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IT 인프라 기술 종속 심화…SW 주권 확보 ‘비상’

글로벌 기업 배짱 장사 가능한 근본 원인은 ‘인프라 기술 등한시’ 국산 대안 있지만 도입 꺼려…업계 인식 전환과 정책 수정 필요

2025-04-30     정종길 기자

[컴퓨터월드] 2023년 말 브로드컴에 인수된 VM웨어의 소프트웨어(SW)를 사용하던 고객들은 2024년이 밝자마자 약 300~500%, 많게는 1,000% 이상에 달하는 가격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여기에 최근인 2025년 1분기에는 엔터프라이즈 SW 기업 레드햇이 핵심 제품인 ‘오픈시프트(Openshift)’ 가격을 300% 인상한다고 발표, 국내 고객사들이 강하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방적 횡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미처 대안을 찾지 못하고 인상된 가격을 감내할 각오를 하고 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는 없는지, 대안은 없는 것인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은 SW 강국을 목표로 해왔지만, 정부와 산업계 모두 응용SW에만 치중해 왔다. 이유는 명확하다. 컴퓨터 관련 기술은 절대 다수가 미국이 종주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를 깨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응용 SW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해 온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응용SW뿐만 아니라 국내 전체 SW 시장에서 미국산 SW는 6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글로벌 기업의 점유율이 82%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SW 전문가들은 결국 핵심 인프라 관련 SW 기술을 등한시한 국내 IT 및 SW 산업의 구조적 불균형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격 갑질에 국내 기업들 ‘비명’

“이렇게 가격을 일방적으로 대폭 올릴 줄은 몰랐다. 연간 수천만 원 내던 라이선스 비용이 3배 인상돼 수억 원대로 비용이 뛰게 되면 감당이 어렵다. 지금까지 계획해 진행한 프라이빗 기반의 클라우드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 환경으로의 전환에 큰 지장이 생길까 우려된다.”

레드햇이 오픈시프트 재계약 가격을 300% 인상한다는 소식을 본지(컴퓨터월드/IT DAILY)에 제보한 국내 한 중견 기업 클라우드 담당자의 말이다. 이러한 소식을 고객사에 전달한 파트너사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 급히 한국레드햇 측과 논의해 고객사에 조정안이 전달됐다. 하지만 그 역시 큰 의미에서의 가격 인상이 전제된 안이었다.

제시된 안은 첫 번째, 주요 편의 기능이 빠진 하위 제품인 ‘OKE(OpenShift Kubernetes Engine)’를 사용하면 가격을 인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CI/CD(지속적 통합/배포) 도구와 애플리케이션 서버 기능이 제거돼 기존과 같은 편리한 사용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OKE가 아니라면, 2~3년간 가격인상을 유예한 뒤 이후 재계약을 약속하는 것이 두번째 대안이었다. 이 같은 일방적 가격 인상 상황에 고객사의 불만이 터진 것이다. 레드햇 쿠버네티스의 대안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쿠버네티스 기반 인프라가 전체 IT 시스템에 녹아 있는 상황에서, 플랫폼 변경은 곧 시스템 재구축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레드햇의 오픈시프트 가격 인상 내용을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생성한 그림

레드햇 뿐만이 아니다. 2023년 11월 브로드컴에 인수된 VM웨어는 이듬해인 2024년 초, 자사 가상화 SW인 ‘v스피어(vSphere)’의 영구 라이선스 제도를 폐지하고 구독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일부 기업들은 300%를 넘어 최대 1,000% 이상의 가격 인상을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줬다.

VM웨어는 브로드컴 산하에 들어간 후 영구 라이선스 제도뿐 아니라 상세 가격 정책까지 전면 개편했다. 기존 CPU 단위 과금 체계를 코어 기준으로 변경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AMD 64코어 CPU 사용 고객의 경우 기존 대비 4배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

실제 미국 통신사인 AT&T는 5년 계약 기준 최대 10배(1050%)에 달하는 라이선스 비용 증가를 통보받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결국 연말까지 일정 폭의 인상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양사가 합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에서도 삼성SDS가 VM웨어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 연간 100억 원 이상의 라이선스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큰 폭의 가격 인상에 대한 브로드컴의 공식 입장은 “고객에게 더 나은 유연성과 확장성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라는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표현이 전부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강제 구독 전환’으로 인해 기업들의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는 쪽이 지배적이다.

리미니스트리트의 조사에 따르면 VM웨어 고객의 79%가 “기존 영구 라이선스로도 비즈니스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 같은 이유에서 96%에 달하는 고객 절대 다수가 “대체 솔루션 검토를 위한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술 종속 악용한 배짱 장사”

두 사례의 공통점은 기술 종속성(vendor lock-in)을 극대화한 후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는 점이다. VM웨어는 국내 가상화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며 사실상 독점 상태를 유지해왔고, 레드햇 오픈시프트는 주요 금융기관과 대기업이 내부에 직접 구축하는 클라우드 네이티브 인프라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글로벌 SW 기업들은 고객의 전환 비용을 계산한 뒤, 최대한 그에 가깝지만 초과하지는 않게 교묘히 가격 정책을 변경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 국내 클라우드 업체 대표는 “AT&T 역시 VM웨어의 1,050% 가격 인상 제안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음에도, 기술적 종속성과 타 솔루션으로의 전환 시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 때문에 실제 전환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소위 말해 ‘배짱 장사’를 아주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대응 한계 속 대안으로 국산에 관심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브로드컴의 가격 정책 변경이 문제가 되자 시정 조치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가격 인상을 제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딱히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공정위가 인수 허가 당시 브로드컴 반도체 하드웨어(HW)와 VM웨어 SW의 결합이 가져올 영향만을 고려, VM웨어 솔루션 자체의 독점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은 점이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국내 기술로는 VM웨어나 레드햇 오픈시프트를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다행히도 완전히 그렇지만은 않다. SW 관련 생태계가 오픈소스를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기술 연구와 사업화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최신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IDC에 따르면 2023년 국내 PaaS(서비스형 플랫폼) 시장의 76%를 AWS, MS 등 글로벌 기업이 점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특히 정부 주도의 K-PaaS(한국형 클라우드 플랫폼) 도입 사례가 235건에 불과한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 가운데서도 이 분야에 전문인 업체들이 몇몇 존재한다. 나무기술의 ‘칵테일 클라우드(Cocktail Cloud)’ 및 ‘칵테일 버트(Cocktail Virt)’, 오케스트로의 ‘콘트라베이스(CONTRABASS)’, 이노그리드의 ‘클라우드잇(Cloudit)’ 및 ‘SE클라우드잇(SECloudit)’, 맨텍솔루션의 ‘아코디언(ACCORDION)’ 등이 대표적이다. VM웨어와 레드햇 사태 이후 이들 솔루션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 윈백(win-back) 사례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다만 문제는 기업들과 IT 운영자, 개발자들의 인식이다. 기본적으로 기업 의사결정자들이 “검증되지 않은 국산 솔루션 도입 리스크가 더 크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고 있고, IT 시스템 운영자 및 SW 개발자들의 외산 브랜드 선호도 국산 솔루션 도입의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


인프라 등한시하는 SW 산업은 “사상누각”

VM웨어와 레드햇의 가격 인상은 한국 IT 산업의 구조적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기반 기술, 즉 인프라 SW 분야는 등한시하고 응용 SW 위주로 산업이 성장했기에 외국 기업의 횡포에 대해 쉽사리 대안을 모색하기 어려운 결과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한 SW 기업 임원은 “힘겹게 성장해온 상용SW도 문제지만, 특히 20년 넘게 SI(시스템 통합) 위주의 수주 사업에 매몰되다 보니 원천기술 개발은 뒷전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SW 개발자 A씨 역시 이런 현실에 대해 꼬집었다. A씨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6개월 안에 끝내야 하는 환경에서 개발자들은 오픈소스를 가져다 짜깁기하는 것만을 최선으로 여기고 있다”면서 “국산 SW에 대한 개발자들의 인식 역시 냉정하다. 물론 글로벌 솔루션 대비 성능이나 사용성이 객관적으로 다소 뒤처질 수는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나쁘게 인식한다는 이야기다. 실제 많은 구축사례를 갖고 있는 솔루션임에도, 국산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등 기반 SW를 ‘몹쓸 물건’ 취급하면서 비웃기 바쁘다. 오랜 기간 R&D에 투자하며 기술력을 다지고 있는 기업들을 세금만 빼먹는다며 비난하고, 기업들 역시 굳이 그런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산 응용SW가 글로벌 시장에서 대단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2023년 SW정책연구소(SPRi)는 보고서를 통해 “워드프로세서와 백신 프로그램 외에는 경쟁력이 없다”고 신랄한 평가를 한 바 있다. 물론 시장 경쟁력과는 별개로, 기술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2023년 SPRi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응용SW 기술력은 미국을 100으로 놨을 때 94.2 수준까지 추격한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 2위다.

더 문제인 것은 시스템SW(인프라SW)쪽이다. 우리 시스템SW 기술은 미국 대비 88.9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긴 2위도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급성장한 중국에 뒤처졌다.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외산 SW의 높은 시장 점유율 문제는 일단 차치하더라도, 인프라 층에서의 기술 수준이 응용SW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뒤처진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리고 추가적인 문제는 이러한 편중 현상이 클라우드를 넘어 AI 시대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2024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AI 스타트업 1,200여 개 중 89%가 챗봇, 영상분석 등 응용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GPT-4 수준의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기업이 있기는 하지만 네이버·카카오 등을 포함해 5개사 미만이다.

한 SW 기업 대표는 “AI 시대에 운영체제(OS)와 DB 같은 기반 기술 없이 응용SW만 개발하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 정부의 R&D 지원이 퍼블릭 클라우드 도입과 AI GPU 구매, 그리고 LLM 분야가 아닌 AI 응용 분야에만 집중되는 현실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 수립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SW 역량 강화, 배울 점 있다”

중국은 기술 자립 측면에서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먼저 HW 부문이기는 하지만 2025년 3월 중국 8개 부처가 RISC-V 기반 오픈소스 CPU 보급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기술 자립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론 그간 발표된 중국 CPU의 성능에 대해 의구심도 많지만,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R&D는 계속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SW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웨이의 경우 ‘하모니OS(HarmonyOS)’와 ‘오일러OS(EulerOS)’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는데, 2022년 기준 중국 내 서버 OS 시장 점유율 36.8%를 기록해 레드햇을 추월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우리와는 다른 정치체제 속에서 이뤄낸 결과지만, 최근 중국이 IT 분야에서 보여준 성과들을 생각했을 때 배울 점이 있다는 데 많은 국내 SW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단기 성과에 집중한다는 점이 문제로 평가된다. 최근 연구는 없지만 2021년을 기준으로 SW R&D 예산의 67%가 3년 이내 단기 프로젝트에 배정됐으며, OS·DB 등 기반기술 연구에는 12%만 투자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 SW 관련 학과 교수는 “단독 기술보다는 빠른 상용화가 가능한 응용 분야에 지원이 집중되다 보니, 근본적인 기술 격차가 오히려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치우친 SW 산업 무게중심 옮겨야

SW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결국 SW 산업에 대한 정부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SW 기업들 역시 좀 더 글로벌한 행보가 필요하다. SW 주권을 가지려면 업계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공공기관이 국산 인프라 SW 도입의 선봉에 나설 필요가 있다. 2024년 나무기술이 수행한 LH의 클라우드 플랫폼 전환 사례처럼, 국산 솔루션의 검증 사례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도 레드햇 솔루션을 도입하기보다는, 국산 HW와 SW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SW 기업들은 글로벌 주요 기업 및 국내 대기업 등과 긴밀한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기술 자립을 위해서는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기업들의 기술을 흡수해야 하며, 대기업들의 손을 잡고 대규모 구축 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 대기업들 역시 산업 발전 측면에서 중견·중소 SW 기업들과의 생태계 구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재 양성의 무게중심도 차차 옮겨나가야 한다. 시스템 SW 인재 양성 비율을 현재의 10~20% 수준에서 40% 이상으로 높여야 하며 관련 학과의 개설과 자금 지원, 커리큘럼 확립 등이 필요하다.

클라우드를 넘어 AI까지, IT 기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SW 일부 영역만 잘해서는 뒤따라갈 수 없다. 우리는 CPU, 메모리, GPU 등 반도체부터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킹 등 인프라 HW, 그리고 그 위에 올라가는 인프라 SW와 응용 SW까지 전 영역에서의 기술력을 골고루 갖춘 건강한 IT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두 고래의 패권싸움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새우가 아닌 ‘돌고래’ 정도는 돼야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