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연 SW정책연구소 산업혁신연구팀장

▲ 김준연 SW정책연구소 산업혁신연구팀장

[컴퓨터월드] 최근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을 둘러싸고 미-중 간 패권의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폭탄을 부과하면서 본격화된 갈등은 중국 5G통신장비와 중국산 드론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핵심기술의 선점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필수 조건이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인공지능과 같은 핵심기술의 장악은 추격형 대국에서 선도형 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양보 불가의 영역이다.

이 글은 AI라는 기술의 패러다임이 창출하는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가 우리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첨단 기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중간의 패권 경쟁의 흐름을 ▲기술역량, ▲국가 전략, ▲AI 미래비전 등의 면에서 총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미-중 기술패권 (기술역량) (지난호)
미-중 기술패권 (국가 전략) (이번호)
■ 미-중 기술패권 (AI 미래비전)

 

21세기는 ‘중국의 세기(Chinese Century)’가 될 것이라는 세계은행(1992년)의 전망으로 촉발된 소위 ‘중국위협론’은 2017년 초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부터 단순한 관세부과 수준의 무역 갈등을 넘어 핵심기술에 대한 패권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중국이 2017년 ‘차세대 AI발전규획(중국 국무원)’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AI기술혁신 달성하고, 2030년에 미국을 제치고 AI의 중심 국가로 도약하는 이른바 AI굴기의 3단계 전략목표를 설정하자, 미국도 ‘AI이니셔티브(2019)’를 발표하고, 중국의 거센 추격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관세, 수출제한 그리고 핵심 기술 통제 등 견제의 범위와 수위를 높이는 상황이다.

이 글은 그간 2회에 걸쳐 소개된 미-중 AI경쟁의 내용을 종합하고, 향후 이들 양국의 기술경쟁에 대한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국형 공개생태계와 중국의 추격

첫째, 미국형 공개생태계와 중국의 추격이다. AI혁신은 개념설계→모델링→실행의 단계적 절차를 거친다. 개념설계는 AI가속기와 AI개발 플랫폼도 포함하는데,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다. 구글 알파벳의 딥마인드만 해도 2018년 한해 130여편의 개념설계 논문을 발표하면서 700여명의 연구원이 7억 5백만 달러(약 8천 2백억 원) 정도의 연구개발비를 지출했다.

한편 AI알고리즘은 신기술의 출현이 빈번하기에 기술 기회가 높아 후발국도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기회를 잡기만 한다면 추격이 가능하겠지만, 선도국이 주도하는 오픈생태계가 잘 발달 되어 있어, 대부분의 후발 국가들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자체 개발보다는 오픈생태계의 기술자산을 활용한 학습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기술 누적성이 높아 후발국 추격을 방어하기 용이한 개념설계 부분에 선도적 투자 전략을 견지하고 있고, 신기술의 출현이 빈번해서 후발국 진입하기 용이한 모델링과 실행 부분에서는 자사의 혁신 결과를 과감하게 공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선도국의 공개형 전략은 자국의 혁신 결과를 확산하기 쉽고, 추격국의 자체 혁신의 인센티브를 낮추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어 전략으로 기능한다. IBM의 왓슨 플랫폼과 구글의 텐서플로우가 대표적이며 페이스북도 텐서플로우와 유사한 AI 프레임워크로 파이토치를 공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코그니티브 툴킷, 케라스 등 수많은 AI도구와 프레임워크가 공개되고 있다.

최근 구글은 데이터 과학자들을 위한 커뮤니티인 캐글(Kaggle)을 인수했는데, 자사의 AI플랫폼인 텐서플로우와 연결해서 알고리즘이외에 데이터셋과 모델링 분야에서도 자사에게 유리한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구글의 입장에서는 역량있는 AI인재와 데이터 과학자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고 또한 이들의 역량을 검증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데 캐글 플랫폼을 활용하면 이들을 직접 채용을 하지 않고도 글로벌 차원에서의 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형 개방형 생태계에 포섭된 기업과 국가는 자체 혁신보다 낮은 비용으로 AI기술지식을 활용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미국형 생태계의 조력자로서 남게 될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2019년 11월 개최된 ‘동북아 공개SW활성화 포럼’에서 황즈허 중국 공개SW활성화 포럼 의장이 “만약 오픈소스SW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중국의 성장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중국은 그간 미국형 공개생태계에 편입한 학습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국가 차세대 AI개방혁신플랫폼’ 계획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오픈소스 생태계 조성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중국, 독자적인 오픈소스 생태계 조성 나서

중국판 깃허브라고 불리는 ‘기티(Gitee)’의 경우, 2013년 5월부터 시작돼 현재 전 세계에서 두 번째, 중국에선 가장 큰 오픈소스 코드 호스팅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2019년 7월 기준 기티에는 350만 명 이상의 개발자와 520개 이상의 코드 저장소(레파지토리)가 있다.

민간기업차원에서는 화웨이가 서버 마더보드(쿤펭)부터 운영체제(하모니 OS), DB(거스 DB) 등을 오픈소스로 만들어 공개하고 있으며, 텐센트 역시 분산 메세징 미들웨어(튜브MQ), 오픈 JDK8 기반의 텐센트 코나 JDK, 엔터프라이즈 컨테이너 플랫폼(TKE스택) 등을 오픈소스로 개발 중이다. 바이두는 2016년 패들패들 자율주행 오픈 플랫폼을, 알리바바는 시티 브레인 오픈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의 오픈소스 커뮤니티 파워도 커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제외하면 가장 큰 오픈소스 기술 커뮤니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5만여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모여 있다. 따라서 향후 중국이 미국형 기술생태계에 의존한 기술과 지식의 습득 및 학습의 과정을 반복하는 방향으로 가는가 아니면 독창적 혁신 생태계의 창출과 글로벌 확산의 과정으로 나아 갈 수 있는가는 향후 중국 AI 추격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자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둘째, AI혁신의 기반이 되는 슈퍼컴퓨터의 경우에 기술발전의 궤적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대규모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 투자가 중요하다. 게다가 향후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를 통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쏟아질 경우 슈퍼컴퓨터의 수요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데이터 중심의 시대에 글로벌 기술패권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미-중 양국 모두 이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중국은 시종일관 정부 주도형 추격을 지속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1986년 3월 첨단기술연구발전계획(863계획) 하에 2003년 ‘상하이 고성능 IC 디자인센터’가 주도하는 연구개발이 성공하면서 자체 CPU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후 중국의 슈퍼컴퓨터 ‘텐허(天河)2’는 2013년부터 세계 슈퍼컴퓨터 성능대회에서 1위 자리를 차지했고, 2015년에는 중국의 선웨이 타이후라이트가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발전했다.

최근 2020년까지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 개발을 완성하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는 중국은 국가병렬컴퓨터연구센터, 슈퍼컴퓨터 전문기업인 슈곤(Sugon) 그리고 중국국방과학대학의 주도하에 텐허-3(Tianhe-3, 天河三号)로 명명된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를 2020년까지 구축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미국은 중국보다 1년 늦은 2021년에 아르곤 국립 연구소의 오로라를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로 개발할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인데, 2015년 중국이 ‘제조 2025’을 발효하면서 하이실리콘, 유니그룹 등을 반도체 핵심기업으로 선정하고 투자 펀드 조성 등 본격적으로 육성하자, 2017년에는 미국 정부가 중국계 사모펀드(캐넌브리지)의 미국 반도체기업(래티스) 인수를 불허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8월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집중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이어서 D랩 제조업체인 푸진진화를 제제했고(2018년 10월), 화웨이 계열사인 하이실리콘도 제제하기 시작했다(2019년 5월). 2019년 6월에는 미국이 자국과 선도 경쟁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는 슈퍼컴퓨터 분야를 정조준해서 중커수광(中科曙光), 텐진하이광(天津海光), 청두하이광IC(成都海光集成电路),청두하이 광마이크로전자기술, 우시지앙난컴퓨터기술연구소(无锡江南计算技术研究所) 5곳을 추가로 수출제한 기업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미-중, 슈퍼컴퓨터 기술경쟁 치열

마치 과거 미국과 소련 간에 펼쳐진 우주개발경쟁을 연상케 하는 미-중 간 슈퍼컴퓨터의 기술경쟁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향후 중국의 차세대 슈퍼컴퓨터의 성능이 고도화 될수록, 미국의 강도 높은 추가 제재가 예상되며, 이에 중국의 전략 대응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흥미로운 관점 포인트가 될 것이다.

셋째, 데이터 분야에서 미국이 데이터의 초국적 유통을 강조한다면 중국은 데이터 주권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데이터의 통제와 국외유출 방지를 목적으로 중국이 2017년 6월 사이버보안법을 발표하자 심지어 애플도 2018년 3월부터 중국 사용자의 아이클라우드 계정을 중국의 데이터 업체에 맡겨 보관·관리하고 있으며, 계정의 암호 해제에 필요한 암호화 키를 중국 정부에 공개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데이터에 대한 검열은 최근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 개인정보 및 중요한 데이터를 보낼 때도 중국 정부의 사전 심사를 의무화하도록 하며 점차 강화되는 추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정부도 2018년 3월 클라우드 법을 시행하면서 미국 IT기업의 해외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도록 했으며, 2018년 12월에는 틱톡을 운영하는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를 이름과 이메일 주소, 위치 등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했다는 혐의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제소해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특히 바이트댄스가 미국 기업(Musical.ly)을 인수하고자 했을 때는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하며 데이터를 취득하는 이슈에 대해서 미국 국방수권법(NDAA)를 발동해 중국의 대미 투자에 대해 별도로 심사하기도 했었다.

최근 미국은 국가별 디지털 무역장벽을 분석하고, 이의 철폐와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향후 전개된 미-중 간 무역협상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미-중 양국의 데이터 갈등이 글로벌 차원의 데이터 거버넌스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까는 모든 국가가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모든 산업에서 벌어지는 플랫폼 경쟁

넷째, 미-중 양국의 전략경로를 보면, 미국은 선도+공개 전략을, 중국은 선도+복제학습+독자생태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슈퍼컴퓨터 분야에서는 미-중국 양국 모두 정부주도형 선도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AI알고리즘의 경우, 미국이 개념설계→상세설계→실행의 전 단계에서 혁신을 창출하며, 주로 AI의 개념 설계는 선도적 투자를 하고, 나머지 단계는 텐서플로우와 같이 공개형 전략으로 추격방어와 글로벌 AI인재들과 협업을 병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중국은 미국형 공개생태계에 편입하여 복제적 학습을 하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 이른바 BAT로 불리는 중국 혁신기업들을 중심으로 자체 개발한 AI 프레임워크를 공개하고 있으나, 아직 자국 내 공유 생태계 수준으로 글로벌 차원에서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AI가 특정 산업을 넘어 전 산업과 보다 넓은 차원에서 융합되는 최근 추세를 감안하면, 향후 미-중 양국의 견제와 추격을 위한 전략 조합과 변화는 향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이다.

마지막으로 AI경쟁에 참여하는 미국 기업들을 보면, 인텔은 물론 구글, MS, 아마존 등 산업 간 구분이 거의 없는 플랫폼 기업들이다. 이들의 경쟁은 개별 기술경쟁이나 특정 산업영역에서 전개되는 국지전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의 영역을 아우르는 플랫폼 경쟁이다. 따라서 아직은 그 가능성이 낮을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들의 경쟁이 전 방위적 경쟁 혹은 산업경쟁을 넘어 국가 간 ‘체제의 효율성 경쟁’으로도 확전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미-중 양국 간 AI패권 경쟁의 변화 양상을 관찰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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