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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가 만난 사람] “50년 역사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KCC정보통신 이주용 회장, 이상현 부회장

[컴퓨터월드] 우리나라 최초의 컴퓨터 회사인 KCC정보통신이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KCC정보통신의 역사는 우리나라 ICT 산업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국내 최초로 컴퓨터라는 개념 및 중요성,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산인력 양성 및 정보화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설립자인 이주용 회장이 있었다. 그는 이를 위해 미 IBM으로의 복귀도 마다하는가 하면 부친의 시멘트 회사 경영 권고도 과감히 뿌리쳤다. 이 회장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계기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도입한 한국생산성본부의 故 이은복 이사장의 “일본 후지쯔사로부터 컴퓨터(FACO222)를 도입하게 됐다며, 교육을 맡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명분일 뿐 이 회장의 가슴속 깊이 숨어있던 본마음, 즉 컴퓨터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 정보화의 씨앗을 뿌려보겠다는 사명감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미국 유학 시절인 1960년대 초 미국은 컴퓨터를 통해 산업의 정보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했고, 귀국 후 우리나라의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통한 정보화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는 이에 따라 미 IBM 왓슨 회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 한국지사 설립을 권유해 실현시켰고, 이후 국내 각 기관을 찾아다니며 컴퓨터가 어떤 것이며, 왜 필요하고, 산업 및 국가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설명과 설득을 하며 정보화 확산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컴’자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의 설명과 설득은 잘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2년여 기간 동안 거의 성과가 없어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가려고 했고, 일주일여 기간을 남겨 놓고 인사차 한국생산성본부에 들렀던 게 그의 가슴속 깊이 숨어있던 사명감을 끌어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사명감은 대한민국의 정보화로 이어졌고, 세계적인 정보화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그에게 그런 사명감이 없었다면 더 나은 조건을 택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난 만큼 남부러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는 대한민국의 정보화라는 개척자의 길을 택했다. KCC정보통신의 50년 역사는 그래서 더욱 오래 기억되고 빛날 것으로 확신한다. 이 회장은 “IT산업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것이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이 땅에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처럼 나 역시 정보화의 씨앗을 뿌리겠다는 일념이었다”고 밝혔다. 이주용 회장이 대한민국 정보화의 문익점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런 사명감으로 충심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 이상현 KCC정보통신 부회장

이주용 회장, ‘컴퓨터계의 거목’

"나한테 축사를 부탁한 것은 이주용 회장과 함께 자라온 고향 친구이자 일생을 함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주용 회장은 남달랐다. 독립심과 자립심은 물론 승부욕, 그리고 국가 발전을 생각하는 마음이 여느 사람들과 달랐다. 특히 미국 유학시절, 차별하는 백인들에 잘잘못을 따지며 항의하는 모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런 그였기에 KCC정보통신이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 회장은 1960년대 초 컴퓨터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했다. 수많은 어려움과 도전을 불굴의 정신으로 이겨냈다. 그를 두고 정보화의 혁명가라고 평가하고, 이주용 회장만이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KCC정보통신은 지난 10월 12일 용산 D호텔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기념식은 IT산업인들의 잔치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주용 회장의 죽마고우이자 그와 일생을 함께해 온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축사를 했다. 그는 이주용 회장을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의 정보화 혁명을 이룬 개척자이자 혁명가라고 분명히 했다.

그렇다. 그는 아무나 해낼 수 없는 대한민국 정보화의 초석을 다진 개척자이자 혁명가임에 틀림없다. 이에 의견을 달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그의 철학과 사명감이 있었기에 KCC정보통신이 50년의 역사를 유지하며 발전해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주용 회장은 미국행 비행기표를 3일 전에 취소하고, 컴퓨터를 탁상용 전자계산기 정도로 생각하고, 주판이면 충분하다는 고정관념 속에 묻혀 있는 척박한 대한민국에 컴퓨터 제 1호기를 반드시 성공시켜야겠다는 일념으로 매진했던 것이다. 그의 그 같은 사명감은 인력양성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 컴퓨터 프로그래머 교육 양성기관인 한국전자계산소(KCC)를 설립하게 된다.

미국행 3일 전 취소, 컴퓨터 인력 양성에 매진

한국전자계산소는 한국생산성본부 내에 별도 부설기관으로 설립했고, 초대 소장도 본인이 직접 맡아 컴퓨터 인력 양성에 본격 나섰다. 한국전자계산소는 8회에 걸쳐 360명의 인력을 양성했고, 이들을 컴퓨터 1세대라고 불린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각 분야에서 정보화를 주도했고,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정보화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주용 회장은 KCC를 운영하는 바쁜 와중에도 외부 강연 요청을 거의 다 받아들였다. 자칭 컴퓨터 전도사라며, “폐쇄정책으로 인해 1차 산업혁명이라는 열차에 오르지 못해 발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2차 산업혁명에서는 앞서가야만 한다. 경영정보화만이 살 길이다. 해서 정보혁명은 반드시 꼭 필요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열강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금성사의 구인회 회장, 삼성의 이병철 회장 등도 그의 강의를 직접 들었을 만큼 이 회장의 컴퓨터를 통한 정보화 혁명에 대한 관심은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그런 그의 열강은 국내 대기업들의 정보화를 추진하는 계기가 됐고, 이는 곧 세계적인 기업으로의 성장을 한 단계 앞당기는 계기도 됐다는 평가에 의견을 달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튼 한국전자계산소는 1967년 10월 12일 생산성본부에서 완전히 독립, KCC정보통신의 전신인 재단법인 한국전자계산(KCC)으로 과학기술처 산하 기관으로 다시 태어났고,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각 기관 및 단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본격화했다. 이 같은 활동은 1967년 5월 한국은행과의 외환자금 및 외환관리업무에 대한 용역계약을 처음으로 체결했고, 이어 한일은행, 신탁은행, 농협, 국민은행, 제일은행 등으로 점차 확산됐다. 1967년 7월에는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대한중석과 경영관리시스템(MIS) 개발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고, 이어 석유공사, 유한양행 등 민간기업들의 전산화도 점차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정보화 혁명가로서의 활동은 그의 의지대로 순탄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이주용 회장은 어려운 험로를 사명감과 개척자 정신으로 극복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을 무시하는, 다시 말해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장사꾼으로 취급하는 경우는 참지 못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난 1968년 정부로부터 2차 경제개발계획을 짜기 위한 통계분석 프로그램을 요청해 밤을 새워 개발했는데, 미국 대사관 경제담당 책임자(노턴)가 헐값(당시 시계열 하나에 1달러, 총 750달러)으로 대가를 주겠다는 의견에 이 회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특히 그 담당자는 거들먹거리며 한국인을 무시하는 듯한 억양과 태도로 대해 이 회장 역시 반말 투로 맞대응을 했다고 한다.

정보화의 개척자이자 혁명가

이주용 회장의 회고록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노턴은 “이 새끼가, 당장 꺼져(Get out)!”
이 회장은 이에 “뭐가 어째? 네가 뭔데 나가라 말라야, 이 자식아!”라며 노턴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욕이란 욕은 다 퍼부었다고 한다. 당시 이 회장은 미 대사관을 뒤엎을 만큼 큰 소리 치며 열을 냈다고 한다. 결국 노턴의 상급자가 달려와 뜯어 말렸고, 사과까지 받아 냈다고 한다. 이 회장은 “그는 나를 돈 몇 푼이 탐나서 뛰어든 장사꾼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마치 거지에게 적선을 베푼다는 투였다. 그 같은 태도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면 애초에 계약을 하고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돈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그를 둘러싼 일화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숱하게 많다.

아무튼 이 회장의 그런 사명감과 자부심, 그리고 만석꾼의 아들이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의지하지 않으려는 자립심 등은 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그를 ‘대한민국 컴퓨터계의 거목’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KCC정보통신이 50년이라는 역사를 유지하며 성장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이주용 회장의 그런 철학과 정신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회장은 자신의 재산 절반(약 600억 원)을 사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미 KCC정보통신이 설립한 재단법인 ‘미래와 소프트웨어’에 100억 원을 기부했고, 나머지 500억 원은 단계적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또한 서울대학교병원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도 각각 10억 원씩 지원한다. 미래와 소프트웨어 재단은 스타트업 기업들을 발굴 및 육성하고, SW창업센터와 SW코딩조기교육센터도 마련해 지원할 계획이다.

이상현 부회장, 자동차와 함께 9천억 규모로 성장

한편 이주용 회장의 그런 철학과 정신은 장남이자 후계자인 이상현 부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KCC정보통신의 50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며 앞으로 100년, 아니 그 이상을 이어갈 기업으로 성장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로 비즈니스에 임하고 있다.

이상현 부회장은 지난 1995년 4월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 이전에 1993년 3월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파악과 함께 2년여 동안 미래 청사진을 마련하는 수업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 당시 이 부회장의 나이는 29세였고, 이 회장은 61세였다. 이 회장이 너무 빨리 물러난 셈이고, 부회장 역시 너무 젊은 나이였다. 이주용 회장은 “사실 이상현 부회장에게 경영을 물려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전문 경영인을 후계자로 지목할 예정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독자의 길을 택했다. 당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고, 운도 잘 따르지 않아 물러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이상현 부회장 역시 부친과 거의 비슷한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상현 부회장 역시 독립심과 자립심이 강해 부친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튼 이 부회장은 KCC정보통신을 이끌게 됐고, 자동차와 함께 9,000억 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 발전시켜 나오기도 했다. 앞으로 어떻게 50년, 100년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직접 들어본다.

필요충분조건 다 갖춘 비즈니스 맨

- 대표이사 취임 당시 어떤 각오였고, 이것만큼은 꼭 이뤄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면.

“지난 1993년 기획조정실 실장을 맡았을 당시 KCC정보통신은 거의 아사직전이었다. 주력 기종인 미 프라임 제품이 클라이언트-서버 컴퓨팅 바람으로 인해 경쟁에 밀려 단종까지 하게 돼 비즈니스를 거의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직원들은 거의 퇴사하거나 어떤 사업부는 전체가 다른 기업으로 가기도 했다. 당시 450명의 인원이 200여명으로 절반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특히 부친이 아끼고 후계자로 지목했던 임원 역시 다른 길을 택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조실장을 맡았다. 나는 2세대이다. 2세대들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해서 2세대로서, 속된 말로 ‘날로 먹는다’라는 평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또한 당시 KCC정보통신의 매출규모는 200억 원이었는데, 이를 10배 이상 키우겠다는 각오였다.”

이상현 부회장을 두고 주변 관계자들은 재벌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췄다고 한다. 우선 돈을 아낄 줄 안다고 한다. 혼자 식사를 할 때는 비싼 음식을 절대 사먹지 않는다. 또한 그는 부지런하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 아침 각종 신문(특히 경제지)을 탐독하고, 필요한 책도 읽는다고 한다. 국내외 여행을 가거나 비즈니스를 위해 출장을 갈 때도 그는 읽고 싶거나 필요한 책들을 꼭 챙겨가 읽는다고 한다.

사실 그는 학력고사 성적 전국 7위, 서울대 전자공학과 차석 입학 등을 차지할 만큼 수재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수재가 공부를 하면 코피가 터질 정도로 집중했고, 졸음을 참기 위해 의자에 자신을 묶어 놓고 공부를 할 만큼 승부욕도 강하다고 한다. 여기에 돈 걱정은 하지 않을 만큼 재산도 많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주용 회장의 재산이다. 그는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부친으로부터 10억 원 정도 밖에 지원을 받지 않았을 만큼 독립심과 자립심도 강하다고 한다. 여기에 비즈니스 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재벌이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다 갖춘 셈이다. 남은 문제는 더 큰 미래다.

“IT와 자동차 접목시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할 것”

- IT 비즈니스가 쉽지 않았겠지만, 이상현 부회장이라면 뭔가 이뤄낼 것으로 기대했다. 중간에 자동차 사업으로 방향 전환을 했는데, 그 배경이 궁금하다. 이 회장님도 자동차 비즈니스에 동의를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중견기업으로서 SI 비즈니스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저가 공세는 물론 자 계열사 프로젝트 수주경쟁 시 방해공작과 저가공세, 심지어는 협력하자면서 중간 수수료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중견기업이 설자리가 없었다. 해서 자동차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당초 생각보다 차가 잘 팔렸고, 지금은 7개 브랜드를 공급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자동차 판매 딜러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KCC정보통신만을 믿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규모로 성장할 수 없었다. ICT기업 중 이만한 매출규모로 키운 회사가 없지 않은가? KCC정보통신은 ICT 기업으로 계속 성장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KCC정보통신은 1년에 약 1만 5,000대를 판매하고 있고, 연간 서비스 고객만 20만여 명이고, CRM(고객관계관리)으로 관리하고 있는 고객만 180만여 명이다. 이만한 규모의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자동차 판매 딜러는 국내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같은 빅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ICT 비즈니스로도 성장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이상현 부회장은 IT 비즈니스는 잘 됐든 그렇지 않든 SW기술이라는 게 남아 있다. 그리고 KCC가 남긴 흔적들이 여러 분야에서 남아 있고,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사업은 자동차 회사들만 좋아지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에 “결코 그렇지 않다. 미래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자동차 산업이 대세이다. 구글이 무인자동차를 완성해 상용화 직전에 있고,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들도 미래 자동차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ICT 산업 전시회에 가보면 SW 기술을 접목시킨 자동차가 대세이다. 물론 자동차 모터쇼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은 시간문제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활용사례가 있는가.

“예를 들어 렌터카 영업관리 솔루션인 'RentCar4U', 신차 판매관리 솔루션인 ‘SCRM4U', 인증중고차 판매관리 솔루션인 'Automall 4U', 자동차 부품관리 솔루션인 ’Parts4U', 지능형차량서비스플랫폼 솔루션인 ‘SmartDriving4U’ 등은 KCC정보통신이 직접 개발한 솔루션으로 IT 비즈니스를 하지 않았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자동차와 관련된 SW 솔루션들을 개발, 수출도 할 예정이다. 참고로 지능형차량서비스플랫폼 솔루션은 현재 SKT와 IoT 서비스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이상현 부회장은 본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부친의 DNA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KCC정보통신은 미래 50년도 큰 무리 없이 성장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고 한다.

이상현 부회장은 ‘Carpe Diem(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단어를 삶의 길잡이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늘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인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게 그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IT와 자동차를 접목시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해 본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게 이상현 부회장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그의 부친인 이주용 회장도 부친과는 다른 길을 걸어 ‘대한민국 정보화의 혁명가’라는 평판까지 얻었다. 이상현 부회장은 종종 부친과 의견충돌을 일으킨다고 한다. 서로 본인의 길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DNA는 아무리 부정해도 다를 수 없다. KCC정보통신이 앞으로 50년을 더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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