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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 20년 전]기업 성장의 필수요소로 IT 시장 달군 ‘ERP’1997년 - 전 세계적 열풍 일으키며 IT시장 성장 견인차 역할 / 2017년 - 클라우드·모바일로 이동…짧은 구축기간, 구축비용 부담 없어

   
 
[컴퓨터월드] 20년 전, 전 세계 모든 분야 기업들을 열광시킨 IT 기술은 바로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 자원관리)였다. ERP는 이전까지 사업체별로 분리된 전산시스템을 하나로 모아 기업 전반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을 제공할 수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향후 시장에 대한 예측과 기업의 성장 전략을 세우는 데에 필수적인 기술로 평가받았다.

오늘날, ERP는 기존의 온프레미스 기반에서 벗어나 클라우드나 모바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온프레미스 ERP에 비해 클라우드·모바일 기반 ERP는 훨씬 짧은 구축기간과 적은 비용으로 운용 가능하며, 이에 따라 다수의 관리인력과 전산장비를 갖추기 어려운 중소규모 기업들에게 높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사적 자산관리 시스템의 등장
90년대 후반, 전 세계 각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사적 자원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이하 ERP)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가트너는 2000년까지 전 세계 기업의 40% 이상이 ERP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이런 흐름에 맞춰 IDC는 세계 주요 150개 클라이언트 서버 애플리케이션 업체들이 연평균 32%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RP 도입 열풍은 국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삼성, LG, 현대 등 대형 그룹사들은 물론, 한국중공업, 데이콤 등의 중견 기업이나 여타 중소기업들 역시 ERP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생산·유통 라인에 ERP 도입을 적극 시도했던 빙그레는 ERP 도입을 위한 ‘신경영 전략정보 시스템 태스크포스팀’까지 운용했으며, 1993년부터 3년에 걸쳐 단계적인 ERP 도입을 추진했다. 또한 기존 시스템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필요로 하던 기아중공업 역시 ERP 도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렇듯 ERP 시장이 성장한 것은 기업들이 기존 경영 관리 시스템이 가진 허점을 인식하기 시작한데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ERP 이전에 기업들이 사용하던 거래 처리 시스템(Transaction Processing Systems, 이하 TPS)은 업무 도중 발생하는 각종 데이터를 분류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를 통해 기업은 업무상 누락된 데이터 없이 안정적인 자산 관리가 가능해졌으며, 데이터 관리에 소요되는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TPS는 90년대에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시장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TPS는 대개 각 사업 부문이나 업무에 맞게 개별적으로 구축·운영돼 왔기에 상호간의 유기적인 연결이 어려웠고, 이에 따라 누적된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의미 있는 결과 값을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수반돼야 했다. 규모가 큰 기업, 특히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글로벌 기업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세계 각지에서 운영되는 생산 공장이나 지사 등에 각각 전산장비와 TPS를 구축해야 했고,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서로간의 즉각적인 정보 공유 역시 문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ERP 시스템은 이 같은 TPS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던 기업들에게 획기적인 차세대 관리 시스템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ERP 시스템은 생산관리·물류관리·재고관리 등은 물론, 재무·회계 같은 경영 관리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역시 단일한 시스템에서 관리함으로써 데이터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가능하게 하며, 시장 전반의 흐름을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통합적인 시각을 제공할 수 있었다. 모든 생산 공장이나 지사 등이 단일한 시스템을 통해 연결됨으로써 기업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현실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분산 관리에서 정보 공유로
ERP가 가져온 변화는 기업 내부의 유기적인 시스템 구축만이 아니었다. TPS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각 기업들이 자기 환경에 맞는 전용 TPS를 구축해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문 인력이나 업체와 계약해 장비 도입부터 시스템 구축까지 지원받거나, 자체적으로 TPS 개발 인력을 보유해 직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기업 내부, 혹은 지점 내부에서 폐쇄적인 관리 환경을 구축하는 TPS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었다.

반면 ERP 시스템의 구축은 대개 SAP나 오라클과 같은 대형 ERP 패키지 공급사에 의해 이뤄졌다. TPS와 달리 ERP는 기업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기보다 공급업체가 제공하는 일원화된 시스템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기업 측은 공급업체가 제공하는 ERP를 기업 환경에 맞게 일정 부분 하는 수준에 그쳤다. 표준화된 ERP 시스템을 구입함으로써 기업은 자체적인 전산 인력을 상당부분 절약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지점 상호간의 정보 공유 환경을 넘어 같은 전산 환경을 공유하는 다른 기업과도 유연한 정보 교환이 가능해졌다. 시스템 개발을 위한 전산 인력을 보유하는 것보다 대형 공급업체가 제공하는 표준화된 ERP 환경을 도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유리했다.

공급업체에 구축과 관리를 일임하는 기업들이 늘어남에 따라 전 세계의 ERP 공급업체들은 속속들이 몸집을 불리며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었다. 90년대에 이르러 국내에도 ERP 도입 열풍이 휘몰아치게 되면서 SAP, 오라클, BaaN, QAD 등 수많은 ERP 패키지 공급업체들이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시장 전략을 전개해나갔다.


SAP와 오라클, 대형 ERP시장 양분
국내에 진출한 ERP 공급업체 중 가장 주목받고 있었던 것은 단연 SAP와 오라클이었다. 1994년 삼성과의 계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영업활동에 들어간 SAP는 1995년 국내 지사를 설립하고 메인프레임용 패키지 R/2와 클라이언트 서버용 패키지 R/3을 내놓았다. 특히 삼성이 도입을 결정한 R/3는 재무회계, 재정관리, 관리회계, 자본투자관리, 공장유지보수 등 12가지의 기능을 갖춘 방대한 패키지로, SAP가 전 세계 ERP 시장의 34%를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R/3로 인해 SAP는 마이크로소프트, CA, 오라클, 노벨에 이어 세계 5위의 소프트웨어 업체로 기록됐으며, 무분별한 영업범위 확대보다 고객 중심의 서비스 제공을 모토로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국내에서는 삼성데이타시스템과의 협력을 통해 ERP 시스템의 한글화 및 고객적합성 테스트를 진행, 현지화에 초점을 맞춘 전략으로 삼보컴퓨터나 현대 등 다양한 업체에 ERP 시스템을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SAP의 ERP 시스템을 도입한 삼성, 그 중에서도 삼성중공업 영국생산 법인은 그동안 사용해오던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에 한계를 느끼고 비즈니스 전반의 효율적 개선을 위해 ERP 시스템을 도입했다. 특히 SAP의 ERP 시스템에 대해 ▲다국적 언어 지원과 국가별로 차별화된 기능을 지원하는 국제성 ▲생산, 판매, 재무, 회계 등 조직간에 일치된 정보를 즉각 공유할 수 있는 통합성 ▲업무 및 조직 변경에 따라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 ▲최소한의 유지보수 인원으로도 사용 가능한 용이성 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에 따라 삼성중공업은 1995년 7월, ERP 구축 프로젝트 팀에 대한 교육을 시작으로 SAP의 R/3 구축에 나섰다. 같은 해 10월에는 재무회계 모듈을 적용하는 한편 타 모듈 모델링 작업을 완료했고, 1995년 12월에 모듈별 프로토타입 완성을 거쳐 이듬해 3월에 모든 테스트 작업이 끝나 R/3 구축 프로젝트가 완료됐다. 삼성중공업 측은 R/3 구축을 통해 보다 적은 시스템 개발 및 유지보수 인원으로도 이전보다 강화된 관리 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며, 설계변경관리나 수정오더처리 등 중공업 특성에 맞는 솔루션을 확보하게 됐다.

한편, 90년대 후반 전 세계 ERP 시장을 선도하고 있던 SAP에게 강력한 대항마로 제시된 것은 바로 오라클이었다. 오라클은 1995년 초부터 오라클 애플리케이션을 내세우면서 국내 ERP 시장에 진출했다. 특히 SAP보다 훨씬 빠른 1989년에 국내 지사를 설립하고, 국내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Data Base Management System, 이하 DBMS)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는 장점을 내세워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펼쳤다. 국내 협력사망 확대, 지속적인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이미지 개선과 제품 홍보 활동을 전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96년에는 SAP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LG전자, 한화 등의 ERP 시스템 구축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오라클의 ERP 시스템을 채택한 대표적인 기업은 네트워크 솔루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시스코였다. 당시 시스코는 연간 2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글로벌 기업이었으며, 5개국에 위치한 지사들을 하나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필요로 했다. 기존의 유닉스 기반 시스템은 전 세계에 걸친 시스코의 사업 영역을 관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이에 따라 시스코는 오라클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하게 됐다. 오라클 애플리케이션은 시스코의 주문 처리와 고객 서비스를 보다 빠르게 개선했으며, 기존의 복잡한 리포팅 데이터베이스와 애플리케이션을 간소화해 사용자가 조작해야하는 인터페이스를 25%까지 줄였다. 또한 오라클 애플리케이션이 지원하는 복수 통화 기능은 전 세계적인 유통망을 관리해야하는 시스코에게 사업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됐다.

   
▲ 97년 국내 ERP패키지 및 공급사


중소규모 시장, 많은 업체들이 각축전 벌여
SAP와 오라클의 뒤를 잇는 업체로는 SSA와 BaaN 등이 있었다. SSA는 50여 개 업체에 공급된 AS/400용 ERP 시스템을 발판으로 삼아 클라이언트 서버용 패키지인 BPCS 6.0을 공급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대형 그룹사 등을 주 고객으로 삼는 SAP나 오라클과는 달리 중소규모 업체, 그 중에서도 제조업체 시장을 위주로 공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차별화를 꾀했으며, 유한킴벌리나 텔슨전자, 대우시멘트 중국공장 등에 BPCS 6.0을 공급해 안정적인 성능을 검증받았다. 특히 메시지를 기반으로 한 분산객체 컴퓨팅 아키텍처(Distributed Object Computing Architecture, DOCA)와 2세대 클라이언트 서버 기술 채택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BaaN은 국내 총판인 DNI코리아를 통해 간접적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파트너사인 캐나다 ISM-BC와 함께 제조산업분야 ERP 패키지 BaaN-Ⅳ를 공급했는데, 첫 대형 고객으로 한국중공업의 ERP 구축 사업을 따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컨설팅 및 교육훈련 서비스를 위해 국내에 상주하는 80명 가운데 50명은 모두 외국 컨설턴트로, 전문적인 역량을 동원해 국내 고객들에게 발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특이하게도 총판사인 DNI코리아는 각 사업군 별로 별개의 SI 업체와 파트너 계약을 맺었는데, 이를 통해 통신시장은 데이콤, 철강시장은 포스데이타, 건설 및 물류 분야는 한진정보통신, 쌍용그룹과 LG그룹은 각각 쌍용정보와 LG히다찌가 전담하게 됐다.

그 외에도 중소형 시장을 대상으로 QAD, IFS, 에임즈 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중 가장 이목을 끌었던 것은 단연 한국형 ERP 패키지 신경영정보탑을 내세운 한국기업전산원으로,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ERP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기업전산원은 국내 업체라는 친근함과 전문성을 내세우는 동시에, 국내 주요 산업의 흐름이나 외국과 다른 상법, 세법, 노동관계법 등의 국내 프로세스를 외국 ERP 시스템에 맡기는 것은 국가경제적 차원에서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국내 산업 환경에 가장 잘 맞는 형태로 구축된 신경영정보탑이야말로 국내 기업들에게 가장 적합한 ERP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신경영정보탑은 5만여 고객의 업무전산화를 수행했던 한국기업전산원의 노하우가 담긴 제품으로, 다른 사업용 시스템과도 간단히 연동돼 현행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높은 성능의 ERP 시스템을 제공해 한국형 ERP 표준을 세우겠다고 장담했다.


필수로 자리 잡은 ERP, 선결과제도 남아
다양한 ERP 제품들이 물밀 듯이 몰려오는 가운데, 국내 업계에서는 ERP 시스템 도입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는 ▲획기적인 전산비용 절감 ▲시장 요구에 대한 전사적인 대응 ▲실제적인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의 실천 등을 이유로 ERP 시스템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업계 평균으로는 자체 관리시스템 개발과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각각 전체 전산비용의 52%, 32%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업들은 ERP 시스템 도입을 통해 합계 84%에 이르는 이들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며, 따라서 당장 ERP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큰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었다.

또한 각 생산·물류·영업 지점별로 개별적인 시스템이 아닌 통합적인 시스템을 지원함으로써 시장의 요구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곧 생산력 향상과 매출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역시 존재했다. 기존의 TPS가 제공하지 못하는 ERP의 통합성이 보다 유기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세계적인 추세가 된 리엔지니어링 역시 ERP 도입의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로 언급됐다. 기업 구조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와 경영혁신을 이룩하는 리엔지니어링을 위해서는 먼저 기업의 내부 사정을 상세히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으며, 따라서 기업 전반의 전사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ERP 시스템은 리엔지니어링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인정받고 있었다.

   
▲ 1996~2004 국내 ERP 시장의 성장 추이 (출처: 컴퓨터월드)

한편 ERP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산업 전반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았다는 주장도 있었다. ERP 시스템이 향후 기업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너나할 것 없이 시스템 구축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우선 ERP 전문 컨설턴트의 부족을 꼽을 수 있었다. 기업이 ERP 시스템을 도입할 때는 공급업체가 제시하는 표준화된 규격을 활용할 부분과 기업 업무에 따라 커스텀화 할 부분을 구분하고, 시스템 구축 기간 동안 ERP 공급업체와 기업 전산부서 사이에서 양측을 적절히 중재하고 ERP 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도맡을 전문 컨설턴트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아직 ERP 도입 초기단계였던 국내에는 전문 컨설턴트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며, 외국 컨설턴트를 영입할 경우 하루에 평균 2천 달러에 달하는 컨설팅 비용을 지급해야 했다.

또한 자체 ERP 구축 능력을 보유한 국내 공급업체가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당시 ERP 시스템을 공급할 수 있는 국내 업체는 한국기업전산원 단 한 곳으로, 그나마도 SAP나 오라클, BaaN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 사이에서는 규모나 기술력에서 동등한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국내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글로벌 기업들의 ERP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이는 앞서 한국기업전산원이 주장한 바와 같이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큰 문제점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ERP 시스템은 도입한 기업의 업무 흐름 전반을 관리하며 데이터 공유의 허브가 되는 만큼, 만약 공급업체 측에 문제가 발생해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게 될 경우 해당 기업의 업무 전반이 마비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관련업계에서는 빠른 ERP 시스템 도입이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 중요한 사안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한 사례 연구와 구현가능성 점검, 사후 대처 역량 확보 등 꼼꼼한 사전 점검을 우선할 것을 주문했다. 구축 과정에서 적절한 컨설팅을 제공받지 못해 부실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거나, 공급업체 선정 과정에서 실수를 범해 신뢰할 수 없는 업체의 ERP 시스템을 사용하게 된다면 이는 차라리 기존의 TPS를 유지하느니만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ERP, 온프레미스 벗어나 활로 찾는다
2014년 9월, KT DS는 SAP의 ERP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ERP 매니지드(managed) 서비스’를 공개했다. ERP 매니지드 서비스는 간단히 말해서 ERP 시스템·인프라 임대 사업으로, 매월 일정량의 이용료를 납부하면 ERP 구축에 필요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라이선스 등을 통합해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로써 고객은 높은 초기 투자비용과 복잡한 구축 과정에 고생하지 않고도 간단히 ERP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할 수 있으며, 이용기간 중에는 KT DS 측의 모니터링과 통합관제 서비스 등을 통해 지속적인 사후관리 역시 받을 수 있다.

90년대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던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시장은 그 기세가 꺾여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과거의 온프레미스(On-premise)형 ERP 시스템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며, 이에 반해 KT DS와 같이 온프레미스 이외의 방법을 활용한 ERP 시스템 운용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온프레미스형 ERP 시스템은 초기 도입에 수개월에 걸친 구축 기간과 높은 비용이 필요하고, 이후로도 업그레이드와 시설 관리를 위해 지속적인 비용 지출이 요구된다. ERP 시스템의 필요성은 대부분의 기업이 인정하고 있으나 이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이 중소기업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되는 ERP 시스템은 훨씬 짧은 기간에 기존 시스템과의 충돌없이 적용될 수 있으며, 별도의 유지보수가 필요한 장비나 전산실 등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비용 면에서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 국내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시장 전망 (출처: IDC, 2015)

지난해 발표된 한국IDC의 ‘한국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시장 점유율’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국내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시장은 전년 대비 7.4% 성장한 4,146억 원 규모에 달했다. ERP 도입이 ‘대세’로 자리 잡았던 90년대보다는 낮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IT 업계 전반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치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포화상태에 이른 온프레미스형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을 대체하는 새로운 모델, 즉 SaaS와 같은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형 모델이 증가하며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P나 오라클과 같은 대형 ERP 공급업체들 역시 클라우드를 통한 서비스 제공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내 ERP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SAP는 중소규모 기업들을 대상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의 클라우드 기반 ERP 시스템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SAP 측은 클라우드를 통해 ERP 시스템을 제공하면서, 기업 측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ERP 시스템을 미리 구축해놓고 대상 기업의 역량이나 영업 형태에 따라 가장 적합한 모델을 제공한다. 이는 전문 컨설턴트가 몇 달에 걸쳐 기업 구조에 딱 맞는 형태로 구축하던 온프레미스 형태와 달리, 클라우드 기반 ERP 시스템은 도입에 걸리는 시간이나 서비스 제공 상의 문제로 완벽히 딱 알맞은 형태로는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에 여러 가지 형태의 클라우드 기반 ERP 모델을 만들어놓음으로써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 SAP는 ERP, CRM, SRM 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한 ‘S/4HANA’를 공개하고,
 온프레미스·퍼블릭 클라우드·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버전을 각각 출시했다.

오라클 역시 클라우드 기반 ERP 시스템 제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클라우드 기반 ERP 솔루션 제공업체인 ‘넷슈트(NetSuite)’를 인수했으며, ‘오라클 클라우드 앳 커스토머(Oracle Cloud at Customer, OCC)’를 통해 ERP는 물론, 인적자원관리(Human Capital Management, HCM)와 고객경험(Customer Experience, CX) 관리 솔루션도 SaaS 방식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형래 한국오라클 대표는 “국내 클라우드 비즈니스 성장률이 세 자릿수가 되도록 시장 공략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밝혀, 클라우드를 통한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는 향후 행보를 짐작케 했다.

한편 국내 ERP 시스템 공급업체들 역시 클라우드 환경에 적응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ERP 공급업체인 영림원소프트랩은 ‘K-시스템 지니어스(K-system Genius)’가 모바일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K-시스템 지니어스는 클라우드 환경에서 구축된 ERP 시스템으로, 필요에 따라 분리 가능한 82개 모듈로 구성돼 사용자 요구에 따라 3가지 패키지를 선택해 도입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번 모바일 환경 지원을 통해 클라우드로 공유되는 ERP 데이터를 언제나 모바일 환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한층 더 편리한 ERP 시스템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클라우드 ERP, 대세로 받아들여야
클라우드 환경에서 구축된 ERP 시스템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온프레미스형 ERP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기업 특색에 맞게 구축된 ERP 시스템을 단번에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나, 지속적으로 많은 관리유지비가 요구되는 온프레미스형 ERP 시스템은 언젠가 클라우드, 혹은 전혀 새로운 ERP 시스템으로 전환을 맞게 될 것이다. 이에 최문수 한국IDC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시장 분석 연구원은 “온프레미스 방식은 업그레이드와 유지관리를 위한 지속적인 비용 문제를 야기하며, 장비와 소프트웨어의 노후화로 기능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면 많은 기업들이 클라우드 ERP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는 TPS를 대체하는 ERP 시스템의 등장으로 전 세계적인 ERP 열풍이 일어난 시기였다. 당시 전 세계 ERP 시장을 석권하던 SAP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ERP 분야 1위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ERP를 대하는 사용자들의 인식은 많은 변화를 맞았다. 더 빠른 정보 공유와 통합적인 관리기능을 위해 도입되던 온프레미스 방식의 ERP 시스템은, 회사 내부가 아닌 어디서라도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클라우드 모바일 ERP 시스템과 획기적으로 구축비용을 줄인 SaaS 형태의 클라우드 ERP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보다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성능, 더 빠른 속도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들의 요구에 맞춰, ERP 시스템 역시 꾸준한 변화와 성능 향상을 통해 빠르게 변하는 IT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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