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현 쿠팡 PO

[컴퓨터월드] 세계적인 이커머스 기업인 아마존이 트래픽 관리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작한 AWS(아마존웹서비스)는 어느덧 클라우드 시장을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자리했다. 아마존닷컴이 인터넷 서점으로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 회사가 글로벌 IT기업으로 성장해 새로운 B2B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내다본 이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소셜커머스 기업인 쿠팡은 아마존과 본격적으로 경쟁할 미래를 위해, 경쟁력의 근간을 IT에서 찾아 적극적인 투자를 펼치고 있다. 게임업계와 이커머스업계에서 데이터 분석을 수행해온 문석현 쿠팡 PO도 “이커머스의 미래는 빅데이터에 있다”고 내다본다. 게임과 이커머스라는 새로운 산업분야에서 데이터를 다뤄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문석현 쿠팡 PO

쿠팡은 PO(Product Owner)라는 새로운 직군을 지난해 도입했다. 글로벌 IT기업의 PM(Product Manager)과 유사한 직군으로, 급변하는 이커머스(e-commerce) 트렌드와 고객 니즈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담당하는 사업에 대해 기획부터 실행까지 전반적인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미니 CEO’라는 설명이다.

이 가운데 한 명인 문석현 쿠팡 PO는 다소 이색적인 이력을 지닌 데이터 분석 전문가다. 카이스트에서 전산학 박사를 취득할 당시에는 생물정보학(Bio Informatics)을 주로 연구했으나, 지난 2006년 대학원 졸업과 함께 돌연 게임업계 취직을 결정하면서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연구실에 남아있기보다는 직접 비즈니스를 배우고 겪어, 이를 토대로 우리사회를 바꿔나가는 길을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문석현 PO는 그 이유를 밝히는 한편, “경영에 대한 제반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공대생이 갑자기 기획 직무를 맡았기에 어려운 점도 많았고 여러 시행착오도 겪으며 한동안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문 PO는 다양한 경험과 노력을 통해 사회과학적인 소양을 쌓으면서, 대학원에서 배웠던 수학·통계적 지식과 IT 관련 기술을 업무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현업과 경영진 사이에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도우며 본격적으로 데이터 분석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이커머스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데이터 분석을 활용할 여지가 더 많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문석현 PO로부터 들은 빅데이터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 대한 견해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했다.

 

빅데이터란 무엇이라고 보나.

빅데이터에 대해 통상적으로 데이터의 사이즈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MySQL 등 일반적인 DBMS(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로 원활하게 처리할 수 없는 사이즈가 되면 빅데이터의 영역이라고 이야기된다. 좋은 정의이기는 하나, 개인적으로는 이 정의가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고 본다. 최근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논의를 보면 사이즈 자체보다는 그 활용에 점차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데이터 분석은 오래전부터 비즈니스에 활용돼왔지만, 손대지 못하던 영역도 존재했다. 대량의 트랜잭션 데이터는 물론, 여러 가지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라이프 로그 등도 컴퓨팅 파워의 부족으로 인해 처리하기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비용이 문제됐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이를 해소해줄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데이터 분석이 빅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주목받는 것이라 사료된다.


빅데이터 관련 국내 현실은 어떤가.

데이터를 의사결정에 활용한다는 것은 2000년대를 앞두고 BI(비즈니스 인텔리전스)가 붐을 이루면서 이미 세간에도 익숙해진 개념이다. 이때 IT벤더들이 판매했던 관련 인프라가 상당수 회사에 구축돼있으나, 제대로 활용돼왔는지는 의문이다. 성공적인 솔루션 시연에 혹해 구입했지만, 막상 직접 다루면 그와 같은 인사이트를 구하지 못하다보니 결국 안 쓰고 묻혀버린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는 데이터 분석을 성공시킨 주체가 해당 솔루션이 아닌, 그것을 다룬 프리세일즈 담당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즉, 데이터를 분석해 인사이트를 찾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고, IT기술은 이를 돕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기업도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내부 전문가를 육성하면서 경영진과 데이터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분석문화가 내재화돼야 데이터 분석을 통해 득을 볼 수 있게 된다. 이에 반해 국내의 경우 이러한 인식 없이 ‘알아서 잘해봐’ 식으로 떠밀고서 급하게 성과를 종용하기 일쑤였으니, 그간 데이터 분석을 의사결정에 활용하기 어려웠을 수밖에.

여기에는 당시 솔루션 벤더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도입 시 원하는 대로 구축은 해줬지만, 그 운영이나 활용에 대한 노하우 전수에는 미진한 채 그저 판매에만 급급했다. 이러다보니 관련 전문가가 부족한 대부분 기업에서는 도입해봤자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됐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성공사례는 드물었다.

이러한 과정을 이미 겪어봤는데, 새롭게 빅데이터라고 해서 선뜻 투자하겠는가. 벤더들은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기업 또한 인프라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 의사결정 프로세스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을 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내 환경은 데이터 자체로 비즈니스를 해나가기에는 규제가 지나치게 많다. 개인정보보호 등에 관한 규제가 까다로워서 비즈니스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관련 규제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건전한 사회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다행히 이 부분에 관한 논의 또한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개선을 기대해본다.


게임업계에서는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했나.

N사에서 근무하던 2000년대 말에 겪었던 일로, 이 게임사는 고스톱, 포커 등 웹보드게임도 서비스한다. 당시 N사 웹보드게임은 별다른 요인 없이 이용자수 감소가 지속되던 상황으로, 경영진은 웹보드게임이 사양길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다른 분야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경쟁사 웹보드게임이 예상을 넘는 큰 수익을 올렸고, 이에 자극받아 다시금 웹보드게임에 대한 투자 및 분석이 이뤄졌다.

그 결과, 트래픽 규모는 비슷했으나 유료사용자 비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고, 이에 따라 유료사용자 유치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여러 광고채널에 대해서도 분석했는데, 흥미롭게도 모두 지출 대비 손해라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효과적인 수단을 택해 그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을 연구했고, 스포츠신문과 PC방이 그 대상이 됐다. 스포츠신문에 웹보드게임 광고를 싣는 것이 효과적이란 점은 업계에도 알려진 상태였지만, PC방은 마케팅 측면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플랫폼이었다.

이에 대해 조사 및 분석해보니 주요 고객인 중장년층이 편하게 담배피면서 즐기고자, 또 자녀에게 웹보드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꺼려해 PC방을 찾았던 것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맞춤형 프로모션을 펼쳤고, 이것이 주효해 시장점유율을 급격히 확대하면서 업계 순위도 바꾸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데이터 분석이 의사결정과 실행으로 연결돼 성과를 낸 것이다.


데이터 활용 측면에서 게임과 이커머스 양 업계를 비교한다면.

대부분의 온라인 기반 서비스가 그렇듯, 게임과 이커머스도 데이터를 수집하기 비교적 수월한 분야다. 차이점이 있다면, 게임은 인기를 끌만한 재미있는 콘텐츠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목표고, 이커머스는 주어진 상품을 보다 효과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주된 고민이다. 각 분야별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부분에서도 차이가 생긴다.

또한 분야가 다르므로 데이터 분석 시 요구되는 업무지식(Domain Knowledge)도 다른 것은 물론이다. 모 게임사의 경우 자사 게임의 일정 레벨 이상을 달성하지 못한 직원은 회의에 배제시키기도 했다. 이는 고객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으로, 이것이 결여되면 게임이든 이커머스든 데이터를 분석해봤자 현실과 동떨어진 해석을 내놓기 마련이다.

특히 이커머스에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경쟁사들끼리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게 되므로, 결국 서비스의 질로 경쟁력이 갈린다. 고객 니즈를 이해하고 이에 해당되는 상품을 적절하게 전달, 보다 나은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오프라인부터 모바일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옴니채널(Omni-Channel)도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데이터의 통합적인 분석은 필수적이다. 이커머스는 앞으로도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질 분야 중 하나로 보인다.

한편,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특이한 일면이 있다. 고객들의 소비에는 단순히 품질이나 가성비만이 아니라 브랜드 가치까지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고, 유행에 따라 쏠림 현상도 흔한 편이다. 이 때문에 그간 글로벌 기업들도 고전을 면치 못해온 곳으로, 앞으로도 어떤 글로벌 기업이 국내 시장을 공략하더라도 이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꾸준히 해온 국내 업체가 충분히 승부 가능할 것으로 본다.


빅데이터 시대의 주인공,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어떤 사람인가.

국내에서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데이터 애널리스트,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간 경계가 모호해 혼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계학 석·박사, IT개발자, MBA나 전략컨설팅 펌 출신 등 각자 경력에 따라 데이터에 대한 접근방법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활용해 비즈니스 성과를 끌어올린다’는 점은 동일하며,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곧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통계와 데이터 및 IT에 관한 지식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무엇보다 데이터를 통해 그 이면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는 현실의 그림자일 뿐이므로, 이 같은 통찰력과 더불어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탕이 된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기술로도 의사결정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구할 수 있는 경우가 80%에 이른다. 요즘은 R 등 공개SW도 잘 갖춰져 있어 대부분의 분석은 이를 통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직관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 가장 큰 관점의 변화였다. 예를 들어 서비스를 개선해 기존보다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용자 반응을 데이터로 살펴보면 별반 차이 없거나 오히려 나빠진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러므로 냉정하게 데이터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석현 쿠팡 PO는 지난해 ‘데이터는 답을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빅데이터 마케팅 관련 저서도 출간한 바 있다.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강연과 서적을 접했으나, 해외 성공사례만 거론돼 직접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웠던 것이 그 계기가 됐다. 먼저 나서서 국내 현실에 맞는 경험을 공유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문석현 PO는 “관련 업계 종사자나 지망자에게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고민을 겪으며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를 알려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밝히면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여러 분야에서 실제 경험을 전달해 학생들과 초심자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빅데이터 관련 국내 성공사례는 물론, 다양한 간접경험이 공유돼야 우리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 문석현 PO는 “당분간은 쿠팡 PO로서 업무 성과를 내는데 집중할 생각이지만, 강연 등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있다면 여유가 되는대로 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데이터 분석에 뜻을 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바쁜 행보가 어떤 판로를 개척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문석현 쿠팡 PO는 국내 빅데이터 성공사례는 물론, 다양한 간접경험이 공유돼야 우리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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