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참여제한 완화는 미봉책…과업 참여 기업의 수익 확보 선행돼야

[컴퓨터월드] 지난해 11월 17일 오전 8시 40분 국가 디지털 재난이 발생했다. 행정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하면서 시도·새올 행정정보시스템과 대국민 온라인 민원 서비스 정부24가 멈춘 것이다.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장애 원인으로 L3 스위치(라우터)를 지목한 정부는 공공 소프트웨어(SW)를 포함해 정보화 사업의 여러 문제점을 되짚고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부에서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는 대기업 참여제한을 완화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안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국내 중소 IT업계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 없이 명확하지도 않은 중소·중견기업의 기술력을 문제 삼아 행정망 먹통 사태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며, 고질적인 공공 SW 사업 병폐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행정망 먹통 사태의 사고 경과와 원인 및 정부의 대책, 이에 대한 SW 업계의 시각 등을 짚어본다.


국가 디지털 재난 발생

지난해 11월 17일 시작해 24일까지 크고 작은 국가 행정망 먹통 사태가 이어졌다. 먼저 11월 17일 8시 40분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인 ‘새올’에 사용자 인증 시스템(GPKI)에 오류가 발생했다. 새올 시스템의 주 사용자인 공무원들은 업무 시스템에 로그인할 수 없어 전국적으로 현장 민원 발급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

이에 따라 전국의 구청, 주민센터 등 현장 서류 발급 수요가 정부 온라인 민원 사이트인 ‘정부 24’로 몰리면서 오후 1시 55분부터는 정부24 서비스까지 중단됐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오전 8시 46분 전산망 장애를 인지하고 복구를 시도했다. 하지만 일과 시간이 끝날 때까지 민원 서류 발급 업무를 정상화하는 데 실패했다. 다음날인 18일 오전 9시에야 시도·새올행정시스템이 복구됐다.

 정부24 서비스 중단 안내
정부24 서비스 중단 안내

하지만 이후 11월 23일 조달청 나라장터가 1시간가량 먹통됐고, 24일에는 행정전산망에 또다시 오류가 발생해 일부 지역에서 주민등록등본 발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행정망 사고로 새올을 비롯해 온나라, 인사랑, 행복e음 등 시스템이 먹통이 돼 사흘간 행정복지센터 민원 처리 및 서류 발급이 불가했고 지자체 공무원의 인사, 복지 등 업무가 마비됐다.

또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관리 중인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에도 장애가 발생해 금융권에서 사용 중인 정부의 신분증 진위확인 서비스가 원활히 구동되지 못하면서 해당 은행 업무에 차질이 생겼으며 일부 국립도서관들의 도서 대출도 중단됐다. 긴급 상황전파 등의 역할을 하는 국가재난관리시스템(NDMS)과 소방당국이 119 신고자 위치를 파악할 때 쓰는 지리정보시스템(GIS)도 먹통이었다.

11월 19일 행정안전부는 처음으로 장애 원인을 발표했다. 이날 행안부 브리핑에 따르면, GPKI 인증 서비스 중 일부인 L4 스위치에 문제가 발생했고 11월 18일 토요일 새벽에 네트워크 장비를 교체하고 안정화 작업을 통해 서비스를 재개했다. 서버, 네트워크, SW 등을 전부 검증했고, 네트워크 장비에 문제가 있는 점을 파악해 네트워크 장비 교체 작업을 준비하면서 연결된 시스템들이 또다른 문제가 야기하지 않는지 검증했다. 모든 검증이 완료된 후 토요일 새벽 네트워크 장비를 교체하고 오전 9시에 정부24부터 서비스를 재개했다. 이날 브리핑에서 행안부 고기동 차관은 민간 전문가와 정부, 지자체,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TF를 구성해 상세 규명과 대책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11월 25일 행안부는 TF 브리핑을 통해 장애 원인을 규명했다. 11월 19일 브리핑과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장비의 문제라고 밝혔으나, L4 스위치가 아닌 라우터(L3 스위치)가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L4 스위치 교체 후에도 여전히 일부 문제가 일어나자, 문제가 있던 시스코(Cisco)의 라우터를 정밀 분석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원인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와 광주센터를 연결하는 라우터의 포트 3개가 불량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포트를 다른 포트로 바꾸자 문제가 해결됐다고 한다.


정부 해명에 IT업계 “초보자도 하지 않을 실수”

IT 업계에서는 행안부 TF의 브리핑에 대해 전혀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IT협회 실장은 “통상 시스템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라우터의 역할은 망 사이를 지나는 패킷의 위치에 따라 최적화된 경로를 지정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장비다. 정부 시스템 설계 시 라우터를 1개만 두지 않는다. 또 문제가 있더라도 라우터만 교체하면 시스템 구동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야 한다”며 정부의 발표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또 다른 IT 기업 관계자는 장비 패치와 관련, “전산 초보자도 하지 않을 실수”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한 관계자는 “11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행안부 고기동 차관은 메인 장비와 백업 장비를 동시에 패치했다고 했는데 이는 전산 업계 초보자도 하지 않을 행위다. 메인 외 백업을 두는 의미를 상쇄시키는 이 같은 발언을 보고 정부의 장비 패치 및 시스템 운영·관리 체계가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통상 정부가 운영하는 민감한 장비들은 백업 장비를 먼저 업데이트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이전 패치로 원상태로 복구해야 하기 때문에 백업 장비부터 업데이트를 진행한 뒤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메인 장비를 업데이트한다. 백업 장비는 메인 장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만 본 서비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업데이트의 경우 반드시 백업 장비로 사전 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문제가 된 시스템 경로를 역공학적으로 또 부분적으로 퍼즐 맞추듯 땜질 처방하고 넘어가는 정부의 행태를 꼬집었다. 한 관계자는 행안부가 행정망 먹통 원인을 라우터 포트 불량에서 찾은 점을 비판했다. 그는 “정보시스템 가장 아랫단에는 하드웨어가 그 위에 소프트웨어, 그 안에 데이터가 있다. 정보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 80%는 데이터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데이터 부분을 들여다보지 않은 행안부 발표는 믿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SW, 특히 데이터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가 행정전산망은 서로 다른 업체가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든 1,400개 시스템이 통합돼 돌아가고 있어 중복되고, 방치된 데이터가 혼재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름, 주소 등 행안부 데이터 항목이 20,000여 개 정도인데 현재 행정전산망에는 700만 종 이상의 데이터로 엉켜 있고, 이 때문에 여러 프로그램들이 데이터를 찾아가다 오류가 발생해 잘못된 답변을 내놓거나 또 작동이 지연되거나 시스템에 장애 등을 유발하고 있다. 거의 쓰레기장 수준이라 언제 다시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질타했다.

이 외에도 한 IT 총판 기업 관계자는 행안부 TF의 “시스코 라우터 장비를 이용하면서 물리적인 포트 손상은 로그가 남지 않는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번 행정전산망 사태의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진 라우터 장비는 시스코의 제품이다. 하지만 시스코 제품은 포트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동으로 모니터링하는 기능이 있다. 포트에 이상이 있을 경우 문제 포트를 비활성화 시키면서 이벤트 로그를 남긴다. 시스코 라우터 콘솔 포트에 터미널을 연결하고 라우터 관리자 모드에서 로그를 확인하는 명령어인 ‘show interface status err-disabled’를 입력하면 어떤 문제로 포트에 이상이 생겼는지 조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참여제한은 이번 사태와 무관

이 같은 국가 디지털 재난 사태에 정부는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최근 정부는 행정전산망에 문제가 생길 때 마다 꺼내들었던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를 해결책으로 꺼내들었다. 이에 대해 중소 SW 기업들은 “이번 문제와 아무런 연관 없는 대기업 참여제한 논쟁을 끌어들여 정부의 부족한 운영·관리 능력을 중소·중견기업에 전가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라우터 장비 일부 포트에 이상이 생기면서 발생한 이번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와 공공 IT사업의 대기업이 참여제한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한 기업 관계자는 “라우터 포트가 물리적으로 고장났다는 행안부 TF 발표는 이미 단종된 노후 장비의 사용기한을 편법으로 늘려 고장이 발생한 HW 문제다. 현재 45개 정부 부처 1,440개의 디지털 시스템을 운영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전체 장비 35,500개 가운데 내구 연한을 넘긴 장비는 27%(9,6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라우터(9년), 방화벽 장치(6년) 등 네트워크 장비들은 연한이 6~9년 정도인데, 사용한 지 10년이 넘은 장비가 전체의 12% 수준이다. HW 문제임을 정부 스스로 밝혔으면서도 대기업 참여제한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소프트웨어진흥법에 명시된 대기업 참여제한 내용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소프트웨어진흥법에 명시된 대기업 참여제한 내용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이번 사태로 정부의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 작업에 속도가 붙자, 국내 중소·중견 SW 업계에서는 국내 SW 생태계가 무너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과거 정부는 공공분야 대기업의 사업 참여를 제한해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3년에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를 만들었다. 물론 국방, 외교, 치안, 전력, 국가안보 등과 관련된 사업 가운데 대형 SI 기업이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되는 사업의 경우를 예외로 두고 있다. 당시 대기업이 수주한 일감을 중소기업에 하청주고, 중소기업은 규모가 작은 소기업에 또 재하청을 주는 등 공공SI 구조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 때문에 법이 개정된 것이다.

현행 소프트웨어진흥법에서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에 대해 사업 금액과 관계 없이 입찰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규정하는 자산총액 기준은 2016년에 기존 5조 원 이상에서 10조 원 이상으로 상향됐다.

정부는 이번 행정전산망 사태와 같이 국가 디지털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이 장애 예방 및 대응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판단하며 일정 규모 이상(現 1,000억 원 이상, 700억 원 예상)의 공공 SW 사업에 대기업의 입찰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정부의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되고 있었다.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은 공공 SW 사업의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를 규제 개선 과제로 선정하고 과기정통부, 국내 SW 업계와 논의해왔다. 당시에는 과기정통부 측의 반발에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했지만 이번 행정전산망 장애 발생으로 인해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의 공공 SW 사업 참여 범위와 규모는 계속 늘어난 상황이었다. 2013년 국방·외교·치안·전력 등의 분야에 적용되던 대기업 참여 예외 허용 범위는 2015년 신기술, 2020년 수출 및 민간투자 등으로 확대됐다. 대기업 참여 허용 금액(총액)도 2016년 5,265억 원에서 2020년에는 1조 4,444억 원까지 늘었다. 2020년 기준 전체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중 28.5%(금액 기준)가 대기업 몫으로 돌아가기도 했다”며 현재 추진하는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이처럼 대기업 예외 사업 허용 범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거론되는 ‘사업 규모 700억 원 이상’으로 기준을 완화하면 중소·중견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 SaaS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대기업 참여제한을 완화하려는 이유를 다른 시각에서 유추했다. 그는 “정부가 대기업 참여 규제를 추가로 완화하려는 이유는 유지보수 비용과 사후 책임을 대기업에 떠넘기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행정전산망에 대한 관리 책임을 대기업에 그대로 전가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기존처럼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겠지만, 정부는 대기업의 뒤에 숨을 수 있다”며 “하지만 공공분야의 수익성이 현재 최악이라는 사실은 대기업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참여를 꺼릴 것이다. 정부 의도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결국 가까스로 구축한 중소 SW 생태계만 붕괴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 기준점을 700억 원으로 낮춘다고 하더라도 대기업이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대기업 SI 한 관계자는 “10여 년 전 소프트웨어진흥법이 개정되면서 대기업들이 공공조직을 없앴다. 현재 클라우드나 디지털 전환 등 산업 흐름에 맞는 신사업을 위주로 사업에 나서고 있다”면서 “현재 700억 원으로 낮추는 것 역시 대기업에게 매력적인 조건은 아니다. 컨소시엄 구성 시 과업에 문제가 생기면 참여 비중이 높은 대기업에 책임을 묻는 구조 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SW 가치 인정하고 과업 변경 포괄 가능한 계약 체계 도입해야

현재 정부는 행정전산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 참여 범위 확대를 골자로 소프트웨어진흥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에 국내 중소 SW 업계에서는 기존부터 쌓여있던 공공 SW 사업 병폐부터 해결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참여 제한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공공 SW 사업 관련 예산을 증액해야 하고, 과업 변경에 따라 시스템 품질이 낮아지는 문제가 더 크다”면서 “정부가 최저가 입찰제 대신 혁신 기술 등을 먼저 고려할 수 있도록 IT프로젝트 입찰제를 바꿨지만, 여전히 가격으로 수주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이번 정부 행정전산망 사태의 결과가 대기업 규제 완화로 귀결되는 것은 아쉽다. 국내 중소 SW 기업들이 꾸준히 주장해 온 공공 SW 병폐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대다수 국내 중소 SW 기업들은 공공 SW 사업에 대한 정상적인 대가 산정과 잦은 과업 변경을 반영할 수 있는 계약 체계 등 과업 참여 기업이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SW 대가를 현실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 △과업이 변경될 때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SW 계약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진행된 ‘공공소프트웨어사업 현안과 대응전략 마련’ 토론회에 따르면, 개발단가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10.9%(누적) 늘어났으나 생산요소인 인건비와 물가는 66.5%(누적)가 증가했다. 개발단가 상승률을 인건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수치는 국가 정보화 역량을 공급하는 SW 기업들의 회사 운영을 위한 제반 비용조차 담보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부터 2022년까지 SW 개발 단가와 임금 및 생산자물가 차이 (출처: KOSA)
2011년부터 2022년까지 SW 개발 단가와 임금 및 생산자물가 차이 (출처: KOSA)

토론회에서 KOSA 조준희 회장은 “최근 반복해 발생한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에 대해 정부에서도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 해결에 반드시 필요한 부서인 기획재정부가 적극 참여하고 있지 않다”며 “기획재정부가 참여해 공공 SW 사업 비용을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사고는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중소 SW 업계는 공공 SW 사업의 예산이 현실화되지 못한 이유가 저평가되고 있는 SW 가치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공 SW 사업이 발주될 때 부족한 예산 규모에 맞추다보니 SW의 가치를 제대로 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대표 데이터 기업의 영업전략본부장은 “공공 IT 사업에서 가장 먼저 예산이 잘려나간 영역이 SW(제품)다. 그 다음은 인건비(인력 감축), 그리고 마지막으로 업무(과업 축소)다. 특히 현업에서 체감할 때 5년 전에 비해 사업비는 3~5% 올랐지만, 인건비는 2배 이상 늘어났다. 최초 예산을 100이라고 본다면 기재부를 거치고 예정가격 제도까지 거쳐 70까지 줄어든다. 이렇게 줄어든 예산으로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1년 기준 47.7%였던 공공정보화 사업 유찰율이 지난해 1월 기준 11개 사업중 8개 사업이 유찰된 것만 봐도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적자를 감수하며 공공정보화 사업에 참여할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김회수 디지털정부정책국장도 이런 주장에 공감을 표했다. 김회수 국장은 “최근 정부 행정전산망 오류를 줄이기 위해 SW 가치를 반영해 정상적으로 대가를 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도 적극 동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권한을 가진 부처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바로 기획재정부다. 정부부처를 비롯해 관련 업계와 국회의원이 함께 목소리를 내어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 지침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공공 SW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예산은 얼마인지 합리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하고, 합리적인 비용에 맞춰 기업이 고품질의 SW를 개발하고 오류, 문제 등에 대해 개선이 가능한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공공 SW 사업에서 잦은 과업 변경이 발생하는 데 이를 포괄할 수 있는 계약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결과물 완성 시점에 변동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업 특성을 반영해 예비비를 책정하거나, 과업 변경 시 발주자에게 IT감사 면책권을 부여해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유호석 산업정책연구실장은 SW 특성을 반영해 현행 도급 계약 방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연한 계약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유호석 실장은 “우리나라의 공공 사업은 도급 계약을 전제로 하고 있다. 도급 계약은 목적물이 사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 중요하고, 목적물을 인도받는 시점에 가격을 지불하는 구조다. 비용이 증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제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기간이 초과되면 지체상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디지털혁신청의 유연한 공공 SW 계약 제도 (출처: SPRI)
미국 디지털혁신청의 유연한 공공 SW 계약 제도 (출처: SPRI)

SPRI 유호석 실장은 국가 SW 계약체계 개선 방향으로 ‘모듈별 변동형 계약방식’을 제안한다. 유 실장이 주장하는 모듈별 변동형 계약방식은 일부는 확정형 계약을 유지하면서, 서비스 사용에 따라 변화하는 영역에 대해 추가로 변동형 계약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유 실장에 따르면, 미국 관리예산실(OMB)은 예산 초과 방지를 위해 확정된 작업명세를 기반으로 변동계약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이는 계획한 작업량을 초과하더라도 원가를 조정해 지불할 수 있는 유연한 계약제도 모델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발주자 전문성 확보 위한 체계 마련해야

국내 SW 기업 관계자들은 공공 SW 사업의 병폐 중 하나는 공공기관의 SW 사업 발주 담당자의 낮은 전문성에도 이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기관에서 SW 사업을 발주하는 담당자는 공무원이다. 국가직과 지방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공무원은 순환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국내의 SW 발주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전문기관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열린 ‘SW 발주 역량강화 컨퍼런스’에서 케이씨에이 이상인 부사장은 “공공부문의 조달과 SW 역량 관련 교육이 다양한 기관에서 이뤄지고 있으나 SW 발주 전문 교육과 전문 자격은 부재하다”며 “SW발주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자격제도를 도입하고, 전담 교육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의 경우 공공조달역량개발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나 SW 발주에 특화된 교육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은 공공 SW 발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별도의 전문 자격제도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 기업의 관계자는 “이번 행정전산망 장애는 SW 발주역량 문제와도 일관계가 있다. 비슷한 사례로 10년 전 미국에서는 건강보험 관련 정보시스템에 대규모 장애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이때 SW 발주역량에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미국은 발주 전문 자격 인증제(FAC-C-DS)를 도입하고, 해당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DITAP)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미국 SW 발주역량강화 프로그램을 개발한 전문가에 따르면, 디지털 서비스 발주를 위한 시장조사방법과 디지털·IT지식 등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 교육이 진행됐고 이 프로그램으로 발주 담당자들이 SW를 발주하고 구매하는 데 필요한 IT 서비스 이해, 사고력 등 역량이 크게 증진됐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SW 발주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런 노력들이 국가 전체적으로 발주역량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하며 전문 가격제도와 프로그램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NIPA는 공공 SW 사업 발주 선진화를 목표로 지난 2015년 ’SW발주기술지원센터‘를 설립·운영 중에 있다. 이 센터는 공공기관이 SW 사업을 발주할 때 필요한 예산 수립과 기획부터 유지·관리까지 전 주기에 걸쳐 기관별로 맞춤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주 지원 서비스를 받은 공공기관 수와 발주 건수는 매우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센터는 2015년부터 올해까지 총 1,793건의 사업 발주를 지원했는데 기관은 435곳(중복기관 제외)에 불과했다. 연간 200건 정도를 지원한 셈이다.

2023년 공공분야 SW 발주 현황에 따르면 1,787개 기관에서 7,387건의 SW 사업을 발주했고 이 중 센터의 발주 지원 서비스를 받은 건수가 7,387건 중 약 200건(2.7%), 기관 수로는 1,787곳 중 78곳(4.4%)으로 미미했다.

이와 관련해 SW 기업 관계자는 “국내 공공기관 대부분 SW 발주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 등 해외 선진국과 같이 적극적으로 IT 전문가들이 발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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