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기관 SW사업 역량 강화 및 인식개선 필요

[컴퓨터월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국내 소프트웨어(SW) 기업들은 SW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벌써 수십 년 묵은 이야기지만 해결이 요원하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자 노력하고는 있지만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라 쉽사리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SW 사업이 단순한 용역 수준이 아니라 지식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임에도 결과물을 단순 제품 취급한다는 데 있다. 한정된 예산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정부 공공기관들은 “SW산업 발전의 마중물이 되어달라”는 업계의 요청에도 결과적으로 오늘날 SW산업의 잘못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해왔다. 차츰 개선되고는 있다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결국 SW 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뿌리박힌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올바른 시장 질서 확립, 대중소기업 상생 도모, 기술에 대한 공정한 평가 등 문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결국 생태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부터 변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SW강국으로 자리할 수 있다.

1부 - “제값 받기 강화로 SW산업 발전 초석 쌓는다” (2021년 4월호)
2부 – SW가치 저평가 여전…저가낙찰 방지, 기술평가 강화 필요 (2021년 5월호)
3부 – “유지보수요율 현실화해야 SW기업 숨통 트인다” (2021년 6월호)
4부 – “상용SW 직접구매 늘려야 중소SW기업이 성장한다” (2021년 7월호)
5부 – “원격지 개발에서 PaaS 활용한 ‘원격 개발’ 시대로” (이번호)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인력 상주 부담 커

지난 몇 달 간의 연재를 통해 다룬 △기술평가 강화 △유지보수(유지관리)요율 현실화 △상용SW 분리발주(직접구매) 강화와 함께 이번에 다룰 △‘원격지 개발 허용’ 문제 역시 SW업계의 오랜 요구 중 하나다. 원격지 SW개발은 공공SW사업에서 발주기관이 수행기업에 개발자를 현장에 파견할 것을 요구하는 관행에 따라 SW기업이 비용상, 인력상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에 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지난 2012년 12월 국토교통인재개발원의 제주 혁신도시 이전을 시작으로 2019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충북 혁신도시 이전까지, 총 153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이뤄지는 동안 이들 공공기관의 SW개발 사업을 맡은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해왔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2018년 공공SW사업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공공SW사업 중 52.4%가 발주기관 내부 또는 인근에서 SW개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주기관은 주로 보안 규정을 들어 기관이 위치한 곳 근처에 개발자가 상주하기를 요구하곤 하지만, 실제로 보안 문제보다는 기관들이 개발 인력을 통제 하에 두고 싶어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사업 진행도를 손쉽게 확인하고 추가 과업이나 변경사항을 요구할 때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SW기업 입장에서는 개발자들을 기관 근처, 즉 지방에 파견하는 데 드는 비용부터가 부담스럽다. 기관 근처에 별도 사무실을 두게 되면 임대료와 관리비는 기본이고 상주 인력 수십 명의 숙소비와 출장비, 교통비 등까지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SW기업 A사 대표는 “지방에 개발자들을 파견하면 월 비용이 최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들어간다. 공공SW사업은 안 그래도 출혈경쟁에 유지보수요율 문제 등까지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데 인력까지 지방에 고정 파견해야 하니 손해가 막심하다. 특히 매출 300억 원 이하 SW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물론 이러한 비용을 처음에 기관이 사업을 발주할 때 계산했다면 그나마 불만이 덜할 수도 있겠지만, 사업비 삭감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공공SW사업에서 충분한 비용을 보장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자연히 SW기업들은 처음 예상했던 수익을 깎아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고 불만을 토로하게 된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영세한 기업에서는 개발자의 출장비조차 못 챙겨주는 경우까지 있어 인력 이탈마저 발생한다. 더구나 출장비를 받는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지방 파견은 개발자들로 하여금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개발자들이 그만두면서 자연스레 SW개발 결과물의 품질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사업 수행기업은 물론 결국 발주기관까지 피해를 볼 수 있는 관행이기에 SW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원격지 개발을 허용해달라고 주장해온 것이다.

SW 원격지 개발 관련 안내
SW 원격지 개발 관련 안내
SW 원격지 개발 관련 안내
SW 원격지 개발 관련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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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원격지 개발 관련 안내
SW 원격지 개발 관련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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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기관 사업관리 역량 높여야

공공SW 시장은 소위 5D 직업으로 불려온 SW개발자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SW기업들이 적절한 수익을 보장받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돼야 한다는 임무 또한 갖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를 인정해 이미 2014년에 공공SW사업에서 원격지 개발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기관 내 또는 주변에 상주하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지난해 개정된 SW진흥법에서 원격지 개발을 할 수 있도록 SW사업자에게 사업 수행장소 제안권을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만들게 됐다.

그렇다면 실제로 원격지 SW개발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 발주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앞서 언급했던 보안 문제가 있다. 그러나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미 마련된 가이드라인을 통해 충분히 방안을 제시하고 있기에, 그보다는 발주자들이 투입 인력을 관리하는 데 보다 편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발주기관이 개발 인력들에게 원하는 내용을 전달하고 업무를 지시하기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발주기관의 과업 지시가 명확하지 않고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SW기업들과 전문가들은 SW사업 발주 전 단계에서 발주자의 역량이 향상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공기관 담당자들이 처음부터 문서를 통해 정확하게 과업을 요구할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다. 순환보직으로 인해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예산 확보는 물론 최소한 RFP 작성 단계에서부터 요구사항을 상세화하고 적정한 규모의 예산을 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해 NIPA는 발주·관리 전 프로세스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발주·분석·설계·구현·시험 등 원격지 SW개발 단계별 사업관리 및 품질관리 등 전문가 기술지원이 2018년 170건에서 2020년 300건으로 확대된 바 있다. 올해도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사례를 계속해서 확대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발주기관에서는 원격지 개발을 했을 때 과연 품질이 보장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중소SW기업의 경우 개발 및 품질관리 측면에서의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보장이 어려울 수 있다. 즉 SW 개발 전 단계에서의 품질역량 수준에 대한 심사·인증 등을 진행해 신뢰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발주기관이 원격지 개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공공기관 관계자들은 “프로젝트 관리, 개발, 지원, 조직관리, 프로세스 개선 등 SW개발 전 단계에 대한 품질역량 수준을 심사·인증하는 SP(Software Process) 인증을 획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밖에 “SW사업관리 도구 등을 활용해 SW개발 관련 사항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원격지 SW개발 사업관리시스템을 개발·구축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원격지 개발’에서 PaaS 활용한 ‘원격 개발’로 나아가야

SW진흥법에 원격지 개발 관련 내용이 포함된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소프트웨어사업 관리감독에 관한 일반기준’ 고시 개정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기존에 공공SW 구축사업의 작업장소를 선정할 때 SW사업자가 보안요건 등을 충족하는 장소를 제안하고 우선 검토하도록 한다는 내용에서 보안·품질관리 우수사업자를 우대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기준이 추가돼 원격지 개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4월 열린 ‘공공SW사업 수·발주자 협의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공공SW사업 분야의 원격지 개발 실시율은 43.9%로 나타났다. 민간 부문의 원격개발 실시율인 28.6%와 비교하면 공공부문이 15.3%p나 더 높은 결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1분기 조사는 사업 초기 단계에서 진행돼, 향후 계약 협상 진행에 따라 실시율이 더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는 과기정통부 측 설명을 고려하면 차츰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는 다소 긍정적인 전망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원격지 개발’을 넘어 완전한 ‘원격 개발’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원격 근무가 확대되는 가운데, SW개발 역시 충분히 원격으로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기술적으로는 클라우드(PaaS)를 통해 이미 원격 개발에 필요한 환경이 진작에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보안 우려 역시 클라우드 제공사의 기술력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원격 개발 의무화에 대한 관련 법안은 아직 전혀 없는 상태다. 이제라도 논의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는 최근 ‘원격 개발 활성화 TF’를 출범시키고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첫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원격 개발을 통해 일하는 방식을 선진화하고, SW 개발 인력의 역량을 높일 수 있으며, 청년 일자리 창출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협회는 지난해부터 원격 개발을 위해 진행해 온 ‘클라우드 기반 원격개발 지원 플랫폼 구축방안’ 기초설계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 플랫폼은 가상 공간에서 SW개발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시스템을 지원한다. 앞서 언급한 사업 관리와 개발 측면에서의 도구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TF는 민간투자를 통해 클라우드 원격개발 지원플랫폼을 개발하고, TF를 민·관·학 전문가협의체로 확대·발전시켜 올해 안으로 정부·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원격개발 플랫폼 시범사업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원격지 개발은 10여 년간 SW업계를 괴롭혀온 문제 중 하나다.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개선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차례차례 마련됐으나 실제 확산이 더뎠다. 역시나 인식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SW기업 B사 대표는 “그동안 원격지 개발은 강제성이 없어 적용 확대가 다소 지지부진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코로나19로 원격 근무가 확대된 만큼 SW 개발도 원격으로 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기술은 이미 다 준비돼 있다. 발주처의 인식 개선과 역량 강화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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