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제조업 사례로 알아본 소통의 중요성

성공적인 AI 기술 개발 및 도입- 산학협력 사례를 중심으로

2025-09-30     손영두
                                        동국대학교 산업시스템공학과 손영두 교수

손영두 교수는 2017년 3월부터 동국대학교 산업시스템공학과에 재직 중이다. 손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데이터과학연구실은 최신 인공지능 기술 개발 및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산업 응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제조 공정 및 설계 자동화, 설비 이상 탐지, 기상 위성 영상 분석, 의료 영상 분석, 문서 인식 및 요약, 농산물 품질 관리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AI 기술을 접목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2024년 12월 기상 위성 영상 자료를 이용해 미래 강수 예측 및 전지구적 온실가스 분포를 추정하는 AI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환경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연재 순서

 제1회: AI 도입, 모델보다 문제 정의가 먼저다 (9월호)

 제2회: 제조업 사례로 알아본 소통의 중요성 (이번호)

 제3회: 기상 위성 분석 사례로 알아본 도메인 지식의 중요성 (다음호)

 

* DISCLAIMER: 강좌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다. 일부 사례는 설명을 위해 각색되었을 수 있다.

 

[컴퓨터월드] 같은 회사, 같은 공정, 그리고 같은 구성원이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첫해의 프로젝트는 실제 공정에 적용되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줬고, 다음 해의 프로젝트는 보고서에는 성공으로 남았지만 현업의 체감 이득이 약해 확산되지 못했다. 이러한 차이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난이도나 알고리즘보다는, 초기에 문제 정의를 위한 소통에 기인한 면이 컸다.

이번 호에서는 한 제조 기업의 사례를 통해 그 차이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한 교수님으로부터 산학 프로젝트 진행 의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까지 필자는 단 한 번도 연구책임자로 산학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과 진행 방식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으며 회사에 방문해 프로젝트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해당 프로젝트 담당자는 회사 내 연구소의 수석급 연구원으로, 기존에 산학협력 경험이 많지 않은 필자를 배려하여 주었다. 특히 성과에 대한 강한 압박을 느끼고 있었는데, 예상되는 구체적인 수치와 그 이유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해주어 용기를 얻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출발점은 목표 설정을 위한 소통

우선 프로젝트의 주요 멤버는 다음과 같았다. 앞서 언급한 연구소의 수석급 연구원이 총괄 PM 역할을 맡았으며, 현장 엔지니어, IT 관리팀 등이 회사에서 참여했다. 학교 쪽에서는 필자와 더불어 박사급 대학원생 1인과 석사급 대학원생 2인이 AI 실무 담당자로 참여했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역시 목표 설정을 위한 소통이었다. 회사 쪽에서 처음 생각한 목표는 공정에서 사용되는 설비들의 설정 값을 공정에 문제가 없도록 적절하게 세팅하는 것이었다.

이때 필자가 가장 집요하게 논의했던 부분은 ‘적절하게’의 의미였다. 처음에는 생산되는 제품의 규격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설정 값을 찾는 쪽이 고려되었지만, 이 경우 결과적으로 기존에 조업자들이 설정 값을 직접 결정하던 방식과 큰 차이가 없었다. AI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설정 값이 더 좋은지에 대한 정의가 추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공정에 대해 많은 소통을 한 끝에 목표를 생산되는 제품 규격에 문제가 없도록 하면서, 동시에 생산 속도를 최대화하도록 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가능하다면 공정 설비들 사이의 부하가 균등화 하여 특정 설비에 고장 또는 부품 교체가 자주 일어나는 상황을 막고자 했다.

데이터셋은 이미 잘 구축되어 있었다. 과거에 조업되었던 실측치에 대해 수만 개 수준의 제품 정보, 설정 값 및 센싱 데이터가 기록되어 있었다. 앞서 공정에 대하여 많은 소통을 하였지만, 막상 데이터를 보니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 추가적으로 많은 질의가 이루어졌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내용은 입력 변수의 결정이었다. 지난 호에서 언급하였듯 필자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입력 변수 선택 방법은 ‘이미 연관 관계가 잘 알려진 변수 + 기존에는 반영되지 못했지만 직관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변수’의 조합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해당 내용이 충실히 반영됐다. 설정 값을 정하는 기존 방식에서는 물리법칙에 의거한 공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변수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AI 모델은 그러한 변수의 사용이 자유롭기 때문에 수집된 다양한 자료들을 입력 변수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기상 변수가 조업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현장 엔지니어의 직관을 반영해, 온습도 등의 기상 변수를 추가로 수집해 입력 변수로 활용했다.
 

단순한 모델 사용으로 민감도 줄이고 안정성 확보

모델은 목표 달성이 가능한 모델 중 가장 단순한 모델을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를 통해 모델의 민감도를 줄이고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모델 선택보다는 앞서 언급한 목표인 생산 속도 향상과 부하 밸런싱을 어떻게 AI 모델을 통해 달성할지 시스템 구조를 설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산업 전문가 팀과 AI 전문가 팀의 소통을 통해 생산 속도와 부하가 연관이 있음을 확인했고, 1차로 속도를 증가시키고 2차로 설비 별 속도를 조정해 부하 제약을 만족하도록 최종 설정 값을 도출하는 2단계 방식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다만 실시간으로 처리되어야 하는 공정의 특성을 반영해 특정 임계 횟수만큼 속도 조정을 진행해도 유효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는 경우 현재까지 도출된 설정을 활용하도록 하여 공정이 늦춰지는 것을 방지했다.

마지막으로 모델 개발 과정 중에 해당 공정에서 새로운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새로운 제품의 입력 값들 중 일부는 기존 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입력 값의 범위를 벗어나 예측 모델이 취약할 수 있는 외삽 문제 상황에 빠지도록 만들었으며, 추가 데이터 수집과 재학습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

파일럿 테스트는 회사 내 IT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이미 프로젝트 초창기부터 참여해 데이터 수집 등에도 관여한 IT 전문가였기에,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으며 AI 연구팀과 함께 파일럿 환경도 수월하게 구축했다.(이 프로젝트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어떤 프로젝트는 회사 내 IT 전문가의 비협조로 인해 데이터 수집에 실패한 채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다.) AI 팀은 학습된 모델을 적절한 형태로 포팅해 제공했고, 회사 내 IT 전문가는 해당 모델이 PLC에 연동되어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초기 테스트는 조업이 없는 날 가상의 입력을 보내어 적절한 출력값이 도출되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데이터 전송, 값 변환, 권한 문제 등을 점검했다. 이 때 발생했던 사소한 이슈는 데이터를 정수로 변환해 전송한 후 모델에 입력하기 전에 역변환을 하지 않아 이상한 출력이 표출된 사례들이 존재했다. 그 이후 실제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모델이 제 시간에 출력을 도출할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

파일럿 테스트 중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는데, 입력 데이터를 수집하는 한 센서가 교체되어 모델 학습에 사용된 기존 입력과 값의 분포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센서의 민감도 향상, 설치 위치의 미묘한 오차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 다행히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값의 변화가 모든 데이터에서 균일하게 발생해 이 부분은 단순한 보정을 통해 쉽게 보완할 수 있었다.
 

AI 모델에 거부감 사라져

충분한 테스트를 거친 뒤에 마지막으로 실제 조업에 AI 모델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조업자들이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는 환경에서 AI 모델을 통하여 설정 값을 도출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처음 조업자들은 AI 모델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으나, AI 모델이 우수한 설정 값을 오류 없이 만들어내자 점점 AI 모델의 편의성을 좋아하게 되었다. 최종 테스트의 결과는 기존 방법 대비 생산 속도가 유의미하게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하도 더욱 적절히 분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테스트를 마지막으로 과제는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과제 종료 후 약간의 휴식기를 가지며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들었다. 조업자들은 AI 모델의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모두 사라졌으며, 오히려 AI 모델에 대해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타 공장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수행 중이라고 하였다. 필자 입장에서도 처음 수행한 산학협력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소개된 AI 기술 도입 단계에 비추어 보면, 이 프로젝트에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는 여러 위험 요인들이 존재했다. 우선 AI 관점에서 문제 정의가 모호한 점이 있었다. 이 부분은 초기부터 많은 소통을 통해 문제를 명확히 정의함으로써 해결했다.

다음으로 신제품과 센서 교체로 인한 데이터 분포의 변화가 있었는데, 이 부분도 신규 데이터 수집 및 분포 파악 등으로 해결했다. 마지막으로 조업자들의 AI 도입 거부 문제도 있었는 데, 이 부분은 산업 전문가인 현장 엔지니어가 조업자들을 끊임없이 설득해 결국 성공적으로 AI 기술을 생산 현장에 도입할 수 있었다.
 

첫 번째와 다른 두 번째 프로젝트

위와 같은 성공에 힘입어 다음 해에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첫 번째와 유사한 프로젝트로, 같은 공정에 대해 다른 설정 값의 최적을 정하는 문제였다. 따라서 첫 프로젝트와 유사하게 진행하면 두 번째 프로젝트도 성공할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이 금방 드러났다.

회사와 학교, 양 쪽의 구성원 모두 지난 과제와 유사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어 본 과제에 대한 첫 번째 미팅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지만, 그 시기는 과제 기획부터 많은 소통을 하던 첫 과제와 비교하여 이미 많이 늦어져 있었다.

그리고 회의를 진행하면서, 문제 정의 부분에서 지난 번과 비슷하지만 더 치명적인 문제를 알게 되었다. ‘적절한’ 설정 값을 결정하는 AI를 개발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설정 값이 생산 속도 및 설비 부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던 첫 번째 문제와는 다르게 두 번째 문제에서는 목표로 하는 설정 값이 생산 속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번 설정 값은 첫 번째 문제에서보다 더 앞선 단계에서 결정되는 설정 값들이며, 따라서 해당 설정 값을 어떻게 설정하더라도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개발한 AI 기술을 이용하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즉, 성공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특징적인 차별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해당 설정 값들을 이해하기 위해 공정 과정에 대한 많은 질의 응답을 진행했지만, 결국 뾰족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조업자들의 설정 값을 모방해 결정하는 AI를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했다. 그러나 이 방향은 근본적으로 AI 기술을 도입해도 자동화 및 표준화 이외에는 조업자들이 결정하는 방식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허용 범위가 넓은 설정 값의 특성 상 조업자들마다 값의 설정이 상이하였으며, 따라서 조업자를 잘 모방한다는 것을 정의하기도 어려웠다. 최종적으로는 조업자들의 패턴을 종합적으로 바라보아 타겟 변수를 설정하고, 해당 타겟을 잘 예측하는 AI 모델을 구축했지만 실제 공정에 탑재되어 사용될 정도로 현재 시스템 대비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겪었던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지난 프로젝트에 대한 보완 과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 실제 생산 공정에 도입되어 활용되던 첫 번째 모델의 약점이 한 두개씩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발생하였던 주요 약점들은, 지속적으로 개발되는 새로운 제품에 대한 예측 성능 저하, 센서 노후화 등으로 인한 입력 분포의 지속적인 변화 등이었다. 그리고 같은 공정에 대한 연속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지난 결과물을 보완하는 과정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고, 회사 입장에서도 효과가 불명확한 현재의 프로젝트 진행보다는 이미 도입되어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지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신 데이터의 패턴을 지속적으로 보정해줄 수 있는 방향으로 AI 모델을 보완하여 해당 문제를 해결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는 아무래도 고민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 글을 작성하며 추가로 확인해보니 두 번째 프로젝트에서의 소통을 위한 문서의 양이 첫 번째 프로젝트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지나친 소통은 프로젝트 진행에 저해가 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소통이 부족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음 호에서는 다른 산학협력 사례들을 통해 AI 기술 개발 및 도입에서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한 다른 예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