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SW 사업, 예산 삭감은 관행…저가 출혈경쟁 빈번
기술력 중심 평가로 ‘제값 주기’ 현실화해야

[컴퓨터월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국내 소프트웨어(SW) 기업들은 SW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벌써 수십 년 묵은 이야기지만 해결이 요원하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자 노력하고는 있지만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라 쉽사리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SW 사업이 단순한 용역 수준이 아니라 지식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임에도 결과물을 단순 제품 취급한다는 데 있다. 한정된 예산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정부 공공기관들은 “SW산업 발전의 마중물이 되어달라”는 업계의 요청에도 결과적으로 오늘날 SW산업의 잘못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해왔다. 차츰 개선되고는 있다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결국 SW 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뿌리박힌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올바른 시장 질서 확립, 대중소기업 상생 도모, 기술에 대한 공정한 평가 등 문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결국 생태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부터 변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SW강국으로 자리할 수 있다.

1부 - “제값 받기 강화로 SW산업 발전 초석 쌓는다” (2021년 4월호)
2부 – SW가치 저평가 여전…저가낙찰 방지, 기술평가 강화 필요 (이번호)
3부 – 적정대가 지급, 유지보수요율 현실화 (가제)
4부 – 상용SW 분리발주 강화 (가제)
5부 – 원격지 개발 및 SW 산출물 반출 허용 (가제)

처음부터 저평가되는 공공 SW사업 예산

국내 소프트웨어(SW) 업계는 지난 수십 년간 ‘SW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성토해왔다. SW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실현하는 기반이며,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2021년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SW기업들은 “SW의 가치가 저평가돼 있고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사업 환경이 수십 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초 본지가 진행한 ‘SW 제값 받기’ 관련 설문 조사에서 국내 중소 SW기업들은 “SW 가치 보장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부문조차 예산 절감을 이유로 SW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성토했다. 즉, 공공 부문 SW 사업이 발주 단계에서부터 SW의 가치를 제대로 산정하지 않고 턱없이 부족한 예산 규모로 사업을 설계, 발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공공 SW 사업 담당자가 사업에 드는 예산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측정할 만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부분은 2020년 개정된 ‘SW사업 대가산정 가이드’를 통해 기능점수(FP) 기반의 단가 산정으로 한층 개선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처음 산정된 규모에서 추가로 예산을 줄여도 그동안 어떻게든 사업이 진행돼왔다는 점 역시 문제로 작용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예산 절감을 이유로 관행적으로 다시 한번 사업 금액 삭감을 요구하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SW기업 A사 대표는 “최초 예산을 100%라고 놓고 본다면 기획재정부가 20~30% 삭감된 금액으로 사업을 진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관행이 됐다”고 토로했다. 발주기관이 제시한 예산은 기재부를 거치면 90%로 줄어들고, 예정가격(예가) 제도를 통해 80% 수준이 된다. 이는 정부의 사업 예산을 어떻게든 절감하는 것이 국민의 세금을 절약하는 ‘올바른 일’로 평가받는 공직사회 분위기상 당연하게 고착돼온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업에 참여하는 국내SW 기업들은 애초에 적은 예산이 재차, 삼차 깎이는 가운데 작은 매출이라도 가져가기 위해 입찰 과정에서의 출혈경쟁을 감행, 결국 원래 예산의 70% 수준까지 떨어진 가격으로 사업을 수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SW기업 B사 대표는 “전년도에 책정된 국가 예산을 절감하려 하기보다는 예산을 최대한 활용해줘야 한다. 그래야 공공 SW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이 이익을 남기고, 이를 연구개발에 재투자해 이를 기반으로 실력 있는 SW기업이 성장하고 활성화될 수 있다. 그래야 국내 SW산업이 발전하고, 국가 경쟁력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중소SW기업들에 부담 전가되는 구조도 문제

SW기업들이 예산을 ‘팍팍’ 쓰지 않는 정부를 탓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출혈경쟁에 대해서는 분명히 기업들의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손해를 보더라도 레퍼런스 확보를 위해 우선 사업을 따내고 보려는 잘못된 경쟁이 계속되면서 현재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자성하고 있다. 실제로 여러 협회 차원에서 산업계에 악영향을 주는 저가 출혈경쟁을 지양하도록 회원사들에게 권고하고, 모니터링도 강화하는 등 자정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결국 중소 SW기업들의 노력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공공 SW사업의 큰 파이를 시스템통합(SI) 방식이 차지하고 있고, SI를 수행하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이 그간 협력사인 중소SW 기업들에게 부족하거나 삭감된 사업비로 인한 부담을 전가해왔기 때문이다.

SW기업 C사 대표는 “대형 SI사들이 가격경쟁을 하면서 원가를 낮추기 위해 가장 손쉽게 압박할 수 있는 것이 국산SW 기업이다. 하드웨어도 원가 절감이 한정적이고 인건비 역시 변동 폭이 거의 없으니 SW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야비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예를 들어 3개 업체에서 견적을 각각 받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가격대까지 낮추려고 서로의 가격 수준을 3개사에 살짝 흘린다. 각사에게 최저 수준으로 가격을 맞춰 오라고 이야기하고, 원하는 가격이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계속 다른 기업들의 가격을 흘리면서 겨우 인건비만 맞출 수 있는 수준까지 4~5차례 유도한다”면서, “그게 아니면 아예 ‘이번에 사례(레퍼런스)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해놓고 참여하라고 한다. 문제는 신생업체들이나 사례가 필요한 업체들이 여기에 덤벼든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가격과 품질 모두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고, 악순환이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대기업 및 중견 SI 업체들은 이러한 소위 ‘후려치기’ 부분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중소SW기업들과 상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결국 근본 문제는 사업 예산이 적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충분한 사업비가 책정된다면 그러한 구조 역시 많이 개선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결국 중소SW기업들이 충분히 SW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적은 예산으로 어떻게든 SW를 ‘만들어내는’ 구축형 SI 사업 위주보다는 전문SW기업들이 연구개발을 통해 만든 상용SW를 발주기관이 우선적으로 구매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중소 SW개발 기업에게 부담을 전가해 개발자의 임금조차 제대로 지급할 수 없을 정도의 저가로 사업을 수주하도록 하는 SI 사업을 우선시할 것이 아니라, 제값을 주고 상용SW를 구매하고, 유지보수비까지 충분히 책정해 안정적으로 SW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용SW의 분리발주, 그리고 유지보수요율 상향에 관한 문제가 자연스럽게 풀어야 할 숙제가 된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앞으로 이어질 기사를 통해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기술평가 변별력 없고 심사위원 전문성도 아쉬워

SW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사업 수주 경쟁 시 평가 기준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현재 공공 SW 사업 입찰 시 기술 9, 가격 1의 비중으로 점수를 부여하고 평가한다. 그러나 기술점수 평가 시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기존 8대 2에서 최근 9대 1로 비중을 한층 늘렸음에도 변별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SW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이미 오랜 기간 검증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처음부터 새롭게 개발해 선보이겠다는 경쟁사에 비해 기술력 측면에서 크게 낫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SW기업 관계자들 대부분이 “입찰 참여 기업 간에 기술점수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를 못 봤다”, “대부분 0.5점 이하 차이로 큰 차이가 없다”, “심사위원의 수가 늘어날수록 점수가 평준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실제 현장 분위기를 전했으며, “결국에는 남은 가격점수 10점이 당락을 결정하는 구조가 된다. 자연히 저가 출혈경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결국 이처럼 기술점수의 변별력이 낮은 것은 발주처가 의도적으로 가격경쟁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술평가 과정도 아쉬움이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우선 공정성에 논란이 생길까 하는 우려에 심사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름대로 전공 교수 등이 참여해 일견 전문성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세부 분야를 ‘정말로 잘 아는’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특히 ‘진짜’ 전문가의 풀은 매우 한정돼 있음에도 유착 가능성이 제기되는 바람에 심사위원에서 배제되는 게 현실이라고 SW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술평가가 단순한 PT 경연장, 첫인상 평가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D사 관계자는 “조달 공공 입찰 시 발표 15분, 질의응답 10분의 짧은 시간을 할애한 뒤 평가가 이뤄진다. 사실 발주처와 함께 사업을 처음부터 함께 교감하면서 많은 시간을 쏟아부으며 준비했는데, 그럴듯한 발표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업체와 소수점 두세 자리 차이 점수를 받을 때는 매우 아쉽다”고 토로했다.

또한 “기술 평가심사위원이 우리가 고심해 고객 요구사항을 조사하고 미팅을 제안했던 부분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발표 몇 시간 전에 자리해서 미리 살펴보고 평가를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발주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점수를 매기게 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차등점수제 도입 기대, 아직 실효성은 의문

정부는 지난해 12월 ‘SW 진흥 실행전략’을 발표하면서 기술 우수기업이 적정대가에 낙찰될 수 있도록 기술평가에 차등점수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계약예규)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 제7조 6항과 7항에 차등점수제 내용을 명시했다. ‘기술능력평가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계약에 한해 차등점수제를 적용한다(6항)’, ‘차등점수제 세부 절차와 기준을 정해 운용할 수 있다(7항)’ 등이다.

기획재정부의 ‘(계약예규)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 중 차등점수제 관련 부분 (빨간색 밑줄)
기획재정부의 ‘(계약예규)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 중 차등점수제 관련 부분 (빨간색 밑줄)

기술평가 차등점수제는 방위사업청이 공공SW 입찰에서 선도적으로 도입해 성과를 거둔 방식으로 우선은 SW업계의 환영을 받고 있다. 방사청은 2006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 저가입찰이 불가능하면서 SW품질은 높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다. 이 같은 결과는 국방 SW산업의 특수성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방SW는 품질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기술력이 우위에 있는 업체를 선정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경쟁자도 많지 않아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방사청의 경우 차등점수제를 통해 기술 점수 차이를 최대 52점까지 벌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방사청 사례를 앞세워 공공부문에 차등점수제를 확산시켜나감으로써 SW업계 숙원을 해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SW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다만 차등점수제의 운용 여부를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계약에 한해’ 라는 다소 애매한 기준에 따르도록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평가다. 또한 점수 차이 역시 방사청처럼 큰 변별력을 갖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발주처가 정하는 대로 운영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경험이 없는 발주처의 경우 과연 책임지고 차등점수제를 도입, 운영하려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또한 점수 차가 커진 만큼 심사위원들의 평가 역시 더욱 근거를 갖추고 공정해져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전문가 풀로는 공정성 시비가 또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차등점수제를 도입하는 경우가 현재 상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반적인 평가다. 실제로 취재를 진행하면서 수십여 업체에 관련 내용을 문의해본 바, 지난해 차등점수제가 도입된다고 발표된 이후 올해 1분기 현재까지도 제도 도입에 대한 SW업계 내 인지도는 매우 낮은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현재로서는 기획재정부의 행정규칙에 권고사항이 포함된 정도에 불과하며, 앞으로 지속적인 내부 검토를 통해 SW기업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는 답변 정도만 할 수 있는 단계인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한계를 인지하고 SW업계 전반에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권상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산업과 사무관은 “현재 기재부가 권고한 사항을 SW사업에 맞춰서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해 과기정통부 고시인 ‘소프트웨어 기술성 평가기준 지침’에 접목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올해까지 검토를 통해 향후 고시나 가이드를 개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방향이 그려지면 업계와 협단체, 발주기관 등에 의견수렴을 충분히 하고 차등점수제 도입 관련 사항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발주처가 실제로 차등점수제를 채택했을 때 필요한 내용을 고시나 가이드라인 등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진정한 SW강국이 될 수 있다

정부 공공부문은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중소SW기업들이 그나마 어느 정도 갖춰진 룰 안에서 경쟁을 기대해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최근 발표된 올해 공공부문 SW·ICT장비·정보보호 사업 총 사업금액은 5조 7,470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13.6%, 액수로는 6,878억 원 늘어났다.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여 SW기업들은 코로나 속에서도 어느 정도 성장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1년 공공부문 SW·ICT장비 총 사업금액
2021년 공공부문 SW·ICT장비 총 사업금액
SW 구축 사업 부문 조사 결과
SW 구축 사업 부문 조사 결과
SW 구매 사업 부문 조사 결과
SW 구매 사업 부문 조사 결과

그러나 SW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하도급 구조 속에서 인건비만 겨우 건지는 수준의 수익성 없는 사업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는 시장의 규모가 늘어났다 하더라도 중소 SW기업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결국 SW는 단순 용역을 통해 최대한 저렴한 가격을 주고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수천여 기업들이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제품을 만들고 있고, 그에 합당한 가격을 주고 구매해 사용해아만 SW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고 세계로 나갈 수 있는 SW기업을 키워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SW업계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인식이, 크게는 문화가 바뀌어야만 우리도 진정한 SW 강국이라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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