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대규모 피해 발생, 데이터 복구 및 백업 중요성 강조/2019년- 단순 백업, 복구넘어 다양한 인프라 환경과 기능 지원

 

[컴퓨터월드] 컴퓨터가 존재하는 한 데이터 복구와 백업의 중요성은 강조될 수밖에 없다. 특히 데이터의 절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온라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1999년 4월 26일, 2000년 문제인 ‘Y2K’를 앞두고 체르노빌(CIH)바이러스가 PC통신과 인터넷망을 타고 전국을 강타, 대규모 피해를 입혔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해킹, 각종 재해로부터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2019년 현재는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해 데이터를 백업, 복구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다양한 인프라 환경을 지원하고 있다.
 

한계를 보이는 바이러스 백신

‘컴퓨터 바이러스 문제는 백신 프로그램이 있으면 모두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이는 백신 프로그램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은 그 피해 사실이 보고된 이후에 바이러스를 분석하고 만들어진다. 누군가 희생양이 된 후에 백신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1999년,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업체들은 대부분 자사제품에 ‘알려지지 않는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기능’이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는 기존에 출시된 컴퓨터 바이러스를 유형별로 분석해 바이러스처럼 추정되는 파일을 일시적으로 격리시켜주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는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 것이었다.

▲ 1999년 하드디스크 복구 업체(출처: 컴퓨터월드)

1999년 4월 체르노빌(CIH)바이러스로 피해를 입은 PC 중 상당수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제품들이 깔려있었다.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이 이미 설치돼 있었지만 CIH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CIH 바이러스 제작‧유포 혐의로 구속됐던 대만 사람인 천 잉하오도 조사과정에서 “일부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불필요한 바이러스 백신을 판매하는데 분개해 이를 개발‧배포했다”고 말해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었다.

물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업체들이 1999년 초부터 CIH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와 함께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배치 파일을 만들어 그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점은 인정된다. 그리고 이를 그대로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CIH 바이러스에 대부분 감염된 것도 사실이다. CIH 바이러스가 만일 국내에서 가장 먼저 번졌다면 그 피해가 더욱 컸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었다.

온라인 시대로 접어들면서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피해는 이제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CIH 바이러스는 1998년부터 피해가 예고됐지만, 1999년에 큰 피해를 주었다.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대비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언제든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이 바이러스가 배포된 이후 개발된다고 해서 백신프로그램의 존재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은 기존에 제작된 컴퓨터 바이러스의 재발을 방지해 준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과거 1990년대 초에만 해도 컴퓨터 바이러스는 2백여 종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9년에 3만 6천여 종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도 증가하고 있으며, 해당 바이러스가 지닌 공격적인 성향을 떠나 만일 그 중에 하나라도 컴퓨터에 유입된다면 데이터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기존 컴퓨터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선 백신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단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다고 이를 결코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CIH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 1천억 원 규모

CIH 바이러스는 과거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나라의 안전 불감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1999년에 파악한 자료에 의하면 CIH 바이러스는 당해 4월 26일 단 하루 동안 활동을 전개해 전국에 있는 PC 약 30만 대를 손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피해 금액으로 환산하면 1,000억 원대였다. CIH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업체들이 피해사실을 다소 부풀려 발표한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이 당시 업계의 주장이었다. 피해 대상도 일반 기업은 물론 연구소, 정부기관 등 다양했다.

1999년 4월 말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의 보도내용에 따르면 당시 CIH 바이러스는 전 세계 약 60만 대의 PC를 손상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을 비롯해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의 피해가 특히 많았고, 우리나라는 전 세계 피해 규모의 절반가량을 차지해 최대 피해국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하드디스크 복구 전문 업체들이 겪었던 일이 이를 입증하고 있었다. 하드디스크 복구 전문 업체들에게 하루 평균 300여 통씩 전화가 빗발쳤으며 하드디스크를 들고 와 복구해달라고 찾아온 사람만도 하루 평균 15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특히 국내 대표적인 하드디스크 복구 업체인 ‘명정보기술’과 ‘씨앤씨’는 99년 5월 초 각각 1,500여 건의 하드디스크 복구 신청이 들어와 연일 밤샘 작업을 해야만 했다.

CIH 바이러스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안 된 일이긴 하지만 CIH 바이러스가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주었다는 점을 들어 오히려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피해가 컸던 만큼 값진 교훈도 얻었다는 것이다. 특히 CIH 바이러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Y2K 문제가 코앞에 와 있던 상황에서 Y2K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 1999년 당시 컴퓨터 바이러스 정보(출처: 컴퓨터월드)

바이러스와 더불어 해킹에도 대비해야

컴퓨터 바이러스와 더불어 해킹도 데이터 복구와 백업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 준다. 1999년 이전 해킹이라고 하면 컴퓨터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자 주로 국가 주요 정보기관이나 관공서에 침입해 우스운 말을 남겨 놓는다거나 음란물을 게재해 놓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99년 들어서 해킹사례들은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색이 짖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1999년 3월 한 해커가 영국의 군사위성을 2주에 걸쳐 비행궤도를 바꿔놓고 이를 빌미로 3백 만 파운드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 해커는 영국 국방부에 자신이 요구한 돈을 받지 못하면 계속해서 위성을 방해하겠다고 협박했었다고 한다. 또 같은 달에는 18세의 한 소년이 아메리카 온라인(AOL)의 내부 컴퓨터에 침입해 프로그램을 변경시켜 5만 달러 상당의 손실을 입힌 일도 있었다.

국내 언론사인 전자신문사 웹사이트도 해커에 의해 피해를 입기도 했었다. 99년 5월 사이버 테러리스트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네덜란드의 해커 조직이 전자신문 웹사이트를 해킹해 ‘한국정부와 FBI, 네덜란드 광대 수배 중’이라는 제목의 글과 광대모습을 올려 약 9시간 서비스 중단사태를 빚었었다. 전산환경이 웹으로 급속히 이전되면서 이런 해킹사례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피해 규모 또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국제 사이버테러리스트 그룹도 서서히 생겨나고 있어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이들 그룹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이버테러를 자행했는데 대표적으로 1999년 당시 스웨덴의 ‘국제해적단’, 네덜란드의 ‘트라이던트’, 러시아의 ‘지하해킹마피아’ 등을 들 수 있었다. 바이러스와 해킹 등으로 인해 데이터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 요소로 자리매김 하기 시작했다.


데이터 보호 선택 아닌 필수

1999년 당시 데이터를 보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해 컴퓨터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는 것이었다. 둘째는 침입차단시스템(방화벽)과 같은 보안시스템 구축으로 해킹을 방지하는 것이다. 셋째는 백업시스템을 구축해 데이터를 이들 위협요소로부터 원천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방법 모두가 각각의 기능에 따라 데이터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요소들로 꼽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백업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백업만이 각종 재해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데이터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과 침입 차단시스템 등은 외부의 공격을 막는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화재나 수해 같은 각종 재해가 발생했을 시, 데이터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었다. 반면 백업은 천재지변과 내외부의 위협적인 요소로부터 데이터를 보호해 준다는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목됐었다.

▲ 미디어 종류별 사양 비교(출처: 컴퓨터월드)

백업 시스템 구축 방법도 점점 더 쉬워지고 있었다. 1996년~1998년만 해도 백업을 받기 위해선 각 서버에 내장돼있던 DAT(Digital Automation Tape)에 4mm나 8mm짜리 테이프를 삽입해 데이터를 저장해야만 했다. PC에서 디스켓으로 중요한 파일을 복사하듯이 데이터 백업이 이뤄졌던 것이다. 당시 은행들은 대개 거래가 종료된 이후에 직원들이 전산실에 밤늦게까지 남아 데이터를 테이프에 저장하곤 했다. 실시간 백업이 불가능했으며, 백업 받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한편 DAT는 백업 받아야할 데이터 용량이 늘어나면서 DLT(Digital Linear Tape)로 빠르게 교체되기 시작했다. DAT는 또한 백업하는 데 여러 한계를 갖고 있었다. DAT의 문제점으로는 첫째 데이터가 어느 장소에 제대로 백업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는 점이다. DAT 마다 별도의 표시를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무엇이 그 안에 들어있는 확인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둘째 DAT는 많은 용량을 기록하기 위해 나선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트랙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헤드가 기준 축에 비해 5도 가량 각도를 유지하게 돼 헤드가 빠르게 회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테이프가 헤드를 감싸면서 기록하기 때문에 테이프와 헤드 사이에 마찰이 생겨 수명이 짧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에 비해 DLT는 병렬식으로 수평한 트랙을 만드는데, 이는 헤드를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해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저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점이 있었다. 테이프와 헤드의 마찰도 최소로 줄여 수명도 긴 편이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DLT는 DAT 시장을 빠르게 대체하며 10GB 이상의 대용량 저장장치로 각광받았다.

특히 DLT는 다양한 제품이 발표되면서 점점 더 대용량화되고 있는 추세였다. 1999년 하반기 출시 예정이었던 퀀텀코리아의 ‘DLT 8000’은 압축모드 시 최대 80GB 데이터 저장이 가능한 저장장치로 기존 DLT 드라이브보다 20%이상 빠르며 ‘DLT 4000’ 및 ‘DLT 7000’ 제품과도 호환성을 갖춰 각광받았다.


백업 장비 업체별 차이점 없어

당시 백업 장비의 성능은 업체마다 대동소이 했다. ‘DLT’는 디지털이라는 업체가 최초로 개발했었다. 그러나 디지탈이 이를 퀀텀에 매각해 1999년 퀀텀이 DLT 기술에 대한 독점권을 갖게 됐다. 썬, HP, 델 컴퓨터, 유니시스 등이 공급하고 있는 DLT의 대부분은 퀀텀의 엔진을 OEM 받아 개발된 제품이었다. 소니의 ‘AIT’와 같은 제품도 당시 시중에 나와 있었지만, DLT처럼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었다.

하드웨어 저장장치의 발달과 더불어 최근 백업 소프트웨어 성능도 크게 개선돼 보다 편리하게 백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자동화와 스케줄 설정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제품이 속속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99년 백업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베라타스의 ‘넷백업’, 컴퓨터 어쏘시세이트(CA)사의 ‘아크서브’ 등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몇몇 업체들이 개발한 제품을 OEM으로 공급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어 백업관련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는 성능 등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당시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레가토와 베리타스 제품은 대형 시스템 업체들에게 OEM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이들 제품이 하이엔드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업전문가들이 “백업시스템은 어떤 제품을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를 효과적으로 구성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오이네트 인터넷 데이터 백업 서비스 주목

이런 상황에서 지오이네트(ZOInet)가 1999년 개발한 인터넷 데이터 백업 서비스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았었다. 인터넷 백업 서비스란 개인 PC에 있는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원격지에 저장, 보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말한다. 사용자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지오이네트의 서비스 전용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백업하고자 하는 데이터나 폴더를 원격지 서버에 보관할 수 있었다. 이 때 데이터는 지오이네트가 자체 개발한 암호화 및 압축 프로그램으로 자동 저장됐다.

이 서비스가 주목을 받았던 또 다른 이유는 중요한 데이터를 별도의 장소에 보관함으로써 컴퓨터 바이러스와 각종 재해로부터 자신의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24시간 지구촌 어디에서나 인터넷에 접속만 된다면 보관해 놓은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어 데이터를 항상 디스켓에 저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원격지 데이터보관 창고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당시 개인 사용자들에게는 5MB에 한정해 무료 서비스가 됐으며, 기업 사용자들은 데이터 백업량에 따라 월정액이 부과되는 서비스를 이용했었다. 지금은 이러한 서비스가 특별할 것이 없지만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서비스로 큰 관심을 받았다.

지오이네트는 당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기도 했었다. 데이터 백업 시 컴퓨터 바이러스로부터 피해를 막기 위해 안연구소측의 바이러스 체크 및 치료기능이 내장된 ‘위프엔진’을 자신들의 서버에 탑재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지오이네트는 “사용자들이 백업 시 컴퓨터 바이러스를 미리 체크해 볼 수 있어 데이터를 보다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ISDN을 이용한 백업용 솔루션도 출시됐다. 통신 장비업체인 DXO텔레콤이 당시 ISDN을 백업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ISDN 백업장비 ‘HTA-M/S’를 선보였다. 집합형과 단독형 두 가지 모델로 출시된 이 장비는 집합형인 경우 최대 18개의 전용회선을 지원하며, 단독형은 ISDN 망종단장치(NT)를 자체에 내장하고 있었다. DXO텔레콤은 “기존에는 라우터에 내장형 ISDN 카드를 끼워 사용해 왔으나 이 장비의 출시로 이런 불편함이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복구도 중요

아무리 데이터를 철저하게 백업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일반적으로 사고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령 백업을 받는 도중에도 데이터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데이터 복구 업체들도 한 두 군데쯤은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다. 하드디스크는 TV나 반도체와 달리 헤드, 디스크, 스핀들 모터 등 핵심 부품들이 0~10𝝁 이내의 초정밀도를 유지해 초고속으로 움직인다. 외부의 작은 충격이나 자체 결함으로도 데이터를 손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99년 당시 국내에서 데이터복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많았다. 용산에 있는 컴퓨터 A/S 전문 업체들은 대부분 데이터복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은 시중에 나와 있는 데이터 복구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데이터를 복구해주는 정도로 복구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드웨어적으로 데이터가 손상됐을 때에는 복구 서비스가 불가능했었다.

복구용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복구하는 업체를 제외하고 전문적인 데이터복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명정보기술’, ‘씨앤씨’, ‘ITI데이타’, ‘Mdsr’ 등이 대표적이었다. 미국 최대 데이터 복구 전문업체인 ‘온트랙’사와 협력을 맺고 99년 설립된 ‘ITI데이타’는 다소 예외에 속하지만 이들 업체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오랜 기간 데이터 복구를 해오던 업체들이었다. 그 만큼 데이터 복구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업체들이었다.

데이터를 복구하기 위해선 하드디스크를 분해해 전기적‧기계적으로 힘을 가하거나 각종 유틸리티들을 사용하게 된다. 때문에 복구가 한 번 실패한 데이터는 더 뒤엉키게 돼 복구가 어려워진다. 왜 기술력 있는 데이터복구 전문업체가 필요한지는 이런 사실이 말해준다. 실력 있는 업체가 아니라면 더욱 낭패를 보기도 했었다.

당시 데이터 복구에 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데이터 복구율은 60% 내외였다. 손상된 하드디스크의 유형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한 번 손상된 데이터를 복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일례로 ‘명정보기술’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하드웨어적인 문제로 하드디스크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을 경우에는 50% 정도의 복구율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파티션 테이블, 부트 레코드 파손은 90% 이상 복구가 가능하나 배드 섹터나 악성 바이러스로 인한 데이터 손상은 복구율이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포맷, 딜리트, 이레이저 등 데이터를 삭제한 경우에는 60% 정도 복구가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복구율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별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데이터를 살려내면서도 정작 자신이 원하는 데이터는 살려내지 못한다면 복구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당시 업계 전문가들이 데이터 백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9년 단순 백업은 기본, 다양한 인프라 환경 지원

최근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면서 클라우드를 거론한다. 데이터 백업 역시 클라우드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 가상화와 클라우드라는 바람이 불면서 백업‧복구 업계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많은 업체들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백업‧복구 시장에 물리, 가상화, 프라이빗, 퍼블릭, 멀티‧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등 복잡해진 기업의 IT 인프라 환경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솔루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델 EMC는 데이터 복구, 백업의 목적인 데이터 보호 부문에서 고객이 어떠한 환경에 있더라도 ‘단순하지만 강력한’ 데이터 보호 솔루션을 전달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델 EMC는 ▲온프레미스부터 가상화된 인프라 ▲컨버지드 인프라 ▲프라이빗/하이브리드/퍼블릭 클라우드 등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곳에 데이터 보호 기능을 제공하며, 포괄적인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백업 수준으로 이해되던 데이터 보호 수준에서 탈피해 데이터가 기업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빔(VEEAM)은 가상화 백업에 초점을 두고 클라우드로 본격 확장하고 있다. 빔은 하드웨어에 의존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스토리지나 서버와 호환을 폭넓게 지원하고 있다. HPE, 레노버, 시스코, MS, 넷앱, 퓨어스토리지, 뉴타닉스, VM웨어 등의 벤더들과 공동 영업 마케팅으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빔은 ‘빔 백업 앤 리커버리(Veeam Backup & Recovery)’와 ‘빔 원(Veeam One)’을 합쳐 ‘빔 스위트(Veeam Suite)’로 불리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빔 스위트’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최적화된 솔루션으로 물리 환경(온프레미스)에서 백업 받은 데이터를 AWS EC2 VM이나 애저/애저 스택의 VM으로 변환, 마이그레이션 해주는 툴도 제공하고 있다. 오브젝트 스토리지 기반의 무제한 확장 가능한 스토리지 기능을 제공, 대용량 저장이나 보관이 필요한 경우에 적합하다. 물리 환경에서는 OS BMR, 파일, DB 백업과 복구를 빔 SW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라이선스 구조도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맞게 단일 라이선스로 가상환경, 물리환경, AWS, 애저 등에서 교차사용이 가능하다. 어떤 라이선스는 넘치고 어떤 라이선스는 모자라는 경우 없이 유연하게 자산을 관리할 수 있다. 이밖에 랜섬웨어 대응을 위해 백업 데이터 복구 시 악성코드 탐지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베리타스는 지난 20여 년 간 ‘넷백업’ 솔루션을 통해 업계에서 기술력을 인정 받아왔다. 베리타스는 기존 레거시 환경부터 최근 클라우드라는 트렌드까지 모두 아우르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그간 확장성, 성능, 효율성, 범용성, 기술 지원 등 다섯 가지 부분에 초점을 맞춰왔으며, 단순성과 현대화라는 두 역량을 덧붙여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퍼블릭 클라우드 업체와 제휴, 새로운 기회 모색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이르기까지 IT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백업 업체들도 클라우드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기업들은 클라우드 사용을 고려하면서 일차적으로 클라우드 백업을 우선 고려한다. 백업 솔루션 업계는 이에 대응해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과의 제휴를 바탕으로 프라이빗 클라우드 및 레거시 인프라까지 아우르는 통합적인 제품 전략을 펼쳐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클라우드를 놓고 이용자들이 다양한 활용 사례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백업 업계 역시 멀티 및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전략을 중심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기존 온프레미스 위주였던 백업 솔루션들이 수년에 걸쳐 멀티 및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지원을 강화하고 있고, 기업들 역시 손쉽게 클라우드라는 트렌드를 이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백업 부문을 우선 채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IT 인프라 중에서도 백업은 가장 보수적인 분야였다. 한 번 도입된 백업 솔루션을 바꾸는 것은 사용자 입장에서 큰 부 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백업 시장도 크게 변동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백업 시장에서 높은 영향력을 가진 업체들은 신기술 지원을 확대하며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려 노력하고 하고 있다. 신생 업체들 역시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맞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면서 기존 업체와 경쟁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업체가 비용에 대비 효율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가, 또한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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