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IT 유지보수 예산 오히려 줄어…해결 의지 보여야

김호준 기자

[컴퓨터월드] 잇따른 행정전산망 마비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발표됐다. 24시간 상시관제와 모니터링 강화로 안정성을 높이고, 행정안전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디지털안전상황실과 사이버장애지원단을 신설해 장애에 대응하는 컨트롤 타워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700억 원 이상 대형사업에 상호출자제한집단 기업, 즉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처럼 장애 예방과 분명한 관계를 알기 어려운 정책도 있지만, 소프트웨어(SW) 대가기준 상향을 비롯해 노후화된 전산장비 교체, 네트워크·방화벽 장비 이중화 등 공공 SW 사업을 개선하고 행정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방안이 여럿 담겼다.

하지만 여러 개선 방안에도 불구하고 취재하며 만난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는 평가도 일부 있긴 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고 합당한 예산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여태 그래왔듯이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예산 문제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올해 공공 IT 예산은 큰 틀에서 보면 200억 원 정도 증가했으나 세부적으로 보면 유지보수 사업 예산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정부 지원 사업도, 행정정보 공동 이용 시스템도 유지보수 예산이 지난해 대비 절반가량 삭감됐다.

ICT 장비 구매계획도 지난해 대비 2,200여억 원 감액됐다. 줄어든 예산으로는 장애의 원인으로 지적된 낡은 장비와 시스템을 충분히 개선하기 어렵다. 행정서비스 장애에 대한 후속 조치로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올해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이야기다.

결국 제대로 된 해결을 위해서는 그럴듯한 대책 발표보다는 구체적인 방안 수립과 예산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업계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관계 부처가 실제 현장에서 종합대책들을 어떻게 시행하고 있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추진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행정서비스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디지털정부 평가에서 2회 연속 종합 1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행정전산망 마비로 화려한 평가에 가려졌던 전자정부의 민낯이 드러났다. 오랜 기간 지속된 병폐를 없애고 내실을 다지지 못한다면 ‘전자정부 1위’라는 간판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야 하는 시점이다. 드러난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번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보다 더욱 큰 ‘디지털 재난’이 한국 정부에 찾아올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는 종합대책을 통해 재발 방지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합당한 예산과 세부적인 실행 방안으로 그 의지를 증명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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