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월드] HTML5가 2014년 10월 28일 새로운 웹 표준으로 선정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의 내부 프로젝트로 시작된 월드 와이드 웹(WWW)은 이제 PC를 넘어 각종 모바일 기기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93년 발표된 NCSA의 모자이크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웹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모자이크의 개발자 마크 앤드리슨은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를 개발한다. 이후 익스플로러에 자리를 뺏기기 전까지 인터넷의 중심에는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가 공개된 지도 20년이 지났다.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는 한때 시장의 최강자였지만 익스플로러의 공세에 결국 추락하고 만다. 각종 웹 브라우저들의 격돌은 곧 웹의 역사였다. 20년간 발전해온 웹 브라우저들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월드 와이드 웹의 등장과 웹브라우저의 탄생

월드 와이드 웹(WWW) 혹은 웹이라 일컫는 서비스는 현재까지도 가장 널리 보급된 인터넷 서비스다. 워낙 널리 퍼진 탓에 인터넷과 동의어로 쓰일 정도다. 하지만 인터넷과 웹 그리고 웹 브라우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E메일이 인터넷이 아닌 것처럼 웹도 인터넷에서 동작하는 인터넷 서비스의 일종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웹 브라우저다.

웹은 1989년 3월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의 소프트웨어 공학자인 팀 버너스 리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연구, 개발되었다. 원래는 세계의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물리학자들 상호간의 신속한 정보교환과 공동연구를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최초의 웹 브라우저는 넥스트스텝(NeXTSTEP)용 ‘월드와이드웹’(후에 ‘월드 와이드 웹’과의 혼동을 피해 ‘넥서스’로 이름을 바꾼다.)이다. 하지만 웹의 대중화를 이룬 브라우저는 따로 있었다. 바로 1993년 NCSA의 마크 앤드리슨과 에릭 비나가 개발한 ‘모자이크’다.

모자이크는 인터넷이 연구소와 교육기관 밖으로 팽창하던 시기와 맞물려 매끄러운 멀티미디어 GUI를 제공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다. 모자이크는 이전까지 별도의 창으로만 표시되던 웹상의 그림을 텍스트와 함께 표시할 수 있었다.

모자이크의 등장은 연구자들 외에는 크게 관심두지 않던 월드 와이드 웹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1.0의 구성화면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등장

하지만 모자이크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모자이크의 개발자 마크 앤드리슨은 NCSA를 떠나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했다. 그리고 94년 12월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를 출시했다.

모자이크가 월드와이드웹을 처음으로 부각시킨 애플리케이션이라면,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는 보다 빠르고 쓰기 편하며 HTML 지원, WWW 활용을 일반화했다고 평가받았다.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유용성은 하이퍼링크 화면을 띄우는 순간 드러났다. 모자이크와 달리 다운로드 하는 것처럼 문서를 디스플레이하고, 문서가 나타나자마자 연결해 사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원하는 링크나 텍스트가 나타나면 전체 문서가 다운로드 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또한 정지버튼을 도입하여 전송 중에 다운받던 페이지를 정지하고 지금까지 받은 내용을 디스플레이 할 수 있었다.

필요한 웹 페이지에 액세스한 다음 그래픽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화면에 띄우는 방법으로 다운로드 시간 줄이고 디스크 공간을 덜 소모하도록 하고, 뉴스그룹, 이메일 송신, 북마킹, SSL보안 등 현재 웹 브라우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많은 기능을 도입했다.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1.0 상용버전의 판매 가격은 39달러였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문서화 기능은 20달러 추가비용이 붙었다.

브라우저 전쟁과 넷스케이프의 몰락

넷스케이프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웹 브라우저 시장의 지배자였다. HTML 표준으로 공식화되지 않은 기능들을 지원하기도 하며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또한 윈도우/Mac OS/UNIX등 폭넓은 플랫폼을 지원해 웹 대중화를 선도해 나갔다.

한편 스파이글래스사는 초기 모자이크의 기술과 상표를 라이센스하여 새로운 브라우저를 판매한다. 스파이글래스의 모자이크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를 사들여 웹 브라우저를 출시한다. 이것이 바로 1995년 8월 16일 출시된 인터넷 익스플로러다.

초기 버전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미 웹 브라우저 시장은 넷스케이프의 독무대였을 뿐더러, 기능 또한 넷스케이프만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점차 발전해 나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지자 상황은 점차 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우에 기본 제공하며 점유율을 차곡차곡 뺏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예 익스플로러를 OS와 통합하고자 했다. 다른 브라우저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마이크로소프트의 독과점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다른 브라우저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브라우저들은 하나 둘 도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익스플로러가 점유율을 높여가는 동안에도 넷스케이프의 대응은 안일했다. 신기술 도입이나 안정화가 늦었고, 프로그램은 점점 무거워졌다. 가장 큰 실책은 버전 업데이트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넷스케이프는 4버전 이후 오픈소스로 정책을 변경했다. 이를 통해 넷스케이프 5를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소스의 품질이 문제였다. 이들은 넷스케이프 다음 버전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로 계획을 변경했고, 출시 시기는 더욱 지연됐다.

때맞춰 나온 익스플로러 5는 점유율을 더욱 높여갔다. 넷스케이프는 익스플로러를 견제한다는 의미에서 버전5를 건너뛰고 넷스케이프 6를 출시했다. 하지만 급하게 나온 넷스케이프 6는 결국 익스플로러의 공세를 끝내 이기지 못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정책과 개발상의 실책으로 넷스케이프는 익스플로러에게 웹 브라우저 왕좌 자리를 내놓게 됐다.
 

 

▲ 1993년 개발된 NCSA의 모자이크


익스플로러의 독점과 액티브 X

1999년 인터넷 익스플로러 5가 출시되면서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은 90%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EU와 미국 등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반독점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익스플로러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2001년 출시된 익스플로러 6는 XP의 기본 브라우저로 채택되었다. 이후 버전의 익스플로러가 액티브 X(Active X)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던 덕에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까지도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액티브 X는 매우 강력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윈도우와 익스플로러가 아니면 제대로 실행할 수 없었다. 게다가 초기에는 사용자의 간섭 없이도 자동으로 설치가 가능하다는 심각한 취약점도 있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1999년 자체 암호화 알고리즘 SEED를 발표했다. 미국이 자국기술 보호를 이유로 브라우저의 보안 수준을 40비트로 제한했고, 해당 기술은 인터넷 뱅킹 등에 활용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개발된 암호화 알고리즘이었지만 결국 브라우저 외적인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활용할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이러한 암호화기술을 인터넷 뱅킹 등에 활용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액티브 X를 활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는 이후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됐다.

브라우저 시장을 완벽히 장악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익스플로러의 새 버전을 출시하지 않겠다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브라우저 개발팀을 해체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는 공인인증서를 포함한 액티브 X 없이도 온라인 거래가 가능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나가고 있다. 3월 이후 액티브 X를 활용한 보안프로그램은 더 이상 강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와 금융위원회는 액티브 X의 폐지를 요구하면서 ‘exe’ 방식의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많은 전문가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다.

우선 exe 프로그램은 윈도우 이외의 플랫폼에서는 돌아가지 않을 뿐더러, 프로그램의 위변조 가능성도 액티브 X보다 높아 보안성에 한계가 있으며, 시스템 자원을 많이 차지해 컴퓨터가 느리게 동작하는 등 많은 단점이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FDS(부정거래 탐지 시스템)와 지연이체를 통해 금융보안의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구축하기까지 상당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홈텍스에서 세금공제를 받기 위해 위의 추가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했다. 현재는 3개로 줄었다.

웹 표준과 2차 브라우저 전쟁

넷스케이프가 오픈소스로 정책을 바꾸면서 설립한 모질라 기관은 ‘모질라 애플리케이션 스위트’를 바탕으로 새로운 웹 브라우저를 출시했다. 이것이 파이어폭스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파이어폭스의 점유율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자 해체했던 개발팀을 다시 소집하여 익스플로러 7 제작에 돌입한다.

새로운 후발 주자들도 등장했다. 2008년 등장한 구글의 크롬은 속도와 가벼움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빠르게 점유율을 높였다. 국내에서는 익스플로러의 뒤를 이어 2위의 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했다. 오페라나 사파리 등 다른 브라우저들도 경쟁구도에 뛰어들고 있다. 2차 브라우저 전쟁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각종 웹 브라우저가 저마다의 장점을 내세워 시장으로 뛰어들면서 웹 표준에 대한 중요성은 커져만 갔다.

2014년 10월 28일 W3C(World Wide Web Consortium)에 의해 HTML5가 새로운 웹 표준으로 확정되었다. HTML5는 플래시나 실버라이트 등 인터넷 플러그인의 필요성을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다. 자바스크립트를 통해 길게 구현되던 코드를 간단한 단어 몇 개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는 익스플로러를 완전히 대체할 새 브라우저 스파르탄을 준비중이다. 스파르탄은 윈도우 10의 기본 탑재 브라우저로 사용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익스플로러의 후속 브라우저가 아닌, 렌더링 엔진부터 달라진 새로운 브라우저라고 밝혔다.

브라우저 시장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웹 환경

아직 우리나라는 익스플로러가 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플래시, 액티브 X등 웹 표준과 벗어나는 규격에 최적화되어있는 웹 환경 탓에 익스플로러가 아닌 다른 브라우저로는 쇼핑이나 인터넷뱅킹, 관공서 홈페이지 등을 제대로 이용할 수가 없었다. exe를 활용한 보안프로그램이 등장했지만 이 역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2009년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으로 국내에서도 웹 표준을 지켜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익스플로러 상에서 문제없이 돌아가던 페이지들이 모바일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웹 환경이 빠르게 바뀌어가면서 모바일 기기에서도 원활한 웹서핑이 가능해지고 있는 추세다.

웹 표준은 ‘추가적인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직도 완벽한 웹 표준으로의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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