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고효율 네트워크 솔루션 주목…국내외 업체들 속속 시장진출 선언
[컴퓨터월드] 2004년, 지속되는 불황으로 당시 기업들은 신규 네트워크 투자에 미진했다. 이 가운데 활기를 띠는 시장이 있었다. 바로 트래픽 관리 시장이다. 급증하는 트래픽에 대응하기 위해 네트워크 대역폭을 확장하거나 장비의 규모를 업그레이드하는 대신, 적은 투자만으로 기존 망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트래픽 관리 솔루션이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이다. 트래픽 관리 분야가 네트워크 업체들에게 새로운 기회로 떠오르면서, 국내외 업체들 모두 속속 시장진출을 선언했다.
트래픽 관리 시장 활성화
2004년부터 트래픽 관리 시장의 움직임은 전례 없이 활발했다. 당시 기존 업체들은 각종 전시회와 세미나를 통해 트래픽 관리 솔루션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외국의 전문 업체들은 앞다퉈 국내에 지사를 설립했으며, 국내의 일부 IT기업들도 트래픽 관리 분야 진출을 선언하고 이 시장에 속속 뛰어들었다. 트래픽 관리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이후 IT시장이 극심한 불황을 겪으면서 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한때 정부의 초고속 인터넷 정책과 ‘벤처붐’에 힘입어 고성장을 구가하던 네트워크 장비 업계는 불황의 늪 속에 빠지고 말았다. 네트워크는 상황이 어려우면 느린 것을 참아가며 써도 되는, 말 그대로 ‘투자의 맨 끝 순위’였다는 게 당시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한때는 연 매출 500억 원을 넘기던 네트워크 통합(NI)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극심한 침체 속에서도 작지만 꾸준히 성장해 온 분야가 바로 트래픽 관리 시장이다. 트래픽 관리란 말 그대로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조절해 주는 기술로, 네트워크 자원의 사용 가치를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다.
트래픽 관리 솔루션은 네트워크 투자가 늘어나면서 2000년을 전후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주목받았다. 바이러스나 웜 등 유해 트래픽의 창궐, 멀티미디어 통신의 보편화, P2P 서비스 확산 등 네트워크 과부하를 일으키는 요인들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트래픽 관리 솔루션들이 ‘네트워크 인프라의 필수 요소’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인터넷의 발달이 업무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이에 따라 네트워크 트래픽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T1 회선을 E1으로 업그레이드하거나, 네트워크 장비를 패스트 이더넷에서 기가비트 이더넷 급으로 교체해야 하는 등 여러 요구에 직면했다. 트래픽 관리 솔루션을 도입하면 네트워크 대역폭을 늘리거나 고성능 장비를 도입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투자로도, 한정돼 있는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전자정부 서비스를 하고 있는 각급 공공기관이나, 상시적인 네트워크 과부하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학 등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트래픽 관리 장비를 적극 활용해 오고 있었다.
또한 비용 절감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서비스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트래픽 관리는 필수적인 선택으로 평가받았다. 2003년 1월 25일 대한민국 인터넷망이 서비스 거부 공격으로 마비되는 사건, 일명 ‘1.25 인터넷 대란’을 거치면서 당시 기업들은 대역폭을 많이 차지하는 콘텐츠 이용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네트워크 과부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이러스나 웜 등 수많은 유해 트래픽들이 인터넷을 떠다니는 상황에서는 언제, 어떤 이유로 기업의 인터넷 액세스 환경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트래픽 관리는 업종에 관계 없이, 모든 기업들의 주요 이슈로 급부상했다.
L4, L7 스위치 각광
이처럼 트래픽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시장에 나와 있는 트래픽 관리 솔루션의 종류도 매우 다양했다. 가장 많이 알려진 L(Layer)4 스위치를 비롯해 L7 스위치, QoS 솔루션, CDN 솔루션 등 트래픽 부하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 방식이 조금씩 다른 솔루션들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공급됐다.
특히 솔루션을 공급하는 업체의 수가 많아지면서 기존에 통용되던 명칭을 쓰지 않고, ‘ITM(Internet Traffic Management)’ 혹은 ‘ATM(Application Traffic Management)’, ‘STM(System Traffic Management)’ 등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차별화에 나서는 업체들도 있었다.
이 중 트래픽 관리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장비는 역시 전통적인 로드밸런싱 장비인 L4 스위치와 보안 이슈가 불거지면서 각광을 받은 L7 스위치였다.
L4 스위치는 특정 서버나 방화벽 등에 몰리는 부하를 골고루 분산시켜 별도의 통신망 용량이나 서버를 확충하지 않고도 네트워크 속도를 높여주는 장비다. 시장에서는 인터넷(웹) 스위치, 콘텐츠 스위치, 로드밸런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주로 대규모 서버가 운영되는 사이트의 네트워크 로드밸런싱을 위해 공급된다.
반면 L7 스위치는 단순히 부하를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트래픽의 내용을 분석해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불필요한 데이터를 걸러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애플리케이션 스위치로도 불리는 L7 스위치는 트래픽의 내용을 분석하는 기능이 있어, 로드밸런싱의 역할보다는 대부분 바이러스 패킷 필터링의 용도로 인기를 끌어왔다. 특히 1.25 대란이 일어난 뒤부터는 ‘L7 스위치는 보안장비’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당시 한편에서는 L4와 L7이 서로 다른 장비라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구분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L4 스위치는 L7 스위치까지 다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L4와 L7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우선 L4 스위치는 최종적으로 스위치에 들어오는 TCP syn 패킷에서 IP 헤더만 파악해 어느 서버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장비인 반면, L7 스위치는 syn 패킷만 가지고는 로드밸런싱을 할 수 없고 URL을 확인하고 어느 서버로 보낼지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결국 장비마다 URL을 확인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L4 로드밸런싱을 하다가 L7 로드밸런싱까지 하게 되면 서버의 성능이 절반으로 줄어버리기 때문에 두 기능을 한꺼번에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몇몇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바이러스필터링·IPS는 L7 스위치와 달라
또한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트래픽 관리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용어 사용도 혼동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L7 스위치가 보안 효과가 탁월한 지능형 장비로 인식되면서 IPS 같은 장비도 L7 스위치라고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1.25 대란 이후 이런 양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로드밸런싱은 보안이 강구된 네트워크 안에서 콘텐츠를 스위칭하는 것이기에 보안 장비를 스위치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L4 스위치나 L7 스위치 모두 잘못된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L2~L3와 달리 L4~L7은 인터넷 커넥션을 로드밸런싱하는 것이기 때문에 웹 스위치나 콘텐츠 스위치가 정확한 용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당시 L4 스위치의 강자였던 알테온과 애로우포인트는 국내 진출 당시 자사의 장비들을 웹 스위치 또는 인터넷 스위치로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업계 전문가들은 L7 스위치로 통용되는 장비들 가운데 실제로 L7 스위치라고 부를 수 없는 장비들도 많다고 꼬집었다. L7 스위치의 기능 가운데 패킷을 분석하는 기능만을 강화해 이를 특화시킨 장비들은 콘텐츠 스위칭의 용도로 쓰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당시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의 방항모 부장은 “보안시장 공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일부 업체의 장비는 다른 기능들이 도태되면서 패킷 분석 기능만 특화돼 있고, 실제로도 바이러스 패킷 필터링 용도로만 쓰이고 있다. 이런 장비들은 보안 장비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방화벽 로드밸런싱 퇴조, 서버·VPN 로드밸런싱은 상승세
당시 트래픽 관리 시장은 보안과 관련해 L7 스위치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실제로는 L4 스위치 시장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노텔 네트웍스 코리아 한용선 차장은 “시장 규모를 놓고 보자면 아직도 8:2 정도로 전통적인 인터넷 트래픽 관리 시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P2P를 많이 쓰는 시대여서 이런 것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대역폭이 동나고 만다. 예전에는 이를 원천적으로 막는 경우가 많았지만 애플리케이션들이 지능화되면서 어지간한 장벽들은 피해 가는 수준이다. 그래서 인터넷 트래픽 관리를 똑똑하게 해줄 솔루션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초반 L4 스위치 부문은 노텔과 시스코가 시장을 이끄는 가운데 파운드리, 쓰리콤 등 통합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국산 장비로는 파이오링크가 해당 시장에서 나름대로 선전했다.
L4 스위치는 한때 방화벽 로드밸런싱(FWLB) 용도로 많이 공급됐지만, 이 시장이 상당히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었다. 시장 조사기관들의 분석을 보더라도 방화벽 로드밸런싱 시장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필요한 사이트에 공급이 많이 진행돼 어느 정도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방화벽 시장이 대용량 장비를 요구하는 추세로 가고 있어 수요가 많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시스코코리아 방항모 부장은 “고객들이 고성능 방화벽을 요구하면서 수량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방화벽의 기능이 좋아지면서 자체 내에서 로드밸런싱을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이전의 규모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버 로드밸런싱과 VPN 로드밸런싱 시장은 더욱 커졌다. 서버 로드밸런싱 장비는 기업의 인터넷 트래픽이 많아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점점 더 고성능 장비를 원하기 때문에 매출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업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VPN 로드밸런싱 역시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 등 연결 지점이 많은 사이트들에서 요구가 많아 한번 수주를 하면 많은 수량이 공급되는 추세였다.
당시 L7 스위치 시장에서는 노텔과 라드웨어를 필두로 탑레이어, 파이오링크, 파운드리 등 여러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사실상 L7 스위치는 보안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1.25 대란이 일어난 뒤 라드웨어의 L7 스위치가 KT의 바이러스 패킷 필터링 장비로 공급되면서, 고객들이 L7 스위치를 보안장비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트래픽을 분석할 때 패킷의 헤더 부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까지 확인하기 때문에 필터링 기능이 강한 것이 L7 스위치의 장점이다.
L7 스위치가 보안장비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국내 진출 초기부터 보안을 강조했던 것이다. 국내에 L7 스위치를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은 탑레이어 네트웍스였는데, 트래픽의 내용을 분석해 중요한 콘텐츠 또는 VIP 사용자에게 우선순위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을 적극 소개했지만, 이에 대한 국내 시장의 요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게다가 보안이 시장의 이슈로 등장하면서 탑레이어는 마케팅 전략을 수정해 애초 ‘애플리케이션 스위치’로 소개했던 L7 스위치를 ‘보안 스위치’로 고객들에게 제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국내에 진출한 라드웨어 역시 보안 시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L7 스위치는 보안장비라는 인식이 굳어지게 된 것이다.
노텔과 시스코 양강구도 형성
특정 분야의 전문기술을 가진 업체들이 많이 진출하는 추세였지만, 당시 전통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이 여전히 트래픽 관리 시장을 이끌고 있었다. 노텔 네트웍스 코리아와 시스코 시스템즈 코리아가 국내 트래픽 관리 시장을 양분한 가운데 특정 분야에서 라드웨어, 파이오링크 등의 전문업체가 입지를 다져가는 상황이었다.
노벨 네트웍스 코리아는 지난 2000년 알테온을 인수하면서 트래픽 관리 시장에 본격 가세했다. 당시 알테온 코리아는 국내 웹 스위치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고, 이 장비가 노텔의 기존 장비들과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시장에서 확고한 1위로 자리를 잡았다.
공공 및 금융 등 로드밸런싱 요구가 많은 사이트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인 노텔은 2003년부터 ‘AAS(Alteon Application Switch) 2424’ 등을 내세워 L7 스위치 시장에도 힘을 쏟았다. 특히 지난해 KT BMT에서 1.25 대란 이후 바이러스 필터링 전문장비로 주가를 올렸던 라드웨어의 장비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임으로써 보안 시장에서도 선두업체인 라드웨어를 강하게 위협한 바 있다.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는 노벨 네트웍스와는 다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로드밸런싱 시장 가운데서도 가장 고성능 솔루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특히 시스코는 갈수록 트래픽이 많아지고 고성능 장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콘텐츠 서비스 모듈(CSM)’로 이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다. 4기가 성능을 지원하는 해당 모듈은 대기업들이나 높은 안정성을 요구하는 사이트에서 인기가 높은데, KT도 CSM을 이용해 DNS 로드밸런싱을 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었다.
CSM은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 금융사이트에서는 로드밸런서로 쓰고 있던 L4 스위치 12대를 CSM 모듈 2장으로 대체해 장비 증설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특히 시스코는 당시 EBS의 수능방송에 각종 트래픽 관리 솔루션을 공급해 안정적인 서비스 시스템을 운영한 바 있다.
F5·넷스케일러·페리빗 등 국내진출 선언
2004년 들어서는 트래픽 관리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들이 속속 진입하며 이들과 기존 업체들의 승부가 주요 관심거리가 됐다.
우선 외산 L7 전문업체들이 대거 지사 설립에 나섰다. 선두주자는 F5네트웍스로, 2000년 영업 부진을 이유로 국내 지사를 철수했다가 2004년 2월 다시 지사를 설립하며 국내 시장 재도전에 나섰다. F5네트웍스는 자신들의 L7 스위치가 기존의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내세웠다. 기존 장비들이 ITM 솔루션인데 반해, 자신들의 장비는 ATM이라는 설명이다. 네트워크와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연동하는 기능은 지금까지 시장에 전혀 없던 개념이라는 것이다.
당시 F5네트웍스 남덕우 한국지사장은 “보안장비가 아니라 진정한 L7 개념의 스위치는 아직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면서도 “올 한해 금융·제조·공공·대학 등의 분야에 대형 레퍼런스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며 시장공략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사이트인 구글, 아마존, MSN 등에 L7 스위치를 공급하던 넷스케일러도 2004년 한국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넷스케일러 본사의 B.V. 자가디쉬 사장은 “5대 트래픽 웹사이트 중 세 곳이 우리의 고객이다. MSN 메신저를 이용하는 고객들, KTF의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은 모든 넷스케일러 장비를 거쳐 서비스를 받고 있다”며 “웹상의 애플리케이션만 안전하게 전송하는 것이 아니라, 비(非)웹애플리케이션까지도 완벽하게 전송한다. 서버가 어느 곳에 있는지에 상관없이 애플리케이션을 전송할 수 있다”고 자사의 장점을 설명했다.
페리빗네트웍스 역시 2004년 8월 지사 설립을 목표로 국내 시장 진출에 속도를 냈다. 페리빗의 기술적 특징은 데이터 고유의 패턴을 정의해 보냄으로써 같은 데이터를 다시 주고받을 때는 데이터 전체를 보내지 않고, 이 패턴만 보내 전송 속도가 몇십분의 일로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페리빗네트웍스는 중장거리 전용선을 쓰는 경우 비용 절감 효과가 탁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외 각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을 대거 고객으로 확보했으며, 장거리 이동선박들에도 상당수 공급됐다. 당시 페리빗네트웍스 본사의 제프 그라함 CEO는 “한국에서의 실험 결과, 인트라넷에서 이미지 데이터를 많이 쓰는 모 사이트는 페리빗 장비를 설치한 뒤 네트워크가 5배나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금융권과 군에서 페리빗네트웍스에 관심을 보였다.
국내 업체들의 트래픽 관리 시장 진출도 이어졌다. 텔슨정보통신, 디지닉스 등이 L4/L7 시장진출을 선언하면서 기존 업체들에 도전장을 던졌다. 텔슨정보통신은 2004년 이스라엘의 바틈텔코시스템과 업무제휴를 맺고 국내 L4~L7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으며, 울산에 위치한 디지닉스도 대기업 OEM 중심이었던 사업방식에서 탈피해 자체 브랜드로 L4 스위치와 로드밸런서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파이오링크, 연구소 강화 등 기술개발 박차
트래픽 관리 시장은 전통적인 개념의 네트워크 장비 시장과 달리 국내 업체들이 나름대로 선전을 펼친 분야이기도 했다.
국내 L4/L7 스위치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파이오링크는 자사 솔루션을 서버/방화벽/VPN 로드밸런싱 용도의 L4 스위치, 보안 시장 공략에 주력하는 L7 스위치, 트래픽 관리 솔루션인 네트워크 로드밸런서(NLB) 등 3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시장을 공략했다.
그간 L4 스위치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힘을 쏟았던 파이오링크는 2004년, L7 스위치 시장에도 적극 뛰어들 계획을 세우고 론스텍, 인큐브테크 등과 총판 계약을 맺음으로써 유통망을 강화했다. 조흥은행, LG화재, 굿모닝신한증권, 현대해상 등 금융권은 물론 군, 공공기관 등에 다양한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있어 당시 L7 시장에서도 확실한 영역을 구축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히 파이오링크는 연구소를 통한 기술력 확보에 힘을 쏟았다. L4~L7 전문업체 도약을 목표로 기존의 부설 연구소 외에 기술연구실인 ‘파이오니어 랩’을 새로 만들고 여기에서 차세대 기술개발에 주력했다.
당시 파이오링크 문홍주 사장은 “기존의 연구소 시스템으로는 시장에서 요구하는 제품 개발에만 치우쳐 신기술과 기반 기술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원화된 연구소 시스템으로 기술을 축적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겠다”며 “파이오니어 랩을 한국의 벨랩으로 키워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엔피아, HW 출시·조직개편 등 경쟁력 강화
‘IP마스터’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던 니트젠테크놀러지 엔피아 사업부는 STM 솔루션을 기치로 내걸었다. 모든 트래픽 관리 장비들이 서버를 중심으로 트래픽 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반해, STM은 서버의 리소스를 중심으로 트래픽을 관리한다는 것이 주된 차이점이다.
당시 니트젠테크놀러지 엔피아 사업부 마케팅/영업본부를 맡았던 김진태 이사는 “부하분산을 똑똑하게 하려면 서버의 정확한 용량과 하는 일에 맞춰서 트래픽을 넘겨줘야 된다. 그래야 더 똑똑한 부하분산이 된다”고 강조했다. 시스템이나 서버의 상황 정보를 먼저 본 다음에 네트워크를 분산시켜야 된다는 설명이다.
엔피아의 솔루션은 STM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IP마스터와 콘텐츠 동기화 솔루션인 ‘CD마스터’ 그리고 스트리밍 멀티서비스 장비인 ‘아이리스’로 나눠졌는데, 애초부터 로드밸런싱이 아니라 ‘무장애 시스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다른 제품과의 차별화 요인이었다. 이 회사는 무장애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부하분산, 스트리밍 분산, 콘텐츠 동기화 등의 방법을 제시했다.
전화에 통화 중 기능이 있어 일단 통화를 시작한 사람들은 통화품질을 보장받는 것처럼, 네트워크에 통화 중 기능을 넣음으로써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겠다는 게 회사 측의 주요 전략이었다.
엔피아는 2004년 벤처로서는 쉽지 않은 투자를 단행해 시장의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솔루션이었던 IP마스터를 자체 하드웨어 장비로 업그레이드했고, IP마스터 영업만을 전담하는 조직도 만들었다. 해외영업과 ASP 서비스영업 조직도 따로 꾸렸다. 특히 2004년 4월 말 서울통신기술과 리셀러 계약을 맺은 것을 필두로 메이저 사업자들과 채널 계약을 연이어 맺었다. 엔피아는 지속적으로 해외 영업, 마케팅, 서비스 영업, 컨설팅 인력을 보강할 방침이었다.
EBS 인터넷 수능강의 시스템이 주는 교훈
당시 모 정부기관에서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려 트래픽 관리 업체에 원인분석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분석 결과 많은 직원들이 P2P 사이트를 연결해 동영상 파일을 다운받는 것이 원인이었다는 점이 밝혀져 결국 일부 직원이 지방으로 발령 나기도 했다.
또한 서울특별시가 시내버스의 노선 체계를 바꾼다고 발표한 뒤 서울특별시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일이 일어났다. 바뀐 노선 체계 등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려는 시민들의 접속이 순간적으로 폭주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대통령 탄핵 등 몇몇 사건에서 포털 사이트나 ISP의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종종 있어 왔다. 모두 트래픽 관리 측면에서 전혀 대응이 없었던 결과라는 게 당시 업계의 시각이다.
반대로 접속자 폭주로 서비스 장애가 예상됐던 ‘EBS 인터넷 수능강의 시스템’은 우려와는 달리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10만 명 정도가 동시에 접속한다는 가정 아래 30기가의 트래픽을 수용할 수 있도록 망이 구성됐기 때문이다. 해당 시스템 구축을 담당한 메버릭 시스템즈 황두영 부장은 “한 사용자만 접속해서 서비스를 이용해도 300K 정도의 트래픽이 발생한다. 몇만 명이 접속한다면 눈 깜짝할 새에 망에 부하가 걸릴 수 있기에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말했다.
EBS 이용자가 한꺼번에 몰려도 ISP 간의 연동망에 장애를 받는 일이 없도록 7개 ISP에 콘텐츠 엔진을 분산시키는 등 2중3중의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함으로써 무장애 시스템이 구현됐다. EBS 인터넷 수능강의 시스템에는 시스코의 콘텐츠 라우터, CDM, GSS, 콘텐츠 엔진 등이 공급됐다. 당시 이 시스템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트래픽 관리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기존 인프라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트래픽 용량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시의 불안한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자본을 투입할 수도 없었다. 결국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트래픽 관리 솔루션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당시 국내 트래픽 관리 시장의 규모에 대한 업계 의견을 종합하면, 2003년 시장은 대략 450~500억 원 규모, 2004년은 600억 원 정도가 될 전망이었다. 일부 업체들은 전통적인 로드밸런싱 시장의 경우 매년 100% 가까운 성장을 하고 있으며, 향후 성장세가 더욱 급격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2004년은 무한경쟁에 돌입한 국내 트래픽 관리 솔루션 시장에서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