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 PC 시장 19% 성장…고(高) 성장세 기세 꺾여 / 2016년 -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에 고전, PC 종말론도 등장

 

 

[컴퓨터월드] 1996년, 매년 2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던 국내 PC 시장이 기세가 꺾였다. 당해 국내 PC 시장 성장률은 19%에 그쳤으며, 삼성전자·삼보컴퓨터 등 일부 대형 PC 공급업체들의 시장 점유율만이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외 기업들이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시장에서 철수하는 등 시장이 정리되는 모습을 보였다.

2016년, 전 세계적으로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등의 PC 시장은 장기적인 침체기에 빠져있다. PC 출하량은 매년 감소세에 있으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의 모바일 기기가 기존 PC 사용자들의 업무 환경을 대체하고 있다. 특히 클라우드의 확산으로 사무실로 한정되던 업무 환경을 사무실 밖으로도 확장하면서,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PC 종말론’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PC 시장, 성장 기세 한풀 꺾여

90년대 국내 PC 시장은 꾸준히 높은 성장세를 보여 왔다. 94년, 95년 2년간은 이런 경향이 특히 두드러져 각각 45%, 25% 가량의 고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1996년에 이르러 이처럼 높았던 성장속도는 기세가 한풀 꺾였다.

1996년 말 본지가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등 국내 PC업체와 한국컴팩, 한국HP 등 외산 PC업체, 용산상가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장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6년 한 해 동안 국내 PC 판매량은 총 173만 7746대, 금액으로는 2조 6089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는 1995년의 145만 378대, 2조 834억 원에 비해 수량 면에서는 19.8%, 금액 면에서는 25.2% 늘어난 것이다. 금액 면에서는 여전히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판매 수량 면에서는 눈에 띄게 성장폭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1996년 PC 시장은 3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막상 1996년이 지난 후 돌아보자 전년도 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당시 업계 전문가들은 1996년 이후로 PC시장의 성장이 더더욱 느려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성장률이 매년 1% 이상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국내 PC 시장의 저조한 성장을 놓고 각계의 여러 분석이 잇달았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는 물론이거니와 소비자의 관심을 끌만한 제품 이슈 부족, 구매를 미루는 소비자 심리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 국내외 PC 공급업체들은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성능 이외의 이슈를 내세우기도 했다.

삼성이나 애플 같은 현재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단순한 기기 성능 향상 이외에도 특징적인 기능을 적극적으로 선보여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처럼, 1996년 당시의 각 컴퓨터 공급업체들 역시 침체된 PC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특별한 제품 이슈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히 좋은 부품을 잘 맞춰 조립하는 것 정도로는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없고, 이미 어느 정도 시장에 PC가 공급된 상황에서 이전의 것을 뛰어넘어 추가적인 소비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천편일률적인 성능향상 이외에도 무언가 특별한 이슈가 요구됐기 때문이다.

먼저 삼보컴퓨터는 편리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버튼 하나로 TV와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이지 버튼 PC’를 발표했으며, 대우통신은 TV를 통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웹스테이션을 선보였다. LG-IBM은 시끄러운 소음을 잡기 위한 사일런트PC를 발표했으며, 삼성전자는 1997년 1월 중으로 DVD 롬을 채용한 PC를 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당시 PC 공급업체들 역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빠른 발전이 오히려 구매 막아

소비자들이 PC 구매를 미루는 경향도 PC시장 정체의 주요한 이유로 꼽혔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빠른 하드웨어 사양의 발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하드웨어의 기본적인 성능 향상과 호환성 확보, 부품 가격 하락 등이 초기의 PC시장 확대를 견인하기는 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신제품 때문에 오히려 구매자들은 잠시 구매를 미루고 곧 나올 신제품을 기다려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가장 좋은 컴퓨터를 사려면 죽기 직전에 사야 한다”는 말이 떠돌았을 정도로 소비자들의 대기 구매 심리는 PC시장 성장의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는 비단 소비자들의 문제라기보다 공급업체 측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PC시장에서 선제적으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연거푸 성능을 향상시킨 신제품을 내놓은 것이 오히려 구매 심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당장 한 해 동안의 CPU와 메모리 성능 향상만 놓고 봐도, 1996년 초반에는 펜티엄 133MHz와 16MB의 메모리를 갖춘 모델이 최고급 PC 소리를 들었지만 1996년 후반에 이르러서는 펜티엄프로 200MHz에 64MB 메모리 정도는 갖춰줘야 최고급 사양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특히 인텔의 CPU 라인업인 펜티엄 시리즈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CPU는 PC의 성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품이니만큼 사용자의 관심 역시 높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인텔 측은 1996년 한 해 동안 펜티엄 120MHz·133MHz·166MHz·200MHz를 출시하고, 같은 해에 연이어 펜티엄프로 166MHz·180MHz·200MHz를 출시하는 강수를 뒀다. 이에 따라 인텔의 펜티엄 시리즈는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해 높은 점유율을 보이게 됐지만, 반대로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제품이 같은 해에 출시된 자사 신제품에게 잡아먹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한 해에도 몇 번씩 하드웨어 시장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지금 최고급 사양을 갖춘다고 해도 몇 달 후면 금방 성능에서 뒤쳐지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이는 기존 사용자들의 신규 PC 구매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게 됐다. 큰 맘 먹고 구입한 신제품이 몇 달 지나지 않아 구세대 제품으로 취급받는 것을 달가워 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개인 사용자 시장은 1995년 전체 PC 시장의 55% 가량을 차지하던 것에서 1996년 전체 PC 시장의 42.6% 정도로 급감했다.

반면 신규 PC를 구입하는 대신 기존에 사용하던 PC를 업그레이드 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용산상가의 PC조립 분야는 1996년 전체 PC 매출의 60%를 CPU나 메모리 등의 개별 부품판매를 통한 업그레이드 분야에서 거뒀다. 소비자들은 구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세대가 등장해 구형 취급을 받을 완제품 PC보다, 연이은 신제품 출시로 빠르게 가격이 떨어지고 있던 개별 부품들을 구입해 기존에 사용하던 PC의 성능을 올리는 쪽이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 96년 국내 PC 시장 규모 (출처 : 컴퓨터월드)

적극적인 영업활동 전개, 효과 크지 않아

두드러진 제품 이슈 부족과 개인 소비자들의 구매심리 위축으로 PC 공급업체들은 시장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공급업체들은 넷스케이프나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 인터넷 브라우저를 기본 탑재한 PC를 내놓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영업활동을 전개하는 등 매출 확대를 위해 바쁜 행보를 보였다.

대표적인 예로 세진컴퓨터랜드는 1996년 말까지 전국에 걸쳐 76개의 매장을 설립하고, 적극적인 광고와 영업을 통해 총 17만 대 가량의 판매고를 올리는 성과를 달성했다.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는 개인소비자보다 공공기관의 물량 확대와 교체 수요에 초점을 맞춰, 공공기관을 상대로 21만 대의 물량을 공급해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했다. LG전자나 한국IBM 역시 적극적인 영업과 광고를 통해 시장 확보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각 공급업체들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PC 시장의 사업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급업체들의 과도한 영업 전략과 경쟁구도가 오히려 PC 시장 전체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었다.

1996년 국내 PC 시장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19.8%라는 성장률과 매출 성과를 보여줬으며,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유통 업체의 과도한 가격 경쟁, 보상판매·후불제·무이자 할부의 일반화, 출혈을 무릅쓴 노마진이나 원가 이하 판매 등이 급증했다. 시장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영업 전략이 오히려 시장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야기한 것이었다.

업체 관계자들은 1996년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의 PC 가격이 평균 15%~20% 정도 떨어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대우통신의 경우 상반기에 150만 원 선이던 데스크톱 PC의 가격이 하반기에는 108만 원 선으로 떨어졌다. 1995년에 PC 사업에서 흑자를 내고 삼보컴퓨터와 함께 1996년 공공기관 시장을 석권한 삼성전자 역시 전반적인 PC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적자로 돌아서고 말았다.

과도한 가격 경쟁과 함께 PC 시장의 수익성을 떨어트린 요인 중 하나는 A/S나 교육에 대한 투자비용의 증가였다. 당시 국내에서 촉망받는 OS였던 한글윈도우즈95는 장점으로 내세운 간편한 PC 사용 환경 대신 빈번히 발생하는 오류로 A/S 요청만 급증하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왔다. 한글윈도우즈95를 기본 OS로 탑재한 PC는 여타 PC에 비해 A/S 요청이 2배가량 더 자주 발생했다. PC 구매자들이 단순한 하드웨어의 성능 차이를 넘어 공급업체가 제공하는 A/S나 교육 등의 사후 관리에도 관심을 보이게 되면서, 공급업체 측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만 했다.

일부 공급업체에서는 1996년의 PC 시장 성장 둔화와 암울한 전망만을 내놓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힘입어, 이젠 PC 시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냈다. 삼보컴퓨터와 대우통신은 이후 2000년도까지 자사의 PC 매출 비중을 회사 전체 매출액의 50% 수준으로 낮춰 잡는 모습을 보였다.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공급업체들 역시 1996년 이후의 PC 시장에 대해 대체로 비관적인 예측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펜티엄 확대와 노트북 시장 성장

1996년을 기점으로 국내 PC 시장은 대부분 펜티엄 체제로 정리됐다. 높은 성능과 함께 인텔의 적극적인 푸시를 받은 펜티엄은 1996년 한 해 동안 161만 4495대의 판매고를 올려, 전체 PC 판매량의 92.9%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자연히 이전까지 시장을 유지해오던 486 PC는 설 자리를 잃어 자취를 감추게 됐다.

펜티엄을 탑재한 데스크톱 PC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인 것은 120~133MHz급 제품들로, 이들은 전체 시장의 39.2%를 차지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전체 시장의 25.5%를 차지한 100MHz급 제품들이 뒤를 이었고, 150MHz 이상의 고성능 제품들은 7.9% 수준에 머물렀다. 1996년 상반기에 호황을 누렸던 90MHz 이하 제품들은 전체 시장의 12.1%의 판매량을 보였다.

 

▲ 96년 기종별 국내 시장 점유율 (출처 : 컴퓨터월드)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텔이 같은 해에 연이어 펜티엄 시리즈 제품을 내놓는 바람에 소비자들과 공급업체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몇 달 간격으로 신제품이 나오는 상황에 최신 제품을 구입하기가 꺼려졌고, 공급업체 입장에서는 제품의 기대 판매 수명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제품이 출시돼 악성 재고가 쌓이는 결과를 낳았다. 90MHz 제품들이 상반기에만 반짝 판매고를 올리고 하반기에 판매량이 줄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90MHz급·120MHz급 제품들은 가격차가 10만 원도 채 나지 않는 100MHz급·133MHz급 제품들에 밀려 조기에 시장에서 밀려나야 했다. 이런 제품의 재고처리에 곤혹을 겪은 대표적인 사례는 LG전자로, LG전자 측은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악성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90MHz 제품을 100만 원 정도에 판매하는 고육지책을 사용했다. LG전자의 이러한 전략은 다소간 성공적이었을 수 있겠으나, 1996년 연간 판매량에서 90MHz 이하 제품보다 100MHz 이상급 제품들이 훨씬 높은 수치를 보인 점을 감안한다면 재고 처분 이상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펜티엄 위주로 시장이 재개편 된 것은 노트북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펜티엄 데스크톱에 비해서는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펜티엄 노트북의 판매량 역시 전체 노트북 시장의 79.8%를 차지하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특히 PC 공급업체들은 노트북에 펜티엄 CPU와 리튬이온 배터리, 12.1인치 화면 등을 갖춰 PC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 전략은 시장에 제대로 먹혀들어 전년 대비 60.1%의 노트북 시장 확대를 불러왔다. 이는 15.9%의 성장에 멈춘 데스크톱 시장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삼성전자, 대우통신, 삼보컴퓨터 등 큰 규모를 갖춘 PC 공급업체들은 이와 같은 노트북 시장 확대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수입을 올리기 어려운 데스크톱 시장의 대체재로써 노트북 시장은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한 해 동안 삼성전자는 전체 노트북 시장의 51.7%인 9만 2천 대를 판매했고, 2만 8천 대를 판매한 대우통신이 뒤를 이어 16.2%를 차지했다. 3위인 삼보컴퓨터는 2만 3천 대를 판매해 12.9%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노트북 시장에 뛰어들면서 중소규모 전문 노트북 판매 업체들의 입지는 좁아지게 됐다. 10%대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던 내외반도체는 기존의 절반 수준인 5.6%로 떨어졌고, KIT컴퓨터는 2.5%에 머물렀다. 그 해에 본격적으로 노트북 시장에 진출한 효성 컴퓨터는 은행 등 본사 주력 시장을 적극 공략했음에도 2%인 3600대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YC&K나 대신정보통신, 큐닉스컴퓨터 등은 사실상 사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대기업의 독주 체제

1996년의 국내 PC시장은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의 영향력이 강해진 시기였다.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LG-IBM, 세진컴퓨터랜드, 대우통신 등 상위 5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71.7%를 차지했다. 반면 중소 공급업체와 외산 PC 공급업체들은 점차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1996년은 삼성전자의 독주 체제나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삼성전자는 노트북 시장의 51.7%를 차지했고, PC 시장 전체로 따지면 30.1%인 52만 2천 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는 시장 점유율 15.6%로 2위를 차지한 삼보컴퓨터를 2배가량 앞선 수치였다. 또한 삼성전자는 전체 시장 점유율이 높은 것뿐만 아니라 성장률도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이는 1996년 전체 시장 성장분인 29만 대 중 16만대를 삼성전자가 차지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상반기에 공공기관 PC 교체 사업에 참여해 약 8만 대의 판매량을 확보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보컴퓨터는 15.6%의 시장점유율로 2위를 차지했지만, 1995년의 19%에 비하면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삼성전자와 함께 공공기관 PC 교체 사업에 참여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질적인 판매량 확보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보컴퓨터 측은 판매량 부진을 탈피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150여개의 매장을 확보하며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상위 5개 업체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진컴퓨터랜드였다. LG-IBM(10.4%, 18만 대)와 비슷한 시장 점유율(10.1%, 17만 5천 대)을 모두 개인 사용자 시장에서만 확보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체를 상대로 한 대량 발주 없이 이 같은 성적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업계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전국적으로 76개에 달하는 판매 매장과 끊임없는 광고를 통한 적극적인 영업 활동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평가됐다. 세진컴퓨터랜드 측은 이후 세종대왕 프로 등 자체 제품 생산을 통해 삼성과 삼보의 지분을 빼앗아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편 PC 시장 상위 5개 업체가 국내 업체로 도배되면서, 상대적으로 외산 업체들의 시장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엘렉스컴퓨터, 한국IBM, 한국HP 등을 포함한 8개 업체의 시장 점유율을 합쳐도 전체 시장의 9.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물론 전체적인 시장 확대에 따라 절대적인 판매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시장 점유율로 따진다면 오히려 1995년보다도 감소한 수준이었다.

국내 시장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확보한 것은 매킨토시 공급업체인 엘렉스컴퓨터로, 전체 시장의 2.6%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역시 1995년의 2.8%에 비하면 하락한 것으로, 매킨토시의 시장 점유율 역시 함께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외산 업체 중 가장 인상 깊은 모습을 보인 것은 상대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한국컴팩이었는데, 한국컴팩은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시장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PC서버 분야에서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한국컴팩이 국내 시장에 판매한 PC서버는 3천 6백여 대로, 이는 전체 PC서버 시장의 47%를 차지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외산 PC업체가 국내 시장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로는 시장에 적합한 제품 공급이 신속치 않다는 점과 유통망·AS망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따로 유통 채널을 확보하지 않고 본사 직판을 내세우는 델컴퓨터는 국내 시장 전체 판매량의 0.1%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 세진컴퓨터랜드나 두고정보통신 등을 유통채널로 확보한 한국HP도 1.8%에 그쳐, 국내 시장에서만큼은 외산 업체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었다. 더군다나 1996년에는 환율 상승까지 겹쳐 한층 더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 자명한 이상, 국내에서 이렇다 할 수익을 올리지 못한 외산 업체들이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2016년, 침체기에 빠진 전 세계 PC 시장

 

▲ 2015년~2018년 전 세계 디바이스 유형별 출하량 (출처 가트너, 2016)


지난 2016년 10월, 가트너는 전 세계 디바이스 시장이 전년 대비 3%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PC, 태블릿, 모바일폰 등의 모든 디바이스를 포함한 것으로, 이 중 PC시장은 특히 감소폭이 커 약 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한 란지트 아트왈(Ranjit Atwal) 가트너 책임 연구원은 이미 전 세계 PC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신규 수요가 감소함은 물론, 장비의 성능 향상에 힘입어 기존 제품의 교체 주기 역시 길어지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트너는 이미 지난해 9월에도 전 세계 PC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트레이시 차이(Tracy Tsai) 가트너 리서치 총괄 부사장은 “기존에 알던 전통적인 PC 사업 모델은 붕괴됐다”며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PC 공급업체들의 전략 변화를 촉구했다. 향후 5년 간 전 세계 PC 설치 대수는 꾸준히 감소할 것이며, PC 공급업체의 매출과 이익도 계속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전 세계 PC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은 IDC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1월 IDC는 2016년 3분기 PC 출하량 조사결과를 내놓았으며, 이에 따르면 전 세계 PC 출하량은 꾸준한 감소세를 이어가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한 결과를 보였다.

 

▲ 2015년~2018년 전 세계 디바이스 유형별 출하량 (출처 가트너, 2016)

반면 지난 3분기 국내 PC 출하량은 전 세계 추세와 달리 소폭 성장했다. IDC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PC 출하량은 102만 대로, 전년 3분기의 99만 대에 비해 3.5% 증가했다. PC 출하량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전 세계 추세와 달리 국내 PC 시장이 소폭 성장한 결과를 보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항목별로는 일반 소비자 부문에서 가장 큰 성장을 보여, 약 55만 대의 출하량을 달성해 전년 동기 대비 3만 대의 증가세를 보였다. 상반기까지는 전년 대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하반기 들어 갑자기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IDC 측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최근 높은 성능을 필요로 하는 게임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레 고사양 PC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5월에 발매돼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리자드 사의 ‘오버워치’ 등을 원활히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성능을 갖춘 PC가 요구되며,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듯 국내 PC 시장의 수요는 GTX·R9 등의 외장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데스크톱·노트북에 편중돼 있었다.

일반 소비자와 함께 지난해 3분기 PC 시장 성장을 견인한 것은 교육 부문으로, 약 6만 대의 출하량을 달성해 전년 동기 대비 2만 대 가량 증가했다. 이는 교육청이 지난해 초부터 시행한 각 학교의 노후화된 데스크톱 교체 사업에 의한 것으로, 실제로 교육 부문의 PC 수요는 지난해 내내 전년 동기대비 높은 성장률을 보여 왔다. 2015년에는 교육 부문이 5개 부문 중 가장 낮은 수요를 형성했으나, 2016년에는 공공 부문을 누르고 4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 시장 반짝 성장, 안심할 일 아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의 기기가 발전해나가면서 ‘PC 종말론’ 문제는 항상 제기돼 왔다. 기업의 업무 환경 역시 클라우드의 활성화로 더 이상 사무실 내에 고정되지 않게 되면서 이 같은 ‘PC 종말론’은 한층 더 힘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너무 앞선 걱정일 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스마트폰 등을 사용하는 많은 일반 사용자들 역시 여전히 PC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역할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을 통해 필요한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문서 작성이나 영상 편집, 혹은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그래픽 작업 등 PC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영역 역시 존재한다. 이처럼 점점 더 편리하고 다양한 사용자 중심 기기가 등장하는 현재에도 PC는 여전히 중요한 디바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PC 시장이 언제까지나 안정적인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C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은 반대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이 강점을 보이는 영역도 존재한다는 뜻이며, 이는 PC 사용자의 일부가 개인의 요구에 따라 언제든 새로운 디바이스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가트너와 IDC의 분석에서처럼, 전 세계적으로 PC 시장은 꾸준한 감소세에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국내 PC 시장은 전 세계 PC 시장이 축소된 지난 3분기에도 소폭 성장을 이뤄냈으나, 이 역시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3분기 성장을 견인한 일반 사용자 수요와 교육 부문 수요는 높은 성능을 필요로 하는 게임의 유행이나 교육청의 대규모 PC 교체 사업 진행 등 단발성 이슈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향후 시장 확대를 견인할 새로운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국내 PC 시장 역시 전 세계 PC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1996년은 이전까지 20% 이상을 유지하던 PC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정체기에 들어서던 해였다. 반면 2016년은 전 세계의 꾸준한 PC 시장 침체기에도 국내 시장이 반짝 성장을 보인 해라는 점에서 대비된다. 그러나 단발성 이슈에 기반한 국내 시장 성장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향후 PC 시장을 유지해 나갈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지 않는다면 국내 PC 시장 역시 하락세를 겪게 될 것은 자명하다.

장기적인 전 세계 PC 시장 침체기와 꾸준히 제기될 ‘PC 종말론’의 틈바구니에서 국내 PC 업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순발력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의 디바이스와 경쟁할 수 있는 확실한 입지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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