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삼국지, AI 패권 경쟁

[컴퓨터월드]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극동 아시아 삼국, 한국·중국·일본은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오며 숙명적으로 대립과 협력을 반복해 왔다. 특히 반도 국가인 한국은 바다를 향해 내려오는 중국과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 사이에 끼여 역사적으로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근세에 들어 20세기까지는 경제·사회·문화·과학·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이 극동 삼국지의 패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시작된 버블 경제 붕괴와 구조 개혁 지연으로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되었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이 반도체, 조선, 배터리 등 일본을 하나둘씩 따라잡으면서 마침내 2022년에 1인당 GDP(국내 총생산) 3만 5,563달러를 기록하면서 일본을 추월했다.

197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중국은 70년대 중반부터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정책에 힘입어 경제개혁을 시작했고 1990년대부터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제조업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어 30년간 연평균 10% 성장을 하면서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한때 ‘대륙의 실수’라고 조롱받던 중국 제품은 ‘대륙의 실력’으로 탈바꿈하였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비스업 비중이 제조업 비중을 추월하면서 중국의 산업 구조가 재편되었다. 그리고 이제 중국은 첨단 AI 기술로 무장하며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맞서려 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토를 중심으로 한 물리적 대립이 주를 이루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세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이다. 4차 산업혁명을 넘어 초지능과 초연결의 시대로 접어든 지금, 기술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다.

이제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넘어 AI 대전환 시대에 접어든 지금 한반도를 중심으로 극동 삼국은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 이름하여 AI 삼국지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 AI 삼국지는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정치, 경제, 안보, 가치관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전면전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 잃어버린 30년을 넘지 못한 기술 보수 국가

한때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자 반도체, 자동차, 전자 분야의 기술 강국이었던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구조 개혁에 실패하고 디지털 혁신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했다. AI 시대에 접어들면서도 여전히 일본은 팩스 행정, 도장 문화, 현금 중심 결제, IT 규제 환경 등 디지털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0년대 중반이 된 지금, 일본의 AI 생태계는 연구 중심, 상용화 미진이라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AI 분야에서도 연구 인프라는 탄탄하지만, 이를 산업화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연결하는 실행력은 부족하다. 도쿄대, 오사카대 등 세계적 연구 역량은 갖추고 있지만, 이를 비즈니스와 정책에 연결하는 속도와 민첩성은 한국·중국에 크게 뒤처지고 있다.

생산성 인구 급감과 노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일본은 AI를 활용한 자동화와 의료·복지 혁신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기어가는 ‘AI 보수 국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때 하늘을 날던 일본은 1980년대에 추락했고, 1990년대부터는 걸어 다니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걷고 있다. AI 시대의 일본은 기초 체력은 있지만 날개가 없는 나라처럼 보인다.
 

중국: AI 독재와 디지털 통제의 강력한 기술 제국

필자가 2016년 중국에 출장 갔을 때, 자금성 앞에 있던 거지가 손을 내밀며 구걸하자 현금이 없다고 말하면 QR코드를 내밀며 현금 이체를 요구해 당시 중국의 디지털 전환 수준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 중국은 14억 인구의 데이터, 국영기업 주도, 강력한 정부 통제로 무장하고 AI 패권 경쟁에서 누구보다 속도와 스케일을 앞세웠다.

바이두(Baidu),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 등 기존의 빅테크 기업 BAT에 더해, 화웨이, 센스타임, 아이플라이텍, 틱톡(바이트댄스)까지 첨단 AI 기업들이 연이어 등장했고 급기야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은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중국 정부는 ‘AI 굴기’를 선언하며 2030년까지 세계 AI 1위를 목표로 각종 정책을 수립하며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얼굴 인식, 감정 분석, 군사용 AI 등 중국의 기술은 정밀하고 빠르며, 어떤 윤리적 논란도 정책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 침해, 표현의 자유 억압, 글로벌 불신이라는 구조적 리스크는 여전하다. 미국과의 AI 기술 냉전 속에서 반도체 수입 제한, 클라우드 기술 봉쇄 등의 압박을 받는 중국은 기술 자립을 위해 전방위적인 국산화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 하지만 날개의 방향은 자유가 아닌 통제 쪽이다. 중국의 AI는 기술적으로는 비약적이지만, 과도한 통제와 검열, 지적재산권 침해, 글로벌 불신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짙어지고 있다. 중국의 비행은 자유의 바람이 아니라 통제라는 프로펠러에 의존하고 있어서 그 비행의 여정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한국: AI 균형 있는 실력자, 비상을 준비하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AI 하드웨어(반도체)와 소프트웨어(플랫폼·모델)를 모두 갖춘 나라다. 삼성과 하이닉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고, 네이버·카카오·토스·LG·KT 등은 검색, 커머스, 금융, 헬스케어 분야에서 자체 AI 모델을 상용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3년 이후 AI 국가전략을 적극 추진하며 공공 데이터 개방, 초거대 AI 모델 개발(HyperCLOVA X, XAI 등), AI 윤리 기준 확립 등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장점은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투명성, 윤리 기반 기술 사용에 있다. 기술을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끌고 가는 보기 드문 국가다. 이렇듯 한국은 AI 기술과 윤리, 투명성, 책임성 면에서도 국제사회로부터 ‘기술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데는 여러 가지 난제가 남아있다. 여전히 파편화된 정책, 느린 규제 개혁, 정치적 갈등, 관료적 리더십 부족, 산업 간 연결 미비는 한국이 비상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달리고 있는 한국은 지금 하늘을 향해 날기 위한 마지막 도약 준비 중이다. 한국이 앞으로 하늘로 날 수 있을지, 아니면 땅에서 정체될지는 향후 5년이 그 성패를 좌우할 골든 타임이 될 것이다.
 

2030년, 하늘을 나는 AI 제국은 누가 될 것인가?

2030년 AI 삼국지의 패권은 누가 차지할 것인가? AI 삼국지의 전장은 지금도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일본은 기초과학과 국민성으로 버티고 있지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날개를 묶고 있고 중국은 날고 있지만, 과도한 통제와 외부의 견제가 그 비행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 이륙 준비를 마친 활주로 끝에 서서 있으며, 남은 것은 속도와 결단 그리고 통합적 리더십이다.

AI 삼국지에서 진정한 승자는 단순히 기술이 뛰어난 나라가 아닐 것이다. 기술을 어떻게 사람답게 활용하느냐, 사회와 연결하느냐, 미래 세대를 준비시키느냐가 진짜 전쟁의 핵심이다.

누가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인가? 누가 하늘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누가 이 전쟁을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극동의 하늘 위에 쓰일 AI 삼국지의 다음 장이 이제 막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