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정치권 게임산업 과잉규제에 반발


▲ 근조 현수막이 걸린 K-iDEA 홈페이지 메인화면


[아이티데일리] 국내 게임산업이 올해 10조 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정작 업계에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해외에선 국내의 게임문화와 산업에 대해 경외심을 보이고 있지만 내부에선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게임산업에 진흥과 규제를 균형 있게 추진하겠다던 정부와 정치권이 이제는 규제에 초점을 맞춰 오락가락 하는 정책과 기조를 보여 국내 게임업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한 쪽에서는 진흥을, 다른 한 쪽에서는 규제를 주장하면서 게임업계 종사자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때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한류 바람을 일으킨 애국자가 됐다가도, 한 순간에 마약을 제조하는 범죄자로 취급받는 게 국내 게임산업인의 현실이다. 게입업계를 혼란에 빠트리게 한 정치권과 정부의 규제방안과 게임업계의 현 상황을 파악해본다.

마약, 도박과 같은 취급에 분노하는 게임업계

한국 콘텐츠 수출의 60% 가량을 담당해 온 게임산업이 빈사상태로 치닫고 있다. 최근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게임 산업을 규제하는 법률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난달 7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인터넷 게임을 알코올,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이라고 표현하면서 게임물을 사회악으로까지 표현했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게임산업을 규제하는 법률안을 내놓고 있다. 게임을 중독 유발 물질 및 행위로 규정하고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설치, 관리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의 법안이 대표적이다.

업계는 이같은 게임산업 규제 움직임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다. 게임이 문화콘텐츠 수출에서 60%가량을 차지하는 등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점은 크다는 점에서 관련 산업을 ‘사회악’으로 치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 구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게임을 4대 중독물로 규정하고 보건복지부에 규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중독법’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사 표시로 홈페이지에‘근조’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아울러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 중인‘게임 중독법’은 게임산업에 대한 사망선고와 다름없다며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도 발표했다.

K-iDEA는 성명서를 통해“한국 게임산업은 문화 콘텐츠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10만여명의 산업역군들이 종사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산업”이라며“전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의 우수 산업을 악으로 규정하는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중독법은 구한말 추진됐던 쇄국정책의 2013년 버전으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행위”라고 반발하며“과거 쇄국정책이 실패한 것처럼 미래 게임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집계한 올해 상반기 게임의 수출액은 1조5,011억원으로 전체 콘텐츠 수출액 2조5,923억원의 57%에 달한다. 케이팝으로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음악(2,143억원)보다 7배 많은 액수다.

게임규제, 불난 집에 부채질 한 격

최근 국내 게임 업체들은 내부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은 외산게임에 밀려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고, 대안으로 제시됐던 모바일 게임도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신작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고, 기존 작품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의 경우 미국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PC방 사용시간 점유율에서 40% 이상을 계속 질주하고 있고, EA의 ‘FIFA 온라인 3’가 뒤를 이었다. 이들 외산게임의 합산 PC방 점유율은 50%를 넘어선 만큼 국내 게임사들은 절반도 안 되는 유저층을 상대로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모바일게임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올해부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레드오션’이 되고 있다. 여기저기 수수료를 떼이면서 평균수익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올해 모바일게임 시장은 지난해에 비해 올해 51.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내년에는 성장률이 8.2%, 2015년에는 7.1%에 그쳐 정체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국산 온라인게임과 달리 국산 모바일게임의 경우 시장에 늦게 뛰어든 후발주자로 게임산업을 이끄는 대세가 되기에는 한계가 따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이 내부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부처나 여당이 게임 진흥과 규제에 관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고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제각각이니 게임산업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 역행하는 게임규제

정부가 처음부터 게임산업을 규제하고 나선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 12월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산업진흥 제2차 중장기계획 발표를 통해 2012년까지 세계 3대 게임 강국 도약을 목표로 35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국내 게임산업 시장 규모를 10조원, 수출 규모36억 달러를 달성시키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또 유인촌 전장관은 2009년 글로벌게임허브센터 개소식에서 게임 산업의 발전을 위해 규제보다 진흥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을 강조했었다.

이후 게임산업 진흥에 무게가 실리면서 국내 게임산업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가운데서도 빠르게 성장했다. 환율이 상승한 시기 오히려 외화벌이에 효자 역할을 하며 침체된 국내 시장을 활성화 시키는 역군으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신바람 난 성장을 보였던 국내 게임산업은 점차 위기에 빠지고 있다. 지난 2011년 11월 정부가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을 강제로 제한한‘셧다운제’와, 거기에 규제가 규제를 낳는 악순환이 시작되면서 셧다운제를 두고 여성부와 문화부가 알력싸움을 벌이며 하나였던 제도를 2개로 나눴다. 여성부에 이어 교육부가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쿨링오프제’와 함께 게임 심의와 업체 매출을 중독치유기금으로 출연하겠다는 내용을 담은‘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듯 정책 중심이 규제로 쏠리며 진흥은 뒷전으로 밀렸다. 게임산업을 진흥할 의무가 있는 문화부는 직접 추진하는 제도는 물론 여성부, 교육부 등 다른 부처가 진행하는 규제에도 대응해야 했다. 이수명 문화부 게임콘텐츠산업과 과장은 지난 9월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그 동안 너무 규제 쪽에 집중해 진흥에 투자할 자원이 부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해 초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게임업계는 들뜬 분위기에 휩싸였다. 게임을 비롯한 IT분야를 미래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보고, 이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새 정부의 기조를 토대로 기존 규제 중심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기대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올해 상반기에만 굵직한 규제법이 연달아 발의됐고, 이제는 4대 중독법으로 규정함으로써 게임산업의 발목을 묶으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정부지원 없이 게임산업 발전없다

게임산업에 규제의 날을 세우고 있는 국내 상황과 달리 중국의 경우 자국 게임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게임 과몰입 해소 방안을 고안하는 연구소를 따로 설치해 운영하는 것은 물론 게임산업에 대한 진흥정책을 펴고 있다.

2012년 11월 현지에서 열린 제18차 당대표대회에서 2020년까지 문화산업을 국가중점산업으로 육성하고, 게임산업 수출규모를 2000억 위안(36조원)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외산게임에 대해 일종의 유통허가와 같은 ‘판호’를 받도록 해 자국게임 보호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은 외산 모바일게임에도 온라인게임과 동일한‘판호’도입을 준비하고 있어 글로벌 게임업체들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판호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쉽게 트렌드가 바뀌는 특성에 따라 외산게임의 경우 중국시장 진출에 성공을 보장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부지원에 힘입어 중국은 한국산 게임을 수입하는 입장에서 자국 게임을 국내에 수출하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국내 시장에서도 웹게임은 중국 게임이 장악한 상황이고, MMORPG 역시 중국 게임을 사오는 빈도수가 높아졌다. 여기에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며 대규모구조조정으로 인력시장에 나온 한국 개발인력이 대거 중국에 흡수되면서 중국 게임의 단점 중 하나로 손꼽힌 완성도 역시 개선될 여지가 크다. 최근에는 중국 게임업체 텐센트의 시가총액이 페이스북을 뛰어넘어 8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되는 등 중국 게임업체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수출실적으로 근근이 버텨온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은 정부의 진흥정책은 커녕 강제적 셧다운제와 게임 이용시간 제한으로 매출에 타격을 입고 있다. 여기에다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온라인게임의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되면서 사실상 손발이 묶인 상태다. 규제와 진흥,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육성정책을 위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댄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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