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대기업 참여제한 부분 완화 현실로 다가와
업계, “대기업서 인재 데려갈 거면 이적료 지불해라”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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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월드] 지난 2023년 잇따른 행정망 마비사태로 인한 국민 불편이 발생하면서 이듬해 정부는 한바탕 홍역을 치뤘다. 이 과정에서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과 관련해 업계의 열악한 처우와 기능점수 단가(FP)의 낮은 대가 등 여러 문제가 지적되면서 대수술을 진행했다. 이런 가운데 2024년 초 정부 발표에서 언급된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와 관련해 국회에서 개정안이 발의, 빠르면 3월부터 대기업 참여가 현실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부 SW업계는 대기업 참여로 인해 인재 유출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고민거리가 생겼다. 다른 분야와 달리 SW 업계는 개인 1명씩 스카웃 하는 게 아니라 팀 단위로 스카웃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개발자들을 데려갈 거면 공식적으로 이적료를 지불하고 데려가라”는 의견까지 나오며 경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대기업이 맡는다고 해서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조적으로 과업변경에 따른 보상체계를 비롯 기능점수 단가 인상 등 근본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행정망 마비사태로 시작된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

지난해 행정망 마비사태로 시작된 비난에 대해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 중 하나가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다. 2024년 1월 3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자료공공SW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개선안’에 대해 발표했다.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는 중소기업의 성장과 소프트웨어 산업 활성화를 위해 도입, 지난 2013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출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며 제도를 강화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대형 공공 시스템에서 품질 문제가 잇따라 발생함과 동시에 기업 활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일부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추진단과 함께 제도 개선안을 논의, 11년 만에 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것이다.

발표 당시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해당 개선안의 핵심은 700억 원 이상의 대형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상출제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이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고도화된 시스템 통합과 사업 관리 역량이 필요한 대형 사업에서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 간 경쟁이 품질 제고로 이어질 것”이라며, “대기업 참여를 통해 공공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기준 금액을 700억 원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예외적으로 허용된 사업에서도 대기업 참여 비율이 70%를 넘는다”며, 공공 시장의 특성과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방안도 마련됐다. 중소기업만 참여할 수 있는 사업 기준을 20억 원 미만에서 30억 원 미만으로 상향 조정하며, 중소기업의 기술력 축적과 장기적 경쟁력 강화를 도모한다. 또 주사업자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중소기업 참여 지분율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는 상생협력평가 기준과 배점을 다양화했다. 이는 대형 사업에서 주사업자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려는 목적이다.

클라우드 및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기반도 마련됐다. 설계·기획 단계에서 전문성을 갖춘 기업의 참여를 확대해, 공공 부문에서의 최신 기술 적용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검증된 상용 소프트웨어와 모듈화된 설계 방식을 활성화해 시장 구조를 선진화하겠다는 의견이다.

하도급 비율에 따라 점수를 차등 부여하는 평가 기준을 도입, 주사업자의 직접 사업 수행을 장려함으로써 품질 저하를 방지할 예정이다. 또한, 과업 변경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주 기관과 수주 기업 간의 분쟁을 줄이고 효율적인 프로젝트 진행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과기정통부는 설명했다.

이를 통해 개선안이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이끌고, 시장 선진화를 위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대형 사업의 품질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중소기업의 성장 기반을 확대해 공공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는 것.

과기정통부는 “이번 제도 개선은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의 불합리한 관행을 혁신하고 새로운 기술 도입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하며 시장의 역동성을 높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 움직임에 업계 리스크 증가 우려↑

발표 후 약 7개월 만인 지난해 8월 6일,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 등 12명의 국회의원이 소프트웨어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당초 정부가 발표한 내용과 같은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 현재 국가기관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현행법의 일부 규정을 완화,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품질을 제고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은 국가기관 등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 사업 중 설계 및 기획 단계의 사업에 대해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예외 규정을 신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사업 금액과 관계없이 대기업의 참여가 가능해진다.

또 기존 법령에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에 대해 모든 사업에서의 참여를 제한했던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대형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서도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령이 개정될 예정이다.

개정안은 현행법이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기업 규모에 따른 과도한 차별 규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의 선진화와 품질 제고를 위해서는 사업의 설계 및 기획 단계에서부터 명확한 사업 내용과 구조를 도출하고, 클라우드 전환과 AI 등 신기술 도입을 촉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형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와 그로 인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최적의 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3월부터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기존에 정부가 발표했던 내용대로 700억 이상의 사업에 부여할지, 800억 이상의 사업에 부여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SW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기업 참여하면 필요 인력 어디서 데려올까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기술력과 그동안의 기본 베이스를 갈고 닦았다면 사실 크게 우려할 필요 없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참여제한으로 인해 해당 사업부의 필요성이 없어지자 없애거나 대폭 축소시키는 등의 구조적인 대수술을 과거 거친 바 있다. 그런데 이 기업들이 공공사업에 참여하게 된다면 이에 대한 사업을 어떤 인력으로 충원해 진행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대기업의 공공 IT 시장 재진입이 현실화될 경우, 가장 큰 우려 중 하나가 중견·중소기업의 핵심 인력 유출이다. 현재 공공 IT 시장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중소기업들은 제한된 자원으로 고도로 숙련된 인력을 유지하며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대기업이 다시 공공 시장에 참여하게 되면 이 인력들이 대거 대기업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공공 사업에 다시 참여하게 되면, 기존 중소기업들이 키워온 핵심 인력들이 대기업의 높은 연봉과 안정성을 좇아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며 “단순한 인력 이동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했다.

특히, IT 업계에서는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는 5년 차 이상 경력직 인력의 이탈이 가장 큰 위험으로 지적된다. 중소기업에서 수년간 경력을 쌓은 인력들이 대기업으로 이동할 경우, 중소기업들은 숙련된 인력을 대체하기 어려워 프로젝트의 연속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이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결국 시장에서 퇴출될 위험성이 커진다.

대기업들은 자사의 공공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에서 숙련된 인력을 흡수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결국 중소기업들에게는 인력 유출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인력 유출로 인한 프로젝트 지연이나 품질 저하 등 간접적인 피해도 발생시킬 수 있다.

또 대기업이 공공 시장에 재진입하게 되면,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프로젝트 팀 단위의 인력들이 대거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경우, 특정 프로젝트를 맡아온 팀 단위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한 인력 유출을 넘어 해당 프로젝트 전체를 잃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코로나19 시기 이미 중소기업들은 비슷한 사례를 한 차례 겪은 바 있으며, 이로 인해 개발자들을 비롯해 IT업계 종사자 임금이 대폭 상승, 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해마다 개발 인력들의 임금은 올랐지만 기능점수단가(FP)는 최근 4년 동안 변동이 없다가 올해 9.5% 올랐다.

‘2024년 적용 SW기술자 평균임금 공표’(출처=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2024년 적용 SW기술자 평균임금 공표’(출처=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이하 KOSA)가 발표한 ‘2024년 적용 SW기술자 평균임금 공표’에 따르면, SW개발 직종에 해당하는 개발자들의 월 평균 임금은 449만 원 이상으로, 일 평균 28만 원 정도로 책정됐다.

“인력 빼 갈거면 이적료 지불해라”

한편, 인력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계에서는 다양한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이 고유의 인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인력 보호 장치를 마련하거나, 차라리 축구선수가 이적할 때 해당 구단에 지불하는 이적료와 같은 개념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인력을 빼 갈 경우 이에 대한 공식적으로 적절한 보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기술력 향상 지원과, 공공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확대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기술력을 유지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공공 시장 재진입은 중소기업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생존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대기업이 하면 다르겠지”라는 생각은 큰 오산

대기업이 참여한다고 해서 제2의 행정망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조언하고 있다. 대기업 참여 여부와는 별개로 공공 SW 시장은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프로젝트 요구사항이 명확하지 않아 사업이 시작된 후 빈번하게 변경되며 예산 부족으로 인해 초기 계획과 달라지는 사례가 빈번하다. 결국 사업 실패로 이어지고 법적 분쟁으로 확대되는 경우도 많다. 결론만 내놓는다면 대기업 역시 돈이 안되는 사업을 반길 이유가 없다.

2024년 1월 CJ올리브네트웍스(이하 CJ)와 KCC정보통신(이하 KCC)이 국방부에 제기한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 1심에서 법원은 수주처의 손을 들어줬다. 국방부는 CJ에 약 250억 원, KCC정보통신에 약 240억 원 정도를 지급한 사례가 있다.

같은 해 LG CNS 컨소시엄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컨소시엄 측은 추가 과업으로 인한 수익성 하락을 이유로 들면서 지난해 초 사업 중도하차를 통보했다. 대규모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1년여 만에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특히 RFP(제안요청서) 작성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불명확한 요구사항과 부정확한 예산 산정이 문제로 지적된다.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서 성공적인 사례처럼 IT 사업에서도 사전 설계와 명확한 요구사항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로 △RFP 표준화 및 요구사항 명확화다.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프로젝트의 요구사항을 간략히 정의하고, 구체적인 설계는 선정된 업체와 협업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소송과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예산 사용의 유연성 제고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연도 말까지 모두 소진해야 한다는 규제를 완화하고, 변동 과업에 따른 예산 조정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를 통해 사업 실패를 줄이고 발주 기관과 참여 기업 모두의 부담을 경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 번째로는 △중소기업 보호 및 육성이다.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더라도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 가령 일정 비율의 프로젝트를 중소기업이 맡도록 의무화하거나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축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네 번째로 △소프트웨어 진흥법의 실효성 강화 소프트웨어 상용화 제품의 우선 사용을 의무화하고,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발주 기관의 신뢰를 얻고,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공공 시장에서 대기업 참여 제한 완화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시장 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공공 SW 시장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구조적 개혁과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정부와 업계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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