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컴퓨웨어 정갑성 사장


▲ "외국계 기업 지사장 10년에는 '두터운 신뢰'가 쌓여있다"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지사장을 바꾸는 일은 오래전부터 당연한 얘기가 되었다. 따라서 외국계 IT 기업에서 지사장으로 10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은 세인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한국 컴퓨웨어의 정갑성 사장이 그렇다. 그는 한국컴퓨웨어의 초대 지사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10여 년 동안 회사를 이끌고 있다.

최근 한국 시장에 거세게 불고 있는 메인프레임의 다운사이징 바람은 컴퓨웨어의 앞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하지만 정 사장은 매출 등의 실적 때문에 조바심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느긋하다. 그는 "지사장을 반드시 실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강조한다. 정 사장을 만나 10년간 한국컴퓨웨어를 이끌어온 경영철학과 앞으로의 방향을 들어본다.

한국컴퓨웨어 초대 지사장으로서 10년째 회사를 이끌어오고 있는 비결은

모든 일에는 '신뢰'가 가장 앞선다. 한국 지사장들 대부분이 1~2년을 못 지키고 떠나는 이유가 바로 본사와의 관계에서 신뢰가 깨지기 때문이다. 한국인 정서상 자존심이 강해 본사에서 매출 목표를 주면 거절을 못해 처음부터 무리한 영업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NO'를 못한다. 다른 나라의 지사를 보면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목표를 낮게 잡는데,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처음부터 전임 지사장보다 2~3배 성장을 하겠다고 과욕을 부린다. 처음에는 지킬 수 있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매출을 맞추기가 힘들다. 하지만 국내 지사장들은 전년도에 달성하지 못한 매출까지 포함해서 더 많은 목표를 잡는다. 결국 한국 지사장들 중 상당수가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둔다. 처음부터 욕심을 부려 무리한 경영을 한 결과이다.

어느 기업이건 본사에서는 실적 부진의 원인을 놓고 오로지 지사장 능력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본사는 각국의 지사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지사장은 본사에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고, 욕심을 내지 않는 경영을 하도록 조정하는 선량한 관리자여야 한다. 신뢰는 바로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쌓인다.
지사장을 한번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하지 않다. 헤드헌터 비용과 경영 공백에 따른 손실 등을 감안하면 5억원 이상에 이른다. 본사에서 이 만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지사장을 교체하는 이유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정 사장은 오히려 국내 기업보다 외국 기업이 더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반드시 '해라'가 아니라 시장 상황에 따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는 '그간 10년간 얼마나 성장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부끄럽다'고 말하며,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컴퓨웨어는 지난 7년간 50%라는 성장을 했지만, 중요한 것은 매출 성적이 아니라 지사를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 '신뢰'를 강조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한국컴퓨웨어는 시장에서 신뢰를 줄만한 기업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컴퓨웨어도 그 부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나름대로 본사에 잘 보이기 위한 무리한 경영은 하지 않았고, 시장 논리에 따라 컴퓨웨어도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주를 위해 가격 싸움을 했다. 변명 같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이나 한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상도덕이나 지켜야 할 수준이 있다.

한국컴퓨웨어는 10년 전에 지사를 설립하자마자 IMF 등이 터지고, 최근에는 메인프레임 시장의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등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97년에 지사를 설립하자마자 곧바로 IMF가 터지고, Y2K를 기점으로 메인프레임의 수요도 한국에서 급격하게 줄었다. 사실 딱히 정해진 대처법은 없었다. 그때마다 상황에 따라 대응법이 달랐다.
IMF 때에는 원화 계산으로 매출이 줄어드는 부분이 있었지만, 동시에 인건비 등의 운영비가 절반으로 줄어 본사의 간섭이 예상외로 없었다. 또한 Y2K로 메인프레임의 다운사이징이 활발한 시기였지만, 동시에 회사마다 시스템 재정비나 수준 업그레이드를 요구해 메인프레임 시장도 상당한 성장을 했다. 특히 비상에 처한 한국의 시장 상황은 본사의 이해 폭을 크게 넓혀줬다.

정 사장은 이러한 것들이 한마디로 '運七技三(운칠기삼)'이라고 말한다. 한 때 매출의 90%가 메인프레임 관련에서 나와 시기적으로 낮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지난해에는 무려 80%가 오픈 부문에서 나왔다. 다른 나라의 지사들이 여전히 메인프레임 비중이 50~60% 이상을 차지하는 것과 비교해 본사에서는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실제로 최근에는 일본 지사 등에서 한국지사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 그렇다면 어려움을 해결하는 비결이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있는가.

그렇다. 아까도 말했듯이 신뢰관계이다. 본사에서는 사실 한국 시장을 잘 모른다. 그 때마다 한국 상황을 알리며, 합리적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사장의 역할이다. 컴퓨웨어도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아태지역 등과 메트릭스 조직으로 되어 있지만, 한국 지사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지사장인 나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줬다.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컴퓨웨어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가.

컴퓨웨어와는 케이비에스 시절부터 영업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1986년부터 10년 이상 영업을 하던 차에 본사에서 한국에 지사 설립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컴퓨웨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라고 판단해 제의를 한 것 같다. 하지만 설립하자마자 몇 달 안 되어 IMF가 터져 시기적으로 어려웠다.

- 컴퓨웨어는 타사에 비해 노출 빈도가 낮다. 마케팅 활동에 너무 소극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는데 컴퓨웨어의 전략인가. 아니면 정 사장의 경영철학인가.

컴퓨웨어의 마케팅이 전통적으로 조용하다. 컴퓨웨어 고객 90%가 메인프레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픈 플랫폼으로 가면서 마케팅 강화를 서서히 준비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 앞으로의 비전과 발전 방향을 말해 달라.

컴퓨웨어는 7년간 50%라는 낮은 성장을 했다. 메인프레임에서 오픈으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였다. 하지만 최근 3개월 동안의 주가는 30~40% 이상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컴퓨웨어가 이제 오픈 시장으로 진출할 준비를 갖췄다고 시장에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컴퓨웨어는 현재 오픈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BSM(Business Service Management)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내년 4월에 본격적인 제품 출시가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의 경우,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 솔루션인 밴티지(Vantage)와 IT거버넌스로 하나은행과 키움증권 등을 수주해 오픈 플랫폼 매출 비중을 크게 높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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