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20년 전] 2004년 의료업계에 불어닥친 ‘EMR’ 도입 붐

진료체계 표준화가 관건…DW·CRM 도입에도 영향 미쳐

2024-07-31     김호준 기자
컴퓨터월드 2004년 8월 호

[컴퓨터월드] 2004년 당시 병원들은 IT 환경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OCS와 PACS를 구축하며 IT 도입 효과를 경험한 병원들은 기존 솔루션을 고도화하는 한편, EMR 도입에도 눈을 돌리고 있었다. 당시 EMR은 아직 진료체계가 표준화되지 않아 시스템 도입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도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와 함께 데이터 웨어하우스, ERP, BPM 등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새로운 IT 시스템에 대한 관심

병원은 과거 IT 접목이 쉽지 않은 대표적인 업종이었다. 의사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다른 업종과 비교했을 때 IT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또 병원·의사마다 업무 체계와 방식이 제각각이다 보니 표준화된 IT 시스템 도입이 어려웠다.

소규모 병원이 난립하고 있는 시장 특성도 IT시스템이 자리 잡기 힘든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체 의료 시장 규모는 컸지만,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많은 다른 업종에 비해 소형 병원이 많아 대형 병원을 고객으로 확보한 몇몇 IT업체 외에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4년 전후로 국내 종합병원의 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추진되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IT가 병원 업무 시스템과 결합하며 의료 환경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병원정보화의 핵심을 이루는 시스템으로는 △온라인처방전달장치(Order Communication System, OCS) △의료영상 저장 및 전송장치(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s System, PACS) 등이 있었다.

OCS는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면 통신망을 이용해 처방전을 다른 부서로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또 PACS는 모니터로 환자의 엑스레이(X-ray) 촬영 자료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밖에도 전자차트나 무인처방전발급 시스템 등 IT를 이용해 업무를 간소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꾸준히 전개되고 있었다.

OCS(왼쪽)와 PACS(오른쪽)의 도입은 병원정보화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출처: 컴퓨터월드 2004년 8월 호)

특히 OCS와 PACS는 당시 거의 모든 병원에서 업무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OCS, PACS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했거나 업그레이드를 추진하는 병원도 적지 않았다.

이 가운데 2003년부터는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일부 병원에서 구축·운용에 들어간 상태였다. 대다수 병원에서도 EMR 구축 필요성에 공감하고 구축을 완료한 병원의 성공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또 진료 관련 부분 외에 전사적자원관리(ERP), 데이터 웨어하우스(DW) 등 병원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IT를 도입하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었다.


OCS·PACS의 도입 효과 기대 이상

이 같은 병원의 적극적인 IT 투자에는 OCS와 PACS를 도입해 거둔 효과가 한몫했다. 물론 한발 앞서 IT를 도입하는 병원과의 경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병원표준화심사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하는 측면도 없었던 것은 아녔다. 하지만 OCS나 PACS의 도입 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나타나면서 많은 병원이 IT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당시 전공의나 수련의가 OCS와 PACS가 구축되지 않은 병원에는 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개인병원이나 중소병원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오히려 의사가 먼저 나서서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정보팀의 민성우 팀장은 “예전에만 해도 병동마다 수련의 한 명은 다음 날 쓸 필름을 찾으러 다니는 일만 하고 있었다. 이는 병원 전체로 보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PACS가 도입되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 팀장은 “필름은 직접 인터넷에서 찾으면 되고, 판독의도 판독실에 가지 않고 책상에 앉아 필름 판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의사는 자기 본연의 임무인 환자 진료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변화라는 게 병원 IT 관계자들의 이야기였다.


OCS·PACS 없는 병원, 수련의도 외면

사실 OCS 도입 초기에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초진 환자의 경우, 데이터를 일일이 다 입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처방전을 손으로 쓰다가 익숙하지 않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다.

명지병원 전산정보팀 오재우 팀장은 IT 접목 효과를 확인했음에도 ‘전산화가 돼서 더 불편하다’고 주장하는 의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오 팀장은 “예전에 허드렛일을 담당하던 직원은 효율성이 높아졌겠으나 의사 입장에서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한양대학교의료원 OCS의 검사결과 조회 화면 (출처: 컴퓨터월드 2004년 8월 호)

이와 관련해 서울아산병원 민성우 팀장은 “IT에 관한 병원의 인식은 EMR이 도입되면 또 한 번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 팀장은 “처음 OCS를 도입했을 때 나름대로 부작용이 있었다. 약품 주문을 내기 위해 차트에 써놓은 처방전을 OCS에 입력해야 하는데, 차트를 일일이 들춰보기 힘들어 짐작으로 입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추가 주문이 많아져 업무가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EMR이 도입되면 모든 자료를 시스템에 입력하기에 별도 주문을 내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병원정보화의 획기적 도약 ‘EMR’

많은 병원에서 OCS와 PACS를 구축하던 가운데, 한편에서는 새로운 관심 기술로 EMR이 떠오르고 있었다. EMR은 환자를 진료한 의사의 의무기록을 모두 전산화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의료법 제21조에서는 의무기록을 “의료인이 환자의 질병에 관계되는 모든 사항과 병원이 환자에게 제공해 준 검사, 치료 및 결과를 기록한 문서”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의무기록은 환자에게 내려진 진단, 치료사실 및 그 결과를 입증할 수 있는 완전하고 정확한 내용이 기록돼야 했다.

환자의 병력 사항, 의사가 진찰한 내용, 소견, 각종 검사 결과 및 수술이나 약 처방 등 여러 처치 내용을 기록한 EMR은 병원이 환자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밑바탕이 된다. 또 병원은 EMR로 진료 문서 보관 등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효율적인 병원 관리와 함께 임상연구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MR은 당시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인하대병원 등 일부 대형 병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며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을지병원, 일산병원 등도 일부 도입을 완료했으며, 동산병원은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 외래 부분에서만 사용 중이었다. 또 중앙대병원, 건국대병원, 한림대병원, 세브란스병원이 구축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림대 성심병원(수원)은 병동에서 먼저 EMR을 시행하고, 차후 외래환자의 기록도 포함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 밖에 상계백병원, 순천향중앙의료원(부천), 보훈병원 등이 EMR을 도입 중이거나 2004년 하반기 이후 도입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차트는 기본, 병원의 모든 활동을 담는다

차트를 완전히 없애는 게 EMR의 전부는 아니었다. 병원 전산 관계자들은 차트를 없애는 일은 EMR의 최소치이며,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정보화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순천향중앙의료원 전산실의 윤수근 부장은 “데이터로 산출할 수 없지만 EMR의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부장은 “우선 병원에서는 고객관계관리(CRM)를 하고 싶어도 그 데이터가 나올 기반이 마땅치 않은데, EMR이 고객 관리의 기본이 될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도 자료를 찾아보며 과거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예전에는 의무기록 문서만 전산화하는 EMR을 생각했다면 지금은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담자는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길병원의 SM을 맡고 있던 MCC의 한기성 이사는 “의사가 환자에 대해 축적된 데이터를 가진다는 것은 최상의 진료를 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며 EMR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기대했다.

EMR은 진료 과정이 전부 정보화된다는 측면에서 의사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순천향중앙의료원 윤수근 부장은 “모 병원이 문을 열면서 EMR을 가동했는데 조금 쓰다가 일부를 다시 문서화했다”며 “의사들이 직접 기록하지 않고 예전처럼 간호사에게 맡기는 일이 잦았다. 이 때문에 간호사들이 컴퓨터에 매달리는 시간이 늘어나 진료 업무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진료 환경 표준화의 어려움

EMR은 오래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중요성에도 많은 이들이 공감했지만, 실제 도입 속도는 느린 편이었다. 당시 EMR을 운영 중이거나 구축 단계인 병원 가운데서도 진료기록을 스캐닝해 보관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EMR 확산이 어려웠던 첫 번째 이유는 병원의 진료 환경을 표준화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진료하는 사람마다 처방이나 약이 다르고, 진단 양식도 통일이 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일병원 박철수 정보시스템 과장은 “서식과 용어 표준화가 관건인데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같은 진료과 의사 간에도 제각각으로 쓰다 보니 누군가 제안하더라도 의사들이 따라오지 않는다. 이것만 해결해도 EMR에 접근하기 쉬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의사협회나 병원협회에서는 진료 환경을 표준화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었다. 특히 개인적 성향이 강한 의사들의 특성상 하나의 서식을 줘도 마음대로 작성하는 편이어서, 의사들 자신도 모든 문서를 전산화하는 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였다.

EMR 도입과 관련해 원자력의학원 최원영 전산정보팀장은 OCS부터 리뉴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팀장은 “OCS 데이터가 EMR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OCS 단계에서부터 통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순천향중앙의료원 윤수근 부장도 “국내 병원들은 아직 EMR을 할 수준이 아닌 것 같다. OCS 등 기간계 시스템에서 보강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검증된 솔루션 부족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시장에 나온 EMR 전문 솔루션 역시 손에 꼽을 정도였다. 2004년 국내 시장에 EMR 솔루션으로 내놓았던 업체는 정부 지원을 받아 표준화에 나선 이지케이텍을 비롯해 메디트렉(호주), 후지쯔 등 대여섯 개에 불과했다. 병원이 패키지를 도입해 업무에 적용하고 싶어도 선택의 폭이 너무 좁고, 도입한 곳도 많지 않아 선뜻 선택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원자력의학원 최원영 팀장은 “검증된 솔루션이 없어 실제 구축 비용이 얼마나 들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불경기에 시스템 도입을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2004년 당시 병원 환경에 맞춘 표준화 솔루션은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내에서 많이 알려졌던 메디트렉도 국내 환경에 그다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게 병원 전산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그 시절 EMR 솔루션들은 기록 방식, 용어 등에서 공통 분모를 체계화한 것이 아닌, 최대한 많은 내용을 포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EMR 도입 시 고려사항 (출처: 컴퓨터월드 2004년 8월 호)

몇몇 대형병원은 독자적으로 EMR 개발을 진행했다. 그런데 기존 업무를 전산에 올리려면 매핑 작업이 필요하기에 OCS에 일정 부분 손을 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건국대병원 한기태 팀장은 “개발자보다 사용자의 참여도에 따라 성과가 나타나기에 단시일에 개발은 무리일 수 있다”며 “자체 개발할 경우, 개발 기간을 산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축 후 성과의 불확실성

EMR을 도입한다 해도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비용 부분을 보면, EMR 구축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드는 사업이었다. 병원 전체 업무를 포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차트 의무 보관 기한이 10년으로 돼 있기 때문이었다. PACS는 데이터 보관 기한이 5년이었으며, 나라에서 수가로 보장해 줬기에 2년 반 정도면 손익 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EMR은 그런 지원책이 없었다.

결국 병원 경영진의 눈으로 보면 EMR을 도입해 당장 득을 보는 사람은 의사와 의무기록 보관 업무를 하는 직원 정도인 데 반해 너무 큰 비용이 드는 사업이었다.

한국IBM에서 병원 영업을 담당하던 한진팔 과장은 “OCS나 PACS는 당장 도입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나 EMR은 사실 좀 애매한 상황이다. 솔루션도 제대로 없을 뿐 아니라 OCS, PACS처럼 가시적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인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EMR 도입 효과를 단순히 ‘노 차트, 노 딜리버(No Chart, No Deliver)’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료 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고, 향후 임상연구에 필요한 기초 데이터를 쌓아갈 수 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숙지 않던 전산 시스템 입력 방식

EMR을 도입해 활용하던 당시 병원의 전산 담당자들은 EMR이 뿌리를 내리려면 현재 입력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키보드 방식은 펜으로 쓰는 것에 익숙한 의사들에게 불편했다. 강북삼성병원 김인대 정보전략실 과장은 “의사들이 펜으로 기록하는 것보다 더 쉽게 돼 있으면 얼마든지 쓰겠다고 한다”며 “전산화한다고 OCS나 PACS를 도입하고 보니 자기 업무가 크게 늘었는데, EMR까지 도입하면 그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이 같은 이유로 다른 병원이 도입해 2~3년 정도 안정되면 그때 가서 도입하자고 말하는 의사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건국대병원 한기태 의료정보팀장은 “의사들의 업무가 많아져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 수가 크게 줄어들다 보니 나이 든 의사들은 사람을 붙여달라고도 하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입력 방식의 한계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시간을 빼앗기 때문에 결국 병원 수익 저하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있다. 인하대병원에서 EMR 도입 후 여러 단계를 거쳐 입력하는 환경이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점이 제기된 바 있으며,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당서울대병원도 의사 1명당 진료 환자 수가 크게 줄어드는 문제를 겪고 있었다. 병원 전산 관계자들은 “이런 식이면 사립병원에서는 경영진 승인을 얻기 힘들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의사들의 IT 마인드 부족

OCS나 PACS 도입 초기와 마찬가지로 EMR도 의사들은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의사들은 환자와 상담하면서 간단히 메모만 하면 수련의나 간호조무사가 해주던 일을 직접 해야 하기에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측면이 크다”고 진단했다. EMR 도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솔루션이 없어서라기보다 의사들의 마인드 부족에 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개별 병원이 EMR을 구축하는 데 있어 실사용자인 의사들의 역할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병원의 서식 표준화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의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EMR 도입의 성공 여부는 의사가 얼마나 적극성을 띠느냐에 달려있었다.

MCC 한기성 이사는 “병원 내 모든 의사가 EMR를 활용해야 시스템으로서 가치가 있어 강제성이 요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순천향중앙의료원 윤수근 부장은 “가장 좋은 방법은 병원이 문을 열면서부터 EMR을 도입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용하면 모를까 문서로 처리하다가 EMR로 바꾸는 일은 대단히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건국대병원 한기태 팀장도 “서울대처럼 데이터가 많이 쌓여 그것을 학술적으로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어지간해서는 기존 업무 스타일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EMR 도입으로 서비스 향상, 이미지 개선 기대

당시 새 병원 건물을 짓고 있던 건국대병원은 자주 쓰는 진료 차트 위주로 EMR을 도입한 후, 점차 전체 업무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순천향중앙의료원과 상계백병원도 차트는 손으로 쓰고, 나중에 따로 스캐닝을 해 저장하는 방식(영상 EMR)을 검토하고 있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도 영상 EMR에는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병원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EMR 도입을 추진했던 것은 그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이미 영상 EMR 도입을 완료한 을지병원 장호열 실장은 “매년 차트 저장 공간이 5평 정도씩 늘어나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강성심병원 전산정보과 조규대 과장은 “EMR 도입은 진료의 질적 향상은 물론 비용 절감, 병원 관리 효율화, 혁신적 임상연구효과 등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환자 만족도를 높이고 병원의 이미지를 재고한다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DW, EMR 미비로 경영부문에만 성과

진료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병원 경영에 접목하기 위해 DW를 도입한 병원도 있었다. 이 가운데 성공 사례로 꼽히던 곳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던 일산병원의 DW였다.

일산병원은 2001년 1월 DW를 도입했다. 각종 분석 및 통계 작업을 위해 DW를 구축한 것이었다. 일산병원 정성직 의료정보팀장은 “병원이 어려울수록 이런 작업을 더 중요히 진행해야 함에도 비용 문제에 가로막혀 포기하게 된다.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 목적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DW를 구축했던 대다수 병원은 단순 데이터 분석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병원용 DW가 나온 지 겨우 1~2년째여서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 이야기였다.

한국IBM 한진팔 과장은 “DW가 제대로 되려면 거점 지역 고객을 나이, 직업 등 기준에 따라 분석한 자료가 만들어져야 한다. 분석해서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는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DW를 도입하는 목적은 크게 ‘경영’과 ‘진료’ 두 영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지만 DW를 도입한 병원의 경우, 대체로 경영 측면에서 성과를 거둔 데 반해 진료 쪽에서는 별다른 실효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진료 부분의 데이터는 EMR에서 제공돼야 하는데, EMR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아 DW에 저장되는 데이터가 부족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연구중심병원 지향할수록 DW에 큰 관심

상계백병원 김용옥 부장은 지역 내 병원 간에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DW 성공에 걸림돌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거점 지역의 진료 데이터를 축적·분석하는 데 있어 정보를 얼마나 공유하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는데 사립병원들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도입했지만, 별다른 실효가 없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럼에도 연구 중심으로 발전해 나가겠다는 병원에서는 DW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DW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던 원자력의학원의 최원영 팀장은 사용자 환경도 DW 활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최 팀장은 “원자력병원은 자료 의뢰가 오면 다 응한다. 하지만 의사들의 활용도가 낮다. 사용자 환경이 좋아서 직접 자료를 찾기 쉬워야 DW의 가치가 제대로 발휘된다”고 설명했다.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많은 병원에서는 DW와 유사한 형태로 자료를 쉽게 뽑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거나 준비하고 있었다.

2004년 당시 병원 매출 가운데 IT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에 비해 상당히 늘어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병원은 선두주자로 나서기를 지극히 꺼리는 상황이었다. 경영자의 마인드 부족에다가,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게 업계 의견이었다. 이 때문에 병원은 신기술을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운 분야라고 얘기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씩 병원에서 IT가 중요 생존 전략 중 일부로 자리 잡고 가던 2004년이었다.

2004년 당시 병원 매출 가운데 IT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에 비해 상당히 늘어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병원은 선두주자로 나서기를 지극히 꺼리는 상황이었다. 경영자의 마인드 부족에다가,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게 업계 의견이었다. 이 때문에 병원은 신기술을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운 분야라고 얘기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씩 병원에서 IT가 중요 생존 전략 중 일부로 자리 잡고 가던 2004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