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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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 20년 전] 유통사 부도 속출…몸살 앓던 PC 유통업계1997년 - 피해 확산 막느라 급급…격변 맞이해 혁신 목소리 높아 / 2017년 - 긴 안목의 시장 확대·안정화 전략 필요

   
 
 [컴퓨터월드] 1996년, 국내 중견 컴퓨터 유통업체 5개사가 보름 만에 연달아 무너졌다. 업계에서는 이들의 부도 원인으로 무모한 가격 경쟁과 사업 확장 등을 꼽았다. 당시 PC 시장은 이들의 연쇄 부도 사태로 큰 위기를 맞았으며, 너나할 것 없이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2017년, 전 세계적인 PC 시장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은 소폭 성장이라는 고무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오버워치’ 등의 고사양 게임 출시와 교육청의 노후 PC 교체 사업이라는 단발성 이슈에 따른 결과로, 장기적인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보름 만에 5개사 연쇄 부도

1997년 1월 29일 한국IPC의 부도를 시작으로, 2월 3일 멀티그램, 12일 아프로만, 13일 세양정보통신, 14일 한국소프트 등 중견 컴퓨터 유통업체 5개사가 줄줄이 무너졌다. 보름 만에 5개사가 쓰러진 초유의 사태 앞에 컴퓨터 유통업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들의 부도금액은 확인된 것만 해도 3,500억 원에 달했다. 한국IPC가 1,055억, 아프로만이 1,000억, 세양정보통신이 1,200억 수준이었으며, 멀티그램과 한국소프트는 정확한 금액이 파악되지 못했다. 또한 이들의 부도로 피해를 입은 업체들이 추가피해와 향후 거래를 우려해 피해 사실을 숨기고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됐다.

   
▲ 보름 사이에 한국IPC를 시작으로 중견 PC유통업체 5곳이 줄줄이 무너졌다.

당시 겉으로 드러난 피해업체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 IPC는 멀티그램, 성원정보기술, 두원전자, 두산정보통신, 한일정보통신 등 약 30여 개 업체에 피해를 끼쳤으며, 세양정보통신도 40여 개 업체에, 멀티그램과 한국소프트 역시 자신들과 거래하던 CD피아 등에 부실채권을 떠넘기게 됐다.

특히 관련업계 19년 종사라는 역사와 매출규모, 시장 영향력을 가진 아프로만은 약 400개 업체들에게 지대한 피해를 입히게 됐다. 당시 아프로만은 국내 컴퓨터 업체 대부분과 거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5개사 부도 사건은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였다.

관련 업계는 5개 사의 연쇄 부도가 수개월 간 컴퓨터 유통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월 말, 3월 중순, 3월 말로 각각 잡혀있는 어음 결재 만기 날짜에 맞춰 또 다른 업체들이 속속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한보사태, 경기불황 등으로 인한 심각한 자금난과 어음 거래마저 단절된 상황에서 영세한 업체는 버틸 여력이 없을 것임에 분명했다.

게다가 PC 판매의 성수기인 연초에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번 고비를 잘 넘기더라도 비수기에 접어든 시장에서 연간 매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사태가 수습되는 것은 빨라도 5월은 돼야할 것으로 전망됐고, 5월은 컴퓨터 시장이 비수기로 접어드는 시기라 판매량이 급감할 것이 분명했다.


적자 외면하다가 문제 키워

중견 컴퓨터 유통업체 5개사의 줄도산은 무분별한 가격 경쟁만을 내세운 안일한 유통전략이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평가됐다. 컴퓨터 판매 호조에 편승해 수많은 영세 유통업체들이 난립하자, 업체들이 유통마진의 적절한 마지노선조차 책정해 놓지 않고 무리한 가격 경쟁을 일삼아 꾸준히 적자가 누적돼 왔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윤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대기업 메이커 PC조차 당시 전체 소비자 가격에서 3~5% 정도의 마진만 남기고 판매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대리점에게 제공하는 마진율은 20%였으나, 가격 경쟁을 위해 대리점이 마진을 3~5%까지 줄여 판매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홍보 차원에서 신문 전면 광고 등을 게재하는 등 마케팅 비용을 아끼지 않았고, 이 같은 불합리한 운영이 유통업체들의 적자 누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케팅 비용을 아끼거나 PC 가격을 업계 평균보다 비싸게 책정하면 판매 자체가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최소한의 마진만 남기며 사업을 유지해봐야 적자만 꾸준히 누적되는, 그야말로 어느 업체가 먼저 무너지느냐 하는 치킨 레이스가 진행됐던 것이다.

꾸준한 적자 누적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유통업체들이 버텨왔던 것은 그들이 대형 물주의 지원을 통해 사업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한국IPC는 두원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세양정보통신은 극동그룹의 계열사였으며, 멀티그램은 두원그룹의 계열사였다. 이 때문에 당시 국내 PC 유통 시장이 대기업들의 대리전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된 적자를 더 이상 대형 물주 입장에서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유통업체에 대한 지원이 끊기고 이에 따라 도산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두원그룹 계열사였던 멀티그램의 경우, 두원그룹 측의 멀티그램 실사에서 엉뚱하게도 한국IPC의 부실채권을 대량으로 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정리 조치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로만과 한국소프트는 대형 물주와 연관돼 있지는 않았으나, 부실 유통업체인 세양정보통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세양정보통신을 중심으로 아프로만과 한국소프트가 같은 시기에 무너진 것은 당시 이들의 협력관계를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세양정보통신은 대기업으로부터 메이커 PC를 대량으로 납품받은 후 이를 아프로만과 한국소프트에 3~5%의 마진을 떼고 공급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대기업에게서 많은 물량을 납품받을 수 있었던 세양정보통신의 물량을 아프로만과 한국소프트가 나눠서 소화했던 것이다. 특히 아프로만은 세양정보통신 총 거래물량의 80%를 감당함으로써 한국소프트보다도 더욱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 아프로만과 한국소프트는 협력관계였던 세양정보통신의 부도로 연달아 무너졌다.

그러나 적자가 누적되기만 하는 판매 전략을 유지하던 업체들끼리 협력관계를 맺더라도 뚜렷한 실리를 취할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서로에게 부실채권만을 안기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와중에 한국IPC의 부도 사태를 접하고 경각심을 가지게 된 장홍선 극동그룹 회장이 세양정보통신의 실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세양정보통신이 아프로만에 500억 원, 한국소프트에 200억 원 가량의 부실채권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극동그룹은 곧바로 세양정보통신의 정리 조치를 내렸고, 세양정보통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아프로만과 한국소프트 역시 자연스럽게 도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부실유통업체간 많은 거래 물량과 협력 관계가 여러 유통업체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졌다. 당시 유통업체 부도 대란이 상기한 5개 업체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바로 이와 같은 사정이 시장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유통업체들끼리 서로 물량을 대주거나 부실채권을 감당하는 경우가 숱하게 일어나고 함께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자, 한동안 연이은 부도 소식이 PC 유통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라는 걱정이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용산전자상가, 발 빠르게 대응

한편 용산의 조립PC 업체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안 그래도 대기업 메이커 PC에 비해 품질 및 A/S가 떨어진다는 평가에 고전하고 있는데, 한 번에 부도가 나버린 5개 유통사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들이 많았던 용산상가로서는 악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체 2,600여 개 업체 중 20% 정도가 버티지 못하고 도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당시 용산의 한 조립PC업체 사장은 2월 들어 매출이 2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새해와 신학기 등이 겹쳐 PC판매량이 증가해야할 시기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매출 하락이 발생한 것이다.

용산의 중견 PC업체로 입지를 다진 뉴텍컴퓨터나 현주컴퓨터 등은 이번 사태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아 한 숨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직접적인 피해만 입지 않았을 뿐, 향후 어려운 시기를 마주칠 것임은 자명했다.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어도 다른 도산한 업체들에서 쏟아져 나올 덤핑 물량이 판매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도 사태로 주요 부품 유통라인이 타격을 입어, 향후 원활한 물량을 공급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이미 2월 말부터는 용산의 일부 상가에서 한국IPC의 덤핑 물량이 저가에 판매되고 있었다. 기존 시장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낮은 가격에 여타 상가들이 울상을 짓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한국IPC의 물량이 모두 시장에 풀릴 경우 약 9천여 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으며, 세양정보통신이 도산 직전에 아프로만에게서 회수한 물량도 50억 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세양정보통신이 회수한 물량은 PC보다는 VGA, 사운드카드, 모니터 등 조립용 부품이 태반이라 용산의 조립PC업체들의 제품 가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풀이됐다.

위기의식을 느낀 용산전자상가는 나진, 원효, 터미널, 전자타운, 전자랜드, 선인 등 6개 상가 상우회장들이 긴급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용산전자상가의 유지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상인들의 자구책 제시로 관심을 받았다.

   
▲ 용산전자상가는 상우회를 중심으로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

상우회 측은 우선 진성어음만이라도 할인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고, 부가세 감면 등을 통해 영세 상인들의 상권을 보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1월에 발생한 한보그룹 부도 사태와 장기적인 경기불황이 맞물려 은행은 물론 사채업자들마저도 용산전자상가의 어음 할인을 기피하고 있으며, 영세 상인들의 빈약한 담보력 때문에 신용 대출마저도 힘든 실정이라는 설명이었다.

상우회 자체 집계에 따르면 2월 중순까지 용산의 피해 업체는 40여 개, 피해 금액은 500억 원 정도에 달했다. 후속 피해를 우려해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는 업체까지 포함한다면 업체 수와 금액은 더욱 불어나게 되며, 이는 정부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규모라는 게 상우회 측의 주장이었다.

또한 상우회는 용산전자상가의 자체적인 자구책 마련에도 힘을 쏟았다. 6개 상가가 공동으로 A/S망 구축과 물류센터 설립, PC 박물관 및 학습관 설치 등을 통해 대기업 메이커 PC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던 용산전자상가의 제품 품질과 A/S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이는 단기적인 홍보 효과를 통해 PC 유통업체 줄도산이라는 위기를 탈출함은 물론, 장기적으로 서비스 품질 향상을 통해 이미지 개선을 하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이를 위해 용산전자상가의 6개 상가를 대표하는 법인을 설립하고, 향후 이 같은 통합적인 대웅이 필요한 경우 대표기관으로 기능함은 물론, 대정부 의견 수렴이나 자금지원 창구로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세진, 대우 지원으로 살아남아

한편 잇따른 판매량 호조로 국내 PC시장의 3대 메이커로 떠오르던 세진컴퓨터랜드는 다행히 연쇄 부도의 물살을 버텨냈다. 업계에서는 만에 하나라도 세진컴퓨터랜드가 무너질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는 유일하게 삼성전자나 삼보컴퓨터와 경쟁할 수 있는 세진컴퓨터랜드가 부도를 맞을 경우, 세진컴퓨터랜드와 거래가 잦은 한글과컴퓨터 등의 유망 중소SW기업조차 연달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세진컴퓨터랜드 역시 PC 유통업체 부도 사태로 벼랑 끝에 몰렸지만, 다행히도 대우통신이 세진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지원하게 됨에 따라 회사 자체가 무너지는 결과는 피할 수 있었다.

대우통신은 한상수 회장이 물러난다는 것을 조건으로 세진컴퓨터랜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경영권을 끝까지 고수하겠다고 버티던 한 회장은 결국 심각한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대우통신의 퇴진 압력에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한 회장의 표면상의 퇴진 이유는 양사가 합의한 매출 목표(6,800억 원)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한 회장의 퇴진과 대우통신의 경영권 인수 시점에, 세진컴퓨터랜드의 누적 적자는 약 1천억 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우통신은 이 같은 누적 적자를 떠안더라도, 장기적으로 세진컴퓨터랜드를 정상화시켜 국내 3대 메이커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당시 세진컴퓨터랜드의 전국 매장은 76개에 달해 대기업들과도 견줄 수 있을 수준이었고, 진돗개를 통한 광고 전략 등으로 구축된 고객 친화적 브랜드 이미지 역시 포기하기는 아까운 수준이었다. 특히 ‘평생 무상 A/S 제공’이라는 세진컴퓨터랜드만의 공약을 무너뜨린다면 당시 지분의 51%를 보유하고 있던 대우통신에게도 타격이 올 것이 분명했다.

이를 위해 대우통신은 향후 세진컴퓨터랜드의 목표를 경영합리화로 설정했다. 세진컴퓨터랜드 관계자는 3,200여 명에 달하는 인원 감축과 부서 정리 등 군살빼기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유통부문과 생산부문을 분리하고, 생산부문을 세진컴퓨터로 독립시켜 경영권을 반납한 한 회장과 기존 임직원 4~500명을 이동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세진홈마트 사업을 중단하고 PC 생산과 유통에만 집중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대우통신은 세진컴퓨터랜드를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생 무상 A/S 제공’이라는 공약을 슬그머니 거두게 되고, 이후로도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한 채 누적 적자만을 불려갔다.

이후 대우통신의 해체와 맞물려 세진컴퓨터랜드 역시 2000년 9월에 파산 선고를 맞게 됐으며, 파산 당시 부채 규모는 약 4,800억 원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PC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가격 개선과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 등으로 세진컴퓨터랜드가 PC 대중화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확장과 차입경쟁, 무리한 가격 파괴로 인한 적자폭을 메꾸지 못한 점 등을 지적했다.


빈틈 노린 대기업 PC 대두

한편, 이러한 시장 상황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기업 메이커 PC의 판매량은 호조를 보이고 있었다. PC 유통업체의 잇따른 부도 소식에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가 바뀐 탓이었다. 성능에 큰 차이가 없다면 비교적 저렴한 영세 업체의 PC를 구매하던 소비자들이, 가격을 좀 더 치르더라도 품질과 A/S가 보장되는 대기업 메이커 PC로 돌아섰다. 당시 대기업 메이커 PC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던 세진컴퓨터랜드가 경영권 인계 등으로 어수선했던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

요동치는 시장 상황 때문에 발생한 유통 공백 사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소기업들은 너나할 것 없이 생산량 감축에 들어갔지만, 대기업들은 오히려 이 기회를 노려 시장 확대에 나섰다.

삼보컴퓨터는 PC이외에도 프린터, 무선호출기, 휴대폰 등 주변기기와 통신기기까지 갖춘 중형 매장을 다수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중형 매장들은 삼보컴퓨터 측의 제품 판매에 주력함은 물론, A/S센터와 위성교육장까지 겸한 통합 센터로 거듭날 예정이었다. 삼보컴퓨터는 이러한 중형 매장을 일산, 분당 등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1분기 내에 20여 개 신설하고, 향후 전국적으로 100개까지 불려나간다는 전략을 세웠다. 또한 1996년에도 약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A/S 및 교육망 마련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소비자들이 대기업 메이커 PC를 선택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사후관리에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세진컴퓨터랜드를 인수한 대우통신 역시 공격적인 마케팅과 유통망 확장에 들어갔다. 대우통신은 우선 주력 노트북PC였던 ‘솔로’의 전문 매장을 100개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매장들은 노트북 유통과 A/S를 전담해, 당시 이슈가 되고 있던 노트북 전문 매장으로 키워나간다는 전략이었다. 또한 세진컴퓨터랜드의 유통망을 흡수해, 향후 PC 유통 사업부문에서 튼튼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나가겠다고 밝혔다.


2016년, 국내 PC 시장 호조

지난해 가트너의 란지트 아트왈(Ranjit Atwal) 책임 연구원은 전 세계 PC 시장이 8%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미 PC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신규 수요가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기존 제품의 교체 주기 역시 길어지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PC 시장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달에 한국IDC가 밝힌 최근 국내 PC시장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PC시장은 전 세계적인 PC 판매량 부진에도 나름대로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 PC 출하량은 462만 대를 기록해 2015년 대비 3.2% 성장했다. 비록 성장폭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지난해 전 세계 PC 출하량이 5.7% 감소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 2016년 국내 PC 제품별 출하량(단위: 천 대)

특히 큰 상승폭을 보인 부분은 노트북 시장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1mm 이하 울트라슬림 노트북은 150만 대 출하돼, 전년 대비 40%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기타 노트북 시장과 데스크톱 시장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하락하는 결과를 보였다. 또한 21mm 이하 울트라슬림 노트북은 전체 노트북 시장에서도 62.3%를 차지해, 전 세계 31.6%에 비해 국내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IDC는 이 같은 울트라슬림 노트북 선호현상의 이유로 ▲사용자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개선된 디자인과 가벼워진 무게 ▲배터리 사용시간 증대 및 충전 방식 변화로 모빌리티 컴퓨터 환경을 제공 ▲메인스트림급 노트북들의 성능 향상 등을 꼽았다.

특히 메인스트림급 노트북들의 성능 향상은 지난해 잇달아 출시된 ‘오버워치’ 등의 고사양 게임과 맞물려 선호도가 증가했다는 평가다. 이전까지는 고사양 게임을 즐기기 위해 높은 연산성능을 갖춘 데스크톱이 필수적이었지만, 지금은 노트북에 탑재된 프로세서와 그래픽카드 등의 성능이 전반적으로 상향돼 굳이 데스크톱을 강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메인스트림급 노트북이 충분한 성능을 제공했으며, 이것이 판매량으로 직결됐다는 게 한국IDC의 평가다.

   
▲ 국내 PC 시장별 출하량(단위: 천 대)

이처럼 소비자부문에서 울트라슬림 노트북이 강세를 보였다면, 데스크톱 부문에서는 교육 부문의 판매량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교육 부문의 데스크톱 판매량 증가는 전년 대비 2배 이상을 달성했다. 이는 교육청이 실시한 각 학교 노후 데스크톱 교체사업과 저소득층 PC지원사업 등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부문에서 모두 소폭 감소한 데스크톱 시장은 교육 부문의 판매량 호조로 그나마 판매량 급감이라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육청의 노후 데스크톱 교체사업이 올해 2월을 끝으로 마무리 될 예정이기에, 향후 데스크톱 판매량 감소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시장 안정화가 핵심

1997년의 5개 PC 유통업체 연쇄 부도 사태는 당시 PC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 PC 대중화 열풍에 힘입어 호조를 누리던 PC시장은 이 시점을 기준으로 큰 변혁을 맞이했다. 적자를 짊어진 채로 무리한 사업 확장에만 목을 매고, 별다른 차별화 전략 없이 가격 할인만을 무기로 삼은 중소규모 유통업체들은 이 같은 연쇄 부도 사태를 버텨내지 못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쓸모없는 거품이 빠진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경쟁력 없는 업체들의 사업 방식을 보면 이미 부도가 예견돼 있었다는 것이다.

2017년, 국내 PC 시장은 전 세계 시장에 비해 안정적인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꾸준한 감소세에 있는 전 세계 PC 시장에 비해 국내 시장은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오버워치’ 등의 고사양 게임의 출시와 교육청의 노후 데스크톱 교체사업 등, 지난해 PC 시장의 판매량이 유지된 데에는 이를 받쳐줄 이슈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단발성 이슈가 사라진다면 국내 시장 역시 전 세계 시장과 마찬가지로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게 될 것이다.

안정적인 시장 형성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가격 파괴, 단발성 이슈에 깃댄 무분별한 사업 확장 등을 지양해야만 한다. 그보다는 제대로 된 유통망을 구축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형성하며,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제품 생산에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의 새로운 시장이 시시각각 PC 시장을 위협해오는 지금, 어느 때보다 더욱 기본에 충실하고 안정적인 시장 형성이 요구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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