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 - 신사업 발굴 및 발상법 (5)

[컴퓨터월드] 바야흐로 혁신의 격동기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해마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여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동시에 기술을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기 위한 스타트업 창업이 늘고 있다. 주요 스타트업의 경제적 가치가 전통 기업을 능가하면서 스타트업을 창업한 기업가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엄청나다.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엘론 머스크 같은 디지털 분야를 개척한 기업가들은 이미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신사업 기회를 발굴했을까? 흔히 ‘독단적 카리스마’를 가진 이들은 ‘동물적 직감’을 이용하여 ‘무모한 선택’을 통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포장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기술과 세계의 변화를 포착하는 치밀한 관찰자이고 이를 사업기회로 연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철학자이며, 사업의 운영을 치밀하게 계산하는 공학자에 가깝다. 올해부터 새로 연재할 강좌는 ‘4차 산업혁명시대-신사업 발굴 및 발상법’이라는 꼭지로 세상의 변화로부터 어떻게 신사업 기회를 발굴할지에 대한 틀을 논의하고, 관련된 사례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 조원영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 연구원

조원영 연구원은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경영공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며, IT산업을 연구했다. ‘Versioning of Information Goods under the Threat of Piracy’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공저)가 있다.

1. 혁신의 열대우림을 탐험하라 (1월호)
-- 비단절적 혁신(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는 곳이 어딘지를 파악하고, 관련 사업 기회 발
3. 24/7(Time)을 감시하라 (2월호)
- 소비자들의 24시간 Time Use 데이터, 생애주기(Life Time)를 파악하고 인사이트 도출
3. 공간(Space)을 지배하라 (3월호)
- 도시, 사무실, 가정 등 공간의 변화 트렌드를 읽고,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
4. 오감을 충족시켜라(4월호)
- 인간의 욕구인 놀이를 확장하고 오감기술에 주목
5. 장바구니를 채워라 (이번호)
- 소비지출 구조를 파악하고, 통점(pain point)을 찾아 변화 유도

6. 검은백조(세렌디피티)와 춤을 춰라 (6월호)
- 새로운 사업 기회라는 행운이 어떻게 찾아오고, 이에 편승하기 위한 방안


톰 소여(Tom Sawyer)에게 배우는 거래의 기술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 읽었던 《톰 소여의 모험》(The Adventure of Tom Sawyer)은 19세기 미국 미주리 주에서 이모와 함께 사는 장난꾸러기 소년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비롯한 친구들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엮은 장편 소설이다. 소설 내내 톰 소여의 좌충우돌 모험담이 이어지지만, 주인공의 일상을 소개하는 도입부의 작은 에피소드가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목이다.

다들 놀러가기 바쁜 토요일 오전 톰 소여는 이모로부터 30미터에 달하는 울타리를 흰색 페인트로 꼼꼼히 칠하기 전까지 외출을 금지한다는 엄명을 받는다.

톱질꾼(Sawyer)이라는 성(性)이 무색할 정도로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톰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놀러가는 친구들의 조롱을 받으며 체념한 채 일을 하던 톰 소여의 뇌리에 갑자기 기발한 꾀가 떠오른다. 페인트칠에 푹 빠져 친구들의 부름에 대꾸도 않은 채 자못 진지하게 예술작품을 다루듯 붓 칠을 멈추지 않는 톰 소여의 연기에 속아 첫 번째로 미끼를 문 친구는 벤이다.

벤의 놀림에 “우리 같은 애들한테 페인트칠을 할 기회가 날마다 있는 줄 아냐?”고 톰이 대꾸하자 결국 “톰! 나도 좀 해보면 안 될까?” 부탁하며 들고 있던 사과마저 바친다.

이모가 부여한 고귀한 특권을 함부로 넘길 수 없지만 친구니까 허락한다는 톰의 끝내기 한방 이후, 도색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늘에서 쉬는 톰 대신 울타리를 칠하는 벤을 지나치던 친구들은 예외 없이 특권에 동참하기 위해 톰에게 선물을 바친다. 해가 기울기도 전에 톰은 세 번이나 덧칠해 새 것으로 바뀐 울타리와 공깃돌, 연, 폭죽, 예쁜 유리병 등의 장난감뿐만 아니라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없도록 만들기만 하면 뭐든지 가치가 생긴다’는 인생의 진리까지 덤으로 깨닫게 된다.

▲ 울타리 페인트칠을 친구들에게 시키고 편히 쉬는 톰 소여
(출처:Medium 2017, 「The Most Important Life Lesson from Tom Sawyer」)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은 경제적이지 않다

톰 소여는 번거로운 노동을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재주를 발휘했지만, 슬프게도 현실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좋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 있는 신제품을 출시했지만 고객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객의 선택을 받아 장바구니에 담기는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기 때문이다. 품질과 가격은 기본이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우리가 마트에서 쇼핑하는 과정을 관찰해보자.

한 주를 마친 금요일 저녁 마트에 온 나는 새롭게 출시된 맥주의 시음 행사를 발견한다. 한 모금 마셨더니 과일향이 은은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가격도 확실히 그동안 마셨던 독일산 맥주보다 저렴하다. 피자나 치킨을 배달하여 주말 예능을 보면서 느긋하게 맥주를 즐기고 싶은 생각에 여섯개들이 한 팩을 집어 든다.

하지만 그 순간 구매를 꺼리게 만드는 이유들이 하나둘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우선 지난주에 평소 맥주를 즐겨마시던 친한 대학 선배 한 명이 과로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침 건강 검진에서 요산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거기다가 마트 출입구에 놓인 전단지를 통해 지금 구매하려는 맥주가 어제까지 출시 기념으로 20% 할인행사를 했다는 정보를 발견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정상가에 구매하려니 억울하다. 더군다나 쇼핑카트를 보니 스테이크용 고기, 달걀, 생선, 시리얼, 우유 등의 식재료가 이미 가득 담겨 있고, 요즘 식비를 너무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따지고 보면 국산 맥주 치고는 가격이 조금 높은 듯도 하다. 옆 매대의 평소 마시던 독일산 맥주도 다섯 캔을 사면 10%를 할인해주는 행사를 한다. 물론 여전히 내가 사려는 맥주보다는 비싸다.

생각이 복잡해진 나는 맥주를 제자리에 두고 서둘러 계산대로 발걸음을 돌린다. 집에 돌아온 나는 줄곧 맥주를 두고 온 결정을 후회하다 결국 집근처 편의점에서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맥주를 구입한다.

경제 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의 특성을 가리켜 경제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위의 쇼핑 행태를 보면 나의 행동은 경제적 합리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톰 소여의 친구들과 다를 바 없다.

우선 과로로 건강이 악화된 지인이 맥주 마니아였다는 사실이 나의 맥주 소비에 영향을 미칠 이유가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맥주가 어제 얼마에 팔렸든 오늘 나의 구매 행위와는 무관한 일이다. 식비, 오락비, 의료비 등 마음속에 계정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각 계정별 예산을 관리하는 행위도 주어진 소득 하에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할 뿐이다.

맥주를 맛으로 평가하지 않고 국산과 수입으로 나눠 국산 맥주의 가치를 디스카운트 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품질이 동일한 두 물건 중에서 정가 1,000원에 판매하는 제품보다 정가 2,000원 짜리를 50% 할인하는 제품에 손이 가는 것도 전형적인 판단 미스다.

혹시 위의 사례가 직장에서 지독한 한 주를 막 끝내고 마음가짐이 온전치 않은 한 개인이 푼돈을 쓰는데 발생한 사소한 실수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2000년대 초 미국 메이저리그 약체 구단 오클랜드 어슬레틱스(oakland Athletics)의 활약을 담은 영화 《머니볼》(Moneyball)을 권하고 싶다.

1876년 출범한 미국 메이저리그는 서른 개의 팀이 매년 팀당 162경기, 총 2,430 경기를 치르는 세계 최초, 최대의 프로 스포츠 산업이다. 구단별 인기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경기당 평균 3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2018년 총 관중은 7천만 명에 육박했다. 관람권 수입뿐만 아니라 TV 중계권 수입, 각종 용품 판매, 후원 계약 수입 등을 합치면 2018년 메이저리그의 수입은 약 103억 달러(11조 원) 수준이다.

서른 개의 구단이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는 우승이다. 팀 성적이 좋아야 인기가 높아지고 인기는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구단은 현재 보유한 우수한 선수를 붙잡거나 매년 등장하는 거물급 신인을 영입하는데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구단마다 약 열 명 안팎으로 구성된 스카우터(Scouter)들은 일년 내내 미국 내 고등학교와 대학 리그를 돌며 유망주를 발굴하고, 심지어는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멕시코, 일본, 한국 등 전 세계를 돌며 필요한 선수들을 찾고 있다. 매년 겨울 비시즌(Season Off) 기간에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과정(Draft)을 거치는데, 겨울에 난로를 끼고 치러지는 경기라는 의미에서 ‘스토브 리그(Stove League)’라고 부를 정도로 구단의 눈치작전과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로 2018년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나간 연봉 총액은 45억 달러가 넘는다.

사실 ‘야구는 숫자 놀음’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의사결정에 필요한 데이터가 풍부하다. 이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다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타자는 평균 한 시즌에 약 2천 개 이상의 투구를 보고 타격을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구종과 코스에 강한지, 어떤 약점을 갖고 있는지에 관한 선수 데이터가 축적된다. 투수와 수비수에 대한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이런 풍부한 데이터를 가공하면, 선수별 팀 승리 기여도나, 우리 팀이 올 시즌 승리를 추가하기 위해서는 누구를 영입하는데 얼마를 투자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수치를 산출 할 수 있다.

영화 《머니볼》은 바로 경기장 뒤편에서 벌어지는 스카우터들의 세계를 담은 드라마다. 흥미로운 점은 수천억을 투자해 한 해 농사를 짓는 중요한 의사결정이 사실 매우 허술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치열하게 숫자 놀음을 해야 하는 스카우터들은 풍부한 경험과 직감을 내세워 얼토당토 하지 않은 이유로 선수를 선별한다.

어떤 선수는 ‘투구 폼이 멋있고’,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이 카리스마가 넘치며’, ‘스윙이 일품이고 배트를 공에 맞추는 순간 경쾌한 파열음이 나기’ 때문에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투구 폼이 우스꽝스럽거나 여자 친구가 못생긴 선수는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뽑지 말아야 한다. 오클랜드 단장 빌리 빈(Billy Beane)의 성공 방정식은 과학적 분석 기법을 도입해 승리 기여도가 높은 우수한 선수를 선별하고, 이중에서 스카우터 사이에 만연한 편견 때문에 과소평가된 선수를 ‘선수단 장바구니(roster)’에 담은 것이다.

▲ 영화 머니볼 포스터(좌)와 빌리빈 당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단장(출처:IMDB, CNBC)

피로에 지쳐 장을 보러 마트에 온 개인도, 메이저리그 구단과 같이 전문 스카우팅 조직을 갖춘 기업도 모두 편견에 사로잡혀 오류를 범한다. 까다롭고 비합리적인 고객의 장바구니에 내 제품을 담으려면 톰 소여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고객의 심리를 파악해 가격을 책정하라

쇼핑 중독에 걸려 무분별하게 지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지갑에서 지폐가 나갈 때 과연 올바른 지출인지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심지어는 불쾌한 기분마저 든다. 이러한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고객의 지갑을 여는데 실패한다.

신용카드를 쓰면 낭비가 심해지고 가계 부채가 늘어난다는 연구가 많다. 카지노에서 고객이 베팅하기 위해서는 현금을 칩으로 바꿔야 한다. 지폐가 칩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훨씬 대담한 베팅을 하게 된다. 굳이 카지노 사업자가 아니더라도 고객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거리며 기꺼이 구매하도록 만드는 가격 책정 전략은 언제나 유효하다.

우선, 지불을 최대한 유예시켜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비자는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경험해보지 못한 제품과 서비스에 미리 돈을 지불하기를 주저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의 지출에는 과도하게 예민한 반면 미래에 발생할 지출에는 지나치게 느긋하다. 요즘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은 무료로 내려받아 체험하도록 허용하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아이템 등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선경험-후결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유튜브 프리미엄과 넷플릭스는 일정기간 맛보기 무료 체험 기간을 제공한다. 무료 체험을 신청하려면 신용카드 정보는 미리 등록해야 하고 체험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요금이 청구된다. 무료 체험만 할 요량으로 가입한 사용자 중에서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도 해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유료 구독자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고객을 설명하기 위해 습관이 형성(Habit Design)되었다거나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 강하다거나 넛지(Nudge)가 작동했다는 등의 고상한 용어를 동원하는데, 쉽게 말해 소비자가 느끼는 지출의 불쾌함을 덜어줘 심리적 안정감을 찾도록 만들어준 가격 책정의 결과다.

▲ 유튜브 프리미엄(좌)과 넷플릭스의 무료 체험 서비스(출처: 각사 홈페이지)

고객이 스스로 매우 합리적인 구매 행위를 했음을 깨닫고 만족할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한 때 세 종류의 정기구독 메뉴를 제공해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했다. ①59달러짜리 인터넷 구독, ②125달러짜리 인쇄물 구독, ③125달러짜리 인터넷+인쇄물 구독. 독자 여러분들은 무엇을 선택하시겠는가? 아마도 여러분 중 84%는 ③번을, 16%는 ①번을 선택하셨을 것이다.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MIT 재학생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엉터리 같은 ②번 메뉴가 ③번 메뉴를 돋보이게 만들어 ①번 메뉴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미끼라는 점이다. 실제로 ②번 메뉴를 없애고 59달러짜리 인터넷 구독과 125달러짜리 인터넷+인쇄물 구독 중에 선택하도록 했더니 32%만이 후자를 선택했다. 고객은 125달러짜리 인쇄물 구독이란 덫을 피해 같은 가격에 인터넷 구독까지 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을 했다고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지만 현실은 톰 소여의 미끼를 물고 말았다.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정기구독 메뉴는 한층 투박하다. 첫째, 6달러짜리 인쇄물 구독, 둘째 6달러짜리 인터넷 구독, 셋째, 6달러짜리 인쇄물+인터넷 구독. 음식점 중에서도 세 종류의 코스요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는 보통 너무 저렴하지도 너무 비싸지도 않은 중간 메뉴를 선택한 후 스스로 합리적 소비를 했다고 뿌듯해 하는 편이다.

▲ 이코노미스트(좌)와 뉴요커의 구독 메뉴(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인플루언서(Influencer)와 입소문을 활용하라

심리학자 로버트 시알디니(Robert Cialdini)가 1984년 출간한 《설득의 심리학》(Influence)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여섯 가지 도구를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설득 도구에는 믿을만한 전문가의 긍정적인 평가나 주변에서 좋다는 입소문과 같은 권위(Authority)와 사회적 준거(Social Proof)가 포함돼 있다. 《설득의 심리학》은 출간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고 이제는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지만, 여전히 아마존닷컴의 500대 도서 목록에 포함돼 있어 오늘날까지 유용한 내용임을 입증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한 《세계화 4.0과 미래 사회》에 따르면 디지털 플랫폼의 어깨에 올라탄 새로운 권위 집단이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슈퍼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이들은 유튜브, 트위치, 아프리카TV 등의 방송 플랫폼에서 1인 방송을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로 게임, 미용, 의료, 식품, IT 기기 등 특정 전문 분야를 갖고 관련 상품을 리뷰 해준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들은 이들의 방송을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조언자를 넘어 직접 사업에 뛰어든 경우도 있다. 미용분야의 대표적인 슈퍼 인플루언서인 임블리는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어 연매출 1,700억 원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테슬라, 우버, 고프로, 핏빗과 같은 신생 기업의 혁신 상품이 성공한 데에는 SNS, 블로그를 비롯한 인터넷 채널의 도움이 컸다. 이들 기업은 별도의 전용매장이나 영업 사원 없이 SNS를 통해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주문을 받아 성장했다.

기름 없이 튀김을 만드는 조리기구인 ‘에어프라이어’가 2018년 급작스럽게 히트상품으로 부상한 것도 입소문에 힘입은 바가 크다. 에어프라이어는 원래 필립스가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과 제휴하여 2010년 시장에 출시했는데, 시장 성장이 더디게 진행되어 2017년 우리나라 시장 규모는 연간 15만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 저렴한 에어프라이어가 시장에 출시됐고, 맘카페, 블로그 등을 통해 건강한 요리법이 공개되면서 2018년 판매량이 70만대에 도달했고, 올해에는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많이 보급된 요리 가전이 될 전망이다.

▲ 테슬라의 인터넷 주문 페이지(좌)와 에어프라이어 레시피를 공개한 블로그(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팝콘 뉴스)


고객의 구매를 예측하라

인공지능 연구의 산실인 토론토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어제이 애그러월(Ajay Agrawal) 교수는 인공지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예측(Prediction)이라고 주장한다. 예측이란 지금 가진 데이터를 활용해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애그러월 교수는 자율주행차를 다음과 같은 예측 과정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운전대를 잡은 차에 인공지능이 옆에 앉아서 운전자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다. 어떤 환경 데이터가 들어올 때 인간이 우회전을 하고 브레이크를 밟는지 엑셀레이터를 밟는지 유심히 오랫동안 관찰할수록 인공지능은 들어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운전자가 다음에 취할 행동을 더 잘 예측하게 된다. 결국 인공지능은 운전자가 특정한 주행 조건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해 운전하는 법을 배운다.

GE의 빅데이터 플랫폼 프레딕스(Predix)가 제공하는 ‘예측 정비(Predictive Maintenance)’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센서를 통해 항공기나 발전소의 엔진 상태를 실시간 파악하고, 어떤 신호가 감지되었을 때 어떤 고장이 발생하는지를 학습한다. 학습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능 이상의 징후를 훨씬 정확하고 섬세하게 잡아내어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정비를 할 수 있다.

고객의 구매 행위 역시 인공지능으로 예측할 수 있다. 아마존은 이미 가격을 책정하고 재고를 관리하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한다. 개인의 취향을 파악하여 구입할 것 같은 품목을 예측해 고객에게 권한다. 가격 역시 지불 의사 수준(Willingness to Pay)을 예측해 책정한다. 인기를 끌만한 품목을 예측하여 재고를 확보해놓기도 한다.

아마존의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제품은 스무 개 중 한 개 정도가 판매로 이어진다고 한다. 예측 정확도가 약 5% 수준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이미지 인식 정확도가 2010년 약 72%에서 2017년 97%로 빠르게 발전했듯 아마존의 구매 예측력도 급격히 개선될 것이다.

애그러월 교수는 아마존의 예측 정확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소매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 가령 아마존은 사람들이 상품을 주문할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고객이 원할 것으로 예측한 상품을 미리 배송하고 고객은 구매를 원치 않는 제품을 골라 반품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 알렉사가 집사(Butler)로 발전해 모든 구매활동을 알아서 대신해 주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소비자는 모든 제품을 아마존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다른 소매업체가 고객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어진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 회사의 신제품이 구매자의 선택을 받아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고민했다. 보통 우리는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내놓으면 판매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또한 시장과 기술, 고객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과신한다.

1950년대 뉴욕 양키즈에서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스위치히터로 활약했던 미키 맨틀(Mickey C. Mantle)은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린 놀랄 만큼 무지하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린 생각만큼 시장과 고객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다만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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