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디지털 시대 준비 / 2015년-모바일 시대 도래

[컴퓨터월드] IT산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거의 기득권은 큰 의미가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기술혁신 속도는 나날이 빨라졌고, 기존 제품의 가치는 시장 경쟁이나 대체제의 등장으로 인해 하락을 면치 못했다. 새롭게 떠오르는 곳이 있었던 만큼 어느새 잊혀져간 곳도 있었다.

1995년 IT업계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21세기 하이테크의 준비에 나서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봤던 2010년대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모바일 시대의 도래 이후로 더욱 급격한 기술적 변천이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20년 전의 전망과 그 결과를 돌아본다.

 

 

불확실성의 시대

1995년 IT업계는 2010년대를 향한 변화의 핵심으로 디지털 전자기술이 부상하던 시기였다. 컴퓨터 칩의 집적도와 그에 따른 컴퓨팅 파워는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고, 300만 달러짜리 비디오 게임기의 그래픽 성능은 80년대에 만들어진 크레이 슈퍼컴퓨터의 수준을 따라잡고 있었다. 나아가 2010년경에 이 게임기가 손에 쥐어질 만큼 크기가 작아지고 레이저 박막 디스플레이를 통해 사진 이미지를 구현할 것으로 예상됐다.

컴퓨팅 파워의 급격한 향상은 동시에 컴퓨터 파워의 밉스당 가격이 극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수반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디지털 기술이 확산되면서 변화는 점점 빠르게 진행돼, 디지털 시대에는 제품 사이클의 기본 단위를 당시처럼 몇 년이 아니라 몇 달 단위로 헤아리게 될 것으로 예측됐다. 당시 컬럼비아대학의 연구원이었던 브루스 이건은 “과거 어느 시대에도 기술이 이렇게 빠르게 변한 적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급격한 기술변화는 또한 불확실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었다. 전 세계의 기술적 리더십을 누가 잡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누구나 쉽게 리더십을 잡을 수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도 그만큼 간단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90년대 초만 해도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리란 시각이 팽배했다. 그러나 95년에도 미국은 첨단 반도체 제품 대부분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점점 늘려가고 있었고, 특히 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확실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노하우의 세계적 이전

반면 일본은 관련 기술정책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 정책들은 사실 80년대에 일본에게 대성공을 안겨줬다. 그러나 90년대가 되자 그 정책은 일본에게 참패를 선사했다.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의 디지털 기술을 주도했고, 디지털 기술은 멀티미디어로부터 유전공학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핵심 열쇠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의 도전을 물리쳤다고 해서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도전자들이 지구 곳곳에서 계속 나타났다. 벼락출세의 주인공인 한국도 그 중 하나로, 메모리 반도체와 가전 분야에서 일본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깨뜨렸다. 또 중국과 인도, 동남아 국가들도 주목받았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학 분야의 우수인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기술력을 만만찮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됐다.

급격한 기술발전, 그리고 지구 곳곳에 거미줄처럼 연결되는 통신망은 업계 전반에 역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스탠포드대학이나 MIT연구소, 그리고 모토로라 등에서 첨단기술을 개발하면 그것은 곧 일용품 설계로 이어졌다. 반도체가 지능화될수록 상품화는 더 쉬워졌다. 지구상 어디에서나, 서구세계나 일본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아날로그 HDTV의 유적

국가정책 입안자들과 거대기업 경영진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었다. 전반적인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진데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었다. ‘향후 10~15년 동안 산업 전반에 걸쳐 완전히 판이 새로 짜일 것’이라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었으나, ‘그 판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구축되리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선 네트워크가 될 것인지, 광섬유일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 못했다. 또한, PC가 과연 전화, 비디오게임, TV의 성능을 모두 갖추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지, 아니면 전화회사가 궁극적으로 이 경주에서 승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양다리 걸치기’에 나서고 있었다. 신기술 분야 투자를 분산하는 것으로, 자주 동원하는 방법은 합작기업을 만드는 것이었다. 선두그룹에 남아있는데 필요한 기술투자가 너무 많아 그 비용을 분담하자는 취지였다. 지나치게 큰 도박을 했다가 비참한 결과를 낳았던 기존의 사례들이 그들을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아날로그 HDTV에 대한 투자는 당시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골 메뉴였다. 일본의 거대기업들은 결코 팔릴 수 없는 제품, 아날로그 방식의 HDTV를 개발했다. 그 제품은 디지털 비디오에 밀려 수십억 달러를 들인 비싼 ‘유적’으로 남았다. 그 유적에서 배우는 교훈의 가치는 물론 그 이상일 테지만, 그 교훈을 배우는 것은 당사자보다도 곁에서 지켜본 구경꾼들이었다.


광파(光波)식 부품이 전자부품 대체

당시 AT&T벨 연구소장이었던 존 마요는 “21세기 초에는 새로운 광파식 부품들이 늘어나, 속도가 더 느린 현재의 전자부품들을 대체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통해 데이터, 음성, 동영상 등이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사이를 아무 거침없이 자유롭게 넘나들게 될 것으로 기대됐다. 또 자동번역장치를 갖춘 화상회의 시스템이 국가 간 경계를 넘어, 마치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처럼 일반화될 것으로 바라봤다.

95년 IDC는 전 세계 PC 판매대수가 4,400만대에 이르며, 이 가운데 3,400만대는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를 장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펜티엄의 성능은 IBM의 초기 메인프레임을 능가했으므로, 이것이 전 세계의 책상에 자리할 경우 어떤 현상이 생겨날 것인지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60~70년대의 메인프레임급 성능을 가진 PC들은 학교, 병원, 정부기관들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게 됐고, 그들 대부분은 컴퓨터의 효율성을 아직 접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PC의 보급으로 대형 의료기관의 전문가들이 고속 영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시골병원이나 해외에 있는 환자를 진찰하고 적절한 처방을 내리는 것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됐다.


전송속도의 비약적인 향상

당시 전 세계 일부 기술 엘리트들은 앞선 기술을 미리 활용하고 있었는데,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과학 분야 책임자였던 존 게이지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컴퓨터로 데이터와 음성, 디지털 영상을 622Mbps의 속도로 주고받았는데, 이것은 일반 가정용PC에 흔히 장착되는 모뎀에 비해 4만 3천배 빠른 것이었다. 이를 통해 게이지는 그의 동료들과 자세한 반도체 설계도면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과학 시뮬레이션을 실행하기도 했다. 컴퓨터 성능 때문에 작업이 지연된다거나 하는 일이 없이 실시간 작업이 구현되기 시작했다.

이런 시스템이 지구상 수백만 명에게 보급될 경우 전 세계 경제는 근본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다. 구멍가게 주인도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고객들과 접하게 되고, 화물 운송업자들은 GPS를 이용해 어떤 화물이 화물선으로부터 옮겨져 소포로 배달되기까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센티미터 단위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됐다. 화폐제도도 디지털화에 따라 모든 지폐가 암호화된 신호체계로 만들어진 전자식 증권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에 덜미 잡힌 일본 반도체

디지털 세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HW와 SW, 광섬유,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이 갖춰져야 하며, 이를 통해 기존의 컴퓨터 및 산업을 재정비하게 될 것으로 예측됐다. 멀티미디어와 정보고속도로로 대변되는 새로운 질서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역시 미국 업체들이었다. 아시아 지역의 경쟁자들이 이 차이를 메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궁극적인 결과를 예측하기란 어려웠지만, 그 과정이 격렬한 투쟁을 동반하리란 점은 분명했다. 75년부터 85년까지 10년간 전 세계 반도체와 PC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혈전을 돌이켜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에 미국 엔지니어들은 D램을 공들여 개발해놓고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고스란히 일본 업체들에게 넘겨줘야 했고, 일본은 어렵게 확보한 독점권을 21세기까지 연장해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계획은 머지않아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엔지니어링 기법이나 자본력 등은 그렇게 깊이가 있거나 폭이 넓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 업체의 덜미를 잡은 것은 미국 기업이 아니라, 한국의 후발주자 삼성그룹이었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은 89년 9위에서 4년만인 93년에 1위로 뛰어올랐다.

삼성은 2000년대 시장을 노린 제품인 256메가 D램의 실제 작동 프로토타입을 94년 세계 최초로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데이터퀘스트(가트너)는 삼성전자가 2005년경 반도체 전 분야에 걸쳐 세계 선두 자리에 올라서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 95년 컴퓨터월드의 21세기 디지털 기술 전망

20년 후의 상전벽해

20년간 IT기술은 전 세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2010년대 들어 우리의 손에 쥐어질 만큼 작아진 것은 단순히 게임기가 아니라, 그 등장으로 인해 다양한 분야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면서 모바일 시대의 개막을 알린 스마트폰이었다. PC가 전화, 비디오게임, TV의 성능 모두 갖추는 것을 넘어, 이를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의 무선 네트워크에는 이제 데이터, 음성, 동영상이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고, GPS 기능을 활용한 각종 서비스는 일상에서도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이번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5에서 SK텔레콤과 KT는 600Mbps의 다운로드 속도를 구현하는 신기술도 시연할 예정이다. 20년 전 기술 엘리트의 최첨단 컴퓨터가 우리의 손에 쥐어진 셈이다.

이렇게 당초의 기대를 뛰어넘는 발전도 있지만, 기대보다 더딘 부분도 존재한다. 헬스케어 분야가 부상하고 있지만 원격 진료는 의료계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고,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가격변동성과 법적 안정성 및 보안성 등에 대한 우려로 인해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화상회의는 보편화됐지만 회의에 쓸 만한 자동번역장치는 아직 요원한 상태로, 최근 들어 구글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동시통역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IT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시장의 지형과 기업의 형태도 바꿔놨지만, 이를 주도하는 곳이 실리콘밸리라는 점은 변치 않았다. 애플의 성장과 구글, 페이스북의 등장 등으로 미국 업체들의 기술적 리더십은 지속된 가운데, 인도는 IT강국으로 거듭났고 중국도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IT산업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등 기존의 노하우를 흡수해 잠재력을 발휘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한국은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다. 디램익스체인지의 지난해 4분기 글로벌 D램 반도체 시장 조사 결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0%에 이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바일 시대를 맞아 대표적인 스마트폰 제조사로 글로벌 시장에 자리매김하면서 큰 폭의 성장을 이뤘다.

 

▲ 2014년 4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조사 결과 (출처: D램익스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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