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 맞이한 ‘바이텍씨스템’ 이백용 회장

이백용(54세) 바이텍씨스템 회장. 그는 IT 전문 기업이자 중소기업인 바이텍씨스템을 올해로 만 20년째 이끌고 있다. 말이 20년이지, 이 회장은 결코 짧지 않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이 회장이 걸어온 길이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같이 대기업 중심의 기업환경에서 자금력이나 기술력, 영업력 등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중소기업을 이끈다는 것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회장이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때는 1998년이라고 한다. IMF 시기였던 당시 환차손을 심하게 입었고, 매출이 40%나 급감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아닥쳐 문을 닫기 직전의 위기상황까지 몰렸었다고 한다. 결국 이 회장은 일부 부서를 별도 법인체로 독립시키는가 하면 일본이나 미국의 협력사들에는 직접 찾아가 상환연기 요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직원들은 급여를 깎였음에도 불구하고 퇴직금으로 별도 회사를 설립하는데 흔쾌히 동의했고, 또한 일본이나 미국의 기업들도 이 회장의 상환연기 요구에 오히려 격려까지 해 주면서 수락해 주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 회장의 진솔한 성격과 정직함 때문이었다는 게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기업을 운영해 오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돈을 갚지 않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고, 또한 한 우물만 파야만 한다는 게 소신이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IT 중소기업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손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회장은 바이텍씨스템을 '행복을 나누는 기업'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그래서인지 이 회사 직원들의 표정은 밝고, 맑아 보였다.










'성실과 정직'으로 승부

"어렵고 힘들어도 한 우물만 파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성실과 정직으로 비즈니스를 하자는 게 소신입니다."이백용 회장은 바이텍씨스템을 창업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이 같은 일념으로 기업을 경영해 왔다고 한다. 물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중소기업 경영인으로서 이 같은 소신을 계속 지켜내 오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그런 인물도 흔하지 않다. 대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기업환경에서, 그리고 라이프사이클이 가장 짧은 IT 기술과 제품으로 비즈니스를 펼치는 중소기업 경영인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이백용 회장이 20여 년 동안 바이텍씨스템을 무난히 이끌어 올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말대로 '정직'과 '성실'이었다는 게 그를 아는 대다수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직원들을 친구처럼 격의 없이 대하는 이 회장의 친근함과 편안한 관리 스타일은 직원들을 한 가족으로 묶는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1998년, 바이텍씨스템은 IMF에 따른 200만 달러 이상의 환차손과 매출실적 급감 등으로 위기를 맞이한 바 있다. 당시 직원들의 애사심과 일본이나 미국의 협력사들의 지원과 믿음이 없었다면 살아날 수 없었다고 한다. 즉 당시 바이텍씨스템은 위기극복을 위해 직원들의 봉급을 깎는가 하면 일부 부서는 별도의 회사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직원들은 적극 지지해 줬고, 바이텍씨스템에 제품을 공급하던 일본의 캘컴사와 미국의 BII사 및 JRL사 등은 이백용 회장의 상환금 연기요구에 흔쾌히 수락해 줬다고 한다.

5,000만원으로 시작

그만큼 이 회장에 대한 직원들이나 협력사들의 신뢰는 두터웠던 것이다. 지금도 떠났던 직원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고, 20년에서부터 19년, 18년 동안 바이텍씨스템과 함께 동고동락을 해 온 직원들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이 회사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기업문화이자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바이텍씨스템은 1988년 3월 설립, IMF 때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성장 발전해 왔다. 특히 설립 이후 약 10년 동안은 비즈니스가 상당히 잘 된 중소기업 가운데 하나로 손 꼽혔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출발한 바이텍씨스템은 미국의 캘컴(CALcomp)사의 플로터 판매부터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첫 해 매출실적이 100만 달러였고, 그 이듬해는 이보다 두 배 더 많은 200만 달러의 매출실적을 기록하는 등 꾸준히 성장했다.

1989년에는 미 CA사의 소프트웨어 솔루션들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1990년에는 미 DEC사의 시스템과 주변기기 등을 공급하는 등 다양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들을 공급하면서 더욱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1993년에는 미 DEC사의 시스템과 주변기기만을 공급하는 (주)바이텍정보통신사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시키기도 했다.

IMF로 위기를 맞이했던 1998년에는 출력장비 사업부와 그래픽 사업부를 각각 (주)바이텍테크놀로지사와 (주)바이텍씨엔지로 별도 분리 독립시켰다. 바이텍씨스템은 이 같은 계열 분리와 사업다각화 등을 통해 성장 발전은 물론 위기를 극복해 왔고, 한편으로는 기술축적과 자사만의 경험 노하우 등도 쌓았다.

IMF 이후 1999년에는 모바일 솔루션을 개발, 한 때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즉 당시 B to B 솔루션인 SMS를 세계 최초로 개발, 국내의 많은 보험사에 공급하기도 했다. 또한 전자상거래 서버와 자바 플랫폼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 모바일 솔루션 부문에서는 앞서가는 중소기업으로 주목을 받아 산은캐피탈, KTB, SK 등으로부터 약 50억 원의 자금을 투자받기도 했다.

SMS 솔루션 세계 최초 개발

그러나 솔루션 개발은 국내 시장의 한계로 지속적인 성장에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바이텍씨스템은 이에 따라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즉 RFID 프린터와 RFID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의료 ERP 전문업체인 '아이트리'를 2007년 6월에 인수하기도 했다.

여하튼 이백용 회장은 이 같은 여러 가지 사업다각화와 다양한 변신을 통해 20여년의 IT 중소기업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이 회장은 모 기업인 (주)바이텍씨스템을 포함해 (주)바이텍정보통신, (주)바이텍테크놀로지, (주)바이텍씨엔지, (주)아이트리 등 5개의 기업과 180여명의 직원을 이끌고 있는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게 그를 아는 주변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아무튼 이들 기업들은 연 매출이 10억 원에서 200억 원에 이르는 작은 규모의 기업들이지만 전문성과 기술력으로 본다면 결코 대기업들도 가볍게 여길 수 없을 만큼 그들만의 탄탄한 기술과 경험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이백용 회장은 1988년 바이텍씨스템을 설립하면서 목숨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비록 기대만큼 성장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행복을 나누는 기업'으로 성장 발전시키는 게 그의 작은 소망이자 희망이라고 한다. 5년 후에는 1,000억 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 발전시켜 코스닥에 등록시키는 것도 가까운 목표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정직과 성실로 살아온 그의 역사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20년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이백용 회장으로부터 직접 들어본다.

"SW 개발은 정부가 직접 나서야"

-IT 중소기업으로서 창립 20년은 남다른 감회를 가질 것으로 봅니다만.
▶벌써 20년이라니, 세월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정신없이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좋을 때도 있었지만 1998년 IMF 때, 위기에 직면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는 주로 성장가도를 달려왔고, 그 때를 계기로 바이텍씨스템이 많은 변신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기업이 주도를 하고 있는 국내 기업환경에서는 중소기업이 비즈니스를 한다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술력이나 자금력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기술개발과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IT 중소기업으로서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IT, 특히 소프트웨어가 중요하고, 분명히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임에는 틀림없지만 쉽게 뛰어들 수가 없습니다. 대다수의 소프트웨어들은 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분명합니다. 미국 기업들은 기본 아키텍트에 엄청난 투자를 합니다.

우리나라는 몇 십억 원을 투자하는 반면 미 기업들은 몇 백억 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금력이나 기술력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차이가 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국 기업을 뒤따라가기도 바쁩니다. 해서 미 기업들이 개발해 놓은 외산 솔루션들을 공급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렇다고 수백억 원을 투자해 개발할 만큼 여력도 없고, 또한 개발한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 디자인 수준이 상당히 낮고, 설계나 코딩 능력은 다소 앞선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점이라면 다큐멘트(Document)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설계, 코딩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다큐멘트가 없다면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사실 바이텍씨스템도 한 때 SMS 같은 솔루션을 개발, 국내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시장규모가 너무 작고, 세계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져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펼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마 다른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막대한 자금력을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은 하루빨리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게 좋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만큼 머리 좋은 인력을 보유한 국가는 없다고 봅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머리 좋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입니다. 우수한 인력을 이런 데 투입한다면 국가경제는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IT 중소기업들도 큰 시장만을 볼 게 아니라 규모에 맞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봅니다. 대기업들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자사만의 독특한 기술과 솔루션으로 승부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IMF 때 가장 어려웠다"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이라면.
▶크게 세 가지라고 기억됩니다. 첫 번째는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기업환경에서는 중소기업이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직접 개발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과 막대한 자금력을 필요로 하는 게 소프트웨어 솔루션 개발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IMF 때 환차손을 크게 입은 것입니다.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이라면 그 어느 기업도 쉽게 피해 갈 수 없었다는 게 당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바이텍씨스템은 직원들과 미국, 일본 협력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바이텍씨스템의 주력 제품인 플로터를 개발 공급한 미 컬컴(CALcomp)사가 망한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국내 공급할 제품이 없어 자연히 영업에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바이텍씨스템은 어떤 상황에서든 어려움을 극복해 왔고, 그 동안의 비즈니스에 대해 결코 후회를 하지는 않습니다.

-보람 있었던 일도 많았겠지요.
▶첫 번째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봅니다. 나쁜 사람들도 많겠지만 저는 좋은 분들을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두 번째는 작년에 바이텍시스템을 비롯해 전 계열사 직원들과 함께 체육대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모두 참석한 인원은 180명이었고, 사장만 5명이었습니다. 체육대회를 치르면서 20년 동안의 노력이 그렇게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IT는 핵심 역량이 사람에 있다고 봅니다. 중소기업이지만 많은 인력들을 육성해 왔다는 게 또 다른 보람이라고 판단됩니다.

직원과 협력사 도움으로 극복

-회장님만의 리더십이 있다면.
▶직원, 고객, 주주 등을 섬기면서 일해 왔습니다. 특히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라고 봅니다. 해서 직원들을 더 많이 섬기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바이텍씨스템은 설립 초창기부터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워크샵 등을 많이 갔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전 직원들과 함께 일본 관광을 갔다 온 적도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인력이동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닙니다. 물론 솔루션을 개발하면서 인력이동이 많았었던 적도 있었지만 부드러움으로 직원들을 리드해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퇴사를 했다가 다시 입사하는 직원들이 많습니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회사의 근무환경이 좋기 때문이 아닐까요?

-바이텍씨스템만의 독자적인 기술력과 제품이 있다면.
▶앞서 말씀을 드렸지만 중소기업이 어떤 솔루션을 독자 개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이텍씨스템은 한 때 세계 최초로 모바일 솔루션인 SMS를 개발, 국내 대다수의 보험사에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이라는 한계 때문에 사실상 지속적으로 개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소프트웨어 솔루션 개발은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7년에는 ERP 전문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바이텍씨스템은 그 동안의 개발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개발역량을 충분히 쌓았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서비스 지원력은 감히 국내 최고라고 자부할 수도 있습니다.

5년 후 코스닥 상장

-바이텍씨스템만의 영업전략이라면.
▶성실과 정직, 그리고 가치창출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최적의 솔루션을 최상의 서비스로 제공, 고객만족은 물론 직원이나 협력사, 더 나아가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매출규모나 이익면에 있어서 아직은 작지만 그러나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기업으로 거듭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사실 바이텍씨스템은 접대를 잘 하지 않습니다. 접대를 하면 우선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실과 정직만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향후 10년 후 바이텍씨스템은 어떤 기업으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하시는지요.
▶지금보다 두 배 더 많은 매출규모, 즉 약 1,000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봅니다. 이를 바탕으로 코스닥에 등록도 하겠지요.

이 같은 규모로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솔루션을 갖춰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 일환으로 RFID 애플리케이션과 의류 ERP 분야에 관심을 갖고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참조로 RFID 애플리케이션 부문은 바이텍테크놀로지가, 의류 ERP 분야는 아이트리가 각각 맡아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 솔루션을 중심으로 플랫폼(BI, 모바일 솔루션 등)을 개발해 솔루션 전문 회사로 발돋움할 계획입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고,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편 이백용 회장은 인고의 20년 역사와는 달리 언제나 그 모습으로 활달하고, 밝은 웃음을 보였다. 인터뷰 중에도 그의 활달한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웃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지수가 높음을 말해 준다고 한다. 바이텍씨스템은 이 회장의 소망 대로 행복을 나누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백용 회장 약력
1971년 경기중학교 졸업
1973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8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1982년 미국 U.C.L.A 대학원 전산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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