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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승자 없는 공공정보화시장계속되는 내리막길…‘책임의식’ 갖고 극복 위해 힘 합칠 때

[컴퓨터월드] 소프트웨어(SW)산업진흥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상호출자제한기업 소속 시스템통합(SI)기업의 공공정보화시장 참여가 제한된 지도 어느덧 4년여가 흘렀다. 당초에는 중견중소기업들의 참여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시장질서가 정립돼 기존의 문제점들도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이 우세했으나,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주체만 바뀌었을 뿐 저가 수주나 하도급 이슈 등의 병폐는 그대로라는 불만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일각에서는 중견SI기업들의 공공SW사업 수행역량에도 의문을 표하면서 대기업의 공공정보화시장 재참여를 촉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중견SI기업들이 공공SW사업을 수행하면서 그만큼 이득을 취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일까. 오히려 현 시점에서 이들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마이너스로 가득하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공공정보화시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또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간단히 살펴본다.

   
 


‘사면초가’에 놓인 중견SI기업들

중견중소 SW전문기업 육성을 통한 선순환적인 SW산업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지난 2013년 SW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공공정보화사업의 주역이었던 대기업들이 전면에서 물러나고 중견SI기업들이 새롭게 그 자리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그늘에 가려져왔던 중견SI기업들은 이 시장을 ‘큰물’이자 ‘기회의 땅’으로 여겨 경쟁적으로 뛰어들었고, 변화를 약속한 정부와 관련업계의 낙관에 향후 전망도 밝아보였다. 이에 중견중소 규모의 IT서비스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적잖은 기업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출혈경쟁도 불사하는 행태를 보였으며, 심지어 자격도 갖추지 않은 기업들마저 공공사업을 수행하겠다고 나서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수년이 흐른 현재 IT서비스업계에서는 공공정보화사업 수주를 기피하며 초기와는 상반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공공정보화사업 절반가량이 유찰돼, 행정적인 소모뿐 아니라 수행기간 단축으로 인한 사업 부실화도 우려되고 있다. 이는 부족한 사업예산과 저가수주로 유발되는, 승자 없는 ‘치킨게임’에 중견SI기업들도 지쳤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더욱이 SW솔루션업계 일각에서는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SI사업주체가 바뀌었어도 소위 ‘갑질’은 여전한데 수익성은 외려 악화됐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고, 또 일부 공공부문 발주자 측에서는 과거 대기업들과 비교하며 중견기업들의 사업수행역량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기업SI가 다시 공공정보화사업에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어, 그간 공공사업부문을 강화해왔던 중견SI기업들로서는 ‘사면초가’에 놓였다고도 볼 수 있다.


“공공정보화사업은 ‘계륵’”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지난 8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정부 주도로 연평균 3조 원씩 투자해온 공공SW시장은 성숙기를 넘어 쇠퇴기로 접어들면서 신규 사업이 줄고, 참여 기업들의 수익성이 저하되면서 양극화됐다. 올해 공공SW시장 규모는 4조 원으로 지난해 3조 8천억 원에 비해 소폭 성장했으나, 신규 사업은 지난 2013년 64%에서 올해 26%까지 줄어들었고 유지보수 사업의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기존 시스템에 대한 유지보수를 우선하다보니 전체 시장의 성장세는 둔화된 상태다.

공직 출신의 한 SW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창조경제’와 SW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정작 국가예산편성 시에는 IT예산이 다른 분야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같은 새로운 영역으로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그 투자효과가 현재 SW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기존 SW기업들이 핵심적인 SW기술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 주요 중견SI기업 실적 현황

공공정보화사업 수행에 따른 주요 중견SI기업들의 실적 변화를 각 사의 단독재무제표를 통해 살펴보면, SW산업진흥법 개정안 시행 이후 대다수 중견SI기업들의 수익률이 급격한 하향세를 그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매출은 늘어나면서 양적 성장을 이뤘으나, 영업이익은 해가 거듭될수록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주요 중견SI기업들의 영업이익률 중 가장 높은 수치가 0%대에 불과하고 절반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점은, 공공분야와 SI업계뿐만 아니라 이들의 사업 수행에 협력하는 여러 국내 SW전문기업들에게도 적신호라 할 수 있다.

중견SI기업들 상당수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공공정보화사업 저가수주를 지양하면서 민간분야 사업비중 확대나 SW유통사업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클라우드,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등 신사업 발굴에도 집중하고 있으나, 이러한 새로운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기 마련이므로 아직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 중견SI기업 대표는 “경영악화를 막기 위해 개발사업을 되도록 지양하고, 리스크 분석도 전사적으로 철저히 한다. 조금이라도 수익이 나지 않을 것 같으면 공공정보화사업 참여를 말리고 있다”며, “경영진부터 진취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회사의 발전에 바람직하겠지만, 공공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임직원들이 하자는 것도 외려 말리는 일이 많아졌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 투자는커녕 지금 먹고살기에도 바쁜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다른 중견SI기업 임원은 “경기침체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공공분야 진출 초기에 예상했던 발주 물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이전보다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늘어난 점도 수익성 저하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며, “공공정보화사업은 마치 계륵과 같다. 수요 예보에 따라 예측 가능하므로 안정적인 매출 신장을 꾀할 수 있고, 공공부문에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을 수주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등 이점도 물론 있다. 그러나 수행하면 낮은 수익성과 여러 구조적인 문제로 이윤을 남기기 쉽지 않고, 그렇다고 참여하지 않으면 담당인력들을 투입할 곳이 마땅치 않아 판관비가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 주요 중견SI기업 영업이익률 추이


공공정보화시장 ‘고질병’ 고치려면 힘 합쳐야

현 공공정보화시장의 여러 문제점들이 과연 중견SI기업들이 온전히 책임져야 할 사항인지에 대해서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한때 과당경쟁을 벌이며 기존의 불공정 관행들을 그대로 답습한 점은 분명 지적받아야 하겠지만, 공공정보화사업의 낮은 수익성을 유발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일정부분에 한해서는 불가피한 측면 또한 존재했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사업예산 부족 및 주먹구구식 삭감 ▲불명확한 RFP(제안요청서) 및 제안평가 관련 관행 ▲짧은 사업기간 및 보상 없는 과업 변경·추가 등이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발주자의 비전문성 및 법·제도 미준수 관련 문제와 더불어 공공정보화 분야에서 오랫동안 지적돼온 고질적인 문제들이기도 하다. 다음은 공공정보화 관련 현안 문제점 및 제도 개선에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 사업예산 부족 및 주먹구구식 삭감

초기 사업 예산 수립 시 기획재정부로부터 톱다운 방식으로 예산이 배정되면서 저가로 예산이 수립되고 있다. 게다가 대가 산정 기준에 의한 예산안에 대해 최종 삭감이 돼도 사업범위는 그대로 유지, 제안요청서에 반영됨으로써 착수부터 과도한 사업범위가 요구된다. 개선을 위해 기재부로부터 예산 삭감 시 과업범위 축소 기준이 마련돼야 하고, 예산 수립 시 과업범위를 RFP에 추가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사업대가가 현실화돼야 한다.

또한, FP(기능점수) 산정 및 개발단가 산정에 있어서도, 발주자가 FP산정 역량 부족으로 이를 기피하면서 FP산정 따로, 예산산정 따로 관리되고 있다. 이에 업체가 예산에 맞춰 FP를 산정하며, FP산정 사업임에도 투입인력에 대한 제안평가와 일방적인 인력 추가 투입 요구도 이뤄진다. 또 사업수행 시에는 FP에 의한 사업범위를 무시하고 사용자 요구조사를 거쳐 구축할 것이 강요되기도 한다. 개선을 위해 발주자의 FP산정 역량 향상 교육 및 인증제를 도입해야 하고, 예산 수립 시 FP를 기준으로 사업을 수행하면서 사전·사후 비교평가 제도가 마련돼야 하며, FP산정 사업이 제대로 기술력 평가로 진행되고 일방적인 인력 추가 투입 요구도 금지돼야 한다.

아울러, 투입공수 방식에 의해 사업대가 예산 수립 시 적정 대가 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보시스템 구축운영지침 제19조에서는 노임단가의 120% 이상 하도급 대금 지급을 의무화하고 있어도 발주자 예산은 이보다 적은 경우가 많으며, 발주자가 원도급자에게는 적정 보상 없이 하도급자 대상으로만 이를 강요하는 셈이므로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개선을 위해 발주자의 사업대가 예산도 노임단가의 120% 이상을 의무화해야 하고, 부득이 예산이 더 적을 경우를 위한 예외조항이 필요하다. 종합유지보수사업 시 지정된 SW·HW제품에 대한 예산 범위 내 하도급 대금 지급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

이밖에, SI를 위한 인건비 및 기술료도 인정되지 않고 있는데, 개별 산정 예산을 단순 합계하는 방식이라 PM, 통합 컨설팅 관련 예산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선을 위해 관련 원가 산정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불명확한 RFP 및 제안평가 관련 관행

RFP 상세화가 제도적으로 의무화됐지만, 발주자는 순환보직인 공무원이라 이를 자체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역량이 부족하다. RFP의 형식만 변경됐을 뿐, 여전히 요구사항이 불명확해 사업예산의 적절성을 확인하기 곤란한 실정이다.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던 요구사항을 RFP에 무분별하게 나열해 원가가 상승하기도 하는데, 예산 수립 시 고려되지 않은 인력의 투입을 요구하거나 제안평가 시 평가위원이 추가로 요구하는 식이다. 개선을 위해 사업 담당자의 발주 관련 역량 강화를 위한 필수 교육 이수를 제도화해야 하며, RFP부터 세부 요구사항의 건별 식별번호를 관리하고 검수조건도 명시돼야 한다. 예산에 반영된 요구사항만 RFP에 반영토록 지침에 명시,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인력에 대한 요구 및 평가위원의 추가적인 투입 요구가 금지돼야 한다.

또한, 수행능력이 아닌 총 투입인원에 의한 제안평가로 인해 고급인력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게 되고, 총 투입인원 증가를 유발해 사업 부실화 및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개선을 위해 능력평가 사업과 총 투입인원 평가 사업 관련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더불어, 사업의 이해가 없는 비전문가에 의한 평가도 문제인데, 한 평가자가 모든 영역을 평가하기에는 전문적인 역량 부족으로 점수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 개선을 위해 영역별 평가자 풀제를 도입하고, 평가원 자격 요건도 강화돼야 한다.

현 제도는 평가 시 기술 대 가격 비중이 9:1로 책정돼있음에도, 기술점수의 차이가 크지 않아 정작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개선을 위해 100% 기술평가로만 진행돼야 한다. 한편, 이후 기술 협상 시 발주자가 우선협상 결렬을 무기로 삼아 타 업체의 추가 제안 내용으로 추가 보완을 요구하거나, 제안서의 추가 제안을 금액으로 환산해 다른 제품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개선을 위해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 평가 세부기준’ 제13조의2 제3항에 “협상 조정되는 경우는 반드시 조정금액이 있어야 함”을 명시해야 한다.

짧은 사업기간 및 보상 없는 과업 추가·변경

과업 추가·변경 관련 관행은 대표적인 문제점 중 하나다. 예산 수립 시 포함되지 않았던 요구사항을 RFP 작성 시 삽입하거나, 요구사항 상세화 및 인수시험 단계에서 과업이 추가 및 변경되기도 하며, 조직 차원이 아닌 담당자 차원에서 요구사항을 포함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예산 추가 없는 과업 추가는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는데, 과업 내용의 변경 및 대가 지급 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무실화된 실정이다. 개선을 위해 RFP 대비 불공정 추가 요구에 대한 사후 감사제도, 추가 과업에 대한 사후 보상청구 및 보상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 관련 지침 준수 교육 및 사후 감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사업집행 시기가 늦음에도 당해연도 회계 마감을 위해 연내 사업 완료토록 강제됨으로써 수행 가능한 기간이 부족하게 되며, 유찰됐던 사업이라면 더욱 짧아진다. 또 유지보수 사업의 경우 하도급 사전승인제로 인해, 사업에 착수했음에도 사전승인 기일(10일) 부족으로 인력을 투입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적정 사업기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업 부실화의 우려와 함께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하게 되고, 인력수급 불균형도 초래한다. 개선을 위해 연중 발주 및 예산 이월 제도를 정착시키고, 적정 사업기간 평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하도급 승인제 관련해서는 유지보수 사업의 경우 사업 착수 14일 전 계약을 발주자에게 의무화하면서 사후승인제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정보시스템 구축운영지침 제37조의 계약 체결 후 7일 이내 하도급 사전 승인 조항은 불필요하므로 삭제돼야 한다.


이러한 불공정 관행들에 대한 개선과 함께, 사업 종료 후에도 발주자 측에서 특별한 사유 없이 자기 편의를 위해 인력을 붙잡아두는 악습 또한 철폐돼야 한다. 인력이 묶여있으니 그 기간만큼 손실을 입게 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불만이다. SI기업에게 인력은 곧 재산이며, 인력가동률이 회사 운영과 실적에 직결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라 기업이 소요하는 추가적인 비용도 사업예산에 고려돼야 하며, 사업수행에 문제가 없다면 원격지 개발도 허용돼야 한다. 대부분 발주자들은 개발자들의 상주를 선호하는 반면, 이에 소요되는 출장비나 주거비 등 여러 가지 제반비용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보상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 중견SI기업 대표는 “지방에서 일정 규모 이상 공공사업을 수행하다보면 그만큼 직원들의 상주에 월마다 억 단위의 비용이 소요되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경우도 있다. 또 직원들에게 장기간 타지 근무를 받아들이도록 연봉인상과 같은 당근을 제시해야 될 수도 있고, 현지에서 충원하려 해도 충분한 역량을 갖춘 인력을 구하지 못해 사업수행 시 품질 관련 문제가 벌어지기도 한다”며, “필요성이 없는 사안도 아니고, 요구되는 금액도 비교적 명확하므로 예산 산정도 수월할 텐데, 왜 개선되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차이

상기 문제들은 대기업SI들이 공공정보화시장의 주역일 때도 대부분 존재했다. 단지 이제는 주역이 중견SI기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때와는 시장이 다르게 흘러가는 원인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과거 대기업SI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감내할 수 있는 기업규모가 됐다. 즉 ‘맷집’의 차이라는, 꼭 바람직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SW산업진흥법 개정안 시행 이후 대기업SI에서 자리를 옮긴 한 중견SI기업 임원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리스크 관리나 마진을 남기는 부분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외산SW벤더의 제품을 비용효율적으로 구입하려 할 때도 자체 그룹사 수요에 힘입어 구매력에서 차이가 난다. 사업 수행 시 발주자 측에서 과업 추가나 변경을 요청해도 중견기업에 비해 보유한 인력과 자원이 많아 훨씬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 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업수행능력과는 별개로 규모에 따른 차이”라고 설명했다.

한 SI업계 관계자는 “과거 대기업SI들의 공공부문 사업비중은 대개 50% 미만으로 지금의 중견SI기업들처럼 높지도 않았고, 이들 역시 공공사업을 수행하면서 그리 이득을 챙기진 못했다. 중견SI기업과 달리 그룹사 내부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면서 수익을 보전할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SI와 중견SI기업 간의 또 다른 차이점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신규 사업을 끌어낼 수 있는 컨설턴트의 유무를 꼽는다. 과거 대기업의 전문 컨설턴트들은 각기 담당분야별로 각 부처로 찾아가 향후 사업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일을 도왔고, 이를 통해 해당 사업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동시에 대기업의 자금과 인력 규모로 신기술을 적용하기도 하는 등 매출 확대를 꾀할 수 있었다. 지금의 중견SI기업들은 규모와 환경의 차이로 인해 주로 영업담당자들이 이러한 활동을 부분적으로 대신하고 있어, 과거에 비해 역량이나 여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달리 바라보자면, 공공정보화분야의 밑그림을 그리는 주체는 공공발주자 측이어야 마땅하다. 물론 사업을 맡은 기업으로부터 일정부분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해당 공무원은 그러한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행정의 기반이 되는 공공IT시스템을 마련하는데 있어, 이윤을 우선시하는 기업들의 ‘수완’에 의존하다가는 자칫 공익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게 될 수도 있다.

현재 공공정보화시장의 모습은 제도 도입과 안착 과정에서 불거지는 일부 부작용이 표면화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대기업SI가 공공정보화시장에 돌아온다면 훨씬 ‘맷집’과 ‘수완’이 좋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환영할 수도 있겠지만, IT서비스산업 생태계 전체를 봤을 때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이미 대규모 자원과 전문적인 인력이 요구되는 클라우드, 빅데이터, IoT 등 새로운 IT분야 공공사업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 마련된 ‘신산업 분야 공공SW사업 대기업 참여제도 운영지침’을 통해 대기업SI들도 참여 가능한 상황이다.

더욱이, 그동안 중견SI기업들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사업수행역량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존에 대기업SI에서 공공정보화사업을 수행했던 전문인력들을 지속적으로 영입해왔다. 만약 대기업의 공공정보화시장 참여 제한이 해제된다면, 이미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중견SI기업들은 그간의 대규모 고용투자가 유명무실화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되고 SW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공산도 적지 않다. 중견SI기업들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해준 이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며, 제도의 재변경은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 이후에도 늦지 않다.


업계 전반에 ‘책임의식’ 필요

한 SI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공공정보화 관련 제도는 비교적 잘 구비된 상태다. 그러나 이들 간의 연결성이 부족해 비효율적이고, 예산과 같은 실질적인 부분에 대한 실효성이 떨어지는 점이 문제”라며, “무엇보다 사업대가 현실화가 급선무이고, 또 제도적으로 수시발주가 가능해진다면 공공정보화시장의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SI에서 임원으로 근무했던 한 IT기업 임원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까지 갈 거 없이 말레이시아만 가도 발주자 역량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RFP도 명확하고, 과업 변경이나 추가가 발생하면 다 인정해준다”며, “애초에 국내 공공정보화 시장환경이 좋다고만은 볼 수 없는 방향으로 조성되면서 관습적으로 남아있는 부분들도 많기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금의 발주자들에게만 물을 수도 없다고 본다. 다만 이제부터라도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공정보화시장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공무원에 대한 부적절한 규제도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주자들이 사업 수행에 있어 감사 대비와 징계 회피에 중점을 두게 되고,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비용을 절감하면 포상도 받을 수 있는 현 제도는 공공정보화사업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므로 제도 개선을 통해 공공부문 발주자들이 소신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역량에 대한 평가는 시스템 구축 이후에 예산 대비 대국민 서비스 우수성이나 업무효율성 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관련업계에서는 바라보고 있다.

규제 개혁과 함께 또 하나 요구되는 것은 정책 입안자들의 책임의식이다. 한 정부기관 발주담당자는 “중견SI기업들의 역량이 아직 충분하진 않다고 본다. 이는 인력의 추가투입으로 연결되면서 결국 채산성이 안 맞게 된다. 기업들 스스로 좀 더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고, 발주자들 또한 마찬가지”라며, “사실 대부분의 문제는 예산 부족에서 비롯된다. 대체로 법만 만들어놓고 제반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당장 도움 될 수 있는 PMO(프로젝트관리조직)를 위한 예산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정책 입안자들은 법률 제정만 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후 손 놓을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는지,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현재 일각에서 추진 중인 공공정보화사업 분할발주제도의 도입도 철저한 검토가 요구된다. 이 제도는 하나의 사업을 설계와 구현으로 나눔으로써 부실 설계를 방지하고 체계적인 수행이 가능해지며, 컨설팅 전문기업 육성을 통해 SW산업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진행과정이 둘로 분리되면서 프로젝트당 일정·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업무의 연속성도 단절되며, 특히 하자책임 발생 시 귀책사유를 놓고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이에 충분한 검토와 합의 없이는 성공적인 정착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 시점에서는 다소 무리하게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책 입안자는 우리사회와 해당 산업에 미칠 영향과 향후 전망을 놓고 면밀히 살펴보고,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공공정보화산업에 대한 ‘책임의식’은 정책 입안자는 물론, 공공부문 발주자, SI기업, SW업계까지 모두에게 필요하다. 당장의 작은 이득을 위한 각자의 근시안적인 선택과 행위들이 누적돼 현 시장의 여러 문제점들로 남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할 때다. 상생 생태계가 조성되고, 중견SI기업들이 권토중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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