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기술 변화 받아들이면서도 근간이 되는 기술 표준 명확히 해야

[컴퓨터월드] 좁디좁은 국내 시장에서는 공공 SW사업이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일부는 공공사업만 붙잡고 있는데도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일 년 내내 공공사업에만 매달려 있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그만큼 우리나라 SW 시장은 정부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다. 지난해 국내 IT 업계를 크게 들었던 비대면(Untact) 트렌드에는 코로나19와 함께 정부의 강한 푸시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정부에서 아주 약간 새로운 키워드나 아이템을 던지기라도 하면 오래지 않아 관련 제품이 우수수 쏟아진다. 본디 비대면 재택근무와는 크게 관련 없는 제품에도 어느새 ‘비대면’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정부의 방침을 믿고 그에 편승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대로 중심을 잡고 올바른 SW 정책을 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전 세계 산업계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혁신을 시도하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의 공공 SW 정책이 하나의 기조를 가지고 많은 예산을 투입해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를 벌이는 일이었다면, 오늘날 정부 사업은 이전보다 한 층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술의 테스트베드가 되고 선제적으로 작은 규모의 파일럿 도입에 나서서 산업계의 변화를 독려해야 한다.

중심을 단단히 잡는 것과 변화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두 가지는 일견 양립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SW산업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픈소스 생태계까지 시야를 확장하면 더욱 더 그렇다. 정부는 전 세계 산업계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도, 가장 기저에 있는 기술에는 정확한 표준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방침은 SW 산업계의 다양성을 높이면서도 상호 간의 호환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든다.

가령 오피스SW를 예로 든다면, 여러 가지 오피스SW나 문서 양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도 가장 근간에는 동일한 개방형 문서 표준(ODF, Open Document Format)을 사용하는 것이다. ODF를 준수한다는 기조가 명확하다면 기업에서는 같은 표준을 준수하는 모든 오피스SW를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활용하면서도 호환성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액티브-X를 걷어내고 HTML5 기반의 웹 표준을 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됐던 오픈뱅킹 프로젝트 역시 ‘금융결제원의 오픈뱅킹 시스템에 오픈API로 연결한다’는 기준을 명확히 했기에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처럼 올바른 선례를 계속 만들어나간다면, 정부가 명확한 목표지점을 선정하고 깃발을 꽂아두기만 해도 산업계에서는 그곳으로 향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산업계 표준을 선정할 때 정부의 자의적인 해석만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부 사업에서 특정 표준을 선정하고자 할 때는 학계와 산업계의 목소리, 전 세계 트렌드의 변화를 면밀히 검토하고 진행해야 한다. 현재 산업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술은 무엇인지, 학계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차세대 기술은 무엇인지,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해 암암리에 선점하려고 하는 기술은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는 제대로 미래를 대비한 기술 표준 선정이 이뤄지기 힘들 뿐만 아니라, 산업계와 학계에 대해 새로운 표준이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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