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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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 20년전] PC의 오랜 벗 잉크젯 프린터1994년 - 국내 시장 확대와 컬러프린터 보급의 주역, 2014년 -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진화

   
 
[컴퓨터월드]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이’를 우리는 친구라고 부른다. IT 산업을 학교라고 여기고 IT 기기들을 각각 학생이라고 상상해본다면,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서로 친구 사귀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조금 친해지려고 하면 휴학하고, 전학가고, 퇴학당하기도 하고, 혹은 변심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도 20년이 넘게 함께하는 친구 관계가 있으니, 바로 PC와 잉크젯 프린터다. 과거 20년 전, 잉크젯 프린터는 교내에서 소위 제일 잘나가던 학생 중 하나였다. 이후 세월에 휩쓸려 레이저 프린터에게 이내 밀려날 것이라 여겨졌지만, 아직도 잉크젯 프린터는 다양한 모습으로 PC의 곁을 지키고 있다. 20년 전 잉크젯 프린터의 왕년을 돌아보고, 여전히 건재한 현재의 안부도 물어본다.

 

컴퓨터월드 94년 5월호의 비충격식 컬러프린터 시장조사

   
▲ 94년 본지 컬러프린터 시장조사 결과

1994년 컴퓨터월드 5월호의 비충격식 컬러프린터 시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전해인 93년의 국내 컬러프린터 시장은 3만 2,642대, 204억 7천만 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는 92년의 4,081대, 75억 원에 비해 수량과 금액에서 699.8%, 172.9% 증가한 수치였다. 당시는 국내 컬러프린터 시장의 초기 단계였는데, 컬러모니터가 보급되면서 사용자의 컬러출력 수요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당시 컬러프린터로서는 저가였던 60만원대 모델이 등장한 것이 시장 확대에 주효, 그 주인공이었던 삼성HP의 저가형 잉크젯 프린터 ‘데스크젯 505K’가 3만 1,700대로 전체 컬러프린터 시장의 97.1%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중 저가형 컬러 잉크젯 프린터의 주 수요층이었던 학생들이 약 70%를 구매, 국내 컬러프린터 시장의 확대를 견인했다.

 

국내 컬러프린터 시장의 태동

   
▲ 94년에 주목받던 컬러프린터들

93년에 이어 94년에도 국내 비충격식 컬러프린터 수요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CAD/CAM과 그래픽 등 컬러 출력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였고, 기존 프린터 업체들 또한 대부분이 컬러 프린터 사업을 검토 또는 추진해 경쟁을 통한 가격 하락이 예상되던 시점이었다.

이와 함께 컬러 열전사 프린터에도 저가형 모델이 출현, 기존에 5백~1천만 원에 달하던 높은 가격 때문에 구입을 미뤘던 중소업체들이 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삼아정보시스템이 미국 제니콤사 제품을, 코암정보통신과 서흥정보시스템이 미국 파고사 제품을 195만원에 출시했고, 이로 인해 기존 제품들도 가격 인하를 검토하고 있었다.

비충격식 컬러프린터의 신제품 발표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신규 업체의 참여뿐 아니라, 기존 업체들 또한 신제품 발표 없이는 확대되는 컬러프린터 시장에서 자사 영향력을 높일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었다. 93년 11월에는 씨앤지시스템이, 94년 3월에는 코암정보통신이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후지필름은 은염사진 방식의 ‘픽트로그라피3000’을, 한국코닥은 1천 1백만 원의 염료승화 방식 컬러프린터를 각각 내놓았다.

당시 국내 컬러프린터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음에도 국내 프린터 생산업체들이 이렇다 할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던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됐었다. 삼성전자와 금성사 등 국내 대기업들이 잉크젯 컬러프린터에 관심을 갖고 개발을 추진했으나, 기술력의 부족과 특허문제 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던 단계였다. 한편, 삼성전자는 코닥과 기술제휴를 맺어 염료승화 방식의 컬러프린터를 개발하고 있었다.

 

국내 시장의 확대를 이끈 잉크젯 프린터

   
▲ 94년 1/4분기 주요 잉크젯 프린터 매출

국내 컬러프린터 시장의 태동과 함께 프린터 시장 전반의 급팽창을 주도하고 있던 것은 잉크젯 프린터였다. 당시 컴퓨터월드가 시장조사와 함께 집계했던 주요 5개 업체의 1/4분기 잉크젯 프린터 매출 결과에 따르면, 공급물량이 총 14만 9,087대, 618억 4,600만 원으로 조사됐다. 한 분기 만에 직전 8개월 동안 판매된 물량을 넘어섰던 것이었다.

삼성HP가 독점해온 저가 잉크젯 프린터 시장에 롯데캐논도 가세, 94년 초 롯데캐논이 내놓았던 저가형 컬러 잉크젯 프린터 ‘BJC-600’은 월 약 1천대씩 판매되고 있었다. 급격한 수요확대로 공급부족 현상까지 발생, 삼성HP의 경우 94년 3월 하순에 제품 부족으로 공급 중단 사태까지 일어났었다.

당시 잉크젯 프린터 시장이 이처럼 확대된 것은 ▲가격대 성능비를 앞세워 이전에 시장을 주도했던 도트프린터 시장 흡수 ▲1/4분기 졸업·입학 시즌을 겨냥한 PC업체들의 할인 판매 ▲국내 프린터 시장이 본격 형성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에 판매됐던 제품의 교체 수요 증가 등으로 분석됐다.

80년대 후반 공급됐던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의 대체 수요가 잉크젯으로 집중됐던 것이다. 주요 프린터 업체들은 이에 발맞춰 잉크젯 프린터의 공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잉크젯, 컬러 프린터 시장도 장악

   
▲ 93년 잉크젯 컬러프린터 업체별 점유율

94년 컴퓨터월드가 조사한, 출력방식에 따른 기종별 컬러프린터 공급현황을 살펴보면 직전해인 93년에 잉크젯 제품은 3만 2,428대, 169억 1천만 원으로 1년간 729.7%, 275.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전사 및 염료승화 방식은 193대, 24억 2천만 원으로 20.6%, 15.7% 늘어났고, 레이저 프린터는 21대, 11억 4천만 원으로 61.5%, 25.2% 증가했다.

기종별 점유율은 잉크젯 99.3%, 열전사 및 염료승화 0.6%, 레이저 0.1%로 조사됐다. 국내 컬러프린터 시장을 잉크젯 방식이 장악한 것이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잉크젯 82.6%, 열전사 및 염료승화 12.2%, 레이저 5.2%로 수량 기준의 점유율과 차이를 보였는데, 이는 기종에 따라 가격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잉크젯 컬러프린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가격에 있었다.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던 삼성HP가 흑백 잉크젯 프린터보다 10만 원 정도 비싼 60만원대 제품을 발표하면서 흑백 수요자가 대거 컬러 제품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삼성HP의 흑백 잉크젯 프린터 ‘데스크젯 500K’는 공식 소비자가격 52만 9천 원에 실제 거래가격 36만 원, 컬러 제품인 ‘데스크젯 505K’는 공식 소비자가격 62만 8천 원에 실제 거래가격 47만 원이었다. 꼭 필요해서라기보다는 흑백과 컬러 제품의 가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컬러프린터를 구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 후 20년, 레이저 프린터와의 공존

   
▲ 최초의 레이저 프린터, IBM-3800

레이저 프린터는 복사기의 레이저 인쇄 원리를 이용해 1975년 IBM에서 잉크젯 방식보다 먼저 상용화시켰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오랜 기간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프린터 가격이 점차 저렴해지면서, 잉크젯 프린터는 이제 PC 구매 시 사은품으로 증정되기도 하는 시대가 왔고, 레이저 프린터 역시 대중적인 가격을 선보이면서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후 레이저 프린터는 인쇄 속도, 인쇄물 보존성, 관리 용이성, 유지비 등에서 비교 우위를 바탕으로 잉크젯 프린터의 자리를 대체해나가기 시작했다. 사무실 등 한 번에 다량의 인쇄가 필요한 곳, 가정집 등 인쇄할 일이 적어서 일정기간 이상 방치해 잉크나 노즐이 굳을 염려가 있는 곳 등에서는 이제 잉크젯 프린터 대신 레이저 프린터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잉크젯 프린터는 모습을 바꿔 여전히 사무기기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바로 잉크젯 복합기로의 변신이다. 복사기, 프린터, 스캐너 등 여러 가지 기기의 역할에 팩스나 네트워크 기능까지 하나의 기기에 담은 복합기는 21세기 들어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 개인은 물론 사무실에까지 그 영역을 점차 확대해나가고 있다.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의 지난해 국내 프린터 및 복합기 판매량 발표에 따르면, 잉크젯 복합기 40%, 레이저 프린터 26%, 레이저 복합기 19%, 잉크젯 프린터 10%, 포토프린터 5% 순으로 점유율을 각각 차지했다.

한편, 레이저 프린터에서 잉크 대신 사용하는 토너가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서 세간에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지난 2007년 호주 퀸즐랜드 테크놀로지 대학 연구팀은 62대의 레이저 프린터들을 조사한 결과, 약 30%인 17대가 토너와 비슷한 미세물질들을 공기 중에 방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에폭시와 염료 및 첨가제 등으로 구성된 토너가루에서 발암물질인 벤젠 톨루엔 등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포름알데히드가 다량 검출됐으며, 환기가 되지 않는 곳에서는 미세한 가루가 호흡기로 스며들어 질환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잉크젯의 진화는 어디까지

잉크젯 프린터가 21세기에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수요를 유지한 데에는 레이저 프린터보다 다양한 곳에 인쇄가 가능하다는 점도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용지가 한정적인 레이저 프린터에 비해 잉크젯 프린터는 사진 인화용지, 현수막 등 보다 폭넓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폰의 보급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달은 사진을 통한 교류를 급격히 촉진시켰고, 이는 사진 인화의 수요도 덩달아 증가시키며 잉크젯 프린터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관리 용이성이나 유지비 측면에서도 레이저 프린터와의 간극을 오히려 좁혀나가고 있다. 근래 들어 밀폐형 카트리지를 장착을 통한 무선 무한 잉크 방식이 보급되면서 잉크 변질은 줄어들었고, 간단한 설치로 공급은 용이해졌다. 이로 인해 잉크 가격도 경쟁을 통해 저렴해지면서 잉크젯 프린터 유지비가 레이저 프린터 수준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 HP 오피스젯 프로 X576dw MFP

심지어 레이저 프린터의 대표적인 장점이던 속도마저 쫓아왔다. HP에서 지난해 내놓은 ‘오피스젯 프로 X576dw MFP’는 기존의 잉크젯처럼 헤드가 좌우로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라 한꺼번에 분사하는 새로운 인쇄방식을 사용, 분당 최대 70페이지라는 레이저 프린터보다도 월등한 인쇄 속도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데스크톱 프린터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레이저 프린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이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던 잉크젯 프린터가 오히려 레이저 프린터를 추격하거나 추월하고 있는 것이다.
 

   
▲ 고흐의 유화 ‘별이 빛나는 밤’

향후 3D 프린터가 보급되는 가까운 미래에 잉크젯은 또 어떤 변신을 꾀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까지 걸어온 사무기기로서의 길과는 사뭇 다른, ‘잉크’라는 재료를 활용해 붓끝과 질감으로 표현하는 예술의 한 영역에서 다시금 새로운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PC의 친구인 잉크젯 프린터는 지금도 함께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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