퓨터 교육은 활용 방법에만 초점을 맞춘 컴퓨터 이용 교육일 뿐, 과학적인 사고와 논리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주고,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담보할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길러내는 '컴퓨터 과학'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도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이유로 컴퓨터 교육 무용론까지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한쪽에서는 오히려 현 컴퓨터 교육의 문제점과 교육내용 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접속 환경을 갖췄고 최첨단 IT기술의 시연장이 되고 있는 2005년 대한민국에서,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자부심과 컴퓨터 교육의 '현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김재철 기자 mykoreaone@infotech.co.kr

활용법에만 치우친 컴퓨터 교육 체질 개선 시급하다

컴퓨터 교육은 국가경쟁력의 기본, 원리·개념 등 과학으로서의 컴퓨터 가르쳐야
획일적 교육 내용 초·중·고에서 되풀이, 관련 학과 신입생 상당수가 기초 절대부족
컴퓨터 교육은 일반적으로 컴퓨터 과학 원리 교육, 응용 소프트웨어 등의 사용방법을 가르치는 소양 교육, 컴퓨터를 활용해 수업의 효과를 높이는 교육 이 세 가지를 일컫는다.
그리고 정확한 용어 또한 컴퓨터 교육이 아니라, '컴퓨터 과학 교육'이 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단순히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작동하는 원리를 가르침으로써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길러주는 교육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컴퓨터 과학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확실히 동의된 이름은 없다. 유럽은 이를 'Informatics(Information Science;정보과학)'로 부르지만, 미국은 'Computer Science(컴퓨터 과학)'로 부른다. 미국 일부에서는 Computer Science라는 이름이 지나치게 컴퓨터라는 도구를 중심에 놓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고자 'Computing'으로 부르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이런 이름들은 '컴퓨터 과학'이라는 관점을 배경에 깔고 있는 것이며, 이는 '컴퓨터 공학'과는 또 다른 개념이라고 하겠다. 세계적으로 컴퓨터 공학보다 컴퓨터 교육이 훨씬 더 중요한 부분으로 얘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초·중·고 교과과정, 컴퓨터 교육의 존재가치 실종
최근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컴퓨터 교육에 관한 문제 제기는 이러한 컴퓨터 교육의 기본 정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되겠다. 우리의 컴퓨터 교육이 컴퓨터 교육 본래의 목적이나 취지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는 대학, 일선 초·중·고등학교, 연구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 초·중·고 교과과정에서 컴퓨터 교육의 현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초등학교에서는 5, 6학년 실과 과목에서 20시간 정도를 다루고 있으며 1~6학년 공통으로 재량활동 시간에 34시간 이상을 교육하고 있다. 중학교에서는 기술·가정 과목에서 모두 45시간을 배우며, 역시 재량활동 시간 중 34시간 이상 컴퓨터 교육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일반계 고교는 일반선택과목, 실업계 고교는 계열별 필수과목, 과학고는 전문선택과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현재 국내 고등학교 2,080개 가운데 '정보사회와 컴퓨터' 과목을 선택한 학교는 전체의 70.1%인 1,459개 학교라고 한다.
초·중등 과정에서 재량활동 수업 중 일정 시간 이상은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라는 권고는 지난 2000년 8월 '초·중등학교 정보통신기술교육 운영지침'이 마련되면서 부터다. 97년 만들어진 기존 교과서에는 컴퓨터 교육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정보화가 강조되면서 장관 지침에 따라 이러한 조항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찌 보면 현재 우리의 컴퓨터 교육은 기본 교과목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교육과정에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IT능력의 3요소 '기술, 개념, 능력'
그렇다면 이러한 컴퓨터 교육의 어떠한 점이 문제라는 것일까? 컴퓨터 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학교 이원규 교수(컴퓨터 교육과)는 "컴퓨터 교육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하드웨어, 즉 PC를 떠올리기 쉽고 여기에 응용 소프트웨어 사용법 정도를 덧붙여 생각하게 된다."며, "현재 우리나라의 컴퓨터 교육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의미의 '컴퓨터 과학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내셔널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National Academy of Science)라는 단체에서 발표한 자료에 보면 IT능력의 기준을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①기술(Contemporary Skills - ICT(정보통신기술,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 워드, 엑셀 등), ②개념(Fundamental Concepts - 컴퓨터의 개념, 원리), ③능력(Intellectual Capabilities - 문제해결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인데, 글머리에 밝힌 컴퓨터 교육의 정의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특히 세 번째 Intellectual Capabilities는 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해서 해결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대인관계, 윤리, 언어, 다른 분야의 기초적인 지식 등 컴퓨터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활용 기술만 강조하고, 컴퓨터의 개념도 대학의 전공학과에서나 익히고 있는 실정.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발 더 나아가 대인관계, 언어, 다른 분야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면 "컴퓨터 교육에서 왜 그런 얘기가 나오나?"고 반응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만 봐도 문제해결 능력을 높여주기 위해 학기말 과제를 줄 때 꼭 2~3명씩 팀을 묶어 과제를 내주곤 하는 것이 이미 꽤 오래 된 일이라고 한다.

현재 교과과정은 활용법에만 초점
현재 우리는 컴퓨터 교육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컴퓨터의 원리는 안 가르치고 활용방법, 즉 기술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컴퓨터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교수나 교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고려대학교 이원규 교수는 "현재의 컴퓨터 교육은 사용자 교육이 아니라, 공급자 교육이다 보니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근본적인 교육 내용이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활용 위주의 교육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000년부터 초·중·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인텔 미래로 가는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인텔코리아의 이재령 차장 또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교사들은 한결같이 현재의 컴퓨터 교육이 너무 융통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실생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를 중심에 둬야 하는데 기능을 익히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늘 가까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원리를 모르고 응용SW를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계속 새로운 제품, 새로운 모델이 나오기 때문에 그 때마다 바뀐 것을 또 배워야 되는 불편함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문제점이 제기되는 것에 반해 정부는 피상적인 수준의 문제 인식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과학기술 인력양성을 위해 초·중·고등 교과과정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자주 강조하고는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명확한 상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또한 컴퓨터 교육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인식의 폭이 매우 다양한 상황이다.

초·중·고 비슷한 교과 내용, 학생들 흥미 잃기 쉬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컴퓨터 교육의 내용이 큰 차이점이 없다는 것도 현행 컴퓨터 교육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다. 활용방법 위주로만 내용이 구성되면서 따라오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도 인정하는 바다.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실 교육과정정책과의 박종은 연구사는 "초·중·고 컴퓨터 교육 교과서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또, 프로그래밍이 조금 들어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응용소프트웨어에 국한되어 있는 상황이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올해는 지금 현재 교육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초·중등학교 정보통신기술교육 운영지침(2000년 8월)'을 다시 검토할 계획이다. "작년에 운영 실태를 다각도로 점검했고, 올해는 정책 연구를 깊이 있게 할 계획"이라는 것이 박종은 연구사의 얘기다.
초·중·고의 컴퓨터 교육에 대해서는 대학에서도 적잖이 아쉬운 점을 토로하고 있다. 삼육대학교 의료정보시스템과 박주희 교수는 "컴퓨터 교육 과정이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 답이나 접근법이 하나가 아니라 다양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래서는 학생들이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초등학교 때 한글이나 엑셀 프로그램을 다 배웠는데 고교에서도 이걸 또 배운다는 것이다.
특히 실업계 고교에서 대학으로 오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런 불만이 더욱 많은 편이라고. 그래서 교과과정을 개편하면서 실업계 출신은 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건너뛸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는 박주희 교수는 "대학의 전공학과에서는 아주 높은 수준을 곧바로 교육할 수 있도록 그 이전 단계에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컴퓨터 교육 전공한 교사 크게 부족
앞에서 여러 번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교육은 인터넷이나 OS, 소프트웨어 사용 교육 정도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컴퓨터는 특별히 따로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문제는 이 같은 활용 위주의 교육이 바뀌지 않는 데는 교사의 전문성 부족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교사도 교육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일선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상당수가 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교사들이다. 한문, 실과(기술, 가정), 회계 등의 과목을 담당하다가 7차교육과정 들어 이들 과목의 수업시간이 크게 줄어들자 몇달 간의 부전공 연수를 받아 컴퓨터 교육도 함께 맡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때문에 1년에 168시간이라는 필수 시간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컴퓨터 과목을 맡는 교사가 상당수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중등교원 선발시험에서 정보사회 교과 선발인원이 전년 대비 100명 가까이 줄었다는 사실은 컴퓨터 교육이 발전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갖기 힘들게 만든다.

정보교사 선발인원은 오히려 줄어들어
교사들의 현황이 이렇다 보니 컴퓨터 교육의 불필요성 또한 강하게 제기되곤 한다. 지난해 12월 23일 '교과 교육과정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컴퓨터 교육의 중요성/필요성 관련 조사를 해본 결과 '필요없다'는 답변이 많이 나왔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에 어느 교사가 "누구를 대상으로 그런 조사를 했냐?"고 물었더니 "기술/가정 과목 교사들에게서 주로 그런 대답이 나왔다."는 대답이었다. 컴퓨터 관련 지식이 부족한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런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학교 안에서 해결돼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선 교육현장의 교사들은 "학교 안에서 컴퓨터 교과와 관련 있는 교사들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개인별로 수준의 차이도 워낙 다양해 자체적으로 교육 내용에 변화를 주려고 해도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교육부 교육정보화기획국의 정금배 장학관도 "정책이 펼쳐지는 현장이 학교인데, 학교 현장에서의 해결과제들이 가장 큰 난관이라고 할 수 있다."며, "부처에서도 혁신을 위한 계획이 있고, 사회에서도 다양한 여론이 있다. 그러나 완충지대인 학교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움직여 주느냐가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현직 교사들이 털어놓는 고민
그렇다면 현직 교사가 느끼는 현행 컴퓨터 교육의 문제점은 어떤 것일까?
한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의 컴퓨터 교육이라는 것이 초등학교는 워드나 인터넷 이용방법 정도를 배우는 것이고, '방과후 교실' 같은 시간에도 파워포인트 등 애플리케이션을 배우는데 집중하고 있다."며,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성적순으로 참가하는 컴퓨터 경진대회
이 교사가 속해 있는 관할 교육청에서는 해마다 '정보올림피아드'라는 행사를 하고 있다. 정보올림피아드는 수학·영어 경진대회처럼 컴퓨터 능력을 겨루는 경연장으로 '정보통신 분야의 영재 발굴과 육성, 정보의 활용능력 향상과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및 보급을 목적으로' 열리는 행사다.
그런데, 학교 안을 다 뒤져봐도 학생들 중에 C++이나 비주얼베이직 같은 프로그램을 아는 학생은 없는데 교육청에서 하는 행사라 출전은 시켜야 하다 보니, 성적 최상위 학생 순으로 내보내는 실정이다. 이런 학생들을 데리고 정보올림피아드라는 경진대회를 하고 있는 것인데, 결국 지역 내 유명 컴퓨터학원에 다니면서 전문적인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상을 휩쓸게 되고 나머지는 들러리를 서는 격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이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과정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육과정에 컴퓨터가 정규 과목으로 들어가 있으면 이를 담당할 소양을 갖춘 교사들이 좀 더 깊이 있는 교육을 해낼 수 있는데 현재는 그런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형태"라고 말했다. "대학이 여러 변신들을 하고 있지만 이런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 대학에서 밑바닥부터 일일이 다 가르쳐야 되는 셈인데, 국내 대학 컴퓨터 전공학과의 3~4년 강의 내용을 이스라엘은 고등학교 때 이미 다 배운다고 하니 대학이 아무리 몸부림을 친다고 해도 그 격차는 줄이기 힘들 것"이라는 게 그의 푸념이다.

로봇학교, 로봇공부보다 입시가 우선
강남공업고등학교는 올해부터 학교 이름을 서울로봇과학고로 바꾸고 자동화로봇과, 로봇제어과, 마이크로로봇과, 로봇재료과 같은 학과를 새로 만들었다. 로봇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는 국내에서 서울로봇과학고가 처음이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국내 실업계 고등학교는 완성교육이냐, 계속교육이냐 하는 문제로 늘 고민이 많다."고 말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실업계 고등학교는 완성교육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학생의 80% 이상이 취업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교육하면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실업계 고등학교로 오는 학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려 하기 때문. 실업계라는 이름이 유명무실한 것이다. 이 교사는 "인문계 고교의 교과과정을 상당수 적용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교육을 하기에는 그만큼 시간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 학교는 로봇고등학교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교과과정을 만들고 있는데, 국내에서 이런 예가 처음이다 보니 교과과정을 100% 자체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기존 교사들의 수준이 워낙 다양해 이런저런 배려를 다 하다 보니 학교의 목표에 맞는 교과과정을 만들기가 힘들다."는 것이 그의 푸념이다. 사람은 안 바꾸고 옷만 갈아입는 격이라는 것이다.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고양이를 그리게 된 격이라고나 할까.

IT 관련학과 진학자조차 기초 부실
강의내용 따라가지 못해 포기도 다반사
그렇다면, 이처럼 초·중·고 교육에서 컴퓨터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은 어떤 결과를 낳고 있을까? 가장 크게 어려움을 토로하는 쪽은 대학이다. 비전공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컴퓨터 관련 전공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조차 기초가 매우 부실한 편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최근 대학의 자연, 공학 계열에서는 전공과 상관없이 프로그래밍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는 요구가 교수들 사이에서는 매우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이미 이런 교육 과정을 도입한 곳도 있다(미국의 경우는 인문, 사회 계열도 1~2학년 때는 프로그래밍 수업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교차지원이라는 제도다. 문과를 택했던 학생들 중 상당수가 대학의 자연·공학 계열로 진학한다는 점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기본이 되는 미적분이 문과생들에게는 선택과목이어서 이 과목을 전혀 배우지 않고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대학의 얘기를 들어보면, "학생들을 붙잡고 이런 기초 강의를 할 시간이 없다 보니 바로 전공분야의 이론을 다루게 된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수가 강의내용을 따라오지 못하고 포기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은 학문의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대학에 가면 인력이 저절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초·중·고에서 기초가 충분히 다져져야 대학이 자기 분야의 우수한 인력들을 길러낼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가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인재는 대학이 알아서 키운다?
삼육대학교 박주희 교수는 "초·중·고 과정에서 단순 활용법만 배울 것이 아니라, 컴퓨터 과학의 기초를 좀 더 튼튼히 해야 한다.
이런 기반 위에 대학에서 실제로 과제 중심의 수업을 많이 한다면 효과가 굉장히 높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특히 정형화된 기존 강의 방식의 수업과 달리 프로젝트 수업을 해보면 학생들이 힘들어 하기는 해도 발표하는 내용이나, 과제에 접근하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초·중·고에서도 이런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대학교수는 수업 내용이나 수업 방법의 개발 등에 접근도 해보지 않고 "과연 그런 것을 초·중·고에서 가르쳐서 효과가 있을 것인가?"라고 지레짐작해 포기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국가기관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정부나 교수, 교사 모두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오명 과학기술부총리는 얼마 전 '건강한 사이버세상을 위한 연구모임'에서 "대학졸업생 중 이공계 학생의 비율이 41.5%로 대한민국이 OECD 나라 가운데 1위로 OECD 평균이 25.8%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가 이공계 교육을 받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졸 신입사원이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기술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의 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런 결과가 단순히 대학의 교육 체계나 내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준비없이 컴퓨터 전공을 택하는 학생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권용래 교수는 얼마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4학년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과학 전공자의 고민'을 묻는 이 설문조사에서는 몇 년 째 비슷한 대답이 나오고 있는데,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전산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다.',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하다.', '사회에서 전공자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는 대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 권용래 교수는 "학생들이 벤처기업에서는 상당한 실력을 보이는데 대기업 SI 같은 조직에서는 오히려 적응을 못 한다."며, "기업들이 겉으로 얘기하는 만큼 기술력을 중심에 두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그만큼 사회 전반에서 요구하는 기술의 수준이 높지 않다는 얘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컴퓨터를 이해하고 IT를 활용하는 수준이 어떠냐에 따라 IT에 요구하는 수준도 높아지게 되고, 결국 IT나 IT 전공자들이 더 우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권용래 교수는 전공자가 이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대학이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한 때 인기가 좋다고 해서 대학마다 관련학과를 2~3개 씩 만들고 모집정원도 타 과보다 많이 둬서 전공 졸업자만 많이 배출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또 "이들 모두가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된 인력인지도 의문이지만 중·고등 과정에서 학생들이 미리 준비돼서 올라왔는지가 더 선차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학고에서도 뒷전인 컴퓨터 교육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김명호 이사는 "학생들의 수준이 따라오지 못하다 보니 대학에서는 깊이 있는 교육을 하기 보다는 IT관련 전 분야를 맛만 보고 넘어가는 식으로 수업을 하게 된다. 특별한 능력을 보이는 소수를 제외하면 전공을 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이다."고 말한다.
권용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학부생 600명 가운데 400명 이상이 과학고 출신으로 나름대로 영재 교육을 한다는 곳에서 공부를 했던 학생들이라고. 그런데 과학고에서는 거의 물리, 화학, 수학만 하다가 왔기 때문에 1년을 마치고 전공을 선택할 때 생소한 전산학보다는 대부분 기초 학문과 관련된 학과를 선택하는 실정이다. 권 교수는 "외국에서는 전산학의 위치가 확고부동한데 우리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컴퓨터교육과의 안미리 교수(컴퓨터교육학회 부회장)는 컴퓨터 과학 관련 학과와 일반 학과(컴퓨터 비전공 학과의 개념에서) 가릴 것 없이 '컴퓨터 교육'이라고 하면 '대학교육 또는 그 이상의 교육체계에서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오류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컴퓨터 과학을 가르치는 것은 여러모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안미리 교수의 주장이다. 논리적인 사고를 배운 학생들은 창의적인 일꾼으로 자랄 수 있고, 또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IT분야와도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또, "컴퓨터 과학은 꼭 컴퓨터 공학 뿐 아니라 경영, 언어, 예술, 체육 등 어떤 부분의 학문을 선택하더라도 그 기초의 하나로써 꼭 배워야만 하는 지식"이라고 강조한다.

계산기를 만든 어느 개발자의 경험
"지금은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IT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벤더나 개발회사에 모든 걸 맡겨둔다. 이 때문에 시스템을 구축해도 현업에서는 끊임없이 불만이 터져 나오고, 이를 개선하는데 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안미리 교수는 "이 때문에 비IT 분야의 사람들은 IT를 점점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컴퓨터 비전공자들이 과학적인 접근에서의 컴퓨터 교육을 받아 컴퓨터의 원리나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자기 업무에 필요한 간단한 툴은 직접 만들 수도 있고, 전문가가 시스템을 개발한다고 할 때도 시스템 개발과정에서 단순한 조언 정도가 아니라, 개발자와 높은 수준의 협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개발자의 경험담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친한 사람의 사무실을 방문했던 이 개발자는 그 회사의 경리가 꽤 많은 카드 전표를 놓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얘기인즉슨 수백장의 전표를 더하고 난 합계가 매번 같지 않다 보니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개발자는 "일반 계산기나 윈도우즈의 계산기에는 잘못 입력한 수식을 고치거나, 이전에 입력한 수치를 거슬러서 확인해볼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며, "잠깐 시간을 내서 과거 앞선 200회까지 입력한 수치를 확인할 수 있고, 잘못 입력된 것을 고칠 수 있는 계산 프로그램을 만들어줬더니 그처럼 고마워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계산기 프로그램이 간단한 컴퓨터 지식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며, "SW 개발회사들은 수익성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 테고, 결국 학교에서 지금과 같은 수준의 컴퓨터 교육만 한다면 IT는 영원히 특정인에게만 매우 유용한 도구로 남을 뿐이고, 나라의 경쟁력 측면에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부 다 프로그래머로 만들자고?"
활용 위주의 컴퓨터 교육을 과학으로서의 컴퓨터 교육으로, 그 내용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꺼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든 학생들을 프로그래머로 만들자는 거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반응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의 본질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학교의 교사에서부터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학자, 교육부 관계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런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 교육의 내용이 바뀌어야 한다=프로그래밍 교육에 중점을 두자'는 인식은 문제의 핵심을 잘 못 꿰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과학으로서의 컴퓨터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활용법에 치우치기 보다는 컴퓨터의 원리나 개념을 먼저 접하게 하고, 컴퓨터가 문제를 해결해가는 체계를 익힘으로써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갖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프로그램 지식을 가르치자는 것도 모든 학생에게 프로그래머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학생들이 자라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현업에서 자신이 필요한 간단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 쓰는 정도의 능력은 가져야 한다는 인식의 결과다. 이렇게 돼야 업무에 가장 유용하고, 효과가 높은 정보화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회 전반에서 정보화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IT산업의 발전과도 결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다.
미국의 대학에는 자연과학 계열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계열도 1/2학년 때 프로그래밍 과목이 있다는 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는 컴퓨터 교육이 곧 인프라 교육이라는 얘기다. 제대로 된 컴퓨터 교육을 하자는 주장에 "모든 학생을 프로그래머로 키우자는 것이냐?"고 반응하는 것은, "유치원에서부터 영어 교육을 하는데 다 영문학자로 키우겠다는 것이냐?"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얘기다. 오히려 영어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만 컴퓨터과학 공부라는 것은 과학적인 사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고, 다른 분야의 학습 효과도 높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너무나 크다고 할 것이다.

"잘 하고 싶으면 대학 가서 배워도 충분해!"
컴퓨터 교육은 PC나 응용소프트웨어를 배우는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은 대학이나 또는 그에 상응하는 전문 교육기관에서 배우면 된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그래밍(logo, 베이직)의 원리를 배우는 인도나 미 대학의 전공자 과정을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이스라엘의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아무리 똑똑한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 전산학을 전공한다 하더라도 초등학교 때부터 디지털의 개념을 배우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몸에 익히는 학생들을 따라가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프로그래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혁신성'이 꼽히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컴퓨터 교육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일반적으로 '혁신성'은 10대 시절에 가장 높이 발현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다음 세대의 프로그램은 지금의 10대가 만들어낸다.'는 IT업계의 유명한 격언도 있다. 최고의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소양은 어려서부터 만들어진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기에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정작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장에서는 국산제품 보호 정책을 부르짖고 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선진 사례에 대해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눈에 클레오파트라의 코, 소피아 로렌의 입술을 붙이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교육과정은 매우 자신을 가져도 되는 수준이다."고 말한다. 인터넷정보고 등의 교육내용은 매우 높은 수준이어서 외국에서도 놀랄 정도라는 것이 그의 설명. 컴퓨터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쪽과 정반대의 현실 인식인 셈이다. 이 관계자는 또 "초·중등 교육은 특화된 심화교육이 아니라 보통 교육이다. 보통 교육은 보편적인 삶을 사는데 필요한 것이고, 그러려면 삶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맛보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컴퓨터만 배우고 다른 것은 배우지 말자는 얘기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기본 수업과정에서 IT에 관심이 있으면 그런 것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고교로 가면 된다. 특별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모든 학생을 모르모트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 적지 않은 교육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컴퓨터 교육이 인프라 교육의 하나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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