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신기술 대거 도입…고령 농업인의 디지털 사각지대 해소

[컴퓨터월드]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의 ‘차세대 농림사업통합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이 공공기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농업 분야는 상대적으로 IT 신기술 도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지만, 내년부터 개발에 착수할 예정인 차세대 시스템에는 기존에 없었던 IT 신기술들이 대거 도입되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정보격차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농림부가 디지털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농업인들에게 어떻게 IT 신기술들의 혜택을 제공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애그릭스’, 18년 간 축적된 스파게티 코드

농업정보를 전산화한 시스템의 시초는 2001년부터 시행된 논농업 직불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논농업 직불제는 논에서 쌀 재배를 하는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농민들에 대한 지원은 추수 이후의 쌀을 수매해주는 약정수매 방식도 있지만, 논농업 직불제는 추수한 쌀의 양과 관계없이 재배 면적에 비례한 보조금을 직접 지원한다는 차이가 있다. 약정수매 방식은 쌀이라는 현물을 구매하기만 하면 되기에 상대적으로 운영이 쉽지만, 논농업 직불제는 실제로 쌀이 재배되는 논의 면적과 해당 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기에 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해야 한다.

이에 농림부는 기존에 수기 대장으로 관리하던 농업정보들을 전산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관련 사업에 착수했다. 마침내 2005년, 논농업 직불제를 시작으로 다양한 농업정보들과 농림사업들을 전산화해 관리할 수 있는 농림사업통합정보시스템(AgriX, 이하 애그릭스)이 개발됐다. 기존에 수기로 작성하던 업무들이 전산화되면서 담당 공무원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었다. 이후 농업경영체 등록제도를 의무화해 일정 규모 이상의 농가와 농업단체들이 애그릭스 시스템에 정보를 등록하도록 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농업정보 확보와 관련 정책 개발이 가능해졌다.

농림부 농림사업통합정보시스템 ‘애그릭스’

그러나 애그릭스는 구축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시스템 노후화와 복잡도 증가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다. 현재 애그릭스에는 178만 개에 달하는 농업경영체 정보와 143개의 농림사업 정보가 등록돼 있는데, 2005년 첫 구축 이후 새로운 농업경영체 정보가 필요해지거나 새로운 농림사업이 추가될 때마다 시스템을 덧붙여 나가다보니 실제 필요한 규모보다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이 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새로운 농림사업을 추가할 때 기존에 있던 사업들과 유사한 정보를 필요로 하더라도, 스파게티 코드(spaghetti code)가 되어버린 복잡한 구성 때문에 기존 시스템과 데이터를 재활용할 수가 없다. 그러니 새로운 농림사업에 맞는 시스템을 다시 구축해 같은 정보를 다른 형태로 입력하고 관리한다. 이는 농림사업을 이용하고자 하는 농민들이 반복적인 정보 제공에 불편함을 겪어 불만을 토로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현장의 담당 공무원들은 농림사업 신청을 받아 시스템 상에 등록하는 반복적인 데이터 입력 업무에 시달리느라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농림사업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은 사무실에서 모니터와 씨름만 할 게 아니라 현장실사를 나가 농지정보를 확인하거나 농민 교육을 통해 농림사업을 알리고 교육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지금은 농림사업 신청서와 첨부서류를 확인하고 전산상에 입력하는 일에 시간과 역량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3가지 기준정보로 데이터 관리 재설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림부는 현재 차세대 농림사업통합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차세대 시스템 구축사업은 지난해 11월에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으로 통과됐고, 현재 본 조사가 진행 중이다. 올해 8월까지 본 조사가 마무리되면 9월부터 본격적으로 마스터플랜(ISMP)을 수립해 내년부터 본격 구축에 들어가며,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차세대 시스템의 명칭은 공모를 통해 ‘농업e지’로 결정됐으며, 3개년 개발과 5개년 운영계획을 더해 총 1,28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차세대 시스템 농업e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중구난방으로 관리되고 있는 농업정보들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지금은 농림사업별로 사일로(silo)로 관리되고 있어 관리 역량의 낭비가 심한 데다, 데이터의 양은 많은데 정작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문제다. 이를 농림사업에서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 즉 △농업인 △농지 △보조금 등 3가지 데이터를 기준정보(master data)로 삼고 나머지 데이터들을 통합할 수 있도록 완전히 재설계한다. 기준이 되는 마스터데이터가 정확히 잡혀있고 데이터 간의 연결과 통합이 가능해진다면 농민들과 공무원들이 겪고 있는 불편하고 반복적인 데이터 제공과 입력 과정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차세대 시스템에서는 농업인‧농지‧보조금 등을 중심으로 데이터 관리 체계를 재설계한다.

이는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하고 있는 ‘데이터 기반의 행정’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조치다. 현재 다양한 정부부처에서는 최신 IT 기술과 데이터 플랫폼들을 활용해 행정업무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가령 보건복지부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재산‧인적정보 등을 분석해 지원받을 가능성이 있는 복지서비스를 안내하는 ‘맞춤형 급여 안내(복지멤버십)’ 제도를 마련했다. 지난해 기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복지사업은 약 350여 종에 달하기에 국민이 자신에게 맞는 서비스를 직접 찾아서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복지멤버십 제도를 활용하면서 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행정안전부는 오는 2023년까지 차세대 지방재정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 지방보조금 관리 포털을 구축해 보조금 대상자들의 사전 자격검증 등으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보조금 중복 및 부정 수급을 차단한다. 또한 지금은 투자심사, 예산편성, 지방채 발행, 자금상황 등 1,260여 종에 달하는 지방재정통계 정보를 산출하기 위해 전국 단위의 수작업 처리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약 330여 명의 인력이 연간 80일 이상 투입되고 있다. 차세대 지방재정관리시스템이 마련되면 업무처리 프로세스를 새롭게 설계해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 공기업 등과 정보연계를 통해 실시간 재정통계를 산출하거나 신속한 정보 제공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맞춤형 농림사업 정보 제공 등 농업인 중심 서비스 마련

농업e지 시스템이 3가지 마스터데이터를 기준으로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데이터 기반의 행정이 가능해진다면 상기한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의 사례와 닮은 기능도 갖출 수 있다. 실제로 농업e지 시스템에는 농민들을 위한 맞춤형 알람 서비스 구축이 계획돼 있다. 가령 농업경영체가 보유하고 있는 농지 규모나 주 재배 작물, 연평균 생산량 등을 분석해 그에 맞는 농림사업에 대한 정보를 선제적으로 추천하고 지원해준다. 또한 작물별로 국내외 생산량이나 단가 등을 분석해 새로운 작물을 추천하거나 판매 시기를 조정하도록 안내하는 것도 가능하다.

농업경영체에 대한 정보에 AI 기술을 결합해 맞춤형 농림사업을 추천한다.

농민들이 농림사업을 신청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크게 줄어든다. 현행 애그릭스 시스템은 온라인 상에서 농림사업을 신청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이용률은 전체의 1% 미만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해당 농림사업과 관계된 정보를 문의하거나 종이로 된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하기에 공공기관 창구에 찾아와 담당 공무원과 씨름을 하게 된다. 여러 개의 농림사업을 신청할 경우 비슷한 자료를 여러 번 제출해야 해 번거로움이 더해지기도 한다.

올해 농림부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신청 요구가 증가한 점을 고려해 농림사업 온라인 간편신청 제도를 시행했다. 이는 지난해와 농업경영체 등록정보가 동일하고, 지난해와 같은 농림사업을 재차 신청하는 경우 번거로운 정보 제공 절차와 관련 서류 제출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해당 제도를 활용하면 여러 기관을 돌아다니며 서류를 발급받고 창구에서 순서를 기다려 대면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이 사라져, 기존에 며칠 씩 걸렸던 농림사업 신청을 십수분 이내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농림사업 간편신청 제도는 실시 후 농민들로부터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이를 통해 복잡한 농림사업 신청 과정에 피로감을 느끼는 농민들이 많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복잡한 농림사업 신청 절차와 필요 서류를 간소화해 농업인 중심의 사업신청 프로세스를 구축한다.

고령 농업인의 디지털 사각지대 해소

농업e지 시스템의 또 한 가지 목표는 국내 농민들이 처해있는 정보화 격차, 디지털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농업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 농업인 비율은 35%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직접적인 혜택을 누리기 힘들다. 가령 농업e지 시스템에서 맞춤형 농림사업 추천 서비스를 구축하더라도,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고령 농업인이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앞서 언급한 농림사업 간편신청 제도의 경우, 기존보다 훨씬 간소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고령 농업인 본인이 신청하기보다는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자녀들이 대신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농림부는 차세대 농업e지 시스템의 혜택을 고령 농업인들까지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계획은 ‘농업정보 코디네이터(가칭)’ 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고령 농업인들이 디지털 업무를 처리해야할 때 이를 안내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고령 농업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디지털 기술에 대한 교육을 제공한다고 해도 능숙하게 온라인으로 농림사업을 찾아보고 신청할 만큼 역량이 강화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젊고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농민이나 농업단체 관계자들을 교육하고 ‘농업정보 코디네이터’라는 자격을 부여해 파견하는 것이다.

‘농업정보 코디네이터’ 사업은 고령 농업인들이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고령 농업인들이 많은 시골에서 젊은 층의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해당 지역에 대한 친화도나 인지도가 높은 지방 농업단체들을 섭외해 교육과 지원을 제공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한다면, 담당 공무원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도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농민 지원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GIS-농지정보 매핑해 보조금 부정수급 사전 차단

현재 정부에서는 차세대 중형위성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1‧2단계에 걸쳐 총 5기의 중형위성을 개발 및 발사해 공공분야의 위성 수요에 대응하고 국내 위성산업의 저변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특히 5기의 중형위성 중 4호기는 2025년에 발사 예정인 ‘농업위성’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다른 나라의 위성이 촬영한 한반도 영상을 제공받아 사용해왔는데, 이는 화질이 부족하고 시의성도 좋지 않아 농업 분야에서 활용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래서 국내 농지에 대한 GIS는 위성영상이 아닌 항공영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향후 농업위성이 발사되면 보다 선명한 화질로 촬영된 한반도 농지 영상을 실시간 수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농업e지에서는 GIS를 통해 현장조사 업무를 효율화한다.

차세대 농업e지에서는 GIS와 전산상에 등록된 농지정보를 매핑해 보다 효과적인 보조금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정확한 GIS와 농지정보를 매핑하면 지도 상에 보이는 면적과 전산상에 등록된 농지 면적을 비교해 잠정적인 이상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 이상한 점이 포착되면 해당 농지에 실사를 나가서 정확한 경작 면적을 재차 측량해, 경작 면적을 부풀려 신고해 농업보조금을 부정 수급하는 경우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차세대 농업e지 시스템은 그동안 최신 IT 기술 도입이 더뎠던 농업 분야에서 적극적인 디지털 혁신 추구에 나선 이례적인 사례다. 단순히 노후화된 장비 교체와 업무 프로세스 정리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데이터 관리 체계를 완전히 재설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미래의 차세대 중형위성을 이용한 GIS 정보 활용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기술 요소들을 대거 도입한다. 농림부의 농업e지 시스템이 공공기관 차세대 시스템 구축사업의 새로운 기준을 세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모든 농업인들이 누릴 수 있는
디지털 신기술 서비스를 만들겠다”

농림축산식품부 정보통계정책담당관실 손경자 기술서기관


Q. 차세대 농업e지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가장 중요한 핵심 캐치프레이즈는 농업인‧농지‧보조금 등 3가지 핵심 데이터의 연결을 통해 ‘농업인 중심의 디지털 농업행정 혁신’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거의 20년 가까이 운영되면서 중구난방으로 붙어있는 시스템들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 향후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시스템이 추가되고 확장되더라도 문제없이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농민들은 본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농림사업 정보를 알고 손쉽게 신청할 수 있다. 좀 더 부지런한 농민들은 농업e지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언제 파는 것이 이득일지 따져보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는 즉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들, 즉 농업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부터 데이터 기반의 혁신이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민들의 온라인 사업 신청이나 농업정보 조회가 쉬워지면 자연히 담당 공무원들의 업무량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공무원들이 현장 실사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나가는 등 기존에 농림사업 신청 업무에 치이느라 도외시하고 있었던 업무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보다 농민들과 가깝고 실질적인 지원 정책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Q. 그동안 농업 분야는 디지털 신기술 도입이 느리는 지적이 있었다.

70세 이상인 농업인구의 대부분은 디지털 기술에 대해서는 문맹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그동안 애그릭스를 포함해 대다수 농업 관련 사업에서는 디지털 신기술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농산업 관련 시스템을 잘 만들어놔도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인구가 적기 때문이다. 정부 전산화 시스템의 최초는 2005년 구축된 애그릭스였는데, 정작 그보다 늦게 만들어진 보건복지부 복지지원시스템 등이 훨씬 고도화돼있다. 타 정부부처들이 디지털 신기술들을 적극적으로 시험하고 도입할 때 농업 분야는 계속 뒷전으로 미뤄져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인구가 적으니 미뤄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디지털 소외계층인 70세 이상의 고령 농업인들까지도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최신 기술 도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때에 따라서 필요하다면 ‘농업정보 코디네이터’와 같은 한시적인 지원체계도 마련해, 최신 IT 기술에서 가장 먼 사람부터 가장 가까운 사람까지, 모든 국민들이 디지털 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이 농림부가 차세대 농업e지 시스템으로 추구하는 ‘농업인 중심의 디지털 농업행정 혁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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