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 장벽 낮춰 경쟁력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컴퓨터월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인해 IT인프라 시장이 예상 밖의 호황을 보임에도 국내 하드웨어 기업들은 소외되고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장악한 국내 시장에서 자리 잡기가 버겁다. 기술력은 충분히 갖췄다고 자부하고 있음에도, 부족한 인지도와 고정관념을 깨기 어려워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기술력 확보를 지원해 국산 서버가 등장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고객들의 인식 전환과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IT시장 성장세…국내 서버·스토리지 기업들은 ‘소외’

2019년 기업 IT 시장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클라우드’가 화두인 것은 글로벌이나 국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클라우드가 각광받으면서 일반 기업들은 하드웨어 인프라의 설치·관리에 쏟았던 인력과 자원을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 개발에 투입하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한, IT기업들 가운데 국내 소프트웨어 부문 선도 기업들은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형(as a Service) 모델로 판매 전략을 전환하고 실적을 높여나가고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 부문에서의 국내 기업들로부터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IT인프라 도입 증가에 따른 해외 대기업들의 실적 향상과는 반대로, 국내 하드웨어 기업들은 고객들의 외산 선호에 따른 판로 개척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클라우드가 주는 기회를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국내 서버·스토리지 시장은 성장 중이다. IDC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서버 시장 매출은 총 1조 5,441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15.7%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성장은 반도체 제조업의 생산량 증가에 따른 반도체 생산 라인 증설과 R&D 고도화, 그리고 대기업 및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의 IT 인프라 투자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국내 스토리지 시장 역시 지난해 3.8% 성장한 4,649억 원 규모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러한 성장이 시장을 주도하는 해외 벤더들 위주로, 정작 국내 기업들이 소외돼 있다는 것이다.

서버, 스토리지 부문의 국산 하드웨어 제조 기업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시장 상황이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 분야 상위 기업은 1~2곳이 연 3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정도다. 1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기업들이 수십여 개에 달하는 소프트웨어 부문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비록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서버 제품 중 1소켓 및 2소켓 2.6GHz 이하 제품을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고 산업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으나, 공공부문 시장 중에서 해당 스펙의 서버 부문이 차지하는 파이가 워낙 작아 응급처치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국산 고객신뢰 부족…업계 “편견 탓”

업계는 무엇보다 “글로벌 벤더 제품 대비 국산 서버의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고객들의 인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이중연 KTNF 대표는 “자사 x86 서버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IoT 인증 통과, SPECjbb2015, TPC-C 인증, VM웨어 인증 획득 등 기술적으로 글로벌 벤더와 동등한 수준의 신뢰성을 확보했다고 자신한다”면서, “외산 서버를 사용하는 경우 문제가 생겨도 쉽게 넘어가는 면이 있지만, 국산서버의 경우에는 누가 선정했느냐 등 담당자의 책임을 묻는 경향이 있어 국산서버 진입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유니와이드 관계자는 “서버, 스토리지는 글로벌 브랜드의 제품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어 새로운 국산 벤더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서, “이미 x86계열의 인텔 CPU를 채용하는 서버는 보편화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시각들로 인해 외산 벤더 서버와 국산 서버를 도입해 동일한 장애가 발생했을 경우 ‘국산 서버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트론 관계자 역시 “글로벌 벤더사에 비해 낮은 브랜드 인지도로 인해 충분한 스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국산 서버 회사들은 중소기업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A/S나 유지보수 등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뢰 부족은 스토리지 부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NAS(Network Attached Storage) 및 SAN(Storage Area Network) 스토리지 전문 기업인 글루시스도 국내 스토리지 시장이 녹록치 않다고 이야기한다. 국내 스토리지 시장은 민간과 공공 부문을 아울러 외산 벤더들이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고, 기술 개발에 투입되는 자본과 고급 인력의 수급에 있어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읽고, 그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혁신기술을 발굴해 내야 하지만, 실상은 정보입수 능력의 한계와 개발인력의 여유, 그리고 공공 및 민간 투자 침체로 인해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글루시스 측은 설명했다.

글루시스 관계자는 “국내 스토리지 시장에서 국산 제품의 점유율이 외산 제품에 압도되는 원인은 기술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지는 데이터를 담고 있는 기기로서, 그 목적이 데이터의 무결성과 활용성에 있으며, 이와 같은 요소들의 결여는 곧 기업 자산의 손실과 직결되기에 해당 요소들에 대한 눈높이가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 일반적인 국내 기업에서는 스토리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히 대처 가능한 IT기술 인력이 미비하기에, 확실한 기술지원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연유로 스토리지 시장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업들은 이미 구축돼 있거나 지금까지 검증돼 왔던 외산 벤더들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스토리지 시장에는 글루시스를 포함, 태진인포텍, 명인이노 등과 같은 몇몇 기업들이 어렵게 버티고 있다. 이들이 외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 제품화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간간히 접하기도 하지만 실제 시장 점유율 면에서는 겨우 1%, 최대 2% 정도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서버 시장 역시 마찬가지로, 최근에야 겨우 최대 4%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글루시스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 국산 스토리지를 20년간 소개해왔지만, 아직도 국산 제품에 대한 인식 부족 및 낮은 신뢰로 제품 판매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 국산 제품에 대한 도입을 꺼려하고 배정받은 예산으로 외산 제품을 도입하려고 한다”면서, “일전에 도입한 국산 제품에서의 서비스 중단 이슈로 국산 제품 도입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오히려 국산 제품이 공공 시장을 진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외산 제품 역시 국내에서 서비스를 중단하면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술개발, 마케팅, 서비스 강화 등 자구책 마련

서버와 스토리지는 일반적으로 중단돼서는 안 되는 미션 크리티컬한 IT인프라 장비다. 때문에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에 대한 신뢰를 보내는 사용자들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정성과 성능이 떨어지는 국산 서버·스토리지를 사용하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국산 브랜드들은 성능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국내 서버·스토리지 기업들 중 기술적으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것은 KTNF다. KTNF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x86 기반 듀얼 소켓 서버 메인보드 기술 개발’ 과제를 받아 지난해 개발에 성공했다. 단순히 CPU, 메모리, 메인보드 등 각 부품을 조립만 한 국산 서버가 아니라 메인보드 바이오스(BIOS)와 베이스보드 관리 컨트롤러(BMC), 펌웨어를 직접 개발한 것이다. 덕분에 x86 서버 업데이트 시 신속하고 빠르게 지원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데이터센터 권장 유지온도인 25℃보다 높은 온도에서 운영 가능한 고온감내(45℃) 시스템인 점도 특징이며, 특정 유해물질 사용제한을 통과한 RoHS 인증도 받았다.

▲ KTNF x86 서버 ‘KR580S1’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는 각종 BMT나 POC를 통해 외산 벤더 제품과 비교해 기술적인 면이나, 제품의 안정성에서 차이가 없음을 고객에게 확인시키고, 제품의 유지보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 유지보수망을 확보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신 기술 개발도 게을리 하지 않고 클라우드 구축을 위한 솔루션을 비롯, 인공지능 개발업체와 제휴해 솔루션 일체화 장비를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트론은 국산 서버에 글로벌 기업은 물론 국내 유수의 기업들과 협력해 이들의 솔루션을 탑재한 어플라이언스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트론 관계자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공급사와 함께 새로운 고객들과 마주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자사의 다양한 기술정책과 서비스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공급사와 협업을 통해 이트론 ‘리노티(LINOTI)’ 서버에 대한 안정성과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리노티’는 이트론의 고유 브랜드 명칭으로, Next line of innovation through ICT의 약자이며 ICT혁신 제품을 개발, 생산하는 비즈니스 브랜드다. 이트론 관계자는 “이트론 국산 서버라인은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1U와 2U 제품 위주로 구성돼 있다. 필요한 옵션으로만 지정해 구성,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가 많다. 또한 이트론의 차별화 되는 특징은 신속한 기술지원과 지속적인 서비스로, 최근에는 강화된 ‘찾아가는 AS’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고객의 편의성을 높인 AS를 바탕으로 고객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슈퍼마이크로 국내 총판인 슈퍼솔루션도 최근 국산 서버 ‘슈솔’ 브랜드를 출시하고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슈퍼솔루션 측은 “2008년부터 12년간 2,000여개의 고객사와 10만여 건의 구축사례를 확보,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가격과 우수한 성능을 갖춘 최적의 컴포넌트를 엄선했다”고 설명했다. ‘슈솔’은 1U부터 4U까지 다양한 옵션과 구성의 랙 및 워크스테이션 서버를 보유하고 있다. 딥러닝 솔루션을 위한 GPU 서버 라인도 준비돼 있다. 또한 KC인증, 대기 전력 저감 우수 제품 인증을 취득해 검증된 안정성과 신뢰성을 갖췄다. 일반 제품보다 30~50%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며 운영비용 절감에도 효과적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 슈퍼솔루션 국산 서버 ‘슈솔’

스토리지 부문에서 글루시스 역시 상당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글루시스의 ‘애니스토(AnyStor)’ 시리즈는 레드햇(Red Hat)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 글러스터 파일시스템(GlusterFS)을 사용한다. 글러스터는 특성상 하드웨어에 대한 종속도가 낮기 때문에 외산 표준 x86 하드웨어에 설치돼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글루시스는 글러스터FS 오픈소스 기여자 목록에 포함될 정도로 지금까지 적극적인 커밋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단순한 오픈소스의 활용이 아닌 기여자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글루시스의 스토리지 관리 소프트웨어는 완전히 자체 개발돼, 글러스터FS를 기반으로 하는 국산 스토리지 관리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글루시스는 “향후 생존에 앞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하드웨어 종속성에서 벗어나 유연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면서 정책 기반으로 스토리지 프로비저닝 및 관리를 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스토리지 (Software-defined Storage)로 방향을 잡고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진입 장벽 낮춰 경쟁력 향상 지원해야”

KTNF가 수행했던 과제와 같이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도 국산 컴퓨팅 장비 기술력을 강화하고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 육성과 산업 확대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제도를 마련하고 관련 기구도 설립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외산 제품이 표준으로 여겨지고 고객들이 이를 선호하는 것이 국내 기업들에게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에 대해 슈퍼솔루션 측은 “x86서버의 경우 외산브랜드와 국산브랜드의 성능이 거의 다르지 않고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높은 우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고착화된 외산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에 국내 서버 브랜드들은 진입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국산 장비 시장 성장을 위해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서 솔선해 인식의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실질적인 운용 실적을 통한 레퍼런스 확립으로 국산 서버 브랜드가 성공적인 후발 주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진입 장벽을 해소하는 역할이 공공 부문에서부터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유니와이드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현재처럼 메인보드, 파워, 섀시, CPU, HDD 등 부품을 모아 국내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을 거친 제품을 우선 국산 서버·스토리지로 정의하되, KTNF와 같은 국산 기술 개발 지원 사례를 업계에 더욱 확충할 때까지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외 유명 브랜드 완제품을 상표만 가려 시장에 유통시키는 사례에 대해, “중소기업 활성화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고, 국내기업의 기술력 축적과 자금력 확보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글루시스도 “공공기관 도입 시 일정 부분을 국산 제품에 할애해 주는 방식으로 국산 스토리지의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춰주면 국산 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외산 제품의 가격 횡포 등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산 하드웨어 채택 확산 기대”

KTNF가 정부 과제에 따라 개발한 기술들은 국내 서버 중소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향후 국산 서버 기술력이 국내 기업들에게 녹아들고, 시장의 인식이 전환된다면 하드웨어 인프라 시장에서 국산 점유율을 좀 더 키워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KTNF의 국산 서버는 공공 핵심 데이터센터 3곳 중 2곳에 하반기 납품이 결정됐으며,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이중연 KTNF 대표는 “국산서버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데이터가 중요해진 현 시점에 데이터를 담는 서버가 외산 서버로 구축된다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자산을 남의 금고에 맡기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공공시장 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국산서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면에서 우선시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국산서버 쿼터제나 국산서버 선정 시 담당자 가산점 등이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기술과 신뢰성의 확보는 기업이 만들어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선은 서버 산업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적인 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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