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기술보다 표준 쥐고 있던 음반사 영향력 더 커
MP3 시장 위축에 국내 업계 비상

[컴퓨터월드] 2001년, 우리나라는 세계 정상급의 MP3 플레이어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7년 엠피맨닷컴이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선보인 이래, 우리나라는 전세계 MP3 출하량의 30% 이상을 담당하는 최대 MP3 생산국으로 자리잡았다. 2000년에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MP3 플레이어 제조기업들이 100여만 대의 MP3 플레이어를 생산, 80여만 대(1천억 원)를 수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들어 디지털 음악 기술 표준인 코덱과 DRM 문제로 MP3 최대 기술국이라는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컴퓨터월드 2001년 6월호 표지
컴퓨터월드 2001년 6월호 표지


97년 MP3 플레이어 등장 이래, 최대 기술국 지위 확보

우리나라의 MP3 플레이어 역사는 1997년 엠피맨닷컴의 휴대용 MP3플레이어 개발에서부터 시작한다. 엠피맨닷컴을 시작으로 대기업, 전문기업, 중소기업 등이 가담해, 2001년에만 삼성전자, LG전자, 디지털웨이, 유니텍전자 등 20여개 기업이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이들 기업들의 MP3 플레이어 생산량은 연 100여만 대.

20여만 대의 규모였던 국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40%의 점유율을 차지했으며, 엠피맨닷컴, LG전자, 디지털웨이, 유니텍전자 등이 50%의 점유율을, 그 외 중소기업들이 10% 안팎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MP3 플레이어를 처음 개발한 엠피맨닷컴은 2001년 초 ‘MPEG 방식을 이용한 휴대용 음향재생 장치 및 방법’을 발명 특허로 등록한 데 이어 일본과 미국에 국제 특허를 출원하는 등 기술력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 미국의 밀레니엄 저작권법 적용을 필두로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디지털 저작권 보호 여파는 MP3 플레이어 시장에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음악시장의 영향력이 미약한 데다가, 시장 규모 역시 크지 않아 디지털 음악 파일의 코덱과 DRM 부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MP3 플레이어 시장 역시 타격을 입었다.

디지털 음악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콘텐츠 저작권의 보호와 코덱의 변화였다. 미국의 경우 밀레니엄 저작권 보호법 시행과 맞물려, 미국 메이저 음반사들은 음악 MP3 파일로의 전환이 불법 복제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실제 이들 음반사들은 MP3 파일 검색 및 공유 기술을 제공하던 냅스터 사이트의 폐쇄 판결을 법원으로 받아냈다.

특히 음반사들은 MP3 파일 형태의 복제를 저작권 침해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저작권 보호 기술인 DRM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대한 표준 마련을 위해 디지털 음악 서비스 제공업자들과 함께 국제 SDMI(Secure Digital Music Initiative)프로젝트협회를 만들어 연구도 진행했다.

당시에는 정확한 표준이 정해지지 않았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WMRM, 니티드오디오의 SP3 기술, 인터트러스트의 인터트러스트 등이 국제적인 표준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가 제공하는 씨큐맥스와 디지캠 등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보호기술은 단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협회에서 정한 기준을 통과하면 인증을 받는 형태였기 때문에, 국내 기술도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증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반사들이 어떤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표준이 굳어진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삼성전자의 멀티코덱 지원 MP3 플레이어 ‘YP-MF64’
삼성전자의 멀티코덱 지원 MP3 플레이어 ‘YP-MF64’


DRM 적용 및 코덱 변화가 문제로 떠올라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코덱의 변화였다. 당시 주로 사용하는 MP3 파일 형식은 MPEG-1 Layer3였다. 이는 기존의 오디오 데이터(WAV 파일)를 음질 저하 없이 1/12 정도로 압출할 수 있는 MPEG-1의 규격 중 오디오 압축 부분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시 기술의 발전으로 MP3보다 데이터 크기는 작으면서도 음질이 뛰어난 코덱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WMA(Window Media Audio)와 AAC(Advanced Audio Codec) 등이 꼽혔다. WMA는 MS가 발표한 기술로, MP3보다 낮은 64kbps 포맷으로 MP3의 128kbps 포맷과 동등한 음질을 제공했다. 절반 정도의 용량으로 동일한 음질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WMA는 윈도우98에 첨부된 ‘미디어 플레이어(Media Player)’를 통해 재생할 수 있었다. 미국의 주요 음반사인 EMI와 BMG, 워너브라더스 등이 WMA 방식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당시 보급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다.

돌비가 주도했던 AAC의 경우 MPEG2의 기술을 응용해 데이터 크기는 70% 수준이면서 음질은 더욱 뛰어났다. AAC는 MPEG2 계열의 압축기술 중 하나지만, 기대하던 압축률에 달하지 못했다. 이에 MPEG1 방식을 혼합해 압축률을 높인 기술이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AAC의 특징은 5.1채널을 포함한 임의 채널 방식을 지원해 MPEG4 오디오에도 적용됐으며 CD 수준의 음질을 유지하면서도 CD의 1/20 크기로 압축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음반사들이나 서비스 업체 모두 MP3보다 새로운 코덱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저작권 보호 기술 적용도 MP3보다 새로운 코덱들이 유리했다 이에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코덱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술적인 문제는 곧 비용 문제로 이어졌다. 어떠한 코덱이나, DRM을 사용하던지 라이선스 비용은 물론이고, 하드웨어에 새로운 칩이 장착돼야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특히 코덱이 바뀔 경우 기존의 MP3 플레이어는 코덱을 지원하지 않아 사용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발생했다. 이러한 점들은 최소 3~5만 원 정도의 MP3 플레이어 가격 상승으로 연결됐다. 또한 라이선스 계약이나 제품설계 변경에도 많은 비용이 소요됐다. 이외에도 MP3 파일 유료화 서비스에 따른 추가 비용은 별도의 소비자 몫이었다. 이에 업계에서는 2002년까지 국내 MP3 플레이어 생산 업체가 5~6개로 축소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러한 변화에도 국내 MP3 플레이어 생산 기업들은 아무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1차 저작권은 음반사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의 대형 음반사들이 어떤 코덱과 DRM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제조기업은 그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외국 음반사들은 구체적인 표준을 정하지 않아 MP3 플레이어 제조기업들의 혼란과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게다가 국내 경기의 침체는 군소 제조기업들의 도산과 업종 전환을 몰고 왔고, 결국 이들 기업의 재고 물량은 제조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시장에 풀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MP3 플레이어는 저가의 조잡한 물건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한편, 좋은 제품이 나오더라도 가격 경쟁이 문제가 돼 어려운 시장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었다.


멀티코덱 지원으로 위기 타파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부 국내 업체들은 시장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특히 멀티코덱을 지원하기 위해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지원하는,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 가능한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었다. 2001년 출시된 대부분의 제품은 멀티코텍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전자 관계자는 “멀티코덱과 DRM 기술의 확산으로 국내 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예상되지 않지만, 앞으로는 두 가지 모두를 지원할 수 있는 플레이어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시장 잠재력에 대해서도 “아직 국내 MP3 시장은 매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기에 앞으로 업체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시장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제조기업 뿐만 아니라 서비스 기업도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디지털 음악 서비스에 있어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기존 유료 MP3 사이트의 경우 한 곡 당 500원 내외의 가격을 책정했는데, 이는 시중에 유통되는 음악 테이프가 12~14곡에 5천 원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비싸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제이씨현의 관계자는 “문제는 합리적인 가격”이라면서 “한 곡 당 100~200원 내외가 돼야 많은 사람들이 유료화에 참여할 것이다. CD나 카세트 테이프에 비하면 MP3 파일은 제조원가가 싸다”고 주장했다.

 유니텍전자의 멀티코덱 지원 MP3 플레이어 ‘MUZE’
유니텍전자의 멀티코덱 지원 MP3 플레이어 ‘MUZE’


비용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우려돼

멀티 코덱과 DRM 기술이 적용된다고 해서 MP3 플레이어 시장이 바로 사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나온 음악들은 MP3 파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개인이 음반을 사서 MP3 파일로 변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특히 DRM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특정 플레이어 이외에는 재생할 수 없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오프라인에서 발매되는 음반들에도 저작권 보호 기술이 적용되면, 이러한 기술을 지원하는 기기를 다시 구매해야 한다는 문제 또한 우려되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의 “아직까지 MP3 플레이어를 구매하지 않았거나 새로 구입할 계획이 있는 사용자들은 2001년 이후 출시된 제품을 구매할 것을 권장한다. 특히 MP3 CD플레이어의 경우 멀티 코덱을 지원하는 제품인지를 따져보고 구입해야 한다”라는 조언은 그 당시 시장 현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함께 부착된 디지털웨이의 다기능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가 함께 부착된 디지털웨이의 다기능 MP3 플레이어

멀티 코덱과 DRM으로 인한 소비자 문제도 우려됐다. 당시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실장은 “저작권 보호기술 적용은 비용의 전가나 합법적 접근권, 보호기간 등의 문제가 있어 기업의 이익을 위해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비용의 경우 모든 사람들이 불법 복제를 할 것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깔고 가기 때문에 저작권 보호기술 적용에 따른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지 않고 제품 구매자에게 부담시킨다는 주장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저작권 보호기술의 적용 여부가 서비스 이용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기술을 무조건 써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DRM이 적용되면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 받은 PC와 한 대의 MP3 플레이어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됐다. 다운로드 받은 사용자가 다른 PC나 여러 대의 MP3 플레이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것이었다. 이는 파일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를 야기했다. 또한 지식재산권 보호 기간은 50년으로, 이 기한이 지나면 사회에 환원된다. 그러나 저작권 보호 기술이 적용된 파일은 50년이 지나도 보호 기술이 해제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나타났다. 이러한 영구 보호 기능도 법적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이러한 문제들은 새로운 기술 발달에 법·제도 적용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겨나는 문제로 인식됐다. MP3 파일 뿐만 아니라 다른 콘텐츠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급한 제도 개선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멀티코덱을 지원하는 아이리버의 MP3·CD 플레이어
멀티코덱을 지원하는 아이리버의 MP3·CD 플레이어


빠른 표준 제정과 국내 기술 참여도 중요성 부각

2001년에는 MP3 플레이어 시장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MP3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휴대폰, PDA 등에서도 MP3 파일 재생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변화되는 저작권에 인식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MP3 파일을 구매할 지에 대한 의문도 나타나고 있었다.

MP3 플레이어 시장이 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리바다나 냅스터 같은 공유 사이트가 있었고, 인터넷을 통해 파일이 유통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업계에서도 유료 전환율을 5% 내외로 예측하고 있었다. 또한 DRM 기술도 언젠가 뚫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실제로 DRM이 적용된 연예인 비디오 파일이 몇 일 사이에 유통된 사례도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MP3 제조기업들은 시장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 표준 지정이 중요하며, 국내 기술 인증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하드웨어의 특허를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소프트웨어와 저작권 문제로 인해 종주국의 지위를 내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었다.

2021년 현재의 관점에서 MP3 플레이어 시장은 결국 사장됐다. 휴대폰 등 다양한 기기에 음악 재생 기능이 포함됐기 때문에 MP3 플레이어 시장의 한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불어 스마트폰의 등장은 MP3 플레이어 시장의 종말을 더욱 앞당겼다. 음반 시장 역시 스마트폰의 등장과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최근 예능 방송으로 SG워너비의 노래가 역주행 하는 등 2000년대의 노래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MP3 플레이어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됐을 때의 노래들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책상 서랍 속 구석에 박혀 있는 MP3 플레이어를 꺼내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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