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 1백만원대 펜티엄PC 시대 열어, 2014년 - 태블릿과 패블릿

 

 

[컴퓨터월드] 20년 전, 펜티엄PC는 여느 가전기기 못지않은 고가 제품이었다. 물가가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 200만원이 넘어가던 펜티엄PC를 개인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고, 대개의 경우 기업의 사무실 또는 컴퓨터 학원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귀한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 PC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가격은 오히려 대중화돼 이제는 일반 가정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물건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블릿PC와 패블릿의 자리싸움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

 

1백만원대 펜티엄PC 등장

1994년 6월 국내 PC 시장에서 처음으로 1백만원대 펜티엄PC가 나왔다. 대우통신이 펜티엄PC 2개 모델을 198만원, 248만원에 각각 발표한 것이다. 대우통신의 1백만원대 펜티엄PC는 여타 PC 업체에 영향을 미쳐 펜티엄PC 가격하락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였다. 특히 펜티엄PC가 향후 시장을 주도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었고, 시장 형성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가격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당시 PC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던 현대전자 등 일부 업체들이 자사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여기고 가격을 대폭 인하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우통신이 당시 200만원선에 제품을 발표했던 것도 자체 생산한 마더보드를 장착, 원가를 절감했던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486시장에서는 자사 입지를 강화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펜티엄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전력의 일환이었다. 대우통신도 실제로 이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또 인텔이 94년 8월부터 펜티엄칩 가격을 대폭 인하할 계획이었던 것도 가격하락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이미 인텔은 94년 7월 1일 펜티엄칩의 가격인하를 공식 발표할 계획이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펜티엄칩의 가격인하가 대폭일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으며, 인텔 측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인하의 폭이 상당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대우통신도 펜티엄칩의 가격인하 조치를 미리 고려했다고 밝혔다.

 

▲ 대우통신의 1백만원대 펜티엄PC

 

1백만원대 펜티엄PC 성능은

당시 대우통신은 향후 펜티엄PC를 주력 기종으로 설정, 94년 예상되는 펜티엄PC 시장 규모 10만대 가운데 약 6만대 이상을 판매한다는 계획이었다.

대우통신이 출시했던 펜티엄PC는 탁상형으로, 60MHz의 CPU를 채택해 486DX2에 비해 정수 계산은 2배, 소수점 계산은 7배의 성능을 발휘했다. 기존 66MHz 486PC가 CPU 내부에서는 66MHz이나 메모리 등과의 전송에서는 33MHz가 사용됐던 것에 비해, 펜티엄PC는 CPU 내·외부 모두 66MHz로 동작했기 때문에 CPU뿐만 아니라 메모리와의 전송속도도 그만큼 빨라졌다.

또 베사 로컬 방식의 32비트 버스로 접속되는 비디오카드를 사용해 다양한 그래픽 환경에서 충분한 기능을 발휘한다고 평가받았으며, 윈도우즈 가속기뿐 아니라 다양한 한글, 한자 글자꼴을 제공했다. 기본 메모리는 8MB로, 최대 128MB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또 72핀 SIMM이면 어떤 종류라도 확장 메모리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외부 캐시메모리는 512KB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이밖에 추가 드라이브를 장착할 수 있는 드라이브 베이를 외부에 3개, 내부에 2개 등 5개를 갖추고 있었으며, 슬롯은 기본 8개로 베사용 1개, ISA용 4개 등이었다. 또한 P5T라고 하는 686급의 프로세서 업그레이드 소켓을 장착, 향후 새로운 프로세서가 발표될 경우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여러 운영체계에서 운영할 수 있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변경 없이 그대로 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네트워크 환경도 구축할 수 있게 했다.

이 가운데 특히 A형(CPC-5860A) 제품은 DIY(Do It Yourself) 개념을 도입해 구입자들이 자신의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제품을 구성할 수 있도록 확장성 및 유연성을 부여했다. 구입자가 기존에 보유한 HDD나 FDD는 물론 원하는 어떠한 용량의 HDD라도 자유롭게 장착하거나 HDD 타입의 자동설정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20년 후, PC시장의 변화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생활물가지수는 이를 산출하기 시작한 1995년에 비해 약 107% 상승했다. 이렇듯 물가는 2배 이상 올랐지만, 이와 달리 PC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

 

▲ 다나와 표준PC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는 자사가 권장하는 부품을 조합해 ‘표준PC’라는 이름으로 사양을 제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다나와의 지난 6월 ‘표준PC’를 살펴보면 30만원대에서 110만원대까지 다양한 조립PC를 판매 중인데, 가장 비싼 110만원대 모델에 운영체제와 29인치 모니터를 더해도 160만원선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물가가 절반 수준이었던 20년 전에 대우통신이 가격경쟁을 위해 선보였던 펜티엄PC의 가격인 198만원보다도 오히려 저렴해진 것이다.

한때 고부가가치 산업이었던 PC 시장은 2000년대부터 성숙기에 접어들며 성장률이 점차 둔화됐고, 공급 과잉과 그로 인한 경쟁의 격화는 수요의 미온적인 측면과 어우러져 지속적인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왔다.

 

▲ 글로벌 PC 시장 변화 (출처: 가트너)

지난 3월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와 IDC는 각각 올해 글로벌 PC 시장의 출하량이 약 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IDC는 PC 출하량 감소가 향후에는 다소 완만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내년에는 0.8% 감소, 2018년에 이르러서는 0.2% 감소를 보이며 시장 규모는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IDC의 로렌 로버드 부사장은 “신흥 시장이 인구 증가에 따라 글로벌 PC 시장을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경제적 불안 및 경쟁 기기로 인해 과거만큼 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IDC는 PC 시장의 이런 하락세가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강세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으며, 가트너의 란짓 아트왈 애널리스트도 “PC 보유자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태블릿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글로벌 PC 시장 전망 (출처: IDC)

한편 가트너의 지난 4월 발표에 따르면, 지난 7분기 동안 이어온 PC 출하량 하락세가 올해 1분기에는 완화됐는데, 윈도우 XP 지원 종료 영향으로 전년동기 대비 1.7% 감소하는 수준에 그쳤다. 가트너의 미카코 기타가와 수석 애널리스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XP 지원을 종료하면서 PC 출하량 감소 완화에 일조했다”며, “XP기반 PC의 교체를 촉진하며 글로벌 PC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해 전문가용 PC의 판매 강세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윈도우 XP 지원 종료에 큰 영향을 받은 주요 국가 중 일본의 경우 전년동기 대비 PC 출하량이 35% 증가했다. 미카코 기타카와 애널리스트는 “PC 시장은 여전히 약세에 머물러 있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며, “전문가용 PC 시장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EMEA)에서 개선 중이고, 미국의 경우 태블릿 도입률이 2014년에 50%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되나 소비자 지출의 일부는 PC로 회귀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태블릿과 패블릿

IDC는 2012년 4분기 글로벌 태블릿 시장이 기록적인 출하량으로 75.3% 성장했다고 지난해 2월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기록한 5,250만대는 직전분기 대비로도 74.3% 성장한 수치였고, 이에 대해 IDC의 톰 메이넬리 이사는 “5년 만에 처음으로 홀리데이 시즌이 포함된 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한 PC 시장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비교했다.

그러나 IDC는 지난 5월 들어서는 올해 글로벌 태블릿 출하량 전망치를 기존보다 5.9% 하향 조정했다. 올해 현재까지 수요가 부진하고 연말까지 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으며, 지난해 출하량 증가율이 52%였던 것에 비해 올해에는 대폭 낮아진 12%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5,800만대를 기록하며 전년동기 대비 19% 증가했으나,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는 스마트폰이 기록한 33%의 성장률에도 못 미쳤다. 이에 대해 톰 메이넬리 이사는 “많은 이들이 패블릿 수요 증가세를 토대로 태블릿 판매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삼성 갤럭시 프리미어 2014’에서 ‘갤럭시 탭S’를 선보이는 모습

패블릿(Phablet)은 휴대전화와 태블릿PC 기능을 아우르는 기기를 이르는 신조어로, 주로 5인치 이상 대형화면을 가진 스마트폰을 가리킨다. 태블릿이 PC로부터 빼앗아온 소비자들을 다시금 패블릿에게 뺏기고 있는 셈이다.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아이폰6도 5.5인치 화면을 제공하는 패블릿이 될 전망이다.

이에 태블릿도 각각 새로운 길을 찾아, 구글은 3D 기능을 갖춘 제품을 준비 중이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대형 스크린을 장착한 제품을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공개한 전략 태블릿 ‘갤럭시 탭S’는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있지 않더라도 태블릿을 통해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통화 중에 이미지, 지도,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사이드싱크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사라지는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한편, PC를 구입하는 방식도 과거 펜티엄 시대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다나와는 노트북 및 태블릿 PC의 견적 서비스를 지난달 오픈했다. 기존의 판매가 중심의 가격 제시가 아닌, 소비자가 조건을 제시하면 판매자가 가격을 입찰하는 역경매 방식을 적용한 점이 특징이다.

소비자는 구입하고자 하는 노트북이나 태블릿 PC의 견적을 요청해 다수의 판매자로부터 구매가격을 제안 받을 수 있으며, 원하는 판매자를 선택해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용도, 희망 가격대, 결제 방식에 맞춰 제안 받은 제품의 상담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가 사라져가고, “얼마에 주실 건가요”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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