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 - 신사업 발굴 및 발상법 (6)

[컴퓨터월드] 바야흐로 혁신의 격동기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해마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여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동시에 기술을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기 위한 스타트업 창업이 늘고 있다. 주요 스타트업의 경제적 가치가 전통 기업을 능가하면서 스타트업을 창업한 기업가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엄청나다.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엘론 머스크 같은 디지털 분야를 개척한 기업가들은 이미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신사업 기회를 발굴했을까? 흔히 ‘독단적 카리스마’를 가진 이들은 ‘동물적 직감’을 이용하여 ‘무모한 선택’을 통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포장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기술과 세계의 변화를 포착하는 치밀한 관찰자이고 이를 사업기회로 연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철학자이며, 사업의 운영을 치밀하게 계산하는 공학자에 가깝다. 올해부터 새로 연재할 강좌는 ‘4차 산업혁명시대-신사업 발굴 및 발상법’이라는 꼭지로 세상의 변화로부터 어떻게 신사업 기회를 발굴할지에 대한 틀을 논의하고, 관련된 사례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 조원영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 연구원

조원영 연구원은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경영공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며, IT산업을 연구했다. ‘Versioning of Information Goods under the Threat of Piracy’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공저)가 있다.

1. 혁신의 열대우림을 탐험하라 (1월호)
-- 비단절적 혁신(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는 곳이 어딘지를 파악하고, 관련 사업 기회 발
3. 24/7(Time)을 감시하라 (2월호)
- 소비자들의 24시간 Time Use 데이터, 생애주기(Life Time)를 파악하고 인사이트 도출
3. 공간(Space)을 지배하라 (3월호)
- 도시, 사무실, 가정 등 공간의 변화 트렌드를 읽고,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
4. 오감을 충족시켜라(4월호)
- 인간의 욕구인 놀이를 확장하고 오감기술에 주목
5. 장바구니를 채워라 (5월호)
- 소비지출 구조를 파악하고, 통점(pain point)을 찾아 변화 유도
6. 검은백조(세렌디피티)와 춤을 춰라 (이번호)
- 새로운 사업 기회라는 행운이 어떻게 찾아오며, 이에 편승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검은 백조(Black Swan)와 성공의 딜레마

1994년에 개봉해 약 4천 5백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둔 영화 《레옹(Léon : The Professional)》을 본 관객들은 눈앞에서 가족이 살해되고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병기 레옹에게 킬러 수업을 받는 열두 살 소녀 마틸다의 당찬 모습에 매료되었다. 이 역은 극중 배역과 나이가 같았던 나탈리 포트먼(Natalie Portman)이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아역 배우의 연기를 본 관객들로 하여금 성인이 된 이후의 모습을 기다리게 만든 배우는 1976년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에 출연한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이후 거의 20년 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디 포스터가 12년 만에 《피고인(The Accused)》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화려한 성인식을 치른 반면, 《클로저(Closer)》, 《브이포벤데타(V for Vendetta)》 등에 출연해 차분히 입지를 다져나간 나탈리 포트먼은 드디어 《블랙스완(Black Swan)》을 통해 201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극중 나탈리 포트먼은 《백조의 호수(The Swan Lake)》에서 프리마돈나(Prima Donna)로 발탁된 뉴욕시립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 니나 세이어스 역할을 맡았다. 《백조의 호수》는 악마의 마법에 걸려 백조(白鳥)로 변한 오데트 공주, 그녀와 사랑에 빠진 지그프리트 왕자, 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흑조(黑鳥) 오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니나는 1인 2역을 맡아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이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소화해야 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기쁨도 잠시, 니나는 곧 난관에 부딪힌다. 순수하고 고결한 백조 연기는 흠잡을 데 없는 반면, 치명적이고 사악한 흑조 연기는 진전이 없었다.

“네 안에 숨겨진 흑조를 분출해”라며 질책하는 공연감독과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인 신입 발레리나와의 경쟁, 그리고 완벽해지려는 욕망이 뒤섞이면서 그녀는 점차 피폐해져 간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자기파괴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자신이 갖지 못한 흑조에 대한 절실함이 느껴져 안타깝다. 또한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니나의 모습에서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업가들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모든 사업가는 성공을 간절히 꿈꾸며 치열하고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을 한다는 점에서 니나와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도 둘 사이의 가장 큰 공통점은 뛰어난 발레리나가 순수한 백조와 관능적인 흑조의 역할을 모두 잘 해내야 하는 것처럼 사업의 성공을 위해 다양하고도 상반된 조건이 모두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이리라. 때문에 끝없는 욕망과 불안에 사로잡힌 예술가를 그린 이 작품은 바로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쫒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업가에게 백조의 역할을 하는 것은 재능과 노력이다. 참신한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여 고객과의 신의를 지키고 사업파트너와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며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성공할 수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백조의 연기만 잘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행운’이라고 불리는 흑조도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행운’의 역할을 잊거나 무시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이번 호에서는 사업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마땅히 누려야 할 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흑조, 즉 행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 블랙스완 포스터(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성공은 아웃라이어(Outlier)에게 주어진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기회가 없다면 능력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이란 오로지 재능과 노력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주장하길 좋아한다. 재능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공이란 화합물에 우연과 행운은 께름칙한 불순물 취급을 받는다.

2009년 출간되어 우리나라에서만 약 45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아웃라이어(Outliers: The Story of Success)》는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스타 플레이어, 컴퓨팅 시대를 이끈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 그리고 역사상 최고의 밴드인 비틀즈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약 1만 시간 이상의 집중적인 훈련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밝혔다.

‘1만 시간을 투자해서 후천적 재능을 계발하라’는 출판사의 유려한 홍보문구는 재능과 노력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확인시켜주면서 판매 부수를 늘리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1만 시간을 투자하라고 강요하는 평범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대신 저자는 이들이 1만 시간 이상의 훈련을 할 수 있었던 환경에 주목했고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사소해 보이는 우연한 기회가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에서 뛰는 우수한 선수들의 절반 가까이는 연 초에 태어났다. 유년 시절에는 동급생 중에서 한두 달 먼저 태어난 사람이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인데, 꾸준히 경기에 발탁되어 결국 높은 성과로 이어졌다. 빌게이츠는 1960년 대 말에 컴퓨터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미국에서 몇 안 되는 사립학교를 다녔다. 무명시절 비틀즈는 우연히 독일 함부르크의 한 선술집에서 일주일 내내 공연하며 기량을 갈고 닦을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다.

《아웃라이어》는 제목 그대로 성공한 사람들의 높은 성과는 노력과 재능만 강조하는 전통적인 통계모델이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극단값(Outlier)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각종 세계 신기록,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 그리고 학계의 연구를 보면 성공을 위해 재능과 노력만큼이나 행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00미터 달리기부터 3단 멀리뛰기까지 단거리 육상종목 여덟 개 중에서 일곱 개가 순풍이 불었을 때 작성되었다. 나머지 한 개는 바람이 불지 않았을 때다. 역풍일 때 달성된 세계 신기록은 없다. 물론 세계 신기록 보유자가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세계 신기록이란 위대한 업적에서 순풍이란 행운이 결정적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28세 청년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는 우연한 기회에 월스트리트에 취직할 수 있었다. 어떤 행사장에서 파생상품을 전문으로 거래하던 살로먼 브러더스의 임원 부인 옆자리에 앉았고, 그녀는 마이클을 남편에게 소개해줬다. 덕분에 그는 파생상품 시장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 《플래시 보이스(Flash Boys)》, 《빅숏(Big Short)》 등 금융 거래의 음모와 금융 시장의 불완전성, 그리고 이로 인한 금융위기를 다룬 흥미로운 책을 집필해 베스트셀러 작가의반열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저는 작가라는 경력과 명성, 그리고 엄청난 돈과 새로운 인생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타고난 작가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에 취업하지 못했더라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삶도 불가능했을 거라는 게 마이클 루이스의 설명이다.

《성공과 행운(Success and Luck)》의 저자인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Robert H. Frank) 코넬대 교수는 컴퓨터를 이용해 10만 명이 참여하는 승자독식 토너먼트를 모의실험 했다. 재능과 노력이 각각 결과의 41%를 좌우하고 행운이 2%만 개입하도록 사전에 설정한 게임을 반복한 결과 78%의 실험에서 재능과 노력의 총합이 가장 높지 않은 사람이 1등을 차지했다.

즉 행운이 매우 작은 부분만 결정하는 상황에서도 1등은 대부분 ‘재능과 노력이 최고수준 보다 약간 모자라지만’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복잡계 학술지인 《Advances in Complex Systems》에 2018년 발표된 논문도 결과가 비슷하다. 재능이 정규분포를 따르는 모집단을 대상으로 6개월마다 행운과 불행을 무작위로 적용하면서 40년간 부의 변화를 추적했다. 행운을 만나면 재능에 비례하여 부가 늘어나고, 불행을 만나면 부가 절반으로 감소하도록 설정했다. 실험 결과, 가장 많은 부를 차지한 집단은 재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운이 가장 좋은 사람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가장 가난한 집단은 재능이 가장 모자란 사람들이 아니라 불행과 가장 자주 맞닥뜨린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 성공에 있어 행운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웃라이어(좌)와 성공과 행운(출처: 아마존닷컴)


검은 백조와의 춤을 주저하는 이유

그렇다면 사람들은 행운의 중요성을 왜 이리도 폄하하는 것일까? 우선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과대포장 하는 인간의 자기기만적인 속성이 한 몫을 차지한다. 여럿이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각자 몇 %의 기여를 했는지 질문한 후 그 결과를 모아 합산하면 십중팔구 100%를 웃도는 결과가 나오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마이클 루이스는 프린스턴대의 졸업 연사로 참석해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 행운 때문이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계속 성공이 성공을 불러오면 자기 인생에서 운이 좋아 생겼던 일들을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라며 행운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타임즈의 저널리스트이자 두 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도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착각은 자신들이 성공한 이유가 오직 좋은 머리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낌없는 사랑과 많은 기회를 부여한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것부터 커다란 행운이다”라고 지적한다.

행운을 폄하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 즉 스토리텔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접했던 위인전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유년시절 떡잎부터 남달랐고, 몇 차례의 끔찍한 역경을 딛고 위대한 인물로 성장한다는 전형적인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나심 탈레브(Nassim N. Taleb)는 자신의 저서 《블랙스완(Black Swan)》(앞서 소개한 영화와 우연히 제목이 같다.)에서 서구인들이 18세기 호주 대륙에 진출해 검은 백조를 발견한 순간의 충격을 묘사한다.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세상의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는 법칙을 세웠는데 한 번의 발견으로 경험법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과거 관찰된 경험을 바탕으로 결과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익숙한 인간에게 무작위로 발생하여 설명하기 어려운 행운에 의한 성공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방해가 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경험법칙을 무너뜨린 검은 백조와 다름없다.

노력을 강조하고 행운을 축소시키는 왜곡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면도 있다. 행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난관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할 확률이 낮아 성공하기 어려운 반면, 자신의 재능이 평균 이상이고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인식하는 긍정적인 태도는 적어도 쉽게 단념하거나 맥이 풀리는 것을 방지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일수록 재능과 노력에 비해 행운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유형일 확률이 높다.


행운이 더욱 중요한 제4차 산업혁명 시대

행운은 언제나 중요했지만 최근 들어 더 중요해졌다. 우리가 행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점차 심각해지는 소득 양극화의 문제를 살펴보자. 미국의 경우 1979년에서 2007년 사이 상위 1%의 소득이 278% 증가한 반면 소득 분포 중간 계층의 소득은 35% 증가에 그쳤다. 파리경제대학의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에서 2016년 사이 31.8%에서 43.3%로 증가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비단 사람들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경우도 경영 성과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우선 선두 기업이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 즉 산업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전체 산업의 시장집중도는 1985년 0,28에서 2015년 0.51로 급상승 했다.

▲ 미국 산업별 상위 4개 기업의 시장 점유율 변화(출처: The Economist)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경제 양극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재능과 능력이 특정 사람들에게 집중되기 때문일까? 교육수준이 상향평준화되는 추세를 생각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특정 국민들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나머지는 나태한 생활을 해서일까? 세계 최고수준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나 점차 정교해지는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감시 및 성과 측정 도구 등을 고려해보면 노력부족에서 문제를 찾는 것도 무리다.

여러모로 경제 양극화를 능력이나 노력의 차이보다 행운이 개입한 결과로 설명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특히, 디지털 기술은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된 사소한 차이를 엄청난 성과의 차이로 만드는 증폭기(Amplifier) 역할을 한다.

초반부 약간의 유리함이 디지털 기술이라는 증폭기를 거치면서 완벽한 성공과 처절한 실패라는 극명한 차이로 전환되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지역별로 구분된 시장은 점차 하나로 통합된다. 그리고 이 시장은 단일의 가장 큰 기업이 차지하는 승자독식구조를 갖는다. 1%의 차이가 전체 시장을 독식하는 승자와 완전히 망해버리는 패자를 구분 짓는다.

미국의 경우 소득세를 신고할 때, 우리나라처럼 회사에서 도와주거나 국세청의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인근 세무사의 자문을 받아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소득세 신고를 손쉽게 할 수 있는 세무관리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직접 세무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세무관리 소프트웨어는 미국 전체 시장을 대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지역기반의 세무사들의 사업을 상당 부분 축소시켰다.

그리고 결국 인튜이트(Intuit)사의 ‘터보 택스(Turbo Tax)’가 시장을 독식하고 대부분의 경쟁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는 파산했다. 이들 소프트웨어 간에 성능의 차이는 크게 없었고, 초기에 어떤 소프트웨어가 더 많이 사용되어 시장을 선점했는지가 승자와 나머지 소프트웨어의 운명을 갈랐다.

승자독식시장을 연구해 온 경제학자 셔윈 로젠(Sherwin Rosen)에 따르면 클래식 음악 시장의 규모가 오늘날만큼 컸던 적은 없다. 미디어산업의 등장 덕분이다. 하지만 전업으로 연주하는 사람의 숫자는 악기별로 수백 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이들 일류 음악가들은 연주를 레코딩하여 전세계에 음원을 판매함으로써 시장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수익을 가져간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연주 실력에 별 차이가 없는 대다수의 음악가들은 공연할 수 있는 무대조차 거의 박탈당한 것이 현실이다.

사실 디지털 제품의 품질에 대해서 소비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가 추천하는 영화나 구글의 검색 결과가 대체적으로 만족스럽지만, 정말 나에게 최적화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소비자가 사용 이후에도 품질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제품을 가리켜 신뢰재(Credence Good)라고 하는데, 디지털 제품이 이에 해당한다. 이럴 경우 나의 선택은 남들의 선택에 의존한다.

사회학자 던컨 와츠(Duncan J. Watts)는 방문자들이 인디 밴드의 음악을 자유롭게 듣고 평점을 매길 수 있는 웹사이트, ‘뮤직 랩(Music Lab)’을 개설한 후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실험은 기존 방문자의 누적 평점을 공개했고, 두 번째 실험은 평점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로 진행하여 차이를 비교했다. 평점을 공개하지 않은 경우, 인디 밴드의 음악은 고른 점수를 받은 반면, 평점을 공개한 실험에서는 초기 방문자들이 높은 점수를 매긴 일부 음악이 후광 효과를 누려 꾸준히 다른 음악보다 훨씬 높은 평점을 받았음을 확인했다.

행운이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는 행운을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 행운이 벼락처럼 무작위로 찾아온다고 해도, 벼락이 나에게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선 안 된다. 검은 백조가 나에게 와 함께 춤을 추도록 만드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자.


실패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되 긍정적인 자세로 다시 도전하라

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행운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재능과 노력이 차고 넘치는 사람도 자신이 전혀 통제할 수 없거나 사소한 사건들 때문에 사업에 실패할 수 있다.

1986년 발사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폭발한 이유는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연료의 누수를 막는 단순한 부품(O-ring) 때문이었다. 실패에 지나치게 낙담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자세는 다시 도전할 의지를 없애 결국 실패를 만회하고 행운을 맞이할 다음번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첫 단추만 잘 꿰어보자. 그 다음의 성공은 훨씬 쉬워질 것이다. 한 번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작가는 그 다음 신간이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이 높다. 일류 학술지에 여러 차례 논문을 발표한 학계의 저명인사들은 한 결 같이 첫 번째 논문이 가장 시행착오도 많고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실리콘밸리에는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라고 불리는 권력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1990년대 말 인터넷 결제 혁명을 불러온 페이팔을 창업하거나 이곳에서 근무한 수백 명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유튜브를 창업한 자베드 카림(Jawed Karim),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Elon Musk),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의 피터 틸(Peter Thiel) 등을 필두로 한 페이팔 출신들은 초기 인터넷 시대의 성공 경험을 자양분 삼아 사업 성공 사례를 꾸준히 축적하고 있다.

실패를 극복하고 재도전하기 위해서는 겸손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갖고 좋은 평판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아담 스미스의 말대로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사람은 남들로부터 합당한 평가를 받는다. 그런 사람은 주어진 것 이상으로 바라지 않으며 그 안에서 온전한 만족을 얻는다.”

이런 점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사례가 있다. 애플에서 아이폰의 운영체계 iOS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스콧 포스톨(Scott Forstall)은 천재들이 넘쳐났던 스티브잡스 시절의 애플에서도 최고의 인재로 손꼽혔다. 하지만 그는 2012년 애플의 CEO 팀 쿡(Tim Cook)에 의해서 해고되었는데, 해고 사유를 묻는 질문에 “애플의 내부 단결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평소 스콧 포스톨은 프로젝트의 성과를 독식하길 좋아하고 실패는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악명 높았는데, 결국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 능력에 비해 주목할 만한 사업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아마존이 2009년 12억 달러에 인수한 온라인 의류판매업체 자포스(Zappos)의 창업자 토니 셰이(Tony Hsieh)도 행운에 대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태도를 중요시한다. 그는 입사 지원자나 사업 파트너를 만날 때마다 은근히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지 묻곤 하는데,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을 채용하거나 사업 파트너로 선택한다고 한다.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는 티나 실리그(Tina Seelig) 교수는 한때 그녀가 운영하는 장학금 프로그램에 지원한 브라이언이라는 학생에게 탈락을 알리는 메일을 보냈는데, 뜻밖에도 기회에 감사하며 지원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답장을 받았다.

의외의 답장에 감동한 교수는 브라이언에게 자신이 수행하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고, 이 연구에 참여한 그는 훗날 ‘미래를 위한 놀이(Play for Tomorrow)’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티나 교수는 “행운이란 마치 바람과 같아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기질을 돛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업이란 항해에 행운을 순풍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약한 연결고리의 강한 힘(Strength of Weak Ties)을 이용하라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줄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과의 인맥을 맺고 친분을 강화하는 노력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업의 성공에 지극히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을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지 여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 인맥의 연결 관계와 구조가 행운을 불러오는 핵심이다.

1973년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 시절 마크 그래노베터(Mark Granovetter)는 《약한 연결고리의 강한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나를 가장 잘 알거나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은 진학, 이직, 사업 등 내 인생을 좌우할 중요한 의사 결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약한 유대관계를 맺는 인맥들이 나에게 행운과도 같은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다.

인맥이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을 경우 한 사람이 알고 있는 정보는 아미 그 집단 내의 다른 사람에게 공유가 되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교류가 활발한 사람들이 해주는 조언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가끔씩 만나 안부를 묻는 약한 유대관계의 인맥은 나와는 이질적인 집단에서 활동하며 내가 모르는 가치 있는 정보나 내가 예상치 못한 탁월한 식견을 제공해준다. 나에게는 가장 훌륭한 행운의 전령사다.

듀크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는 마틴 루에프(Martin Ruef) 교수는 새로 사업을 시작한 700명 이상의 기업가를 대상으로 신사업 발굴과정에서 약한 연결고리의 강한 힘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확인했다. 사업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굴했으며 얼마나 참신한지, 팀의 구조나 사업 파트너는 누구인지, 특허는 얼마나 보유했는지 등을 조사한 결과, 약한 유대관계에서 얻은 사업 아이디어가 더욱 독창적이고 혁신적이며 사업 가치가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약한 유대관계에서 얻은 이질적인 아이디어를 조합함으로써 더욱 다양한 사업 시도를 할 수 있으며, 특정한 의견에 편향된 집단 내에서 나온 거스르기 힘든 평범한 사업 아이디어를 피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마틴 루에프 교수의 설명이다.

2000년대 초반 부정적 여론과 규제 강화 움직임으로 존폐 위기에 몰렸던 이종격투기 대회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는 한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두 고등학교 동창에 의해서 회생할 수 있었다.

당시 이종 격투기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선수들의 매니저로 활동하던 대나 화이트(Dana White)는 UFC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 결혼식장에서 고교 시절 인사 정도 하고 지냈던 라스베거스 카지노 업계 출신 로렌조 페르티나(Lorenzo Fertitta)와 우연히 만난다. 라스베거스에서 열리는 복싱 경기 덕분에 복싱 산업과 관련 규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로렌조는 이후 대나와 의기투합하여 UFC를 인수한 후 이를 최고의 스포츠 산업 중 하나로 키웠다.

이번 호에서는 신사업의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행운에 대해서 함께 논의했다. 그리고 행운의 신이 나에게 미소 짓게 만들기 위한 방법도 고민해 봤다. 운이 점점 중요하게 작용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노력과 준비 없이 요행만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행운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살펴봤다.

재능과 노력, 그리고 행운의 중요성을 균형 있게 간파한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당신은 앞으로 이룰 모든 성취의 유일한 주인공이자 과거 이룬 모든 성공에 감사해야 하는 수혜자다. 당신은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받을만한 것보다 대체로 더 좋은 것을 받았다는 인정과 함께 삶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말마따나 최고의 지성이란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동시에 품으면서도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는 지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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