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데이터의 자산화 시대, 판매자의 준비와 과제
김훈 데이터거래사
<글쓴이 약력>
▷ 피타그래프 대표이사
▷ 항공우주연구소 영상활용촉진 민간위원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라오스공공데이터전략 위탁정책연구위원
▷ ‘22년 국민대학교 AI&빅데이터 석사(수료)
[컴퓨터월드] 대한민국 데이터 시장의 여명
2013년 한국에 낯선 한 프로젝트가 공지되었다. ‘서울시 빅데이터활용기반조성사업’이 그것이다.
서울시는 통신사의 유동인구 데이터를 분석해 심야 시간에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 심야버스 정류장과 배차간격을 정하는 약칭 ‘올빼미버스사업’을 시행했다. 심야버스 사업은 이전에도 있었던 정책이었지만 올빼미버스사업은 당시 온갖 매체와 기관, 일본 방송사에서도 인터뷰를 오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 이유는, 통신사의 통화데이터를 유동인구 빅데이터로 가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노선과 정류소를 정하는 ‘특별히 똑똑한’ 방법론을 적용한 공공에서 보기 드문 정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다양한 빅데이터 프로젝트가 전국적, 전산업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후 현재까지 10여 년간 정부 주도로 4차산업혁명과 AI 시장을 이끄는 주요한 자원으로 빅데이터는 매년 엄청난 예산지원을 동력으로 급속히 외형이 확장되고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과기정통부는 2019년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공공데이터포털을 비롯해 빅데이터 플랫폼 21개를 구축하는 등 현재 크고 작은 수백 개의 빅데이터 플랫폼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OECD 디지털 정부평가 1위, 그리고 4차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해 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들어간 비용에 비해 얼마나 활발한 거래와 신산업 창출이 일어나고 있는가 또한 데이터만 모았지 AI에 대한 대비는 늦지않았느냐는 냉정한 평가도 있다.
새로운 자원으로서 데이터
수렵과 채집에서 농업으로 그리고 산업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의 정보화 사회를 거치고 나서 이제 네 번째 혁명이라며 데이터를 이용해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한다. 마차가 증기기관으로, 주판과 종이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바뀌다 이제 인공지능과 로봇이 생산을 대체할지 모르는 새 시대 혼란의 초입에서 새로운 먹거리가 된다는 데이터라는 물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우리는 아직은 모르는 부분이 많다.
데이터거래사 교육과정에서 빠지지 않았던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였다. 즉, 4번째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데이터거래사의 역할과 정의에 대한 물음이 그 시작이라는 것이다.
과거 ’복덕방‘이라고 불리던 중개인이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으로 전문화되었듯 데이터거래사는 경험을 공유하고 프로세스를 정비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전문가로서 역량을 함께 강화해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우리는 이 세대에 처음으로 사고 팔아야 하는 물건으로 데이터를 선택해 버린 사실 좀 머리 아픈 상황에 빠져버린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상품과 자산으로서 데이터
데이터는 그간 인류가 거래해 왔던 상품과는 다른 좀 특별한 점들이 있다. 먼저 생산과정을 보면 자연에서 자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것과도 다르다. 예를 들면 통신사는 유동인구 데이터를 만들려 했던 게 아니라 사용료 청구와 연속적인 통화를 위해 핸드폰의 기지국 위치를 추적하다 보니 유동인구 데이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데이터 자체를 생산하려 했다기보다는 비즈니스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발생되는 측면이 있었다.
비즈니스 활동에는 반드시 데이터가 생겨난다. 데이터는 전자적으로 존재하므로 소프트웨어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TV나 자동차같이 시간이 지나면 물리적 가치가 낮아지는 하드웨어적 성질도 있다. 또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무한히 복제되는 디지털 상품이기도 하지만 가격은 무한 복제되는 물건임에도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싼 경우도 많다.
음악은 무한이 복제되는 상품이지만 두 노래를 섞어서 들을 필요가 없는 반면 데이터는 무한히 복제되지만 금속을 섞어 합금을 만들 듯이 결합을 통해 또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물질이 갖는 물리적, 화학적 속성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이 또 다른 의미에서 세상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도구라면 데이터는 인공지능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데이터는 기존 개념으로 분류가 어려운 완전히 새로운 자원의 위상을 부여받을 것이다. 곡물, 석탄, TV, 자동차와 같은 상품을 거래하던 우리로서는 아주 이상한 물건을 팔아 보겠다고 얼떨결에 자격증을 딴 셈이다.
디지털 상품으로 데이터 가치평가에 대한 제고
랩그로운다이아몬드(합성다이아몬드)가 시장에 나온 뒤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급속히 떨어지며 기존 시장에는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재화의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낮아지는 것은 시장의 원리인데 데이터는 무한히 복제되는 자원이면서도 생산자가 희소한 데이터의 가격은 매우 비싸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예로 국내 통신사의 유동인구 데이터는 1년 라이선스가 대략 1억 원 수준이다. 이런 금액은 연구자들이나 학생은 물론 일반기업도 사실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공공데이터포털 등을 통해 무상으로 공급하는 데이터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과점이나 독점 생산되는 데이터, 게다가 시장에서 활용도가 높은 데이터의 가격은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이 현실이다.
데이터는 다른 데이터나 서비스와 결합되어야 가치가 발현되는 자원이다. 데이터 자체를 서버에 담아 두는 것만으로 효용을 느끼는 사용자는 없을 것이다. 빅데이터플랫폼같은 데이터 장터를 만들어 생산자가 팔아서 수익을 내라고 만든 쇼핑몰 형태의 모델은 생태계가 만들어질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차라리 데이터를 정부가 구매하여 사회간접자본(SOC) 개념으로 민간에 무상이나 저렴하게 제공하는 모델도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쌀을 정부가 수매하여 공급하거나 수도사업을 국가가 운영하는 사례가 비슷한 개념일 것이다.
품질을 유지하고 가격을 공익에 부합하도록 하여 시장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서비스를 쉽게 만들어 활성화를 기대하고 여기서 생기는 경제적 이익을 세금으로 회수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데이터를 구입하고 가공하는 일에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러한 수고와 비용을 들이지 않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국가가 나서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 차를 만들고 고속도로도 닦아야 한다면 어디 출발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데이터 장터에 1천만 원 가격으로 상품을 올려놓으면 10개 정도 판매된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총부가가치는 1억 원이다. 만약 정부가 생산자와 협의해 2억 원에 판권을 사서 마치 통행료만 내고 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수도꼭지만 틀면 물을 저렴하게 쓸 수 있듯이 데이터를 거의 무료로 제공하면 100개, 1000개의 비즈니스와 신사업 개발에 활용되고 수백, 수천억의 부가가치가 생길지도 모른다.
데이터가 가진 무한히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자원으로서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마치 온라인쇼핑몰에 있는 상품처럼 데이터를 취급하고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유통 방식일지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 시장에서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경험해야 할지도 모른다.
데이터거래사의 역할
데이터 거래는 이제 시작되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이를 돕는 역할을 하는 데이터거래사는 거래가 왕성해질수록 그 수요가 많아질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공공 빅데이터 플랫폼 모델은 생산자가 약간의 예산을 받고 데이터를 올리는 형태이므로 더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예산이 중단되면 공급도 중단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이 다운로드 되는 것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낮은 품질의 데이터는 플랫폼에 올리고 고품질은 별도의 경로로 판매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만약 정부가 약간의 예산이 아닌 ‘혹할만한’ 가격을 주고 ‘수매’ 형태로 구매한다면 그 품질과 적정가격, 가치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거래사의 첫 번째 전문성이 발현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시장에 데이터를 공급할 때 수요자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코디네이터 해주거나 자동차 데이터, 상권 데이터, 영상 데이터, 플랜트 데이터 등 특정 도메인 데이터의 양, 품질과 가치와 활용을 컨설팅해 주는 역할 등으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는 AI 산업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이며, 이제 막 거래와 무역이 일어나기 시작한 산업이다. 다양한 시행착오의 시기이기 때문에 도전과 경험을 통해 세계적인 시장을 이끄는 모델을 찾아낸다면 산업을 선도하는 자로서 또 하나의 K로서 글로벌한 위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이터거래사는 아주 멋진 직업으로 부러움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데이터 세계는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처럼 세계를 제패한 글로벌 플랫폼이 없는 신대륙, 신시장이다. 누가 데이터 세계의 콜럼버스가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